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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케이블방송에서는 이종격투기 중계가 한창이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여간 인기가 아니다. 유일한 세계 챔피언 지인진까지 K-1으로 뛰어든 판이다. 동네에서 뛰노는 아이들 입에서 이종격투기 용어가 술술 나오는 것도 더 이상 새삼스럽지 않다.
우리 인턴들의 고민은 여기에서 시작됐다. 대화는 "이종격투기 난 좋다, 난 싫다"로부터 시작해 "이종격투기 도대체 왜 인기일까"를 지나 "우리나라도 과거엔 투기종목 강국이었는데…, 특히 권투는…"으로 이어졌다.
그래. 맞아. 지금은 TV 앞에 모여 외국 이종격투기 선수들의 경기에 빠져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불과 10여 년전만 해도 권투중계를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한 때 국제경기 전 종목 우승의 금자탑을 세우기도 했던 국민 스포츠 권투. 홍수환·문성길·장정구·유명우·백인철·박종팔·백현만·김광선·박시헌·오광수…나열하는 데만도 숨이 찰 정도로 많은 선수들이 국민들을 울리고 웃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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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강동구 성내동에 위치한 문성길 복싱클럽. 복싱클럽의 허름한 외양이 마치 한국 권투의 현주소를 말해 주는 것 같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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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서형 |
| '복싱 추억' 더듬다가 문득 "문성길 백인철 만나자"
그러나 한국 권투 쇠락의 속도는 매우 빨랐다. 사람들은 더 이상 과거를 추억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제 그 자리는 이미 외국에서 들어온 이종 격투기가 메우고 있다. 한국 권투는 부흥할 수 있을 것인가. 이종 격투기의 아성에 도전장을 내고 권좌를 탈환할 수 있을 것인가.
<오마이뉴스> 6기 인턴 기자들이 왕년의 권투스타 문성길(44)과 백인철(46)을 다시 링 위로 초대하게 된 이유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도 궁금했지만 이종격투기에 열광하는 작금의 분위기에 대해서도 느끼는 바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두 사람의 인생에 녹아있는 한과 열정을 잘 담기 위해 약간의 소주를 곁들인 '솔직토크' 형식을 취했다. 장소는 당초 성내동에 위치한 문성길 체육관 근처 선술집을 고민했으나 두 사람에게 가장 친근할 장소가 좋겠다 싶어 변경했다. '링 위'였다.
1982·1986년 아시안게임 금메달, 1986년 세계 선수권대회 금메달, WBA 밴텀급과 WBC 슈퍼플라이급 세계 챔피언에 빛나는 문성길과 WBA 슈퍼미들급 세계 최고 주먹이었던 백인철과의 사상 최초 '체육관 링 위에서의 취중 솔직토크'는 이렇게 성사됐다.
"추억이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다시 재현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 권투의 두 거장을 인터뷰하기 위해 서울 강동구 성내동 문성길 복싱클럽(관장: 조영섭)을 찾았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글귀였다. 마치 한국 권투의 현주소를 표현한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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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성길 복싱클럽 안에 써있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아! 옛날이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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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서형 |
| '돌주먹' 문성길의 간판을 내건 만큼 복서의 순수한 열정을 볼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우리에게 체육관의 풍경은 적잖은 충격이었다. 시큼한 땀 냄새가 가득한 체육관 안에는 여자 한 분을 포함한 다섯 명의 사람만이 가볍게 몸을 풀고 있었다. 체육관에는 힙합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복싱클럽은 세계 챔프를 꿈꾸는 사람들의 훈련장이 아닌 하나의 다이어트 방식으로 전락한 지 오래였다.
조 관장에게 체육관에 세계 챔프를 꿈꾸는 선수는 없느냐고 물었다. 그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요즘 누가 권투 하려고 합니까. 그냥 살 빼려고 동작 배우는 거죠."
찬란했던 한국 권투의 황금기를 좇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과거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추억거리에 불과한 듯 했다.
약속시간을 조금 넘어 백인철과 문성길이 모습을 드러냈다. 주먹 하나로 세계를 제패했던 그들도 세월 앞에서는 약하기만 했다. 나이를 속일 수 없었다. 어린 시절 강철처럼 느껴졌던 그들의 어깨에도 어느 덧 진한 세월의 무게가 얹혀 있었다.
링 위에 자리를 깔고 앉아 술잔을 돌렸다. 만일 야구였다면 지금 이 상황이 선동열과 이만수가 투수판에 모여앉은 셈인데 체육관에서 그들을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왠지 모를 씁쓸함을 뒤로한 채 '전설'들과의 취중토크는 시작됐다. 심경을 잘 옮기기 위해 발언을 거의 그대로 옮겼다.
[1라운드] 뭐 먹고 사냐고?
'철판볶음밥' 사장님 - 건설회사 이사님
- 어려운 시간 내어 주셔서 감사하다. 두 분은 왕년의 복싱 슈퍼스타였다. 우선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해 하는 복싱팬이 많을 것 같다. 문성길: 나는 1998년부터 요식업을 시작했어. '철판볶음밥' 가게를 하고 있어, 처음에는 장사가 잘 될까 고민했지. 당시 테크노마트에 이 가게 체인이 있었는데 그 곳 장사가 엄청 잘 되는 거야. 그거 보면서 '아하, 나도 이거하면 되겠다' 싶어서 잠실에 있는 롯데마트에서 장사를 시작했는데…난 너무 안되는 거야 (웃음)
그래서 가게를 중계동으로 옮겼는데, 다행히 잘 되더라고. 전에 있던 주인은 망해서 나간 곳인데 내가 들어가서 몇 배 매출을 올렸어. 그 다음에는 다른 곳에 오히려 가게를 내줬지. 롯데마트 구리점, 서산점, 중계점 등에서 하고 있어.
백인철:난 한 5년 전부터 한 건설회사에 다니고 있어. 이사를 맡고 있지.
- 오랜만에 링 위에 올라왔는데 감회가 어떤가? 옛 생각도 날 것 같은데? 문성길: 오늘처럼 링 위에서 술 마시며 얘기 나누는 건 체육관 개관한 날 빼고는 첨이라서 색다른 기분이야. 한동안 권투 체육관을 운영했기 때문에 낯설거나 그렇진 않아. 하지만 링 위에 오르면 자꾸 전성기 시절 전 고생했던 때가 생각나.(웃음)
1982년 국가대표 하기 전에 3년 동안 계속 대회 나가서 깨졌어. 그때 링에 앉아 울고불고 했지. 운동 잘하는 선배들이 나보고 '문성길이 저 새끼는 절대 안 된다' 그랬지. 나는 포부가 큰데 자꾸 안 된다고 하는 거야. 그땐 정말 열 받았지. '이놈들 한 번 두고 봐라'면서 이를 악물고 더 열심히 했어. 땀 뻘뻘 흘리면서… 그 후 일곱 경기만에 '세계챔피언' 먹었지.(웃음)
-백인철씨도 전성기 시절 대단했는데? 백인철: 젊었을 때 경기사진이나 비디오 가끔씩 보는데. 어쩔 때는 막 돌겠어. 젊었을 때 내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지금은 앞에 이마도 훤하지만 나도 그때는 괜찮았어. (웃음) 당시 난 26연속 KO승 기록도 갖고 있었고 부러울 것이 없었지. 내가 뛰던 미들급에는 다들 한방이 있는 선수들이 있었거든. 누가 먼저 빈틈을 노리고 공격하느냐가 중요하지. 나는 그걸 잘해서 KO승도 많았던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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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 |
세계를 제패했던 두 선수의 '한창'시절 모습. 문성길은 WBA 밴텀급, WBC 슈퍼플라이급 챔피언, 백인철은 WBA 슈퍼미들급 챔피언이었다. |
ⓒ 한국권투위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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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
그러나 세월이 흘러 이들의 나이도 40대 중반으로 접어들었다. 백인철씨는 머리가 많이 빠졌고 문성길씨 역시 얼굴에 주름이 많이 잡혀있었다. |
ⓒ 한서형 |
| [2라운드] : 은퇴하고 뭐했냐고?
"약 팔려다녔어. 완전 사기야" - "에이 성길아 술 좀 따라라"
문성길과 백인철. 복싱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면 문성길과 카오코 갤럭시와의 리턴매치라든지 백인철과 박종팔의 라이벌전을 기억할 것이다. 이들이 천하를 호령하던 전성기가 바로 국내 복싱의 전성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세월은 이들에게 챔피언 벨트를 오래도록 선사하지는 않았다. 맨 꼭대기에 있는 이들도 내리막을 걸었고 10여 년 전 모두 링에서 내려왔다. 그러면서 자연히 국내 복싱도 침체를 걷게 됐다. 팬들도 그랬지만 이들도 무지 아쉬웠을 것이다.
챔피언 벨트의 영광이 오래가진 않고 두 선수 모두 은퇴했다. 어떤 계기로 선수생활을 마감하게 됐나? 문성길: 스포츠 선수라면 누구나 은퇴를 하게 되지. 참 마음 아픈 순간이었어. (소주 한잔을 들이키며) 1993년부터 점차 체력의 한계를 느끼고 체중 조절도 힘들어졌지. 그 때문에 두 체급 위 슈퍼밴텀급 타이틀에 도전했어. 당시에는 '3관왕의 위업을 달성하고 은퇴하겠다'는 야망을 가졌는데, 그 뒤 경기도 잘 풀리지 않고 권투 인기도 갑자기 시들해지고 그래서 결국 권투를 그만두게 됐지.
백인철:난 연습 부족도 있었고,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선수로서 제일 중요한 '자기관리'를 잘 못한 거 같아. 내가 술을 좀 좋아해서… 그냥 생각하기 싫은 부분이야.
- <주먹이 운다>란 영화를 보면, 어떤 일본 권투선수의 실화가 나오는데, 은퇴 후 생활고에 시달리다 도심 한복판에서 사람들에게 맞아 돈을 번다. 두 분은 이 이야기에 공감하는지 그리고 은퇴 후 생활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는지? 백인철:(주먹을 보여주며) 전문적으로 배운 건 '주먹' 이거 하나밖에 없는데…은퇴하니 할 일이 없어진 거야. 선수시절 경험을 살려 체육관 운영을 하려고 해도 그런 자리는 이미 다 다른 사람의 차지가 되어 버려 힘들었지.
문성길: 백형 말에 덧붙이자면, 권투 커리어가 화려하다고 해서 후배양성을 잘하고 그런 건 아니야. 난 은퇴 후에 한 제약회사에 다녔어. 근데 이 사람들이 완전 사기꾼들이야. 이사 자리 준다고 해서 들어갔는데 3년 동안 나한테 일을 절대 안 주는 거야. 하루 종일 신문만 뒤적거리면서 하루를 보냈지. 봉급은 120만 원 정도? 한 번도 올려준 적 없고. 이 회사에서 나에게 유일하게 시킨 게 '호랑이 뼈'로 만들었다는 약을 선전하는 것이었어. 그런데 그게 완전 가짜야. 호랑이뼈? 무슨 개뿔. 호랑이 뼈로 약을 만들어? 곧 그 회사를 그만두고 나왔어.
백인철: 한마디로 사회라고 하는 것이 정말 무서운 곳이더라고. 난 사기도 당했어. 가장 친한 사람에게 배신당한 거지. 정말 얘기하기도 싫어. 에이, 성길아 형 열 받는데 소주나 한잔 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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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길아 한 잔 따라라" 문성길씨가 백인철씨에게 소주를 따르고 있다. 두 살 차이가 나는 두 사람은 옛부터 돈독한 우정을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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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서형 |
| -그럼 운동했을 때 관계 맺었던 분들 중에 은퇴 후 백인철씨를 도와준 분은 없었나? 백인철:(소주잔을 비우더니) 도와주긴 했지만 근본적으로 내가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안 되거든. 사회는 내 힘으로 헤쳐 가야 해. 현역 때 돈을 많이 벌어놓든지 아니면 장사를 하든지. 현역 때 못 벌어놓고 사회 가면 바로 생활고에 시달려. 그게 현실이야. 그리고 성길이 같은 경우는 잘하는 거지. 장사를 야무지게 하고 있는데, 선수가 배운 건 주먹밖에 없어. 성길이 정도 하는 건 천만다행이야.
-문성길씨는 은퇴 뒤 2000년부터 한동안 체육관을 운영하며 후진양성을 해왔는데, 백인철씨는 후진양성을 할 생각이 없나? 백인철:지금은 건설회사 다니지만, 안정이 되면 후배를 키우고 싶어. 나의 생활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후배양성만 하고 싶어. 여유가 있으면… 지금은 아직 그럴 여유가 없어 체육관으로 밥 먹고 살고 싶은 생각은 없는 상태지.
[3라운드] K-1 가는 선수들에 대해
"이해하고 싶어, 잘하면 좋지" - "그건 한국권투에 대한 명예훼손"
한국 권투의 중흥을 위해 땀을 흘리던 선수들이 하나둘 K-1으로 옮기고 있다. 최용수 지인진까지 옮겨갔다. 한국 권투의 흥행을 책임졌던 문성길과 백인철. 이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의견은 달랐다. 현실적으로 이해한다는 백인철의 대답에 문성길이 펄쩍 뛰었다. 그러면서도 두 사람은 그럴 수밖에 없는 우리 권투계의 현실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은 듯 했다.
-후진양성 이야기도 했지만, 최근 한국 권투의 미래라고 할 수 있던 최용수, 지인진 선수가 K-1으로 진출했다, 이런 후배들 모습을 어떻게 보나? 백인철:은퇴하기 전에 생활비 벌어야 해. 월급 받아봤자 은퇴 후에 할 게 아무것도 없어. 다른 길이 없더라고. 난 어느 정도 현실을 인정하는 편이야. 그런 걸 겪어봤기 때문에 후배들의 이런 모습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싶어.
문성길:나는 백형과 생각이 좀 달라. 권투를 했던 사람이 K-1가면 유리할 순 있지. 내 생각엔 경제적 문제와 함께 나이 좀 먹고 권투를 더 써먹기 힘드니까 K-1으로 가지 않느냐 싶어. 이름도 있고 그러니깐. 그리고 만약 거기서 뛴다고 해도 팬들이나 국민들이 봤을 때 어색하지 않는 시합을 해야지 돈 몇 푼 때문에 챔피언의 자존심을 파는 건 비난받아 마땅해. 백인철:난 내 후배들이 거기 가서 잘하면 자랑스럽고 좋더라. (웃음) 문성길:(버럭 화를 내며) 백형 무슨 말 하는 거야. 그건 한국 권투에 대한 '명예훼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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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성길씨와 백인철씨가 옛 시절을 떠오르게 하는 '복서'포즈를 취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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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서형 |
| -그럼 K-1에 진출해서도 복싱 선수 출신의 명예를 살릴 수만 있다면 괜찮다는 말인가? 문성길:다시 말하는데, 초심 잃지 않고 열심히 해서 명예를 높이면 좋은데… 풍운의 꿈을 갖고 갔을 테니까 말릴 수는 없겠지만, 대신 선배들한테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해줬으면 좋겠어.
-요즘 시들해진 복싱의 인기와 대조적으로 K-1같은 이종격투기 인기가 높은데 왜 그렇다고 생각하나? 문성길:에이 그거 다 바람이야. 스포츠는 어떤 것이든지 꾸준히 수십 년간 인기를 유지할 수 없어. 권투도 후진 발굴 열심히 해서 '스타선수' 만든다면 다시 전성기 누릴 거야. 그러면 너도나도 권투를 보려고 다시 TV 앞에 모일 것 같아.
백인철:성길이 말이 맞아. 지금도 권투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데, 방송사들은 권투 중계 안 하지? 우리 시합할 땐 중계료가 팍팍 나왔는데. 지금은 오히려 방송국에 사정하고 있는 처지야. 획기적인 선수가 나와야 해. '스타선수' 말이야. 그래야 방송국이 중계를 하고 사람들이 권투에 더 관심을 가질 수 있지.
- 얼마 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복싱경기 파이트머니는 무려 343억 원이라는 얘기도 있었는데, 현재 우리나라 최고 수준 선수들의 파이트머니는 얼마 정도 되나? 백인철:얼마 안 되지. 그 사람들 한 번 할 때 우리는 340번 해야 해. (웃음) 시장이 영세해가지고 그렇게 받을 수는 없어.
문성길:보통 광고 팔아서 파이트머니가 나와. 내가 방어전할 때는 1000만 원 정도만 받은 적은 없는데 요즘은 죽어라 싸워도 1000만 원도 못 받는다고 하더군. 지인진 같은 경우도 그렇고… 그리고 일 년에 경기를 많이 해봤자 세 번 정도? 그 돈만으로 생활을 꾸려나가는 것이 요즘 복싱선수들의 현실이지. 정말 껌 값밖에 안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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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인철씨는 골초였다. 이 날 인터뷰에서도 답답한 얘기다 싶으면 여지없이 담배를 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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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서형 |
| -그동안 이렇게 불이익을 당하는 권투선수들을 보호해줄 장치는 없었던 건가? 문성길:그런 것이 없는 게 문제지. 파이트머니(대전료) 제대로 안 주면 협회에서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줘야 하는데. 있으나마나한 권투협회. 백인철:협회는 하는 일이 아무것도 없어. 선수들의 권익을 보호해주는 것이 아니라, 프로모터들이랑 놀아난다고, 협회는 선수들 편이 아니야. 문성길:그리고 권투는 선수가 몇 명 되지도 않고 야구나 축구와는 다른 개인운동이라 그동안 자기 목소리만 크게 내고 똘똘 뭉쳐지지 않았어. 그래서 선수협의회 같은 것도 없지. 일단 내가 바라는 건 권투협회부터 먼저 변하는 거야. 지도층에서 힘을 가지고 선수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어야지. 프로모터 말에 흔들리면 안되거든.
-그럼 앞으로 한국 권투계의 구태를 쇄신할 수 있는 움직임을 벌여나갈 계획은 없나? 백인철:안 그래도 선배들을 중심으로 얼마 전부터 움직임이 일고 있지. 내 친구인 이상호 선수를 필두로 해서 뜻있고 의리 있는 사람 30명 정도가 모인 단체를 만들었어. 그리고 권투협회 찾아가서 '썩은 마음 가져서는 안 된다. 다 물러나라. 원로들…' 이렇게 항의했지만 구태의연한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어서 꼼짝도 안 하더라고. 질려 버렸어. 더 이상 싸우기 싫어서 최근에 새로운 권투협회를 다시 만들었어. '사단법인 KPBF' 라고 이름 붙였는데 아직 아는 사람은 몇 명 없더라. (웃음)
문성길:백형 근데 종팔이는 거기 가입되어 있어?(웃음)
백인철:박종팔이는 아직 몰라서 가입 안 했나? 빨리 가입시켜야겠네. (박종팔 선수는 선수시절 백인철 선수와 숙명의 라이벌로 유명했다)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한국 권투가 이대로 주저앉을 수만은 없는 상황 아닌가. 두 분 모두 한국 권투계의 산증인으로서 '복싱명가 재건'을 위한 방안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문성길:한국 권투가 살아나려면 선수들 복지향상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권투협회에서 그걸 전혀 신경쓰고 있지 않아. 매일 같이 세력다툼이나 하고… 거기부터 정신차려야 해. 특히 파이팅머니 배분문제는 협회에서 확실히 책임져야 해. 그것도 제대로 안 챙겨주면 누가 권투를 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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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성길씨가 소주를 들이키고 있다. '돌주먹'으로 세계를 평정했던 그도 은퇴 뒤에는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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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서형 |
| 백인철:난 일단 선수 배출이 잘 되어야 한다고 봐. 그냥 선수가 아니고 스타선수. 그럼 사람들이 시합을 보려고 경기장에 몰려들고 이를 중계하려는 방송사도 늘어날거야. 어떤 분야든 좋은 상품이 나와야 해. 이렇게 되려면 파이트머니가 현실적으로 책정되어야 해. 프로스포츠는 아무래도 돈을 무시할 수 없지. 열심히 해봐야 한국의 마지막 세계챔피언 지인진도 방어전할 때 파이트머니(대전료)를 1000만 원 정도 받았다고 하던데. 그게 프로권투 선수한테 맞는 돈이냐? 우선 현실적인 문제가 잘 갖춰지면 선수층의 저변도 자연스럽게 늘어나고 경기력도 상당 부분 향상될 거야.
- 그래도 세계챔피언 되기 위해 삼수째 도전 중인 최요삼 선수를 포함해, 어려운 여건에도 내일의 챔피언을 꿈꾸는 후배들이 있다. 꿈을 위해 도전하는 후배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린다. 백인철:난 정말 박수 쳐주고 싶어. 요삼이 같은 경우 나이도 많이 먹고 실패도 많이 했지만 챔피언이 되려는 그 모습, 나는 좋아. 그런데 이런 환경을 만들어준 게 너무 미안하고, 할 말이 없는 것 같아. 우리부터 각성해야 해. 선배로서 열심히 할 수 있는 환경부터 만들어주고 싶어. 그냥 '운동이나 열심히 하라' 말만 하기 전에…
문성길: 후배들아. 풍운의 꿈을 안고 세계 챔피언 되려고 노력하는데…지금 아마권투나 프로권투 모두 너무 침체돼 있지만, 앞으로 선배들이 너희들을 위해 먼저 노력할 거고 열심히 하면 길이 보일 거야. 피땀 흘려 열심히 노력해라. 한국 복싱은 반드시 다시 살아날 거야… 파이팅!
일곱 시가 조금 넘어 시작된 인터뷰는 열 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링 위에서 마신 소주만 다섯 병이 넘었다. 두 선수는 흥에 겨워 마시기도 했고, 분에 못 이겨 마시기도 했다. 소주잔을 돌릴 때마다 터져 나온 그들의 말 속에는 한국 권투의 애환이 서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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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상 최초 '링 위 인터뷰'는 소주와 족발을 곁들이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그러나 두 사람은 한국 권투계의 문제점 등에 대해서는 매섭게 비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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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서형 |
| 문성길씨는 인터뷰가 끝나자 약속이 있다고 먼저 링밖으로 나갔다. 그러나 몇 년간 자신이 운영했던 체육관을 찾은 감회가 남다른지 쉬이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백인철씨 역시 몇 번이고 체육관을 서성이고서야 아쉬운 듯 문을 열고 나갔다. 천정에 걸린 샌드백을 자식처럼 쓰다듬는 그의 손길에서 복싱에 대한 진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영화 <주먹이 운다>를 보면 퇴물 복서 강태식(최민식 분)이 신인왕전에 출전하기 전 마지막으로 만난 아들에게 "괜찮아 아빠 안 죽어" 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자식에 대한 절제된 사랑의 표현임과 동시에 자신의 의지를 곧추세우는 이 말은 영화의 백미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둘이 합쳐 72번을 싸워 단 5번만을 패하고 57번이나 KO승을 거둔 전설 두 명이 "이제 한국 권투는 완전히 끝났다"고 사람들에게 말한다.
"권투 절대 안 죽어"
썩어빠진 권투 행정을 줄곧 탓하면서도 권투에 대한 진한 애정만큼은 숨기지 못했던 그들의 말 속에서 한국 권투의 화려한 부활을 꿈꿔본다. 우리네 기억에서 '권투의 추억'을 덜어내기엔 아직 너무 이르다.
언젠가 다시 문성길 복싱클럽을 찾았을 때는 챔프를 꿈꾸는 젊은 복서의 기합소리가 힙합리듬을 대신하고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문성길 백인철의 손에서 다듬어진 '스타 복서'들이 세계를 호령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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