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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사14期-군인출신이나 청렴 강직의 표상-정치인 故 李春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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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1,561회 작성일 2011-09-24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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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소신으로 살았던 어느 정치인의

 

죽음

  • 조선일보-주용중 기자

입력 : 2011.09.21

 

민자당 前대표 이춘구씨, 폐질환으로 사망


5·18 때 - 신군부가 병력 요청하자 포병학교 정문 온몸으로 막아


첫째도 원칙 둘째도 원칙 - "친동생이라도 이권개입 안돼", 사업 힘든 동생 자살까지


전·노 구속 후 은퇴 - "당시 정치자금 관행이었는데 깨끗한 척하는 정치인들 환멸

"
 
 
4선 의원으로 민자당 대표를 지낸
 
 
이춘구(78)씨가
 
 
20일 새벽 만성 폐쇄성 폐질환으로 사망했다.


육사 14기인 고인(故人)은?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때 광주 포병학교 교수부장으로 있으면서
 
신군부의 병력 동원에 반대했다.
 
그가 학교 정문을 막아서는 바람에 그 부대 병사들은 동원되지 않았다.
 
하지만 신군부는 각계의 인재를 국보위에 포섭하면서
 
군내 신망이 두터운 그를 재무위원으로 차출했다.
 
 
는 군복(준장)을 벗으며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나이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육참총장의 꿈을 접은 것이다.


1981년 전국구 의원으로 정치권에
 
들어온 그는?
 
 
 노태우 내무장관 밑에서 내무차관으로
 
 
일한 인연으로
 
6공 출범의 주역이 됐다.
 
1988년 12월 내무장관 취임 7개월 만에
 
12명이
 
탈옥한 사건에 책임을 지겠다며 사표를 냈다.
 
노 대통령이 여러 차례 반려하자 병원에 입원까지 해서 뜻을 관철했다.

그는 노 대통령에게 박철언씨 등 측근들의
 
 
월권에  대해 여러 차례 직언을 했다.
 
 
 
일부 집권 세력은 "대통령에게 항명한다"고 그를 몰아붙였다.
 
 
1990년 노태우·김영삼·김종필 주도의 3당 합당
 
이뤄졌을 때
 
 "내 소신과 다르다"며 청와대 만찬에 가지 않았다.
 
그러나 1992년 대선 때 김영삼 대표를 도와주라는 노 대통령 지시로
 
당 사무총장을 세 번째로 맡았다.


 
20일 별세한 이춘구씨가 민자당 대표 시절인 1995년 4월 29일 당 회의에서 전날 있었던 대구 지하철 가스 폭발 사고의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인 1995년 말 5·18
 
특별법이 만들어
 
 
지고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구속되자
 
 
이듬해 1월 그는 정계를 은퇴했다.
 
 
"나라 안정과 국민에게 평화를 주는 게 정치의 본질인데
 
정치인들이 지역감정 등으로 갈등을 부채질하는 것을 보면서
 
정치에 입문한 것에 후회감을 가졌다.
 
 
정치를 하든 무엇을 하든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적 도리다.
 
 
그 사람들(전두환·노태우)이 나쁜 짓을 했더라도 내 입장에서는 그들을 매도할 수 없었다. 정치 자금 문제가 공공연한 정치 관행이었음에도 사람들이 자신들은 부끄러울 것 하나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을 보고
 
심한 환멸을 느꼈다."

그가 가슴속 얘기를 이렇게 길게(a4 1장 분량) 공개적으로 털어놓은 것은 정치 인생 15년 중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이후 세상과 담을 쌓고 지냈다.
 
가까운 지인 몇몇과만 교류하고 독서로 소일했다. 인터뷰도 하지 않았다. 한동안 뭔가 기록을 했으나 나중에 없애버렸다고 한다.


그가 내무장관 시절 사업에 어려움을 겪은
 
친동생이 자살했다.
 
 
주변에선 "이 장관이
 
 
수천만원의 농협 융자건을 도와주지 않아
 
그렇게 됐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으나
 
그의 보좌관은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아무리 친동생이라도 이권 등에 개입하지 못하게 했을 뿐"이라고 전했다.
 
1993년 첫 공개 때 재산은
 
 
9억9000만원이었다.
 
1994년 국회부의장을 물러날 때는 남은 판공비를 반납했다. 그가 정계를 떠날 때 후원회에서 모금을 해줬으나 받지 않았다. 비리에 연루돼 구설에 오른 적이 없었다.


강재섭 전 한나라당 대표는?
 
 
3년 전 언론 인터뷰에서 '존경하는 정치인이 누구냐'는 질문에
 
 
 
"이춘구씨
 
 
 
"라고 했다. "이씨는 부하들에게 살벌할 정도로 엄격하다고 해서
 
 
별명이 저승사자였다.
 
 
 
그런데 그는 원칙을 정하면 철저히 지켰다.
 
다른 정치인들처럼 구질구질하지 않았다."

그는 집에서 식사할 때면 찬물에 밥을 말아 반찬 한두 점 집어 먹는 식으로 끝냈다. 채 3분이 걸리지 않았다.
 
차를 탈 때 앉자마자 차가 떠나지 않으면 기사를 나무랐다.
 
그는 별로 웃지 않았다. 가끔씩 희미한 미소를 짓는 정도였다.
 
그래서 '저승사자' 이외에 '냉혈한' '로봇'이란
 
 별명이 붙었다.
 
그런 그를 보좌관과 운전기사는 30년 이상 떠나지 않았다.
 
보좌관은 "일을 워낙 철저히 하는 스타일이라 그렇지 알고 보면
 
누구보다 따뜻하고 여린 분이었다"고 했다.
 
빈소에 모인 사람들은
 
"故人은 소신에 살다 소신에 죽은 군인
 
 
이자 정치인"이라고 했다.

유족은 부인 문춘자씨와 아들 재용(개인 사업), 딸 서영, 사위 권기연(ss모터스 대표이사)씨 등이다. 빈소는 강남성모병원 장례식장 21호. 발인은 22일이다. (02) 2258-5971.
 
 
*******************
 
 
@제목: 5共 및 6共의 특급소방수' 故 李春九 누구?
 

pyh2011092002260001300_p2.jpg 이춘구 전 국회의원 별세 (서울=연합뉴스) 제11~14대 국회의원과 옛 민자당 대표를 지낸 이춘구 전 의원이 20일 별세했다. 향년 78세. << 연합뉴스 db >> 2011.9.20

(서울=연합뉴스) 김남권 기자 = 78세를 일기로 별세한 이춘구 전 민자당 대표는 군사정권인 5ㆍ6공의 핵심 인사이면서 김영삼 문민정부에서도 영향력을 행사한 정치인이다.

육사 14기 출신으로 준장으로 예편한 뒤 1980년 5월17일 비상계엄 직후 국보위 재무위원으로 신군부 세력에 합류한 뒤 사회정화위원장을 지냈으며, 11대 당시 전국구 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한 이후 고향인 충북 제천에서 내리 당선돼 4선의 관록을 쌓았다.

고인은 청렴하고 담백한 성품 때문에 같은 군 출신인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신임을 한몸에 받았다.

특히 5공화국 당시 노태우 전 대통령이 내무장관을 역임하던 시절 차관으로 일하면서 빈틈없는 업무수행 능력을 인정받았고, 이를 계기로 5공 말 노 전 대통령의 천거로 민정당 사무총장에 전격 기용되면서 여권 실세로 떠올랐다.

노 전 대통령의 오른팔로 1987년 대선에서는 민정당의 선대본부장을 맡아 `노태우 대통령 만들기'에 성공했다.

이후 5공 청산과 `정호용 의원직 사퇴' 등 정치적 고비 때마다 전면에 등장해 위기 극복에 나서 `특급소방수'로 불리기도 했다.

`6공 황태자'라고 불린 박철언 전 체육청소년부 장관을 두고 노 전 대통령에게 싫은 소리를 한 유일한 여권 인사로, 박 전 장관 처리 문제에 불만을 품고 노 전 대통령 초청 모임에 불참하는 강단을 보이기도 했다. 1990년 민정당, 민주당, 공화당간 3당 합당에 대해서는 "성급했다"는 입장도 견지해왔다.

14대 대선에서 선대위 부위원장으로 김영삼 전 대통령의 당선에 크게 기여해 김 전 대통령으로부터도 신임을 받았다.
 
이 때문에 김 전 대통령은 1994년에는 예상을 깨고 군 출신에다 5ㆍ6공 핵심 인사인 고인을 국회부의장에 중용하기도 했다.

1995년 민자당 대표, 1996년 신한국당 대표 등을 역임하며 ys 정권에서도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한 바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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