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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黃金보기를 石같이-최영 장군-외교부,청와대 언저리 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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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3,670회 작성일 2012-01-27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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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영 [, 1316~1388] 장군!
 
btn_myblog.gifbtn_line.gifbtn_kin.gifbtn_line.gifbtn_objection.gifbtn_line.gifbtn_print.gif
icon_sum.gif요약
고려의 명장, 충신. 1359년 홍건적이 서경을 함락하자 이방실 등과 함께 이를 물리쳤다. 1361년에도 홍건적이 창궐하여 개경까지 점령하자 이를 격퇴하여 전리판서에 올랐다. 이후에도 흥왕사의 변, 제주 호목의 난을 진압했으며, 1376년에는 왜구가 삼남지방을 휩쓸자 홍산에서 적을 대파했다. 1388년 명나라가 철령위를 설치하려하자, 요동정벌을 계획하고 출정했으나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으로 좌절되었다.
본관 동주(東州)
시호 무민(武愍)
활동분야 군사, 정치
28871.jpg
최영 / 고려의 명장 ·충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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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on_con.gif본문
본관 동주(). 시호 무민(). 양광도도순문사(使) 휘하에서 수차 왜구를 토벌, 우달치[:]가 되었으며, 1352년(공민왕 1) 조일신()의 난을 평정하고 호군()에 올랐다. 1354년 대호군() 때 원()나라의 요청으로 중국에서 장사성()의 난군을 토벌하고 귀국, 서북면병마부사(西使)가 되어 원나라에 속했던 압록강 서쪽의 8참()을 수복했다.

1358년 양광·
전라도 왜적체복사(使) 때 오예포()에 침입한 왜선 400여 척을 격파했으며, 1359년 4만의 홍건적()이 서경(西:)을 함락하자 1360년 서북면병마사(西使) 이방실() 등과 함께 이를 물리치고 좌산기상시() 등을 지냈다. 1361년 홍건적이 창궐, 개경()까지 점령하자 안우()·이방실 등과 함께 이를 격퇴, 훈() 1등에 도형벽상공신()에 책록되고 전리판서()에 올랐다.

1363년
흥왕사()의 변(의 난)이 일어나자 이를 진압, 진충분의좌명공신() 1등이 되고 찬성사()에 이르렀다. 1364년 원나라에 있던 최유()가 덕흥군()을 왕으로 추대, 군사 1만으로 쳐들어오자 서북면도순위사(西使)로서 의주()에서 섬멸했으며, 이어 박백야()가 연주()에 침입하자 부하 장수를 시켜 격퇴했다. 1365년 강화()에서 왜구와 싸우던 중, 신돈()의 모함으로 계림윤()에 좌천되고 훈작()도 삭탈당하고 유배되었다가 1371년 신돈이 처형되자 복직, 문하찬성사() 등을 지냈다.

1374년 제주()의 이른바 호목()의 난에는 양광·전라·경상도
도통사로 난을 평정, 판삼사사()에 올랐다. 1376년(우왕 2) 왜구가 삼남지방을 휩쓸고 원수() 박원계()가 참패당하자, 최영이 홍산()에서 적을 대파, 철원부원군()에 봉해졌다. 1377년 서강(西)에, 1378년 승천부(:?)에 쳐들어온 왜구를 이성계 등과 섬멸, 안사공신()의 호를 받았다. 1380년 해도도통사(使)로서 왜구 때문에 수도를 철원()으로 옮기려던 계획을 철회시켰다.

1381년
영삼사사() 등을 지내고 벼슬을 사퇴했다가 88년 수문하시중()이 되었는데, 이 때 명나라가 철령위()를 설치하고 북변 일대를 요동[]에 귀속시키려 하자, 요동정벌을 계획, 팔도도통사(使)가 되어 정벌군을 이끌고 출정했으나, 이성계 등의 위화도회군()으로 요동정벌이 좌절되었다. 후에 이성계군이 개성에 난입하자 이를 맞아 싸우다가 체포되어 고봉(:) 등지에 유배되었다가 개경()에서 참형()되었다. 
 

 

 

 
 
[만물상] 최영 장군
조선일보-김태익 논설위원title_author_arrow_up.gif
 

입력 : 2012.01.26 23:18

최영과 정몽주는 친원(親元), 친명(親明)으로 정치적 입장은 달랐지만 기울어가는 고려 왕조를 떠받치던 두 기둥이었다. 이병주는 소설 '포은 정몽주'에서 막 관직을 시작한 정몽주가 장군·재상으로 한창 잘나가던 최영의 집을 처음 찾아가는 장면을 그렸다. '집은 기어들고 기어나야 할 정도로 초라했다. 방안에 들어갔더니 흙벽(土壁) 그대로이고 바닥엔 멍석을 깔았는데 벼룩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있었다.'
▶최영은 국왕 바로 다음 자리까지 올랐지만 늘 낡은 옷을 입었다. 집의 쌀독이 빌 때도 있었다. 권세를 이용해 뇌물과 청탁을 받지 않은 탓이었다. 최영의 근검과 청렴은 어려서 아버지가 남긴 유언에 따른 것이었다.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 황금에 욕심이 많으면 옳고 그름의 판단이 흐려지고 백성을 괴롭히게 된다." 그는 '견금여석(見金如石)' 넉 자를 큰 띠에 써서 항상 몸에 지니고 다녔다.
▶최영은 스스로 깨끗했을 뿐 아니라 남이 좋은 말을 타거나 좋은 옷 입은 걸 보면 개나 돼지만큼도 여기지 않았다고 한다. 6·25 전까지만 해도 대한민국 땅이었던 파주 덕물산 꼭대기에 최영을 모신 사당 '장군당'이 있었다. 이곳에선 2년에 한 번 전국의 무당들이 모여 큰 굿을 하고 잔치를 벌였다. 그 잔치에서 먹는 돼지고기를 '성계육(成桂肉)'이라고 불렀다. 자기 욕심 채우기에 앞서 백성을 생각한 최영에 대한 존경, 권력을 찬탈하기 위해 최영을 죽인 이성계에 대한 분노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성남에 있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 연수센터는 동남아·아프리카·중남미의 개발도상국 공무원을 초청해 우리의 발전경험을 전수해주는 곳이다. 이곳에 최영 장군 상반신을 담은 부조상(浮彫像)이 세워졌다. 외국 공무원들에게 청렴과 부패 방지의 중요성을 강조하려는 뜻이라고 한다. 부조상 아래엔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look at gold as if it is a valueless stone)'는 최영의 좌우명을 한글과 영어로 새겼다.
▶어려서부터 익히 보고 들었던 최영 장군의 모습과 금언이 우리보다 개발이 더딘 나라 공무원들의 청렴 교육에 나온다니 반갑다. 이참에 경제규모는 세계 12위지만 부패인식지수는 39위에 머물고 있는 우리 현실을 새삼 돌아보게 된다. 행여 연수생들로부터 "너나 잘하세요"라는 말을 듣는다면 최영 장군을 뵐 낯이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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