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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평론가 임진모--한국의 대표적인 포크 가수들- 흥미만점의 논평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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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1,855회 작성일 2011-09-26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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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대중음악평론가 임진모씨가 보는
 
 
한국 포크 歌手들에 대한 興味로운 논평!
 
 
 

[파주 포크페스티벌]

 

페스티벌 참가아티스트_

 

이들의 매력을파헤쳐 본다

 

 

입력 : 2011.09.22

 
그래픽= 박상훈 기자 ps@chosun.com
'지구상에 남아있는 마지막 히피', '한국의 폴 사이먼', '한국 최고의 미성(美聲)'…. 한국을 대표하는 포크가수들이 파주포크페스티벌에 총출동한다. 이들은 어떤 숨은 매력이 있길래 세대를 가리지 않고 오랫동안 끊임없이 사랑을 받고 있을까.

파주포크페스티벌에 참여하는
 
아티스트들의 특징을 알아봅니다.
 
 


한대수
 
 
1969년 서울 남산 드라마센터에서의 공연을 시작으로 ‘내 노래는 내가 만들어 부른다!’는 포크의 자주(自主)를 설파한 한국 포크계의 살아있는 신화.
‘물 좀 주소’ ‘행복의 나라로’가 말해주듯 거칠고 일그러진 파열음에 자유분방함을 얹은 아방가르드적 파격이 생명이다.
1974년 첫 앨범 ‘멀고먼 길’을 냈고 이듬해 명작 ‘고무신’을 출반했지만 반항성 때문에 방송과 음반 금지를 당했고 이후 미국행을 택해야 했다.
과거의 이름에 의존하지 않고 끊임없이 신작활동을 전개,
2007년 환갑(1948년생)에 얻은 딸에게 바치는 ‘양호야 양호야’를 냈고, 얼마 전에는 후배가수 이승렬의 ‘그들의 블루스’에서 호흡을 맞췄다.
도전과 실험이 필생의 모토로 제자리걸음을 철저히 배격한다.
스스로를 ‘지구상에 남아 있는 마지막 히피’로 일컫는다.
 
 
 
 
남궁옥분
 
 
1980년대에 가장 기억해야 할 여성 포크의 선두주자.
고혹적이고 각별한 음색을 무기로 스타덤에 올랐다. 투명하고 낭랑한 그 하이 톤 보이스는 누구도 갖지 못한 그만의 트레이드마크였다.
‘꿈을 먹는 젊은이’, ‘재회’ 등 향수를 자극하는 노래를 주로 불러 젊은 여가수임에도 중년층에도 사랑을 받은 것도 특색이다.
원래는 성악을 지망했으나
 
1977년 명동의 음악 살롱 ‘쉘부르’ 노래경연대회를 통해
 
대중가수의 길을 걷는다.
 
송창식, 김세화가 소속된 오리엔트 프로덕션을 통해
 
 
대표작이 된 1981년 ‘사랑 사랑 누가 말했나’를 발표,
 
여성 포크의 新星으로 떠올랐다.
어쿠스틱 음악의 신봉자로 평생 노래하는 게 소망이다.
 
 
 
 
 
1.윤형주 2.해바라기 3.김세환 4. 윤도현
 
 
 
강은철
 
 
 
바람 부는 저 들길 끝에는/ 삼포로 가는 길 있겠지/
굽이굽이 산길 걷다 보면…’ 은은하면서 애절한 이 아름다운 서정시는
‘배따라기’의 이혜민이 노랫말과 곡을 썼고 강은철이 불러
‘7080세대’와 깊이 교감한 곡이다.
1983년에 발표된 후 25년이 흐른 2008년에 경남 진해 웅천동 삼포마을에 노래비가 세워져 역사성이 부여되었다.

지금 대중가요에서는 찾기 어려운 서정성은 강은철의 티 없이 맑은 음성으로 미학의 완성을 보았다.
 
전성기 시절 ‘한국의 폴 사이먼’으로 불리면서
팬들을 독보적인 포크의 서정 세계로 안내했다.
지금도 음악관계자들은
 
강은철이 사이먼 앤 가펑클보다 더
 
 
사이먼 앤 가펑클 노래를 잘한다!”고 평한다.
 
 
 
 
한동준
 
 
 
달콤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사람들을 포근하게 감싸고 편안하게 만드는 재주를 지닌 포크의 순수주의자.
대학 시절 포크 그룹 ‘노래그림’에서 노래 부르다가 1991년 솔로로 신고식을 했다.
 
 
이듬해 두 번째 앨범에서 너를 사랑해’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으며
3집에서도 ‘사랑의 마음 가득히’, ‘사랑의 서약’ 등 아름다운 사랑의 시를 써내려갔다.
‘너를 사랑해’와 ‘사랑의 서약’은 1990년대에 가장 잘 나가는 결혼식 축가였다.
 
 



조동진,

 

 

 

장필순 등과 독립레이블 하나음악을 결성했고 권혁진과 ‘엉클’이라는 이름의 듀엣으로도 노래했으며 작곡 실력을 발휘,

김광석에게 ‘사랑했지만’을 써주기도 했다. 현재 cbs 라디오 프로 ‘fm 팝스’의 디스크자키로 활약 중이다.



 

장필순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개성과 음악터전을 가진 여성 포크 뮤지션.

콤플렉스로 작용했던 허스키한 보컬은 진정성을 표현하는 음악적 도구로 작용해 그만의 정체성을 만들어냈다.

나지막이 속삭이면서도 한번 들으면 오랫동안 귓가에 남는 ‘장필순’표 음악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그가 앨범만 내면 평단은 일제히 명반으로 특별 대우할 정도.

듀엣 ‘햇빛촌’을 거쳐 들국화, 조동진, 해바라기 등의 공연 게스트와 코러스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해 1989년 보사노바 색채의 ‘어느새’로 데뷔했다. 이후 본격적인 포크의 길을 걸었고

 

1997년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는 장필순이라는

 

존재를 확실히 각인시켰다.

외로움이 음악키워드. 무기교 보이스만큼이나 올곧은 신념 또한 정서적 기반을 형성한다.

 

 

 

 

해바라기

 

 

 

 

1977년 이정선이 주도한 그룹 해바라기는

 

 

 

1983년 이주호에 의해 새롭게 듀오로 정비되었다

.

 

그의 짝은 유익종, 이광준, 송봉주, 강성운 등 수차례

 

바뀌었지만 지휘자 이주호가 주조해낸 부드러운 멜로디에 대한 대중의 편애는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1984년 봄 ‘모두가 사랑이에요’ ‘다시 사랑할 수 있어요’는 당시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다운타운 카페들을 뒤덮었으며

 

유익종과 함께한 1986년 ‘내 마음의 보석상자’도

 

대박을 쳤다.

 

 

 

1990년 ‘사랑으로’가 해바라기 열풍의

 

 

 

절정으로

 

 

결혼식, 사은회, 노래방 등 모든 회합의 자리를 석권했다.

순수한 사랑의 메시지에 힘입어

 

 

심지어는 종교인들도 이들의 앨범만은 구입했던

 

 

것으로 알려졌고

 

 

1990년대 초반까지 앨범 판매량 부문에서 부동의 최고였다.

비판적 포크 아닌 부드러운 포크 발라드의 승리!

 

 

 

 

장재인

 

 

 

온 국민이 그의 성장과 데뷔를 지켜보았다. 유선방송 엠넷의 '슈퍼스타k2'에서 다른 참가자들과 달리 바닥에 주저앉아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모습은 단숨에 시선을 끌었다.

1991년생, 스물한 살의 나이라고 믿을 수 없는 성숙한 목소리와 복고지향적인 사운드 또한 또래의 청년층뿐만 아니라 중장년층의 포섭을 예약했다.

쏟아져 나오는 트렌드 음악 사이에서 포크 록을 고집하는 뚝심이 인상적이다. '장난감 병정들' '아이 러브 폴' 등이 실린 올해 5월 발표한 ep '데이 브레이크'에 이런 끈기가 퍼져 있다.

작사, 작곡, 편곡 모두를 혼자 힘으로 해냈을 뿐 아니라 실험에도 적극적이다.

 

국내 정상급 프로듀서 김형석과 음악적 멘토인 정원영의 지지도 그의 성공확률을 높이고 있다.

 

 

 

 

yb

 

 

지금은 yb(윤도현밴드)라는 록밴드의 간판이지만 처음에는 ‘종이연’이라는 포크 그룹에서 활동했다.

나중 ‘임진강’ ‘이 땅에 살기 위하여’ ‘박하사탕’ 등 통일과 인권 같은 사회적 메시지의 노래를 부르게 된 것은 포크의 전통인 문제의식을 수혈받은 결과일 것이다. 현실의 부조리에 대립 각을 세운 그가 포크와 록에 착륙한 것은 당연지사.

포크의 숨결도 흐르지만

 

 

주 메뉴는?

 

일렉트릭 기타의 울림을 바탕으로 질러대는

 

 

통쾌한 맛의 로큰롤이다.

 

샤우트의 매력이 십분 발휘된

 

 

2002년 월드컵 때의 ‘오 필승 코리아!’

 

잊을 수 없다.

최근작은 2009년 ‘공존’에 이어 지난해 11월에 내놓은 yb 15주년 기념 라이브 베스트 ‘나는 나비’. 지난해에는 미국 진출을 다룬 같은 제목의 다큐 영화가 상영되어 화제를 뿌렸으며 올해는 ‘나는 가수다’ 출연으로 성가를 높였다.

 
 
 



정태춘과 박은옥

 

 

 

1978년 ‘시인의 마을’과 ‘촛불’이 담긴

 

 

첫 서정적 포크 앨범이 공전의 호응을 얻었지만

포크의 낭만성에 함몰되기를 거부하면서 1980년대 들어

 

 

 

행동주의자로 면모를 일신했다.

 

 

 

당연히 음악도 낭만적인 포크에서 민중가요, 노동가요로

 

 

지향을 강화했다

 

 

포크가 민중음악으로 큰 지류를 형성해나갔다는 점을 실증하는

 

인물이 정태춘이다.

 

 

 

이 점에서 1990년 앨범

 

‘아! 대한민국’과

 

‘92 장마, 종로에서’는

 

 

꼭 기억해야 할 작품이다.

아내이자 음악동지인 박은옥과 함께 지금도 애청되는

 

‘사랑하는 이에게’ ‘떠나가는 배’ 등에서 아름다운 부부하모니를 일궈냈다.

사전검열제도 폐지투쟁에 나서 1995년 결실을 맺게 한

 

주역으로,

 

 

가수들이 음반을 내기 전 가사를 당국에 제출하지

 

않게 된 것은 서태지 아닌 정태춘 덕분이다.

 

 

 

2009년에는 전회 매진의 부부 데뷔 30주년 공연으로 화제를 모았다.

 

 

 

 

윤형주

 

 

 

현재 불고 있는 ‘세시봉’ 붐의 주역.

그와 송창식의 듀엣 트윈 폴리오는 감미로운 번안곡 ‘하얀 손수건’, ‘축제의 밤’ 등으로 한국 포크의 성공시대를 열었다.

1969년 말 이들의 해체 소식은 국내 팬들 사이에서 서구의 비틀스나 사이먼 앤 가펑클이 해산한 것과 맞먹는 거대한 패닉을 일으켰다.

부드럽고 이지적인 이미지로 여대생 팬들의 폭발적인 지지를 받은

 

윤형주는 성공적인 솔로활동을 전개해

 

‘두개의 작은 별’, ‘조개껍질 묶어(라라라)’, ‘우리들의 이야기’ 등

부르는 노래마다 널리 애청, 애창되었다.

당대를 풍미한 원동력은 남성적 음색의 송창식과는 대조적인

미성(美聲)이었다.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근래 ‘세시봉과 친구들’ 콘서트는 그 예쁜 소리가 조금도 변하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김세환

 

 

경희대 재학 중 라디오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데뷔해 무교동 ‘세시봉’과 명동 ‘오비스 캐빈’에서 노래하면서 본격적인 인기가도를 달렸다.

 

 

유연하고 겸손한 자세 덕에 포크가수 중

 

 

드물게 어른들에게 인정받았으며

 

 

사람을 녹일 듯한 부드러운 음색으로

 

 

가요계를 정복했다.

 

 

이장희가 쓴 ‘비’,

송창식 작곡의 ‘사랑하는 마음’,

윤형주가 먼저 부른 ‘토요일 밤에’는

 

 

 

모두 김세환의 빼어난 해석으로 히트

 

.

 

히트곡이 부지기수로 ‘옛 친구’, ‘길가에 앉아서’, ‘목장 길 따라’, ‘사랑한다고 말해줘요’ 등이 그 시절 전파를 어지러이 수놓았다.

 

 

 

1974년과 1975년 거푸 방송 가수왕을 수상,

 

대마초파동으로 포크가수가 사라지기 前에

 

 

가장 사랑받은 가수가 김세환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김세환의 별명은 ‘만년소년’.

 

 

 

 

 

 

박학기

 

1989년 그의 이름을 알려준 데뷔곡 ‘향기로운 추억’이 전해준 쓸쓸한 미성은 잊을 수 없다.

애초 가늘고 여린 느낌의 음색이었으나 담담하고 침착하게 흘러가면서 여성 보컬 못지않은 섬세한 맛을 강조하면서 갈수록 라이브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서정적이고 감성적인 노래의 달인으로 통한다.

최근에는 화사한 분위기를 만드는 화음을 시도하며 보컬에 연륜을 더했다. 꾸준한 정규앨범 작업과

 

장필순, 조동익과의 교류를 통해 다양하고 독창적인

 

양식을 확장시키는 한편

 

유리상자, 이수영 등에게 곡을 주는 작곡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에는 딸 둘과 함께 부른 곡 ‘비타민’으로 사랑받았다. 세월이 흘러도 쉬 풍화되지 않는 이름을 꿈꾼다.

 
 
 



 

박승화

 

 

유리상자의 멤버지만 원래는 솔로 싱어송라이터였다.

 

 

1993년 동아기획에서 발표한 첫 독집은 김현철이 작곡한 ‘사랑해요’ 등이 수록된 완성도 높은 앨범이었다.

3년 만에 2집에서 ‘넌 웃을 수 있었니’를 내놓아 나름대로의 지명도를 쌓아가던 중

 

1996년 이세준과 함께 ‘유리상자’를

 

결성하게 되면서 궤도를 수정했다.

 

듀엣의 대표곡인 ‘사랑해도 될까요’, ‘신부에게’

 

등에서 나타나듯 파트너 이세준의 음색이 얇아 상대적으로 목소리가 굵어 보이지만 실은 정갈한 고음에 섬세한 떨림을 보유하고 있다. 한결같은 사랑의 찬가로 수수한 감성을 전하면서

특히 연인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새천년 대표 포크듀오. 곱고 감미로운 멜로디

 

주조술에 능하다는 평을 받는다.

 
 
 
 



 

봄여름가을겨울

 

 

 

 

1980년대 말, 서구에 눌려 있었던 한국 대중음악계에 통속적인 가요와는 분리된 퓨전 재즈 실험으로 새 바람을 모은 이래 지금도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듀엣 팀.

동시대의 빛과 소금, 김현철 등과 함께 당시 가요계에서는 접할 수 없었던 본격적인 재즈의 기품을 담아낸 혁신적 음악으로 주목을 받았다.

1988년 첫 앨범은 반응은 미미했지만 이전에는 없었던

 

연주곡‘사람들은 모두 변하나 봐’로 음악계에 충격을 던졌고

 

이후‘어떤 이의 꿈’,‘ 외롭지만 혼자 걸을 수 있어’,‘

 

10년 전의 일기를 꺼내어’의 연속 히트로 스타덤에 올랐다.

 

2002년 앨범‘브라보, 마이 라이프!’에 이어

 

2008년 20주년 기념앨범‘아름답다, 아름다워!’는 수작이라는 찬사를 받았고 현재도 각종 라이브 무대에서 관록을 자랑하고 있다.

 

 

 

 

 

임지훈

 

 

탁성(濁聲)이 서정과 만나면 말로는 표현하지 못할 비애(悲哀)의 아름다움이 나온다는 것을 증명해준 인물.

홀로 있을 때, 외로울 때, 누군가가 그리워질 때, 허전할 때 임지훈의 음악을 한번 듣게 되면 그 뒤론 도무지 헤어날 수가 없게 된다.

 

 

애절한 탁성의 절규로

 

 

1987년 '사랑의 썰물' '내 그리운 나라'와 함께 인기 정상으로 비상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댄스열풍 속에서도 포크발라드를 들려준 1995년의 기획앨범 〈서정〉은 꾸준한 판매량을 보였다.

작년 하반기에도 김민기 곡 '아하 누가 그렇게'와 백설희의 '봄날을 간다'를 리메이크한 〈추억―두 번째〉 앨범을 내놓았다.

허스키 목소리로 '차가운 너의 이별의 말이/ 마치 날카로운 비수처럼…'

 

하던 새파란 청년이 어느덧 쉰셋의 어른이 됐다.

 

 

 

 

 

이동은

 

1980년대 후반 아름다운 가사와 신선한 멜로디, 맑은 보컬로 미친 존재감을 나타냈던 ‘푸른 하늘’. 이들의 음악은 한순간의 대박은 아니었지만 음악 마니아를 통해 서서히 오랜 시간 기억되었다.

1987년 유영석과 함께 그룹 ‘푸른하늘’을 결성, 앨범 ‘겨울바다’를 내놓으면서 데뷔했다. 푸른하늘 이후 ‘자유’‘하나가 되어’‘10년 후에’‘춘네 세차장’ 등의 앨범을 냈고,

현재는 원맨밴드 ‘라이어 밴드’로 활동 중이다.

밴드 이름 ‘라이어(liar)’는 진실보다 거짓이 득세하는 세상에 반항하고, 무대에서만은 진실한 음악을 하자는 염원을 역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의 저력은 30년간 흔들리지 않는 열정과 집념이다. 어려움 속에서도 묵묵히 헤쳐 나가는 정신은 포크정신과도 상통한다.

 

 

 

 

동물원

 

깨끗하고 투명한 감성으로 치면 이들을 넘어설 가수가 있을까.

1987년 첫 앨범에서 멤버였던 고(故) 김광석이 부른 ‘거리에서’와 ‘변해가네’ 때부터 방송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으면서도 족적을 남긴 캠퍼스 포크그룹이다.

대학생의 순수가 빚은 결실로 기록된다.

 

 

초기 김광석 김창기가 포함된 대형 라인업에서

 

지금은 유준열 박기영 배영길 3인조가 그룹을 지키고 있다.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시청 앞 지하철역에서’

 

 

 

널 사랑하겠어’ 등 히트 레퍼토리들이 수두룩하다.

 

2000년 이후에도 ‘신춘음악회-미술관 옆 동물원’‘동물원과 함께 가는 가을소풍’과 같은 테마공연을 전개해 호평을 받았다.

24년의 역사를 쌓은 사이 세 멤버 다 사십대 후반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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