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映畵-최종병기 및 영조의 활과 국군 포로 그 뒷여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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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3,755회 작성일 2011-10-03 09:44본문
그런데 영화가 끝난 후 오랫동안 뇌리에 남은 건 시종 영화관을 달구었던 화려한 액션이 아니라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게다가 우리의 적(敵)은? 북한만이 아니다.
활에 관해 영조는 모르는 게 없었다.
한번은 武臣 홍화보가 어명으로
활을 쏘게 되었는데,
어찌된 셈인지 단 한 발도 맞히지 못했다. 왕은 즉석에서 원인을 규명해냈다.
“그대가 활을 쏠 줄 모르는 것이 아니라, 각궁이 너무 늘어져서 그렇다.” 왕은 이렇게 말하고서 자신의 활을 꺼내 단번에 표적을 꿰뚫었다.
“나는 한 번 맞히면 족하다. 그대가 이 활을 받아 간직하거라.” 영조는 즉석에서 자신의 활을 홍화보에게 하사했다.(정약용의 <다산시문집>)
활솜씨도 대단했지만 활에 대한 영조의 지식 또한 해박하였다.
조선 식자층은 활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
이익은 강궁의 원리를 파헤쳐, 화살이 길고 활이 강하면 화살이 부러진다고 분석했다.
그 문제는 기계를 통해 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도 주장했다.
그는 한동안 이런 식으로 기계의 장점을 논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태도를 바꿔 뜻밖의 결론을 내렸다. “백성이 곤궁하여 굶주림과 추위를 헤어나지 못하면 싸움터를 달게 여길 리 없다. 기계란 하나의 보조수단일 뿐이다.”(<성호사설>)
“내 활은 죽이는 게 목적이 아니다.”
영화 <최종병기 활>(감독 김한민)의 대사도
이익의 생각과 상통한다.
활에 정통했던 영조 때, 예언서 <정감록>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삶에 지친 백성들은 난세의 해답은 오직 “궁궁”(弓弓)에 있다고 했다.
오직 활과 활에 살길이 있다는 이 말의 실체를 놓고 다들 의견이 분분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음양이 미분화된 태극 곧 후천개벽에 대한 기대였다. 영조는 눈앞의 활에만 눈이 밝았던 것은 아닌가.
마을공동체문화연구소 대표 백승종 前職 대학 교수 출신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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