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국민血稅 착취-비리 將星들-저격수-^김종대 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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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4,133회 작성일 2016-04-29 16:34본문
[Magazine D/Face to Face]
‘국방부 저격수’ 김종대 당선자
“천안함 사건? 진보도 틀렸다”
조성식 기자
입력 2016-04-27 13:10:00 수정 2016-04-27 20:53:40
● 고졸자 배려하는 입영예약제 실시해야
● 한국군의 무능력 덕분에 한반도 평화 유지
● 무기 도입을 위해 안보를 강조하는 나라
● 사드, 핵무장은 전형적 안보 포퓰리즘
● ‘통일대박’ 터뜨리려면 전작권부터 가져와라
● 병역 면제자, 안보 직책 못 맡게 해야
“군에서는 김 당선자에 대해 ‘군을 잘 아는 만큼 군 정책 및 내부 문제 분석에 정확할 것’이라는 평가와 ‘군 현실과 동떨어진 인기영합주의적 주장으로 국방 정책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동아일보, ‘진보 군사평론가’ 정의당 김종대에 긴장하는 軍)
“군 실상을 잘 아는 만큼 군 내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인기영합적인 진보적 주장으로 안보 정책에 발목잡기를 일삼을 수 있다는 우려가 그것이다.”(문화일보, ‘주목! 20대 초선’ 진보 군사전문가 김종대… ‘국방부 저격수’ 자임)
“방산비리 척결을 위해 변호사를 보좌관으로 채용하자 국방부도 긴장하고 있다고 한다.”(중앙일보, ‘방산비리 때려잡겠다’는 비례대표, 국방부 긴장)
“저격수가 아니라 동반자”
서울 여의도 정의당 당사에서 만난 그는 국회의원 배지를 다는 게 아직 실감나지 않는 듯 “쑥스럽다”는 말을 몇 번이나 되뇌었다. 세련미와는 거리가 먼 ‘시골스러운’ 인상과 수수한 옷차림은 변함이 없다. 양복 상의에 붙인 노란색 세월호 배지가 눈길을 끈다. 그는 ‘안보 자판기’처럼 어떠한 질문에도 막힘없이 답변을 쏟아냈다. 향후 국방·안보 정책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인물이라는 점을 고려해 많은 질문으로 그의 머릿속을 들여다봤다.
-군에서 왜 긴장을 하나.
“국방부에 내 전담자가 5명이라고 들었다. 아예 팀을 만들어 내 언행을 분석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한다고 한다. 그동안 군의 구석구석 안 들여다본 곳이 없다. 인사 문제도 관찰했다. 군의 가장 예민한 구석을 밖에서 들여다봐 왔으니 긴장하는 것 같다. 불편한 감정도 있겠고.”
-‘국방부 저격수’라고 하는데.
“극단적이고 적절치 않은 표현이다. 우리 국방이 정상화하는 데 비판·견제 세력으로 자리매김하고 싶을 따름이지 그들의 정체성과 자존심까지 건드릴 생각은 없다. 시민을 대표해 군을 보겠다. 그런 점에서 저격수가 아니라 동반자다.”
-‘안보 정책 발목잡기가 우려된다’거나 ‘인기영합적 주장을 편다’는 시각이 있다.
“현재 60만인 군 병력을 40만으로 줄이겠다는 정의당 공약을 우려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인구 추세를 보면 감축할 수밖에 없다. 인구절벽 시기인 2022년이 되면 징집 인구가 2016년보다 30퍼센트 줄어든다. 2016년 기준 21세 남자가 36만 명인데, 2022년엔 11만 명이 감소한다. 뭐가 인기영합이냐. 지금부터 줄이지 않으면 다음 정권 때 군의 하부구조가 붕괴하는 재난을 맞을 것이다. 사실 이런 건 보수정당에서 준비해야 한다.”
새누리당은 2012년 대선 당시 군 복무 기간 단축을 내세웠다가 슬그머니 철회한 적이 있다. 정의당의 접근방식은 좀 다르다. 김 당선자의 설명을 들어보자.
“고졸 청년이 군에 가려면 연령 미달로 24개월 기다려야 한다. 2년 뒤 군에 가서 21개월 근무하고 나오면 45개월이 지나는데, 고졸이라 취직이 안 된다. 취직하는 데 평균 31개월 걸린다. 합하면 76개월이다. 사회 진출 경쟁에서 6년 4개월이 뒤쳐지는 셈이다. 21개월을 18개월로 줄이는 것보다 76개월을 절반으로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고졸자는 원할 경우 바로 군에 들어가게 해 학력 차별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 20대 전반기를 허비하면 자칫 평생 패배자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청년 문제, 일자리 문제, 병역 문제가 따로 논다. 그래서 우리는 복무 기간 단축은 주장하지 않는다. 대신 고졸의 사회 진출 대기 기간을 줄여주겠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정의당은 입영예약제를 주장한다. 고교 1학년 때부터 상담을 하고 입영 안내를 받아 졸업하는 대로 원하는 부대에 갈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이른바 자기주도형 입영이다.
“안보민주화는 경제민주화의 선결과제”
국방문민화도 주요 공약이다. 이는 김 당선자의 오랜 소신이기도 하다. 그는 ‘안보민주화’라는 표현을 썼다.
“지금까지 안보는 보수 정권의 전유물이었다. 사회 공동의 가치이고 시민공동체의 가치임에도 특정 정파의 가치로 왜곡돼 왔다. 이것을 시민의 가치로 돌려줘야 한다. 이것이 바로 안보민주화다. 경제민주화의 선결과제이기도 하다. 경제민주화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기업구조도 바꿔야 하고 양극화도 해소해야 한다. 이에 비해 안보민주화는 제도만 바꾸면 된다. 사회적 합의만 이뤄지면 된다. 오늘부터 민간이 국방을 통제하는 제도로 바꾸겠다고 선포하면 된다.”
-장관을 비롯한 국방부의 주요 보직을 민간이 맡는 것이 관건이지 않나.
“국방부는 원래 국민을 대리해 군을 통제하는 집단이다. 그런데 우리 국방부를 보면 군을 대리해 국민을 통제하는 조직이다. 원래 군의 대표는 군 서열 1위인 합동참모본부 의장이다. 군의 의견을 대표하라고 만든 자리다. 그런데 지금 합참의 존재감은 거의 없고 국방부가 군을 대변한다. 현역 군인들이 주요 보직을 차지해 정책을 수립한다. 장관도 군 출신이 맡는다. 국방부가 합참의 상급부대인 셈이다. 국방부 회의 때 차관은 서열 9위다. 장관 밑에 4성 장군 8명이 있고 그 다음이 차관이다. 이건 군부대 편제나 다름없다.”
국방문민화에 가장 크게 역행하는 인사가 이뤄진 것은 노무현 정부 때였다. 2006년 11월 노 대통령은 김장수 육군 참모총장을 국방부 장관에 임명했다. 현역 대장인 참모총장이 국방부 장관으로 직행한 것은 전례 없는 일이라 군 안팎에서 논란이 일었다. 김 당선자가 노무현 정부 초기 청와대 국방보좌관실 행정관을 지냈기에, 그 일에 대해 따져봤다. 그는 “잘못된 인사였다”고 인정했다.
“2006년 10월 북한이 핵실험을 한 이후 안보 위기론이 기승을 부렸다. 노 대통령이 거기에 압박을 느껴 이상한 인사를 했다. 그것도 현역 대장들 간 경쟁을 붙여. 청와대 인사수석실 행정관이 함참의장과 육참총장을 만나 ‘장관이 되면 어떻게 할지’를 물어봤다. 일종의 면접시험을 본 것이다. 그래서 후보자들 간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다. 군인들을 그렇게 줄 세우면 안 된다. 노무현 정부의 큰 실책이었다.”
-남북 분단 상황에서 국방문민화, 즉 군에 대한 문민 통제를 불안해하는 시각도 많다.
“그건 막연한 불안감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이 패망한 이유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당시 일본군은 천왕의 명을 받는 대본영이 통제했다. 그런데 만주사변 당시 전공에 눈이 먼 군 지휘관들이 대본영을 무력화하며 중국군과 전면전을 벌였다. 이것이 일본 패망의 첫걸음이었다. 이후 통제에서 벗어난 일본군은 태평양으로 전선을 확대하면서 파멸의 길로 접어들었다. 군인들은 흔히 안보논리를 군사논리로 여기는데, 이는 정략과 전략을 구분하지 못해서다. 국가의 정략은 군사적 전략을 초월한다. 군인들의 직업적 편견이기도 하다. 이런 편견을 제어하기 위해서라도 전문 관료집단의 통제가 필요하다.”
“안보 분야 정상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한 그는 오병흥 전 육군 준장의 증언을 끄집어냈다. 천안함 사건 당시 합참 전비태세검열실 차장이던 오 전 준장은 최근 ‘나비와 천안함’이라는 책을 펴내 화제가 됐다. 요지는 천안함 사건 후 감찰 차원에서 작성한 조사보고서가 상부 압력으로 조작됐다는 것.
“합참의장은 조사보고서에서 ‘데프콘 1 발령시 자동조치 사항인 위기조치반을 소집하지 않았다’라는 대목을 ‘위기조치반을 지연 소집하였다’로 수정했다.”(조선일보, ‘천안함 사건 조사한 將軍 입 열다… 오병흥 전 합참 전비태세검열차장’, 2016년 4월 11일)
오 전 준장은 또 “천안함 사건(2010년 3월)은 대청해전(2009년 11월)에 대한 보복이었으며, 북한의 잠수함 공격을 예상하고도 군 지휘부가 전혀 대비하지 않았다”라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대청해전은 과잉대응에 의한 ‘억지 승전’이며, ‘비례성‘이라는 교전규칙을 심각하게 위반한 전투였다.
“천안함 사건, 결과만 있고 과정이 없다”
김 당선자는 “오 전 준장의 증언은 내가 ‘서해전쟁’에서 폈던 주장과 맥락이 닿는다”고 말했다. 그가 2013년 펴낸 ‘서해전쟁’은 김대중 정부 이후 남북한 군이 교전을 벌인 제1연평해전, 제2연평해전, 천안함 사건, 연평도 포격사건 등의 진실을 추적한 책이다. 그는 “군 지휘관들의 전문성은 필요하지만 통제 받아야 한다. 이게 안보민주화의 핵심이다”라고 강조했다.
-김 당선자가 천안함 사건에 대해 다른 시각을 가진 것 아니냐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다.
“천안함 사건은 사실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가 돼버렸다. 북한이 벌인 짓이라는 걸 믿느냐, 안 믿느냐. 정부 발표를 믿느냐, 안 믿느냐. 나는 민군합동조사단 발표를 신뢰한다고 수도 없이 얘기했다. 그런데 그들은 또 묻는다. 100퍼센트 믿느냐고. 이건 대답하지 않으면 공격하겠다는 의도다. 천안함 사건이 난 지 6년이 지났다. 그 사건에 북한의 새로운 전술과 새로운 무기체계가 동원됐다면 마땅히 연구하고 분석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와 관련된 논문이 발표된 적도 없고 세미나 한 번 열리지 않았다. 160t짜리 잠수정이 7m짜리 중어뢰로 공격했다는 건데, 그 작은 잠수정에 어떻게 그토록 무겁고 규모가 큰 어뢰가 탑재될 수 있었는지, 무기 체계 작동원리는 뭔지 연구해야 하지 않나.”
-추정이라는 건가? 과학적 증거가 아니라.
“사건 후 논의가 딱 봉쇄되지 않았나. 결과만 있지 과정은 없는 사건이 돼 버렸다. 그런 점에서 천안함 사건은 재규명해야 한다. 과정에 대한 과학적 토론이 이뤄져야 한다. 진보도 문제가 있다. 과학적 논쟁이라면 어뢰파와 기뢰파가 한 편이 돼야 한다. 수중 폭발이 있었는지가 가장 큰 쟁점이기 때문이다. 좌초파는 시각이 완전히 다르다. 그런데 실제로는 좌초파와 기뢰파가 한 편이고, 어뢰파가 반대편에 있다.”
-정부에 대한 무조건적 불신도 한몫했다.
“과학이 아니라 북한을 판단 기준으로 삼으니 기뢰파와 좌초파가 한 편이 된 거다. 북한이 했느냐, 안 했느냐. 이런 비과학적 논쟁이 어디 있냐. 과학과 상관없는 진영논리다.”
-사건 초기 청와대는 북한 소행이라는 국방부 보고를 믿으려 하지 않았다.
“거기에 대해선 많은 증언이 있다. 어뢰 얘기를 원천봉쇄하려 했다. 심지어 파도설까지 나오지 않았나. 안보라인 비서관은 어뢰설을 보도한 조선일보에 항의했고, 이명박 대통령은 ‘내가 배를 만들어봐서 아는데, 파도에도 그렇게 두 동강 나 똑 부러질 수 있다’고 했다. 나중에 연평도 포격사건이 일어나자 그 책임을 군에 뒤집어 씌웠다. 군의 반대로 전투기로 못 때린 게 천추의 한이라며. 군 관계자들 증언으로 MB가 거짓말했다는 게 확인됐다.”
-어느 쪽 말이 맞는지 알 수 없지 않나.
“당시 합참의장이던 한민구 현 국방부 장관이 국회에서 증언했다. 그때 대통령으로부터 전투기의 ‘전’자도 들은 바 없다고.”
-MB는 자서전에도 썼다. 자기는 즉각 응징을 지시했는데, 군이 말을 안 들었다고.
“한 장관은 당시 나와 만나 ‘도대체 대통령이 말하는 군은 어떤 군이냐. 합참의장이 모르는 군이 따로 있냐’고까지 했다. 어쩌면 대통령이 비서관과 상의했는데, 비서관이 반대했는지도 모른다. 그걸 두고 군이 비겁하다고 하면 어떡하느냐. 이처럼 보수 정치권력의 특징은 안보가 실패하면 군에 책임을 떠넘기고 자기들은 빠져나가려 한다. 그리고 위신을 세우려 한다. 왜? 여태 안보를 입에 달고 살았으니까. 물론 안보에 무관심한 진보도 문제지만.”
MB의 거짓말과 군의 책임 회피
-이명박 정부 때 유난히 안보라인에 그런 사람이 많이 포진하지 않았나.
“그러니 그들이 하는 얘기가 종북주의자보다 더 위험할 수밖에.”
-군도 책임 회피 차원에서 둘러댄 건 아닐까. 연평도 포격사건 때도 연합사령부에 묻기나 하고….
“유엔사령부 교전규칙을 말하는 건데, 평시작전통제권을 우리가 가져온 지 오래다. 그러면 거기에 맞게 작전 체계가 수정돼야 하는데, 지금도 예전 규정을 지침으로 삼는다. 여전히 연합사가 우리 대신 결정하고 싸울 문제라고 믿는 것이다.”
-연평도 포격사건은 전시가 아니라 평시니 평작권을 가진 우리 군이 대응공격을 결정했어야 하지 않나.
“당시 우리가 전투기를 띄울 수 있느냐 없느냐로 합참 장군들이 두 패로 갈려 논쟁했다. 한쪽은 자위권 차원에 반격해야 한다고 했고, 다른 한쪽은 유엔사 교전규칙에 따라야 한다고 했다. 일주일간 논쟁하다 결국 국제법 학자한테 연구 용역을 줬다. 이후 한미 간 3년에 걸쳐 협의해 만들어진 게 한미국지도발공동계획이다. 거기에 따르면 국지도발이 발생하면 한국군이 주도하고 미군은 지원한다.”
-영토와 민간인이 공격당한 상황에서 우리 군의 대응태도는 실망스러웠다.
“실망스러웠다. 거짓말도 쏟아내고. 해병대가 응사해 북한군이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는 얘기부터 거짓말이었다. 기상관측 장비가 부실한 탓이었다. F-15 전투기 세 대가 출동했다. 조종사가 언론 인터뷰에서 ‘명령만 내리면 즉각 북한군 포대를 공격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공대지미사일을 달지 않은 비무장 상태였다는 사실이 나중에 드러났다.”
이와 관련, 오병흥 전 준장은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그날 북한 쪽 타격 지점 영상을 직접 봤다. 전혀 타격을 주지 못했다. 포(砲) 성능은 우리가 월등했지만, 당시 기상 측정 장비가 고장 나 있었다. 사격 정확도가 떨어졌다”고 말했다. 다시 김 당선자의 지적이다.
“천안함 사건도 마찬가지다. 음파 탐지기(소나)가 고물이라서 북한 잠수정이나 어뢰를 못 잡았다고 해명했다. 그걸로 경계 실패라는 책임을 면했다. 그런데 엉터리 장비를 단 책임은 안 지나. 위험한 접적수역에서 작전하는 함정의 음파 탐지기가 있으나마나 하다니. 치부를 드러냄으로써 작전 실패의 책임을 모면했다. 기만이다. 천안함 사건을 통해 우리가 배운 건 군 지휘부가 예하 부대의 전투 준비 태세를 전혀 모른다는 것, 어떤 장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제대로 모른다는 점이다.”
고장, 불량, 엉터리 대응
“역사의 아이러니다. 나는 한반도 평화를 지키는 데 결정적 구실을 한 것이 한국군의 무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인천아시안게임이 끝난 직후인 2014년 10월 7일 북한 경비정이 서해북방한계선(NLL)을 넘어왔다. 우리 고속정이 경고사격을 하자 북한군이 응사했다. 심각한 사태라 판단한 군 지휘부에서 격파사격을 지시했다. 그런데 아무 일 없이 끝났다. 우리 유도탄고속함에서 포를 쐈는데, 포탄이 날아가지 않았다. 포가 불량품이었던 거다. 그 사이 북한 배가 빠져나갔다. 사흘 뒤엔 경기도 연천군 연천면사무소에 북한군이 쏜 고사총 탄환 중 일부가 떨어졌다. 대북전단이 담긴 대형 풍선을 겨냥한 사격이었다. 처음엔 몰랐다가 세 시간이 지난 뒤 면사무소 앞에서 탄피를 발견하고는 뒤늦게 대응한다고 북한군 GP(Guard Post·감시초소) 쪽으로 경고사격을 했다. 공격을 제때 탐지하지 못한 것은 스웨덴에서 도입한 대(對)포병 레이더 아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칫 큰 싸움으로 번질 뻔한 이런 사건들이 조용히 끝난 것은 한국군의 무능력 덕분이었다.”
그는 “안보를 위해 무기를 도입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무기 도입을 위해 안보를 강조한다”고 개탄했다.
지난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와 핵무장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에 대해 그는 “전형적 안보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했다.
“사드는 선거용으로 제기한 것임에 틀림없다. 사드 배치 후보지로 거론된 데가 전부 새누리당 의원들의 지역구다. 총선 때 사드 얘기가 사라진 이유다. 정말로 사드가 필요하고 배치할 의향이 있다면, 무기체계의 효용성과 비용을 따져 조용히 준비하면 된다. 핵무장도 마찬가지다. 실현 불가능하다. 이걸 뻔히 알면서도 왜 주장할까. 북한으로부터 협박당하는 걸 참지 못하고 그에 못지않은 공포를 북한에 안기지 않으면 자존감이 무너지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공포의 맞거래가 이뤄져야만 마음에 위로를 받는 거다. 일단 던지고 보는 건데, 뒤에 책임질 사람이 없다. 전형적 안보 포퓰리즘이다.”
-북한의 위협은 현실적이고, 국민은 불안하다. 북한이 핵탄두 경량화에 성공하고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갖추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군사적으로는 세 가지 대응책이 있다. 첫째, 억제다. 미국의 핵우산에 의존하는 방법이다. 둘째는 방어. 사드나 패트리어트 같은 미사일 방어망으로 막는 것이다. 셋째는 제거다. 킬체인(Kill Chain)을 통한 선제공격으로 핵무기를 쏘기 전에 제압하는 방법이다. 다 불완전하고 흠결이 있다. 그래서 셋 다 갖춰야 한다는 논리가 나온다. 그런데 이런 군사적 방책은 미국과 소련 같은 강대국 간 대결에나 어울리지, 한반도에서는 안 맞는다. 너무나 좁고 인접해 핵을 쏘면 사실상 방어가 불가능하다. 핵무기가 아니더라도 이미 방어 효과의 임계치를 넘은 지 오래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예방외교다. 6자 회담이 진행될 때 북한은 위협적이지 않았다. 군사적 대응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계승한 노무현 정부 때 북한은 1차 핵실험을 했다.
“2006년 1차 핵실험은 미국 부시 정부가 북한의 해외 돈줄을 압박하는 상황에서 벌어졌다. 미국이 태도를 바꾸면 핵 문제가 좋은 방향으로 풀렸다. 이듬해 미국이 북한에 대화를 제안했다. 그해 10월 베이징에서 6자 회담이 재개된 날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이 동시에 열린 데는 그런 배경이 있다. 나는 북한의 책임이 없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다만 6자 회담이 아무런 효과가 없다고 비판하는 건 편향된 인식이라고 말하는 거다. 외교를 포기하면 군사적 대응밖에 없다. 그런데 뭘 할 수 있나. 우리가 미국을 비롯한 주변 강대국 반대를 무릅쓰고 핵무장을 할 수 있나. 전시작전통제권도 갖지 못한 나라가, 연평도에 포만 쏴도 어쩔 줄 몰라 미군에 ‘쏠까요 말까요’를 물어보는 나라가 무슨 수로 핵을 막아내나. 미국으로부터 전작권은 환수하지 않겠다면서 군사적 대응만 떠드는 것은 모순이다.”
“종교가 돼 버린 한미동맹”
전작권 환수는 노태우 정부가 시동을 걸었다. 김영삼 정부로 그 기조가 이어져 1994년 먼저 평작권이 회수됐다. 노무현 정부는 보수층의 반발을 의식해 환수 대신 전환이라는 표현을 썼다. 2012년 4월 전작권을 전환하기로 미국 정부와 합의했다. 이명박 정부는 이를 2015년 12월로 연기했다. 박근혜 정부는 ‘2020년대 초반’으로 재연기했다.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한국군의 독자적 대응능력을 확보할 때까지 연기한다’라는 단서가 붙어 사실상 무기연기라는 해석이 따랐다.
-전작권 환수 반대 논리에 전혀 동의하지 않나.
“미군을 인계철선으로 보는 건데, 정신 차려야 한다. 지금 트럼프(공화당 대통령 예비후보)가 하는 말이 미국 주류 집단의 일반적 정서다. 북한 위협은 한국이 알아서 처리하라는 것 아닌가. 이미 한반도에서 미군의 핵심 전력은 많이 빠져나간 상태다. 미국인의 사고가 변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착한 미국이 언제까지나 한국을 도와줄 것이라는 환상을 품고 있다. 물론 미국은 한국을 돕는다. 하지만 중국을 겨냥한 동아시아 전략의 일환이지 북한을 직접 상대하겠다는 건 아니다. 우리의 기대와 미국의 전략 사이엔 큰 간극이 있다. 우리 군이 사활을 걸고 고민해야 할 문제임에도 관성적으로 이데올로기적으로 한미동맹에만 기댄다.”
그는 한미 군사적 동맹을 ‘종교’라고 표현했다.
“이건 일종의 종교다. 미국이 일본, 이스라엘, 나토와 맺은 동맹 조약은 굉장히 촘촘하고 구체적이다. 그런데 한미상호방위조약엔 아무것도 없다. 유사시 자동개입 조항도 없다. 따라서 아무런 법적 구속력이 없다. 오로지 믿음으로 유지되는 희한한 동맹이다. 연합사 작전참모부장 맥도널드 장군이 연평도 포격 사건 때 한국군을 두고 한 얘기가 있다. 자기가 이라크 참전용사인데 이라크의 신생 군대도 이렇진 않다고.”
-그런 얘기를 어디서 했나.
“연합사 간부회의에서 했다. 연평도 포격사건 때 한국군이 수시로 물어왔다는 것 아닌가. 쏴도 되냐, 안 되냐. 중요한 건 무기체계도 아니고 국방비 규모도 아니고 인간의 의지다.”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호전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집단이라 하지 않나.
“모든 군인은 자신이 치른 전쟁이 가장 특별한 전쟁이었다고 말한다. 물론 북한이 특별한 건 맞다. 하지만 전쟁이 일어나는 데는 일반적 원칙이 있다. 클라우제비츠에 따르면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원초적 적대감, 둘째는 도박을 감행하려는 의지, 셋째는 전쟁으로 기대되는 이익이 있어야 한다. 이 세 가지 중 한 가지만 빠져도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거다. 북한도 예외가 아니다. 거기도 엄연한 국가다. 정치권력과 체제의 생존을 도모한다는 점에서 여느 나라와 다를 바 없다.”
박정희와 노무현의 닮은 점
-저서 ‘노무현, 시대의 문턱을 넘다’에서 노무현과 박정희가 자주국방을 추진한 점에서 닮았다고 주장했다. 노태우도 같은 범주에 넣었고.
“노태우는 북방 정책으로 적대관계인 대륙의 문을 열었다. 남북기본합의서를 체결해 한반도 평화의 기틀을 마련했다. 미완에 그치긴 했지만 혁신적인 국방개혁을 추진했다. 보수의 합리성은 진보가 배워야 한다. 그 점에서 노무현은 적극적이었다. 청와대에 보수 인사를 많이 끌어들였다. 노무현이 이라크 파병을 결정한 것은 높게 평가해줘야 한다. 물론 박정희와 노무현은 다르다. 하지만 노무현은 박정희의 ‘자주국방’ 노력을 인정했다.”
-북한 급변사태와 관련해 “21세기판 얄타 체제가 우려된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미국과 중국의 북한 분할 통치 가능성을 언급한 것인데, 비현실적인 얘기가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연합사 작전계획 5029에 따르면 북한 급변사태 발생 시 미국과 중국이 협력해 북한을 통치하게 돼 있다. 북핵 처리 명분으로.”
-통치까지는 아니지 않나.
“아니, 안정화 작전을 해야 하니까. 북한이 국제법상 주권국가이므로 한국군은 임의로 들어갈 수 없다. 강대국 양해가 있어야 가능하다.”
-그 문제에 대해선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무엇보다도 올바른 통일관을 세워야 한다. 통일의 주체가 대한민국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 점에서 군사적 조치보다 외교가 더 중요하다. 2005년 6자회담 결실인 9·19 공동성명에 ‘평화체제를 위해 노력한다’는 조항이 담긴 것은 한국의 노력 덕분이었다. 그런 외교적 플랫폼이 지금은 다 사라졌다. 주변국들을 상대로 한 통일외교를 복원해야 한다. 미국과 소련을 잘 활용한 서독의 통일 모델에서 배워야 한다.”
-몇 년 전 육군 최고위 지휘관이 내게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북한 급변사태 발생 시 한국군이 북진하기 위해서라도 전작권을 가져와야 한다고.
“전작권이 통일에 대비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건 노무현의 생각이기도 했다. 꼭 급변사태 때문만은 아니다. 전작권을 가져온다는 건 한반도 안보의 주체가 한국이라는 걸 선언하는 거다. ‘통일 대박’을 터뜨리려면 전작권부터 가져와야 한다.”
김 당선자는 “방산비리는 이명박 정부 때 집중적으로 발생했다”며 “안보 위기가 돈벌이에 악용됐다”라고 비판했다.
“비용 대 효과를 분석해 체계적으로 사업을 할 때는 비리가 없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때 안보 위기를 겪으며 사업이 마구 변경된다. 긴급소요 전력이 제기되고 국내 연구개발이 해외 구매로 바뀐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비용이 많이 드는 국내 개발을 포기하고 손쉽게 구할 수 있는 해외 무기를 들여온다. 공군 전자전 훈련장비, 해군 해상작전헬기, 육군 공격형 헬기가 다 그런 경우다. 군 안팎 한탕주의 세력은 안보위기를 절호의 기회로 삼았다.
또 다른 이유는 국방예산의 무분별한 삭감이다. 이명박 정부는 상당수 무기도입 사업의 예산을 30% 이상씩 깎았다. 기존 사업계획이 망가지고 소요군에서는 깎인 예산에 맞춰 값싼 장비를 도입해야 했다. 통영함 비리도 그래서 발생한 것이다. 음파 탐지기 사업 예산이 원래 120억 원짜리인데, 40억 원으로 삭감됐다. 그런 상황에서 한 업체가 성능이 떨어지는 장비를 싼 가격에 납품한 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은 소요군으로선 사업 자체가 취소되는 것보다는 엉터리 장비라도 들여오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몸통’ 못 건드린 방산비리 수사
-국내 방산업체들은 죽는 소리를 한다. 장기적으로 무기 국산화를 이뤄야 할 텐데, 해외 무기, 특히 미국 무기 의존도가 너무 높지 않나.
“군사전문가, 무기전문가로 자처하는 이른바 밀덕(밀리터리 덕후)들은 해외 무기에 대한 종교적 신봉자다. 북한의 위협이 발생할 때마다 이들은 해외 무기의 우수성을 강조한다. 언론도 가세한다. 국내 방위산업은 고사될 지경이다. 도입 예산을 실비용의 60퍼센트로 책정하기 때문에 손해를 감수하고 납품한다. 잘못된 소요에 비용까지 깎아버리니 최악의 상황인 셈이다. 스웨덴은 국방비가 한국의 6분의 1인데, 무기 수출량은 6배 많다.”
-국내 방산업체의 문제점이라면?
“일부 대기업 계열사는 조직이 방만해 무슨 공기업 같다. 기업가 정신도 결여됐고. 원가 검증이니 뭐니 해서 워낙 많은 규제에 시달리다 보니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규제는 많고 남는 건 없다고 들었다.
“가혹한 원가 검증에 경영난 심화에 부가가치도 낮다. 손을 떼고 싶은데 못 떼는 상황이다.”
-수출로 활로를 찾으면 좋을 텐데.
“우리 국방부는 국내에 방산 일자리가 늘어나는 걸 싫어하고, 미국 노동자 일자리를 늘리는 데 관심이 많다.”
-방산비리 합동수사단의 성과를 평가한다면?
“수사는 열심히 했다. 그런데 구속영장이 여러 차례 기각됐고, 재판에서 무죄로 바뀐 사람이 꽤 있었다. 잘못된 정책을 결정한 비리의 몸통은 비켜가면서 상부 지침에 따랐던 실무자 위주로 수사를 한 탓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와 모든 무기 사업에 청와대가 관여하면서 비리 소지가 커졌다. 그런데 수사 대상에서 당시 청와대 관계자들은 빠져나갔다. 정책 결정 단계부터 수사를 했어야 한다. 무기 소요는 합참에서 결정하는데 당시 합참 관계자들이 조사받았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안보를 신주단지 모시듯 중시하는 우리나라에서 지도층 인사의 병역 비리가 많다는 건 아이러니하다. 김 당선자는 병역비리 근절 방안에 대해 묻자 간명하게 말했다. “병역 면제자들은 무조건 안보 관련 직책을 못 맡게 해야 한다”고.
“지난 정권에서 국정원장, 안보수석, 안보비서관이 다 군 면제자였다. 병역 면제자는 청와대 비서실장이나 국무총리 자리에도 앉으면 안 된다. 이걸 제도적으로 막아야 한다.”
그가 국방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1987년의 6월 항쟁이었다. 학생, 시민이 어우러진 대규모 민주화 시위가 벌어질 때 그는 육군 병사였다. 대학 재학 중 입대했기 때문이다. 매일같이 시위진압 훈련을 하고, 출동 준비를 했다. 계엄이 선포되는 줄 알았다. 그 정도로 분위기가 살벌했다. 그때부터 군을 예의주시하게 됐다. 끝으로 그는 ‘인간의 얼굴을 한 군대’를 강조했다.
“한국군은 인간의 문제에 너무 소홀하다. 일선 전투원의 생명 가치를 저평가한다. 그러니 불량 방탄복에 불량 군화, 불량 헬멧을 들여오는 것이다.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다. 이른바 국방민생사업이다. 첨단무기 많이 사오는 군대보다 기본을 중시하는 군대가 필요하다.”
그는 총선 전 정의당 당원들이 참여한 비례대표 경선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었다. 여성에게 우선권을 준다는 규정에 따라 2번이 됐다. 진보 진영에서 대중적 스타로 자리매김한 그가 국회에 들어가 보수의 영역인 안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 궁금해 하거나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성격상 쉽게 타협하진 않을 것이다. 그와 잘 알고 지내던 군 고위직 인사들은 당분간 몸을 사릴지도 모르겠다.
조성식 기자 mairso2@donga.com
● 한국군의 무능력 덕분에 한반도 평화 유지
● 무기 도입을 위해 안보를 강조하는 나라
● 사드, 핵무장은 전형적 안보 포퓰리즘
● ‘통일대박’ 터뜨리려면 전작권부터 가져와라
● 병역 면제자, 안보 직책 못 맡게 해야
“군에서는 김 당선자에 대해 ‘군을 잘 아는 만큼 군 정책 및 내부 문제 분석에 정확할 것’이라는 평가와 ‘군 현실과 동떨어진 인기영합주의적 주장으로 국방 정책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동아일보, ‘진보 군사평론가’ 정의당 김종대에 긴장하는 軍)
“군 실상을 잘 아는 만큼 군 내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인기영합적인 진보적 주장으로 안보 정책에 발목잡기를 일삼을 수 있다는 우려가 그것이다.”(문화일보, ‘주목! 20대 초선’ 진보 군사전문가 김종대… ‘국방부 저격수’ 자임)
“방산비리 척결을 위해 변호사를 보좌관으로 채용하자 국방부도 긴장하고 있다고 한다.”(중앙일보, ‘방산비리 때려잡겠다’는 비례대표, 국방부 긴장)
김종대 당선자는 “병역 면제자는 안보 관련 직책을 못 맡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 지호영 기자.
4월 총선 이후 많은 매체가 김종대(51·정의당) 국회의원 당선자에 대한 관심을 나타낸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첫째, 희소성이다. 그는 진보 정당에서 드문 안보전문가다. 둘째, 전문성이다. 그는 군에서도 인정받는 대중적 안보전문가다. 지난 몇 년간 안보 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방송에 출연하고, 일간지와 잡지에 많은 글을 써왔다. 셋째, 상대적 존재감 부각이다. 20대 국회는 군 출신 안보전문가가 확 줄었다. 보수 정당에서조차 손꼽을 정도다. 그의 존재감이 돋보일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저격수가 아니라 동반자”
서울 여의도 정의당 당사에서 만난 그는 국회의원 배지를 다는 게 아직 실감나지 않는 듯 “쑥스럽다”는 말을 몇 번이나 되뇌었다. 세련미와는 거리가 먼 ‘시골스러운’ 인상과 수수한 옷차림은 변함이 없다. 양복 상의에 붙인 노란색 세월호 배지가 눈길을 끈다. 그는 ‘안보 자판기’처럼 어떠한 질문에도 막힘없이 답변을 쏟아냈다. 향후 국방·안보 정책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인물이라는 점을 고려해 많은 질문으로 그의 머릿속을 들여다봤다.
-군에서 왜 긴장을 하나.
“국방부에 내 전담자가 5명이라고 들었다. 아예 팀을 만들어 내 언행을 분석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한다고 한다. 그동안 군의 구석구석 안 들여다본 곳이 없다. 인사 문제도 관찰했다. 군의 가장 예민한 구석을 밖에서 들여다봐 왔으니 긴장하는 것 같다. 불편한 감정도 있겠고.”
-‘국방부 저격수’라고 하는데.
“극단적이고 적절치 않은 표현이다. 우리 국방이 정상화하는 데 비판·견제 세력으로 자리매김하고 싶을 따름이지 그들의 정체성과 자존심까지 건드릴 생각은 없다. 시민을 대표해 군을 보겠다. 그런 점에서 저격수가 아니라 동반자다.”
-‘안보 정책 발목잡기가 우려된다’거나 ‘인기영합적 주장을 편다’는 시각이 있다.
“현재 60만인 군 병력을 40만으로 줄이겠다는 정의당 공약을 우려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인구 추세를 보면 감축할 수밖에 없다. 인구절벽 시기인 2022년이 되면 징집 인구가 2016년보다 30퍼센트 줄어든다. 2016년 기준 21세 남자가 36만 명인데, 2022년엔 11만 명이 감소한다. 뭐가 인기영합이냐. 지금부터 줄이지 않으면 다음 정권 때 군의 하부구조가 붕괴하는 재난을 맞을 것이다. 사실 이런 건 보수정당에서 준비해야 한다.”
새누리당은 2012년 대선 당시 군 복무 기간 단축을 내세웠다가 슬그머니 철회한 적이 있다. 정의당의 접근방식은 좀 다르다. 김 당선자의 설명을 들어보자.
“고졸 청년이 군에 가려면 연령 미달로 24개월 기다려야 한다. 2년 뒤 군에 가서 21개월 근무하고 나오면 45개월이 지나는데, 고졸이라 취직이 안 된다. 취직하는 데 평균 31개월 걸린다. 합하면 76개월이다. 사회 진출 경쟁에서 6년 4개월이 뒤쳐지는 셈이다. 21개월을 18개월로 줄이는 것보다 76개월을 절반으로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고졸자는 원할 경우 바로 군에 들어가게 해 학력 차별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 20대 전반기를 허비하면 자칫 평생 패배자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청년 문제, 일자리 문제, 병역 문제가 따로 논다. 그래서 우리는 복무 기간 단축은 주장하지 않는다. 대신 고졸의 사회 진출 대기 기간을 줄여주겠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정의당은 입영예약제를 주장한다. 고교 1학년 때부터 상담을 하고 입영 안내를 받아 졸업하는 대로 원하는 부대에 갈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이른바 자기주도형 입영이다.
“안보민주화는 경제민주화의 선결과제”
국방문민화도 주요 공약이다. 이는 김 당선자의 오랜 소신이기도 하다. 그는 ‘안보민주화’라는 표현을 썼다.
“지금까지 안보는 보수 정권의 전유물이었다. 사회 공동의 가치이고 시민공동체의 가치임에도 특정 정파의 가치로 왜곡돼 왔다. 이것을 시민의 가치로 돌려줘야 한다. 이것이 바로 안보민주화다. 경제민주화의 선결과제이기도 하다. 경제민주화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기업구조도 바꿔야 하고 양극화도 해소해야 한다. 이에 비해 안보민주화는 제도만 바꾸면 된다. 사회적 합의만 이뤄지면 된다. 오늘부터 민간이 국방을 통제하는 제도로 바꾸겠다고 선포하면 된다.”
-장관을 비롯한 국방부의 주요 보직을 민간이 맡는 것이 관건이지 않나.
“국방부는 원래 국민을 대리해 군을 통제하는 집단이다. 그런데 우리 국방부를 보면 군을 대리해 국민을 통제하는 조직이다. 원래 군의 대표는 군 서열 1위인 합동참모본부 의장이다. 군의 의견을 대표하라고 만든 자리다. 그런데 지금 합참의 존재감은 거의 없고 국방부가 군을 대변한다. 현역 군인들이 주요 보직을 차지해 정책을 수립한다. 장관도 군 출신이 맡는다. 국방부가 합참의 상급부대인 셈이다. 국방부 회의 때 차관은 서열 9위다. 장관 밑에 4성 장군 8명이 있고 그 다음이 차관이다. 이건 군부대 편제나 다름없다.”
국방문민화에 가장 크게 역행하는 인사가 이뤄진 것은 노무현 정부 때였다. 2006년 11월 노 대통령은 김장수 육군 참모총장을 국방부 장관에 임명했다. 현역 대장인 참모총장이 국방부 장관으로 직행한 것은 전례 없는 일이라 군 안팎에서 논란이 일었다. 김 당선자가 노무현 정부 초기 청와대 국방보좌관실 행정관을 지냈기에, 그 일에 대해 따져봤다. 그는 “잘못된 인사였다”고 인정했다.
“2006년 10월 북한이 핵실험을 한 이후 안보 위기론이 기승을 부렸다. 노 대통령이 거기에 압박을 느껴 이상한 인사를 했다. 그것도 현역 대장들 간 경쟁을 붙여. 청와대 인사수석실 행정관이 함참의장과 육참총장을 만나 ‘장관이 되면 어떻게 할지’를 물어봤다. 일종의 면접시험을 본 것이다. 그래서 후보자들 간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다. 군인들을 그렇게 줄 세우면 안 된다. 노무현 정부의 큰 실책이었다.”
-남북 분단 상황에서 국방문민화, 즉 군에 대한 문민 통제를 불안해하는 시각도 많다.
“그건 막연한 불안감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이 패망한 이유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당시 일본군은 천왕의 명을 받는 대본영이 통제했다. 그런데 만주사변 당시 전공에 눈이 먼 군 지휘관들이 대본영을 무력화하며 중국군과 전면전을 벌였다. 이것이 일본 패망의 첫걸음이었다. 이후 통제에서 벗어난 일본군은 태평양으로 전선을 확대하면서 파멸의 길로 접어들었다. 군인들은 흔히 안보논리를 군사논리로 여기는데, 이는 정략과 전략을 구분하지 못해서다. 국가의 정략은 군사적 전략을 초월한다. 군인들의 직업적 편견이기도 하다. 이런 편견을 제어하기 위해서라도 전문 관료집단의 통제가 필요하다.”
“안보 분야 정상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한 그는 오병흥 전 육군 준장의 증언을 끄집어냈다. 천안함 사건 당시 합참 전비태세검열실 차장이던 오 전 준장은 최근 ‘나비와 천안함’이라는 책을 펴내 화제가 됐다. 요지는 천안함 사건 후 감찰 차원에서 작성한 조사보고서가 상부 압력으로 조작됐다는 것.
“합참의장은 조사보고서에서 ‘데프콘 1 발령시 자동조치 사항인 위기조치반을 소집하지 않았다’라는 대목을 ‘위기조치반을 지연 소집하였다’로 수정했다.”(조선일보, ‘천안함 사건 조사한 將軍 입 열다… 오병흥 전 합참 전비태세검열차장’, 2016년 4월 11일)
오 전 준장은 또 “천안함 사건(2010년 3월)은 대청해전(2009년 11월)에 대한 보복이었으며, 북한의 잠수함 공격을 예상하고도 군 지휘부가 전혀 대비하지 않았다”라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대청해전은 과잉대응에 의한 ‘억지 승전’이며, ‘비례성‘이라는 교전규칙을 심각하게 위반한 전투였다.
“천안함 사건, 결과만 있고 과정이 없다”
김 당선자는 “오 전 준장의 증언은 내가 ‘서해전쟁’에서 폈던 주장과 맥락이 닿는다”고 말했다. 그가 2013년 펴낸 ‘서해전쟁’은 김대중 정부 이후 남북한 군이 교전을 벌인 제1연평해전, 제2연평해전, 천안함 사건, 연평도 포격사건 등의 진실을 추적한 책이다. 그는 “군 지휘관들의 전문성은 필요하지만 통제 받아야 한다. 이게 안보민주화의 핵심이다”라고 강조했다.
-김 당선자가 천안함 사건에 대해 다른 시각을 가진 것 아니냐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다.
“천안함 사건은 사실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가 돼버렸다. 북한이 벌인 짓이라는 걸 믿느냐, 안 믿느냐. 정부 발표를 믿느냐, 안 믿느냐. 나는 민군합동조사단 발표를 신뢰한다고 수도 없이 얘기했다. 그런데 그들은 또 묻는다. 100퍼센트 믿느냐고. 이건 대답하지 않으면 공격하겠다는 의도다. 천안함 사건이 난 지 6년이 지났다. 그 사건에 북한의 새로운 전술과 새로운 무기체계가 동원됐다면 마땅히 연구하고 분석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와 관련된 논문이 발표된 적도 없고 세미나 한 번 열리지 않았다. 160t짜리 잠수정이 7m짜리 중어뢰로 공격했다는 건데, 그 작은 잠수정에 어떻게 그토록 무겁고 규모가 큰 어뢰가 탑재될 수 있었는지, 무기 체계 작동원리는 뭔지 연구해야 하지 않나.”
-추정이라는 건가? 과학적 증거가 아니라.
“사건 후 논의가 딱 봉쇄되지 않았나. 결과만 있지 과정은 없는 사건이 돼 버렸다. 그런 점에서 천안함 사건은 재규명해야 한다. 과정에 대한 과학적 토론이 이뤄져야 한다. 진보도 문제가 있다. 과학적 논쟁이라면 어뢰파와 기뢰파가 한 편이 돼야 한다. 수중 폭발이 있었는지가 가장 큰 쟁점이기 때문이다. 좌초파는 시각이 완전히 다르다. 그런데 실제로는 좌초파와 기뢰파가 한 편이고, 어뢰파가 반대편에 있다.”
-정부에 대한 무조건적 불신도 한몫했다.
“과학이 아니라 북한을 판단 기준으로 삼으니 기뢰파와 좌초파가 한 편이 된 거다. 북한이 했느냐, 안 했느냐. 이런 비과학적 논쟁이 어디 있냐. 과학과 상관없는 진영논리다.”
-사건 초기 청와대는 북한 소행이라는 국방부 보고를 믿으려 하지 않았다.
“거기에 대해선 많은 증언이 있다. 어뢰 얘기를 원천봉쇄하려 했다. 심지어 파도설까지 나오지 않았나. 안보라인 비서관은 어뢰설을 보도한 조선일보에 항의했고, 이명박 대통령은 ‘내가 배를 만들어봐서 아는데, 파도에도 그렇게 두 동강 나 똑 부러질 수 있다’고 했다. 나중에 연평도 포격사건이 일어나자 그 책임을 군에 뒤집어 씌웠다. 군의 반대로 전투기로 못 때린 게 천추의 한이라며. 군 관계자들 증언으로 MB가 거짓말했다는 게 확인됐다.”
-어느 쪽 말이 맞는지 알 수 없지 않나.
“당시 합참의장이던 한민구 현 국방부 장관이 국회에서 증언했다. 그때 대통령으로부터 전투기의 ‘전’자도 들은 바 없다고.”
-MB는 자서전에도 썼다. 자기는 즉각 응징을 지시했는데, 군이 말을 안 들었다고.
“한 장관은 당시 나와 만나 ‘도대체 대통령이 말하는 군은 어떤 군이냐. 합참의장이 모르는 군이 따로 있냐’고까지 했다. 어쩌면 대통령이 비서관과 상의했는데, 비서관이 반대했는지도 모른다. 그걸 두고 군이 비겁하다고 하면 어떡하느냐. 이처럼 보수 정치권력의 특징은 안보가 실패하면 군에 책임을 떠넘기고 자기들은 빠져나가려 한다. 그리고 위신을 세우려 한다. 왜? 여태 안보를 입에 달고 살았으니까. 물론 안보에 무관심한 진보도 문제지만.”
MB의 거짓말과 군의 책임 회피
자신은 국방부 저격수가 아니라 동반자라고 말하는 김종대 국회의원 당선자. 사진/ 지호영 기자.
그는 “보수든 진보든 군대 안 갔다 온 자들이 안보에 가장 무능하다”고 했다. -이명박 정부 때 유난히 안보라인에 그런 사람이 많이 포진하지 않았나.
“그러니 그들이 하는 얘기가 종북주의자보다 더 위험할 수밖에.”
-군도 책임 회피 차원에서 둘러댄 건 아닐까. 연평도 포격사건 때도 연합사령부에 묻기나 하고….
“유엔사령부 교전규칙을 말하는 건데, 평시작전통제권을 우리가 가져온 지 오래다. 그러면 거기에 맞게 작전 체계가 수정돼야 하는데, 지금도 예전 규정을 지침으로 삼는다. 여전히 연합사가 우리 대신 결정하고 싸울 문제라고 믿는 것이다.”
-연평도 포격사건은 전시가 아니라 평시니 평작권을 가진 우리 군이 대응공격을 결정했어야 하지 않나.
“당시 우리가 전투기를 띄울 수 있느냐 없느냐로 합참 장군들이 두 패로 갈려 논쟁했다. 한쪽은 자위권 차원에 반격해야 한다고 했고, 다른 한쪽은 유엔사 교전규칙에 따라야 한다고 했다. 일주일간 논쟁하다 결국 국제법 학자한테 연구 용역을 줬다. 이후 한미 간 3년에 걸쳐 협의해 만들어진 게 한미국지도발공동계획이다. 거기에 따르면 국지도발이 발생하면 한국군이 주도하고 미군은 지원한다.”
-영토와 민간인이 공격당한 상황에서 우리 군의 대응태도는 실망스러웠다.
“실망스러웠다. 거짓말도 쏟아내고. 해병대가 응사해 북한군이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는 얘기부터 거짓말이었다. 기상관측 장비가 부실한 탓이었다. F-15 전투기 세 대가 출동했다. 조종사가 언론 인터뷰에서 ‘명령만 내리면 즉각 북한군 포대를 공격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공대지미사일을 달지 않은 비무장 상태였다는 사실이 나중에 드러났다.”
이와 관련, 오병흥 전 준장은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그날 북한 쪽 타격 지점 영상을 직접 봤다. 전혀 타격을 주지 못했다. 포(砲) 성능은 우리가 월등했지만, 당시 기상 측정 장비가 고장 나 있었다. 사격 정확도가 떨어졌다”고 말했다. 다시 김 당선자의 지적이다.
“천안함 사건도 마찬가지다. 음파 탐지기(소나)가 고물이라서 북한 잠수정이나 어뢰를 못 잡았다고 해명했다. 그걸로 경계 실패라는 책임을 면했다. 그런데 엉터리 장비를 단 책임은 안 지나. 위험한 접적수역에서 작전하는 함정의 음파 탐지기가 있으나마나 하다니. 치부를 드러냄으로써 작전 실패의 책임을 모면했다. 기만이다. 천안함 사건을 통해 우리가 배운 건 군 지휘부가 예하 부대의 전투 준비 태세를 전혀 모른다는 것, 어떤 장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제대로 모른다는 점이다.”
고장, 불량, 엉터리 대응
정의당은 고졸자를 배려하는 입영예약제를 공약으로 내놓았다. 사진/ 지호영 기자.
-우리 군은 수십 년간 천문학적 국방비를 쓰며 많은 무기를 도입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무능력하고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는 걸까. “역사의 아이러니다. 나는 한반도 평화를 지키는 데 결정적 구실을 한 것이 한국군의 무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인천아시안게임이 끝난 직후인 2014년 10월 7일 북한 경비정이 서해북방한계선(NLL)을 넘어왔다. 우리 고속정이 경고사격을 하자 북한군이 응사했다. 심각한 사태라 판단한 군 지휘부에서 격파사격을 지시했다. 그런데 아무 일 없이 끝났다. 우리 유도탄고속함에서 포를 쐈는데, 포탄이 날아가지 않았다. 포가 불량품이었던 거다. 그 사이 북한 배가 빠져나갔다. 사흘 뒤엔 경기도 연천군 연천면사무소에 북한군이 쏜 고사총 탄환 중 일부가 떨어졌다. 대북전단이 담긴 대형 풍선을 겨냥한 사격이었다. 처음엔 몰랐다가 세 시간이 지난 뒤 면사무소 앞에서 탄피를 발견하고는 뒤늦게 대응한다고 북한군 GP(Guard Post·감시초소) 쪽으로 경고사격을 했다. 공격을 제때 탐지하지 못한 것은 스웨덴에서 도입한 대(對)포병 레이더 아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칫 큰 싸움으로 번질 뻔한 이런 사건들이 조용히 끝난 것은 한국군의 무능력 덕분이었다.”
그는 “안보를 위해 무기를 도입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무기 도입을 위해 안보를 강조한다”고 개탄했다.
지난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와 핵무장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에 대해 그는 “전형적 안보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했다.
“사드는 선거용으로 제기한 것임에 틀림없다. 사드 배치 후보지로 거론된 데가 전부 새누리당 의원들의 지역구다. 총선 때 사드 얘기가 사라진 이유다. 정말로 사드가 필요하고 배치할 의향이 있다면, 무기체계의 효용성과 비용을 따져 조용히 준비하면 된다. 핵무장도 마찬가지다. 실현 불가능하다. 이걸 뻔히 알면서도 왜 주장할까. 북한으로부터 협박당하는 걸 참지 못하고 그에 못지않은 공포를 북한에 안기지 않으면 자존감이 무너지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공포의 맞거래가 이뤄져야만 마음에 위로를 받는 거다. 일단 던지고 보는 건데, 뒤에 책임질 사람이 없다. 전형적 안보 포퓰리즘이다.”
-북한의 위협은 현실적이고, 국민은 불안하다. 북한이 핵탄두 경량화에 성공하고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갖추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군사적으로는 세 가지 대응책이 있다. 첫째, 억제다. 미국의 핵우산에 의존하는 방법이다. 둘째는 방어. 사드나 패트리어트 같은 미사일 방어망으로 막는 것이다. 셋째는 제거다. 킬체인(Kill Chain)을 통한 선제공격으로 핵무기를 쏘기 전에 제압하는 방법이다. 다 불완전하고 흠결이 있다. 그래서 셋 다 갖춰야 한다는 논리가 나온다. 그런데 이런 군사적 방책은 미국과 소련 같은 강대국 간 대결에나 어울리지, 한반도에서는 안 맞는다. 너무나 좁고 인접해 핵을 쏘면 사실상 방어가 불가능하다. 핵무기가 아니더라도 이미 방어 효과의 임계치를 넘은 지 오래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예방외교다. 6자 회담이 진행될 때 북한은 위협적이지 않았다. 군사적 대응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계승한 노무현 정부 때 북한은 1차 핵실험을 했다.
“2006년 1차 핵실험은 미국 부시 정부가 북한의 해외 돈줄을 압박하는 상황에서 벌어졌다. 미국이 태도를 바꾸면 핵 문제가 좋은 방향으로 풀렸다. 이듬해 미국이 북한에 대화를 제안했다. 그해 10월 베이징에서 6자 회담이 재개된 날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이 동시에 열린 데는 그런 배경이 있다. 나는 북한의 책임이 없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다만 6자 회담이 아무런 효과가 없다고 비판하는 건 편향된 인식이라고 말하는 거다. 외교를 포기하면 군사적 대응밖에 없다. 그런데 뭘 할 수 있나. 우리가 미국을 비롯한 주변 강대국 반대를 무릅쓰고 핵무장을 할 수 있나. 전시작전통제권도 갖지 못한 나라가, 연평도에 포만 쏴도 어쩔 줄 몰라 미군에 ‘쏠까요 말까요’를 물어보는 나라가 무슨 수로 핵을 막아내나. 미국으로부터 전작권은 환수하지 않겠다면서 군사적 대응만 떠드는 것은 모순이다.”
“종교가 돼 버린 한미동맹”
전작권 환수는 노태우 정부가 시동을 걸었다. 김영삼 정부로 그 기조가 이어져 1994년 먼저 평작권이 회수됐다. 노무현 정부는 보수층의 반발을 의식해 환수 대신 전환이라는 표현을 썼다. 2012년 4월 전작권을 전환하기로 미국 정부와 합의했다. 이명박 정부는 이를 2015년 12월로 연기했다. 박근혜 정부는 ‘2020년대 초반’으로 재연기했다.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한국군의 독자적 대응능력을 확보할 때까지 연기한다’라는 단서가 붙어 사실상 무기연기라는 해석이 따랐다.
-전작권 환수 반대 논리에 전혀 동의하지 않나.
“미군을 인계철선으로 보는 건데, 정신 차려야 한다. 지금 트럼프(공화당 대통령 예비후보)가 하는 말이 미국 주류 집단의 일반적 정서다. 북한 위협은 한국이 알아서 처리하라는 것 아닌가. 이미 한반도에서 미군의 핵심 전력은 많이 빠져나간 상태다. 미국인의 사고가 변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착한 미국이 언제까지나 한국을 도와줄 것이라는 환상을 품고 있다. 물론 미국은 한국을 돕는다. 하지만 중국을 겨냥한 동아시아 전략의 일환이지 북한을 직접 상대하겠다는 건 아니다. 우리의 기대와 미국의 전략 사이엔 큰 간극이 있다. 우리 군이 사활을 걸고 고민해야 할 문제임에도 관성적으로 이데올로기적으로 한미동맹에만 기댄다.”
그는 한미 군사적 동맹을 ‘종교’라고 표현했다.
“이건 일종의 종교다. 미국이 일본, 이스라엘, 나토와 맺은 동맹 조약은 굉장히 촘촘하고 구체적이다. 그런데 한미상호방위조약엔 아무것도 없다. 유사시 자동개입 조항도 없다. 따라서 아무런 법적 구속력이 없다. 오로지 믿음으로 유지되는 희한한 동맹이다. 연합사 작전참모부장 맥도널드 장군이 연평도 포격 사건 때 한국군을 두고 한 얘기가 있다. 자기가 이라크 참전용사인데 이라크의 신생 군대도 이렇진 않다고.”
-그런 얘기를 어디서 했나.
“연합사 간부회의에서 했다. 연평도 포격사건 때 한국군이 수시로 물어왔다는 것 아닌가. 쏴도 되냐, 안 되냐. 중요한 건 무기체계도 아니고 국방비 규모도 아니고 인간의 의지다.”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호전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집단이라 하지 않나.
“모든 군인은 자신이 치른 전쟁이 가장 특별한 전쟁이었다고 말한다. 물론 북한이 특별한 건 맞다. 하지만 전쟁이 일어나는 데는 일반적 원칙이 있다. 클라우제비츠에 따르면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원초적 적대감, 둘째는 도박을 감행하려는 의지, 셋째는 전쟁으로 기대되는 이익이 있어야 한다. 이 세 가지 중 한 가지만 빠져도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거다. 북한도 예외가 아니다. 거기도 엄연한 국가다. 정치권력과 체제의 생존을 도모한다는 점에서 여느 나라와 다를 바 없다.”
박정희와 노무현의 닮은 점
-저서 ‘노무현, 시대의 문턱을 넘다’에서 노무현과 박정희가 자주국방을 추진한 점에서 닮았다고 주장했다. 노태우도 같은 범주에 넣었고.
“노태우는 북방 정책으로 적대관계인 대륙의 문을 열었다. 남북기본합의서를 체결해 한반도 평화의 기틀을 마련했다. 미완에 그치긴 했지만 혁신적인 국방개혁을 추진했다. 보수의 합리성은 진보가 배워야 한다. 그 점에서 노무현은 적극적이었다. 청와대에 보수 인사를 많이 끌어들였다. 노무현이 이라크 파병을 결정한 것은 높게 평가해줘야 한다. 물론 박정희와 노무현은 다르다. 하지만 노무현은 박정희의 ‘자주국방’ 노력을 인정했다.”
-북한 급변사태와 관련해 “21세기판 얄타 체제가 우려된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미국과 중국의 북한 분할 통치 가능성을 언급한 것인데, 비현실적인 얘기가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연합사 작전계획 5029에 따르면 북한 급변사태 발생 시 미국과 중국이 협력해 북한을 통치하게 돼 있다. 북핵 처리 명분으로.”
-통치까지는 아니지 않나.
“아니, 안정화 작전을 해야 하니까. 북한이 국제법상 주권국가이므로 한국군은 임의로 들어갈 수 없다. 강대국 양해가 있어야 가능하다.”
-그 문제에 대해선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무엇보다도 올바른 통일관을 세워야 한다. 통일의 주체가 대한민국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 점에서 군사적 조치보다 외교가 더 중요하다. 2005년 6자회담 결실인 9·19 공동성명에 ‘평화체제를 위해 노력한다’는 조항이 담긴 것은 한국의 노력 덕분이었다. 그런 외교적 플랫폼이 지금은 다 사라졌다. 주변국들을 상대로 한 통일외교를 복원해야 한다. 미국과 소련을 잘 활용한 서독의 통일 모델에서 배워야 한다.”
-몇 년 전 육군 최고위 지휘관이 내게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북한 급변사태 발생 시 한국군이 북진하기 위해서라도 전작권을 가져와야 한다고.
“전작권이 통일에 대비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건 노무현의 생각이기도 했다. 꼭 급변사태 때문만은 아니다. 전작권을 가져온다는 건 한반도 안보의 주체가 한국이라는 걸 선언하는 거다. ‘통일 대박’을 터뜨리려면 전작권부터 가져와야 한다.”
국회에 들어가면, 해군기지 건설 과정에 피해를 입은 제주 강정마을 주민을 위해 해군에 구상권을 청구하겠다고 밝힌 김종대 당선자. 사진/ 지호영 기자.
화제를 방위사업비리로 돌렸다. 2014년 11월 박근혜 대통령이 방산비리를 “이적행위”로 규정한 직후 정부합동수사단이 발족했다. 검찰이 주도한 수사단은 2015년 7월 현역 및 예비역 장성급 10명을 포함해 모두 63명을 기소했다. 밝혀낸 비리 규모는 9800억 원대. 평가서류 조작, 뇌물 수수 등 주로 납품 비리였다. 관행적인 병폐를 파헤쳤다는 면에서 공이 크지만, 부실과 비리를 구분하지 못한 반쪽짜리 수사였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실적 위주의 무리한 수사방식도 도마에 올랐다. 김 당선자는 “방산비리는 이명박 정부 때 집중적으로 발생했다”며 “안보 위기가 돈벌이에 악용됐다”라고 비판했다.
“비용 대 효과를 분석해 체계적으로 사업을 할 때는 비리가 없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때 안보 위기를 겪으며 사업이 마구 변경된다. 긴급소요 전력이 제기되고 국내 연구개발이 해외 구매로 바뀐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비용이 많이 드는 국내 개발을 포기하고 손쉽게 구할 수 있는 해외 무기를 들여온다. 공군 전자전 훈련장비, 해군 해상작전헬기, 육군 공격형 헬기가 다 그런 경우다. 군 안팎 한탕주의 세력은 안보위기를 절호의 기회로 삼았다.
또 다른 이유는 국방예산의 무분별한 삭감이다. 이명박 정부는 상당수 무기도입 사업의 예산을 30% 이상씩 깎았다. 기존 사업계획이 망가지고 소요군에서는 깎인 예산에 맞춰 값싼 장비를 도입해야 했다. 통영함 비리도 그래서 발생한 것이다. 음파 탐지기 사업 예산이 원래 120억 원짜리인데, 40억 원으로 삭감됐다. 그런 상황에서 한 업체가 성능이 떨어지는 장비를 싼 가격에 납품한 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은 소요군으로선 사업 자체가 취소되는 것보다는 엉터리 장비라도 들여오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몸통’ 못 건드린 방산비리 수사
-국내 방산업체들은 죽는 소리를 한다. 장기적으로 무기 국산화를 이뤄야 할 텐데, 해외 무기, 특히 미국 무기 의존도가 너무 높지 않나.
“군사전문가, 무기전문가로 자처하는 이른바 밀덕(밀리터리 덕후)들은 해외 무기에 대한 종교적 신봉자다. 북한의 위협이 발생할 때마다 이들은 해외 무기의 우수성을 강조한다. 언론도 가세한다. 국내 방위산업은 고사될 지경이다. 도입 예산을 실비용의 60퍼센트로 책정하기 때문에 손해를 감수하고 납품한다. 잘못된 소요에 비용까지 깎아버리니 최악의 상황인 셈이다. 스웨덴은 국방비가 한국의 6분의 1인데, 무기 수출량은 6배 많다.”
-국내 방산업체의 문제점이라면?
“일부 대기업 계열사는 조직이 방만해 무슨 공기업 같다. 기업가 정신도 결여됐고. 원가 검증이니 뭐니 해서 워낙 많은 규제에 시달리다 보니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규제는 많고 남는 건 없다고 들었다.
“가혹한 원가 검증에 경영난 심화에 부가가치도 낮다. 손을 떼고 싶은데 못 떼는 상황이다.”
-수출로 활로를 찾으면 좋을 텐데.
“우리 국방부는 국내에 방산 일자리가 늘어나는 걸 싫어하고, 미국 노동자 일자리를 늘리는 데 관심이 많다.”
-방산비리 합동수사단의 성과를 평가한다면?
“수사는 열심히 했다. 그런데 구속영장이 여러 차례 기각됐고, 재판에서 무죄로 바뀐 사람이 꽤 있었다. 잘못된 정책을 결정한 비리의 몸통은 비켜가면서 상부 지침에 따랐던 실무자 위주로 수사를 한 탓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와 모든 무기 사업에 청와대가 관여하면서 비리 소지가 커졌다. 그런데 수사 대상에서 당시 청와대 관계자들은 빠져나갔다. 정책 결정 단계부터 수사를 했어야 한다. 무기 소요는 합참에서 결정하는데 당시 합참 관계자들이 조사받았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안보를 신주단지 모시듯 중시하는 우리나라에서 지도층 인사의 병역 비리가 많다는 건 아이러니하다. 김 당선자는 병역비리 근절 방안에 대해 묻자 간명하게 말했다. “병역 면제자들은 무조건 안보 관련 직책을 못 맡게 해야 한다”고.
“지난 정권에서 국정원장, 안보수석, 안보비서관이 다 군 면제자였다. 병역 면제자는 청와대 비서실장이나 국무총리 자리에도 앉으면 안 된다. 이걸 제도적으로 막아야 한다.”
그가 국방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1987년의 6월 항쟁이었다. 학생, 시민이 어우러진 대규모 민주화 시위가 벌어질 때 그는 육군 병사였다. 대학 재학 중 입대했기 때문이다. 매일같이 시위진압 훈련을 하고, 출동 준비를 했다. 계엄이 선포되는 줄 알았다. 그 정도로 분위기가 살벌했다. 그때부터 군을 예의주시하게 됐다. 끝으로 그는 ‘인간의 얼굴을 한 군대’를 강조했다.
“한국군은 인간의 문제에 너무 소홀하다. 일선 전투원의 생명 가치를 저평가한다. 그러니 불량 방탄복에 불량 군화, 불량 헬멧을 들여오는 것이다.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다. 이른바 국방민생사업이다. 첨단무기 많이 사오는 군대보다 기본을 중시하는 군대가 필요하다.”
그는 총선 전 정의당 당원들이 참여한 비례대표 경선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었다. 여성에게 우선권을 준다는 규정에 따라 2번이 됐다. 진보 진영에서 대중적 스타로 자리매김한 그가 국회에 들어가 보수의 영역인 안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 궁금해 하거나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성격상 쉽게 타협하진 않을 것이다. 그와 잘 알고 지내던 군 고위직 인사들은 당분간 몸을 사릴지도 모르겠다.
조성식 기자 mairso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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