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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생 및 20代 초중반-자녀를 둔 同門--미리 읽고-같이 읽을 만한 주요 자료임!-청춘불패-정윤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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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3,693회 작성일 2011-12-19 0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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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상담앱]
 
“스포츠 청춘 살리려던 조광래 경질, 아까워
 
등록 : 20111215 19:43 | 수정 : 20111215 22:46
 
 
 
 
고등학교 자퇴하고 헌책방 탐닉하다
 
 
스포츠문화평론가 된 정윤수가 말하는
 
 
 
‘시대를 즐기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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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 처음으로 청바지를 입었다. 선입관을 버리니 그럭저럭 입을 만하다.” 정윤수(45) 스포츠문화평론가(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외래교수)를 인터뷰한 14일, 그는 자신의 트위터에 이렇게 썼다. 오후 3시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 캠퍼스에서 만난 그는 청바지를 입고 어색하게 웃으며 절뚝절뚝 걸어왔다. “청바지가 젊음·열정·자유의 상징이라는 말이 너무 우스워” 젊은 날엔 청바지 입기를 거부했고 “독서반인데도 독서하면 혼나는” 고등학교가 숨막혀 자퇴를 했다. 축구장에서 카뮈를 떠올리는 이 독특한 평론가를 만나기 위해 이윤영(22)·김우현(23)·박주희(20) 세 명의 청춘이 나섰다. 인터뷰는 두시간이 넘게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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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따라 고등학교를 자퇴하겠다고?

 

 

이윤영 다리를 다치셨네요?

 

 

정윤수 3주 전에 성공회대 축구팀 ‘더불어숲’에서 경기를 뛰다가 넘어졌어요. 상대 수비수와 축구공 둘 다 저를 의식하지 않는 상황에서(웃음) 멋있게 턴하며 차려다가 저 혼자 쓰러졌어요. 정형외과 의사가 “축구가 저희를 먹여살리죠” 하더라고요.

김우현 청바지를 오늘 처음 입으신다고요?

 

 

 

정윤수 청바지가 자유의 상징이라는 말에 딱 반감이 들더라고요. 청바지가 젊음·열정·자유를 상징한다니 그 말이 너무 우습게 들렸어요. 메릴린 맨슨이란 가수가 그랬다잖아요. “청바지를 입고 쇼핑몰을 어슬렁거리는 것만큼이나 참을 수 없는 것은 없다”고요. 자유, 열정, 청춘, 성공, 이런 말을 옷으로 표상한다는 발상 자체가 너무 우습다고 생각해서 오랫동안 안 입었죠. 그런데 최근 중학교 2학년인 딸아이가 청바지도 좀 입어보라고 하길래 청바지 안 입는다는 고집도 억지스러운 거다 싶어서 입어봤어요.





박주희 고등학교를 자퇴하셨다고 들었어요.
 

정윤수 1970년대 유신체제 영향으로 제가 고등학교를 다닌 80년대 초반은 전 사회가 군사화되어 있었어요. 학교도 병영구조화되어 있어서 학도호국단이 있고 교련 수업 받고 그랬죠. 입시지옥에 병영문화, 학교는 질식할 것 같았어요.

 

 

고등학교 3학년 때 독서반 회장을 했는데 독서반이라고 수학 문제 안 풀고 독서를 하면 엄청 혼이 났죠. 그래서 학교 쪽과 크고 작은 마찰을 많이 빚었어요.

 

 

학생부에 맨날 끌려가 맞고 정학도 당했죠. 결국 담임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가정 문제로 자퇴함”이라고 적고 자퇴를 했어요.

 

 

가정이 아닌 학교 문제였는데, ‘기록 싸움’에서 제가 졌어요. 지금 돌아보면 당시 자퇴를 한 이유는 교장부터 담임까지 교사들과의 불편한 관계 때문이 49%, 나머지 51%는 객기·치기였죠.

 

자퇴를 하는데 한 친구가 농담으로 제게 “너 검정고시 봐서 내신 올리려고 하지?”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또 그게 아니란 걸 증명하듯이 10여년 동안 검정고시 근처에도 가지 않았어요.

 

 

이윤영 고등학교 자퇴 후 청년 시절을 어떻게 보내셨나요?

 

 

정윤수 교문을 나서니 거칠고 야성적인 세계가 펼쳐져 있더군요. 20대 초반 3년 정도는 음악다방에서 디제이를 했어요. 낭만적 선택이 아니라 절박한 생계를 위해서였죠.

 

나중에 대학에 간 친구들을 만나 보니 대부분 학생운동을 하고 잡혀가기도 하고 그러는 거예요. 난 뭘 하는 건가 싶었죠. 그래서 같이 만나 세미나도 하고 무작정 인천의 노동자대학을 찾아가서 지역활동도 하고 그랬어요.

 

 

나중에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조직원 전체가 수배되면서 해체됐는데 덕분에 저도 1년 정도 쫓기는 생활을 했죠. 이제 다 끝났겠거니 싶어 할아버지 생신 때 집에 갔다가 붙잡혔어요. 근데 경찰도 제가 워낙 작은 구성원에 불과하다는 걸 아니까 곧 풀어주더라고요.

 

 

 

박주희 현재 대학을 휴학 중이고 곧 자퇴할 계획인데요. 조언을 부탁드려요.

 

 

 

정윤수 제가 고등학교를 자퇴한 몇 년 뒤에 몇 명의 고등학생이 저를 찾아왔어요. 자신들도 선배님처럼 의연히 자퇴를 하고 학생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열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전 “그런 의미라면 자퇴하지 마라, 그건 오버다”라고 말했어요.

 

물론 역사적으로 4·19 때처럼 집합적 열정이 분출될 때가 있었어요. 하지만 의도적으로 자신을 역사화하려는 시도는 완전히 다른 의미죠.

 

 

후배들은 제가 마치 대단한 문화운동이라도 하다가 분연히 떨쳐 일어나 자퇴를 하고 노동운동에 뛰어든 것으로 알더라고요.

 

그래서 “나 그런 사람 아니다”라며 과잉된 열정으로 도식적인 프로그램에 자신을 맞추지 말라고 했어요.

 

생활이 자유로운 것이 마치 영혼이 자유로움을 의미하는 것처럼 착각할 나이는

 

지나야죠.

 

 

외국 박사도 넘쳐나는 시대에 학벌을 늘리라는 것이 아니에요. 대학 사회는 엄청난 문제를 안고 있지만 그것 때문에 공부를 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너무 위험한 선택이에요.

 

자기가 공부할 의지가 없는 것을 ‘서열화된 대학을 거부한다’고 핑계 대서는 안 돼요.

 

그 과정 속에서 자기 긴장과 힘을 늦추지 않는 것이 좋죠.

 

 

 

박주희 지금까지도 고교 중퇴의 학력이신가요?

 

정윤수 고교 자퇴한 지 10년이 지난 뒤 결혼을 하려는데 장모님께서 “그래도 사위가 고졸은 됐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검정고시를 봤어요. 마흔이 넘어서는 김창남 선생님 권유로 독학사를 거쳐 대학원까지 마쳤죠. 생애 한번은 금강석처럼 단단하게 공부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성공회대는 능력이 있다면 학위가 없어도 강의를 할 수 있는 곳입니다. 스포츠·문화 평론 일도 그렇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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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의 무질서한 매력에 빠지다

김우현 스포츠·문화 평론은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요?

 

 

정윤수 검찰에서 풀려난 뒤 월간 <예감>에 기획위원으로 참여하게 됐어요.

 

이후에 또 계간 <리뷰>라는 문화비평지를 지인들과 내게 되면서 편집위원으로 참여했죠.

 

그러니까 1990년대 들어서면서 문화비평이라는 일을 하게 된 겁니다.

 

그러던 중 1998년 프랑스월드컵이 열리면서 차범근 신드롬이 불어닥쳤어요. 스포츠신문이 늘어나고 일간지도 증면 경쟁을 할 때였죠.

 

 

언론사들은 기존 스타일이 아닌 다른 방식, 스포츠를 좀 인문적인 감성으로 접근해 그 속에 숨겨진 인간의 욕망, 국가주의, 과잉 민족주의, 이런 걸 짚어줄 사람을 필요로 했죠.

 

 

당시 계간 <리뷰>에서 월드컵 특집을 두차례 내보낸 상태였는데 제가 월드컵과 축구를 인문학적·사회학적으로 해석했고 그런 맥락에서 박종환 당시 국가대표팀 감독을 인터뷰해 실었죠.

 

그걸 보고 일간지와 방송에서 글쓰기나 출연 요청이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이윤영 신작 <인공낙원>이나 그동안 써오신 칼럼을 읽다 보면 문학작품을 매우 많이 읽으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린 시절에 독서를 많이 하셨나요? 기억에 남는 작품은요?

 

 

정윤수 제가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1980~85년은 지금처럼 영상·인터넷 시대가 아니고 고색창연한 활자의 시대였어요. 만일 내가 90년대에 중고등학교를 다녔다면 영상에 더 친숙하고 인터넷 서핑을 통해 세상을 알았겠죠.

 

시대마다 자신을 담아주는 미디어 그릇이 있다고 생각해요. 제 경우는 활자였고요. 중학교 때 교과서에 수록된 김동인의 <감자> 같은 작품을 읽는데 너무 재미가 없는 거예요. 더 당대성 있고 세련되고 현실에 와닿는 고뇌가 녹아 있는 작품을 보고 싶었죠.

 

그래서 60년대 이후에 쓰여진 작품을 찾아보기 시작했어요. 권장도서 목록 같은, 세상에 하등 쓸데없는 것은 제쳐두고, 한 권의 책을 읽으면 그 책이 인도하는 또다른 책을 읽곤 했죠.

 

 

황동규·신경림·이성복·황지우·박노해의 시를 돌아 또 세계문학으로 갔다가….

 

 

황석영·김승옥의 작품도 많이 봤고요. 눈앞에서 생생하게 벌어지는 일인 듯, 멀미 나는 문장들이었죠.

 

 

 

이윤영 특별히 책을 고르는 기준이 있나요?

 

 

정윤수 대형 서점보다 헌책방에 가는 것을 좋아했어요. 헌책방에 가 보면 책방 주인이 나름대로 분류는 해놓아도 책들이 뒤죽박죽 놓여 있어 재밌거든요.

 

소설 쪽에는 고전부터 추리소설, 삼류 연애소설까지 뒤섞여, 카프카를 읽다가 애거사 크리스티로 넘어갔다가 김승옥을 만나는 식이죠. 어느 헌책방에 가든지 적어도 한 권의 책은 나를 기다리고 있다라고 저는 생각해요.

 

 

 

김우현 자녀에게도 헌책방을 좋아하는 아날로그적 감성을 불어넣으려 교육하는 편인가요?

 

 

정윤수 저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사고나 상상력에 있어 서로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아날로그 감성이나 인문성이 있어야 한다, 이런 식의 진부한 관념도 믿지 않아요. 내가 그렇게 성장했다고 해서 “너희는 왜 아이패드 갖고 노냐, 헌책방에 가야지”라는 식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얼마 전 문화방송 <100분토론>에서도

 

한 중앙일보 논설위원이 인터넷 세대를 경박하다고 비하했는데, 이는 스스로 붕괴위기를 느낀 기성세대가 두렵다고 말하기 쪽팔리니까 비난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자기 시대마다 살아가는 방식이 있고 안철수씨 말마따나 결국 우주의 먼지로 돌아가는 건데 말이죠.

 

486이라고 하는 세대는 너무 계몽적인데다 스스로 ‘문화적으로 진보적이며 정치적으로 올바른’ 부모가 되려고 너무 노력하며 살아요. “우리 어릴 때는 말이야”식, 너무 고리타분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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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래 신드롬’이 불었다면 어땠을까

 

 

이윤영 예전에 칼럼에 스포츠 선수들에게도 인문학을 가르쳐야 한다고 쓰셨더라고요?

 

 

 

정윤수 운동선수를 운동기계로 만드는 현실을 바꾸는 일은 매우 절박한 문제입니다.

 

운동기계로서의 가치가 사라지면 선수들은 매정하게 ‘아웃’되는데

 

인생 전반 30여년을 합숙소와 경기장에서 군대식 편제 속에 살다 보니 나머지 삶도 그렇게 살게 되는 거죠.

 

운 좋게 지도자가 돼도 선수들을 강압적으로 다스리고 사회로 나오면 적응을 못하는 경우가 있죠.

 

네덜란드, 스웨덴, 벨기에, 스위스 등은 올림픽 중위권 국가들이지만 운동선수들이 자아실현 하며 만족하며 살아가죠. 올림픽 상위권인 우리나라는 선수들이 다 속은 여리디여리고 겉으로는 거칠어요. 인문학이든 뭐든 시급합니다.

 

 

 

김우현 최근 축구협회에서 조광래 국가대표팀 감독을 경질한 것과 관련해 언론에서는 감독이 파리 목숨이냐, 절차상의 문제가 있냐 없냐는 얘기만 나오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정윤수 우선 팀내 사정에 대해서는 정보가 정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쉽게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선수도 자기가 모시고 있는 감독, 심지어 해임된 감독에 대해서도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아요.

 

 

언젠가 또 마주칠 사람인데다가 어려서부터 감독에 대해 말하지 못하는 환경에서 훈련 받았을 테니까요. 그래서 팀내 문제를 말하기는 쉽지 않죠. 게다가 이번에는 일부 매체만 갑자기 감독 자질 문제를 쫙 보도하며 나섰는데 매우 신중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조광래 감독의 스타일이 어땠냐, 내부 불협화음이 있었냐 없었냐에만 집중하게 되면 더 큰 문제를 못 볼 수 있어요.

 

 

 

김우현 조광래 감독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정윤수 저는 조광래 감독이 더 오래 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 감독은 현재 한국 선수들이 어려서부터 억제된 훈육을 받아온 것이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선수 개개인의 개인기를 원활하게 활성화시켜 창의적인 쪽으로 가려고 했죠.

 

조 감독의 그림처럼 에이(A) 매치가 가게 되면 금세 유소년 축구도 영향을 받게 돼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안 때리고, 개인기 부려도 된다고 허용하고, 그렇게 큰 틀에서 조금씩 바뀌는 거죠. 즐기면서 하는 창의적인 축구로 말이죠. 그런 문화가 자리잡은 다음에는 조 감독이 떠나도 한국 스포츠문화 패러다임이 바뀔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것이 ‘조광래 효과’라며 조명을 받아봐요. 사회가 바뀝니다. 아이들을 때리고 윽박지르지 않고 개성을 존중해 주는 쪽으로 말이죠. “4열 종대, 헤쳐모여” 이런 것 더이상 하지 않고요.

 

이 부분이 너무도 아쉬워요. 기술위원회가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라면 또 아예 스타일이 다른 감독이 오고 선수들은 또 혼란을 겪게 되겠죠. 굉장히 아쉽게 기회를 놓쳤다고 봅니다.

 

 

 

이윤영 축구를 진정 아끼시는 것 같습니다.

 

 

정윤수 90년대 초반, 비 오는 평일 오후 3시에 동대문운동장으로 케이(K)리그 경기를 보러 간 적이 있어요. 관중도 거의 없었죠.

 

선수들은 흙탕물에 뒹굴어서 내편 네편 구분도 잘 안 갔죠. 공 차도 뻘에 박히고. 관중석에 앉아 있는데 축구가 진짜 우리 삶과 흡사하다고 느꼈어요.

 

일단 휘슬이 불리면 종료 휘슬이 불릴 때까지 숭고한 운명의 주술에 걸린 듯 뛰어야 한다는 거죠.

 

 

카뮈의 소설에 나오는 ‘부조리한 상황에 내던져졌다 해도 죽을 때까지 부조리와 부딪히며 견뎌 나가야 하는’ 상태를 느낀 거죠.

 

저 선수들을 사랑하고 싶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김우현 스포츠·문화 분야의 평론가를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조언 부탁드려요.

 

 

정윤수 영화를 많이 본다고 영화평론가가 되는가? 아니죠. 스포츠만 많이 보면 스포츠 평론가가 될까요? 불가능합니다.

 

비평가가 되려면 좀더 근원적인 구조와 삶의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해요.

 

철학이나 인간의 영혼을 다루는 문학에 관심을 갖다가 어느 순간 그 속에서 베컴이 보이고 박주영이 보여야 평론이 되죠.

 

박주영의 골인 장면을 모두 알고 있다고 해서 평론가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팬이나 수집광으로 남을 순 있죠. 영화나 작품을 봤을 때 그 밑의 구조가 보여야 해요.

 

 

<나는 꼼수다>의 내용을 두고 왈가왈부하지만 멀리서 보면 그 어떤 대세적인 흐름, 구렁이가 담을 넘는 듯 흘러가는 그 구조를 볼 필요가 있어요.

 

‘스펙’ 같은 이상한 용어에 매몰되지 말고 많이 공부하고 멀리 보세요.

 

 

진행·정리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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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일 오후 3시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 캠퍼스에서 만난 정윤수 스포츠문화평론가가 청춘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생각에 잠겨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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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전긍긍 청춘, 멀리 깊게 보라!

 

 

그의 칼럼, 비평 등의 글을 보면서 참 만나 뵙고 싶은 분이라는 생각을 했고, 역시나 그 예상이 맞았다.

 

서두에 안철수님의 말을 인용하며 “우연히 이 시대에 태어났고 시대적 흐름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일 뿐입니다. 저에게 이런 인터뷰는 과분하고, 어떤 시대를 바꾸고 있는 사람은 단연코 아닙니다”라고 하셨던 것이 인상적이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이러한 말이 단순히 시대흐름에 편승해 있는 것이 아닌, 시대 흐름 속에서 구조를 파악하고 뼈대를 곧게 세우고 있는 이의 겸손함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인문학과 관련된 부분부터 한국 축구의 패러다임 문제까지 정윤수 스포츠문화평론가를 인터뷰하면서 가장 크게 느꼈던 것은, 전체를 보는 안목을 지닌 분이라는 것이다. 인터뷰를 하면서 거론된

 

이른바 ‘핫이슈’라고 할 수 있는 사건을 대할 때에도

 

지엽적인 세세한 비평보다는 시스템을 분석하고, 흐름 속에서 원인을 파악하며 자연스럽게 해결책을 도출해 나가는 그것은 당장 눈앞에 마주한 현상이나 걱정에 전전긍긍하는 나를 비롯한 많은 청춘들에게 좋은 귀감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5~10분 사이에도 여러 가지 상황, 즉 흐름이 득점을 만들어내는 축구경기처럼 이 시대 지친 청춘들도 눈앞의 득점보다는 조금 더 미리 내다보고 전체를 볼 수 있는 안목이야말로 인생이라는 경기를 승리로 이끌 수 있는 가장 좋은 대안이 아닐까. 앞으로도 축구뿐 아니라 다양한 문화분야의 칼럼과 비평을 기대해본다. 김우현

 

 

자기합리화의 물방울이 터지다

 

정윤수 선생님과 이야기를 하니 내가 생각하고 있던, 나를 지켜주던 자기합리화의 물방울이 하나둘 터지는 느낌이었다. 나를 합리화하면서 객기를 부린 건 아니었을까, 한 면만을 바라보고 나의 좁은 생각의 틀에 갇혀 허울 좋은 이상을 추구하지는 않았던가, 나는 나를 어떻게 바라봐왔던가라는 근본적인 고민이 샘솟았다.

 

본질로 다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선생님이 사회를, 스포츠를, 문화를, 그런 주위의 것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어떻게 쌓아온 건지 더 듣고 싶을 만큼 말이다.

 

 

부딪히고, 서로의 말을 주고받는 과정을 좋아하는 나는 정윤수 선생님과 토론을 해보고 싶다. 선생님과 토론한다면 얻어가는 것도 많고 더 고민하고 더 이해하는 즐거운 토론이 될 것만 같다. 언젠가 다시 뵌다면 더 많은 궁금증을 선생님과 나눠보고 싶다. 박주희

 

 

헌책방을 다녀온 기분

 

 

인터뷰를 준비하기 위해 찾아본 자료만으로도 충분히 얼마나 다양한 분야를 섭렵(?)하고 계신 줄 짐작했지만,

 

직접 만나본 정윤수 선생님은 ‘헌책방’ 같은 분이셨다. 정해지고 규정된 방식이 아닌, 뒤죽박죽 꽂힌 서가들의 책들을 따라 사유의 흐름을 자유롭고 또 즐겁게 하는 선생님의 이야기 헌책방! 이번 인터뷰는 그런 헌책방을 다녀간 기분이다. 이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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