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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종!-춘원 이광수-6.25납북-사망 보름전 행적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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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3,092회 작성일 2012-01-06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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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납북 이광수 사망 보름 전 행적 찾았다
  경향신문-한윤정 기자(2012.1.05)
 
 
ㆍ미 2006년 CIA 문건 공개

ㆍ6·25 문학사 복원 단초

 
 
 
춘원 이광수(1892~1950)가 1950년 10월25일 사망하기 보름 전인 10월10일까지 평양 교도소에 갇혀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미 중앙정보국(CIA) 문건이 나왔다.

테드 휴즈 미 컬럼비아대 교수는 2006년 비밀 해제된 1장짜리 CIA 문건과 해설을 최근 발간된 다언어
한국학 학술지 ‘사이’ 11호에 실었다. 1950년 12월11일자로 본국에 보고된 이 문건은 이광수와 함께 평양 교도소에 갇혀 있다가 같은 해 10월10일 석방된 농학자 신동기씨의 증언을 빌려 당시 교도소에 이광수가 남아 있었다고 기록했다. CIA는 이광수에 대해 소설가이자 한국 독립운동 지도자라고 간단한 설명을 붙였다.

이 문건에는 전직 군인이자 당시 한·미협회장이던 신씨가 1950년 7월 초 서울에서 체포돼 평양으로 간 뒤 민가에서 공산주의 서적을 읽고 사상 전향을 하도록 강요당했으나 이를 거부하자 같은 해 8월 평양 교도소로 보내졌다고 기록돼 있다. 또 신씨는 석방될 때
운동화와 북한 화폐 5000원을 받았으며, 당시 감옥에는 작가 김동인의 의붓동생이자 제헌의회 부의장이던 김동원, 독립운동가 출신의 명짐세(신분미상) 그리고 이광수가 남아 있었다고 밝혔다. 1898년생인 신씨는 1960년 주한 필리핀 대사로 임명됐다가 5·16쿠데타 이후 미국으로 이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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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 이후 이광수의 행적은 잘 알려지지 않다가 1991년 방북한 3남 영근씨(전 존스홉킨스대 물리학과 교수)가 북한 당국자로부터 ‘자강도 강계군으로 향하던 중 동상이 심해져 10월25일 사망했다’고 확인했다. 그 후 2005년 평양에서 열린 남북작가대회 때 제헌의원 출신의 북측 인사인 최태규씨가 ‘폐결핵이 심해져 강계군 만포면 소재 군인민병원으로 후송되던 중 사망했다’고 밝혔다.

이번 문건의 발견으로 이광수의 행적이 좀 더 분명해졌다. 6·25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12일 납북된 이광수가 10월10일 이후까지 평양 교도소에 있다가 국군의 평양수복(10월20일)이 가까워지자 임시수도였던 강계군으로 옮겨지던 중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사망 직후 강계군 만포면 고개동에 묻혔던 이광수는 1970년 평양으로 이장됐다가 현재는 2003년부터 조성된 평양 용성구역 용궁1동의 재북인사릉에 묻혀 있다.

한국 근대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광수는 평북 정주 출신으로 와세다대 철학과에 재학 중이던 1917년 최초의 근대 장편소설 <무정>을 발표해 소설의 새로운 역사를 개척했다. 또 1919년 도쿄 유학생의 2·8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뒤 중국 상하이로 망명, 임시정부에 참가해 독립신문사 사장을 역임했다. 그러나 1939년 친일어용단체인 조선문인협회 회장을 지내는 등 친일로 기울어 해방 이후 반민법으로 구속됐다가 병보석으로 출감했으나 6·25 때 납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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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비밀 해제된 미국 CIA 문건에 적힌 이광수 이름(왼쪽). 평양 용성구역의 재북인사릉에 있는 이광수 묘.
 
 
휴즈 교수는 “북한에서 이광수의 행적을 보여주는 최초의 문건으로 보인다”며 “순차적으로 비밀 해제되는 CIA 문건을 살펴보면 해방과 6·25 시기에 밝혀지지 않은 문학사를 복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문건은 컬럼비아대 대학원생 크리스 할린이 1940~1950년대 한국에서 미국이 벌인 정보수집 활동에 대한 자료조사를 하던 중 지난해 10월 처음 발견했다.

납북·월북 작가 연구자인 김재용 원광대 교수는 “시인 정지용이나 김기림의 행적 역시 뚜렷하게 밝혀진 바 없다”며 “CIA 문건을 포함해 더욱 면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지용의 경우 1950년 7월 자택을 나가 실종된 뒤 평양 교도소에 수감됐다가 그해 9월23일 유엔군의 폭격으로 사망했다는 설(계광순 전 국회의원 회고록), 자진 월북하던 중 9월21일 동두천 소요산에서 미군의 폭격으로 사망했다는 설(북한 시인 박산운 회고문)이 있다.

 

 

*********

 

 

이광수 [李光洙, 1892.3.4~1950.10.25]
btn_myblog.gifbtn_line.gifbtn_kin.gifbtn_line.gifbtn_objection.gifbtn_line.gifbtn_print.gif
icon_sum.gif요약
한국 최초의 근대 장편소설 《무정(無情)》을 쓴 소설가. 소설문학의 새로운 역사를 개척하였다. 주요 작품으로 《무정》, 《흙》등을 비롯하여 수 많은 논문과 시편이 있다.
춘원
활동분야 문학
출생지 평북 정주
주요저서 《무정》 《흙》
icon_con.gif본문
호 춘원(). 평안북도 정주() 출생. 소작농 가정에 태어나 1902년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후 동학()에 들어가 서기()가 되었으나 관헌의 탄압이 심해지자 1904년 상경하였다. 이듬해 친일단체 일진회()의 추천으로 도일, 메이지[]학원에 편입하여 공부하면서 소년회()를 조직하고 회람지 《소년》을 발행하는 한편 시와 평론 등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1910년 동교를 졸업하고 일시 귀국하여 오산학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재차 도일, 와세다[]대학 철학과에 입학, 1917년 1월 1일부터 한국 최초의 근대 장편소설 《무정()》을 《매일신보()》에 연재하여 소설문학의 새로운 역사를 개척하였다. 1919년 도쿄[] 유학생의 2·8독립선언서를 기초한 후 상하이[]로 망명, 임시정부에 참가하여 독립신문사 사장을 역임했다.
1921년 4월 귀국하여 허영숙()과 결혼, 1923년 《동아일보》에 입사하여 편집국장을 지내고, 1933년 《조선일보》 부사장을 거치는 등 언론계에서 활약하면서 《재생()》 《마의태자()》 《단종애사()》 《흙》 등 많은 작품을 썼다.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투옥되었다가 반 년 만에 병보석되었는데, 이때부터 본격적인 친일 행위로 기울어져 1939년에는 친일어용단체인 조선문인협회() 회장이 되었으며 가야마 미쓰로[]라고 창씨개명을 하였다.

8·15광복 후 반민법으로 구속되었다가 병보석으로 출감했으나 6·25전쟁 때 납북되었다. 그간 생사불명이다가 1950년 만포(滿)에서 병사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 밖의 작품에 《윤광호()》 등의 단편과 《이차돈()의 사()》 《사랑》 《원효대사》 《유정》 등 장편, 그리고 수많은 논문과 시편들이 있다.

[이광수의 연표]

연도

내용

1916

와세다 대학 철학과 입학

1917

장편《무정()》 단편《소년의 비애

1917~18

장편《개척자

1919

《조선청년독립단선언서》를 기초하고 상하이로 탈출.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주간으로 활동

1921

귀국하여 《동아일보》《조선일보》등에서 언론활동

1923~24

장편《허생전()》

1924

수필집《금강산유기()》

1924~25

장편《재생()》

1926~27

장편《마의태자()》

1928~29

장편《단종애사()》

1930

소설집《혁명가의 아내》

1931~32

장편《이순신

1932~33

장편《흙》

1933

장편《유정()》

1934~35

장편《그 여자의 일생

1935~36

장편《이차돈()의 사()》

1936

장편《애욕()의 피안》수필집《인생의 향기

1936~37

장편《그의 자서전》

1937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안창호()와 함께 투옥

1938

장편《사랑》

1939

친일어용 단체인 조선문인협회 회장 역임.
소설집 《이광수 단편선》시집《춘원시가집

1940

장편《세종대왕

1942

장편《원효대사》

1947

장편《도산() 안창호()》《꿈》《나》

1948

장편《나의 고백》 수필집 《돌벼개》

1950

6.25 전쟁 때 납북, 만포에서 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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