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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映畵-최종병기 및 영조의 활과 국군 포로 그 뒷여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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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3,558회 작성일 2011-10-03 09:44

본문

 
 
 
 
 
 
@제목: 映畵 최종병기 국군 포로!
 
 
 
영화 ‘최종병기 활’을 뒤늦게 관람했다. 700만 명이 봤다는 요란한 선전에 걸맞게 영화는 흥미진진하고 박진감이 넘쳤다.
 
 
활 하나로 청나라 정예군을 무찌르고 누이를 구출하는 단순한 이야기 구조와 청군에 포위된 주인공을 호랑이가 구출해주는 황당한 설정에
실망할 겨를이 없을 정도로.


그런데 영화가 끝난 후 오랫동안 뇌리에 남은 건 시종 영화관을 달구었던 화려한 액션이 아니라
 
 
마지막 장면의 자막이었다.
 
 
 
청군에서 탈출한 주인공 일행이 압록강 앞에 이르렀을 때 떠오른
 
 
 
자막 한 줄이 바로 그것이었다.
 
 
 
 
‘나라의 포로 송환 노력은
 
 
없었다.
 
 
 
극히 일부의 백성이 스스로의
 
 
 
힘으로 돌아왔다.’


 
 
병자호란(1636년) 때 청나라에 포로로
 
 
끌려간 조선 백성은?
 
 
 약 50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왕과 신하들은 제 몸 보전하기에 급급했고
 
백성의 안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수많은 백성이 낯선 땅에서 노예생활을 하다 죽어갔다.
 
 
 
몽골 침략과 임진왜란 때  잡혀간
 
 
수십만 고려, 조선 백성의 처지도 
 
 
이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스스로의 힘으로 돌아온
 
 
일부 백성’은?
 
 
병자호란 때만 있었던 게 아니다.
 
 
 
 
 
 
17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1994년 조창호 소위가
 
 
생환한 이래
 
 
지금까지 80명의 국군포로가 북한을 탈출하여
 
조국으로 돌아왔다.
 
 
 
목숨을 건 탈출 과정에 정부의 도움은
 
 
전혀 없었다.
 
 
 
2005년 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6,25전쟁 휴전이후 국군포로는 모두 1369명.
 
 
그중 생존자는 500여 명이다.
 
 
 
 
6.25전쟁중  납북자만 10만여 명으로 추산된다. (이중 최근 밝혀진 바에 의하면 엄청난 추위의 시베리아 지역 벌목공으로 끌려간 우리 국군 포로가 적어도 약 2만명 정도라고 한다-옮긴이 주)
 
 
 
역대 한국 정부는 “국군포로와 납북자는 한 명도 없다”고 항변하는
 
 
북한의 억지에 손을 놓았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한국의 국방비는 북한의 5배다.
 
 
 
2009년 국가정보원이
 
 
한국국방연구원을 통해 분석한 바로는?
 
 
한국군의 전력이 북한군보다 10%가량 우세하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지난해 연평도 사태 때 드러난
 
 
 
한국군의 허술한 방어망을 생각하면?
 
ㄱ.역대 국방부 장관과 합참의장, 참모총장들을 청문회에 세우고 싶을 정도다.
 
ㄴ.수십 년간 천문학적인 국방비를 쏟아 부었는데 북한 포가 어디서 날아왔는지도 몰라 허둥댔다.
 
ㄷ.장사정포와 탄도미사일 위협에 대한 수도권 방어태세는 불안하기 짝이 없다.
 
ㄹ.고장과 정비불량으로 무용지물인 高價의 무기가 수두룩하다.
 
 
이래서야 국민이 포로로 끌려가는 일이 재발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겠나.
 
 


게다가 우리의 적(敵)은?   북한만이 아니다.
 
 
 
날로 군사력을 키우고 영토 야욕을 드러내는
 
 
 
중국과 일본은?
 
 
잠재적 위협 세력이다. 그건 역사가 입증한다.
 
 
 
경제 협력과 국익 분쟁은 별개다
.
 
독도와 제주도 남방의 이어도를 놓고
 
 
한국이 일본, 중국과 싸움이 벌어진다면?
 
 
미국은 개입하지 않을 것이다. 그건 한미동맹과 별개다.
 
 
 
제주도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논리에
 
일리가 없지 않지만,
 
지금 그걸 갖고 우리끼리 아옹다옹할 만큼 국제정세가 한가롭지 않다.
 
 
 
동북아 평화의 균형추 노릇을 하기 위해서라도
 
 
주변 강대국들의 군사력을 견제할 정도의 무장이 불가피하다.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앞두고
 
 
 
지휘체계 개편보다
 
 
더 重要한 것은?
 
 
 
1.국방예산과 전비태세에 대한 정밀점검,
 
2.그리고 실질적인 전투력 배양이다.
 
3.아울러
 
 1999년 연평해전 승장(勝將)인
 
 해군제독이 좌천된
 
 
이후  해이해진 장병들의 안보기강을 다잡아야 한다.
 
 
 
********
 
한미동맹도 自主를 바탕으로 삼아야 한다.
 
 
 
 
대한민국의 최종병기?
 
 
현빈의 해병대도,
 
이지스함도,
 
글로벌호크도 아니다.
 
 
 
軍과 國民의 확고한
 
 
자주국방 意志다.


 
위의 글은 2011년 9월29일자 동아일보 조성식 기자의 글입니다.
 
 
 
조성식기자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
 
 
 
 
@@ 제목: 영조 大王 과
 
 
[백승종의 역설] 영조와 활
등록 : 20110926     
130654303698_20110529.JPG » 백승종 마을공동체문화연구소 대표
영조는 무과 시험과목에서 보사(步射)의 과녁을 80보에서 50보로 끌어당겼다. 사정거리가 멀면 화살 힘이 분산되기 때문이었다.
 
송나라 사람 서긍
 
<고려도경>에서 고려
 
이 쏜 화살은 멀리 나가지만 힘이 없다고 평했다.
 
실학자 이덕무 역시
 
 먼 과녁 맞히기만 좋아하는 것은 병폐라고 비판하였다.(<청장관전서>)

 

 

활에 관해 영조는 모르는 게 없었다.

 

한번은 武臣 홍화보가 어명으로

 

활을 쏘게 되었는데,

 

어찌된 셈인지 단 한 발도 맞히지 못했다. 왕은 즉석에서 원인을 규명해냈다.

 

“그대가 활을 쏠 줄 모르는 것이 아니라, 각궁이 너무 늘어져서 그렇다.” 왕은 이렇게 말하고서 자신의 활을 꺼내 단번에 표적을 꿰뚫었다.

 

 

“나는 한 번 맞히면 족하다. 그대가 이 활을 받아 간직하거라.” 영조는 즉석에서 자신의 활을 홍화보에게 하사했다.(정약용의 <다산시문집>)

 

활솜씨도 대단했지만 활에 대한 영조의 지식 또한 해박하였다.

 

 

조선 식자층은 활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

 

 

이익은 강궁의 원리를 파헤쳐, 화살이 길고 활이 강하면 화살이 부러진다고 분석했다.

 

 

그 문제는 기계를 통해 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도 주장했다.

 

 

그는 한동안 이런 식으로 기계의 장점을 논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태도를 바꿔 뜻밖의 결론을 내렸다. “백성이 곤궁하여 굶주림과 추위를 헤어나지 못하면 싸움터를 달게 여길 리 없다. 기계란 하나의 보조수단일 뿐이다.”(<성호사설>)

 

 

“내 활은 죽이는 게 목적이 아니다.”

 

 

영화 <최종병기 활>(감독 김한민)의 대사도

 

이익의 생각과 상통한다.

 

 

활에 정통했던 영조 때, 예언서 <정감록>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삶에 지친 백성들은 난세의 해답은 오직 “궁궁”(弓弓)에 있다고 했다.

 

 

오직 활과 활에 살길이 있다는 이 말의 실체를 놓고 다들 의견이 분분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음양이 미분화된 태극 곧 후천개벽에 대한 기대였다. 영조는 눈앞의 활에만 눈이 밝았던 것은 아닌가.

 

 

마을공동체문화연구소 대표 백승종 前職 대학 교수 출신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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