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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효조 타격상 신설에 대하여! 및 야구마니아 회고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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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3,939회 작성일 2011-09-11 09:11

본문

 
 
 
 

 

@제목:   타격 천재   장효조 타격상 신설하자!

 

 

1.너무 아쉽게도 슬프게도 2011년9월7일 위암 및 간암4기로 위중하다고 갑자기 언론 보도가 나간 지 불과 한달 여 만에 세상을 떠난

 

‘타격의 達人’ 장효조 선수를 기리는

 

‘장효조 타격상’

 

 제정 문제가 야구계에서 논의되고 있다.

 

 

2.張孝祚는?

 

 

인물 정보

프로필 수정요청 내 참여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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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효조 야구감독,야구코치
출생-사망
1956년 7월 6일 - 2011년 9월 7일
신체
175cm, 78kg
소속팀
삼성 라이온즈
학력
한양대학교 학사
데뷔
1983년 삼성 라이온즈 입단
수상
1987년 프로야구 정규리그 최우수선수상
사이트
공식사이트

 

ㄱ.1983년부터 1992년 시즌까지 프로야구팀 삼성 라이온스와 롯데 자이언츠에서 선수 생활을 하며 생애 통산 평균타율 0.331이라는 깨지기 어려운 대기록을 남겼다.

 

***이 기록은 일본에는 아직 단 한명도 없고--일본 타격 천재 스즈키 이치로 선수도 통산 평균 타율 3할2푼6리-상대적 비교에는 다소 무리가 물론 있을 수도 있지만 하여튼 일본인 선수는 아직도 단 한명도 없다.

 

***야구 역사가 오래된 미국에서도 장효조의 평균 타율을 넘기는 선수는 미국프로야구 100년 역사상 5명 안팎이며 장효조 시절인 1980년대 이후에는 단 한 명도 없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ㄴ.1983년과 1985~1987년 네 차례나 수위타자를 기록했고,

 

ㄷ.1997년에는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으며,

 

ㄹ.1983~1987년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다.

 

 

3.아마추어 시절 즉,

 

ㄱ..대구상고(현 상원고)와

 

ㄴ.한양대,

 

ㄷ.포항제철(현 포스코),

 

ㄹ.육군 경리단 等

 

프로 이전의 아마추어 야구 시절에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타격 부문 타이틀을 획득했다.

 

 

***그중 영원히 기억될 만한 것을 하나만 例를 들어 본다면?

1976년 장효조선수가 한양대학 2학년 시절 대학 및 실업을 총망라하는

王中王戰 성격의 '백호기(白虎旗)대회'에서

14타수 10안타 즉 '7할1푼4리'라는 경이적인 타율로 타격상을 받음!

 

***그는 프로 선수 생활중에서도 

타율왕 즉 타격상 후보가 대개 3할 3푼이나 3할4푼대에서 시즌 1위가

결정되는 경우가 다반사였는 데

장효조는 3할8푼으로 한번,3할7푼으로 또 한번, 3할6푼대로 또 다시

타격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 바 있으며 위에서 언급했지만 도합

4회에 이르는 타격왕의 타이틀을 거머쥐는 타격 천재의 명성을 만천하

에 드날린 바 있다.

 

**장효조는 고교 2학년 당시 발군의 실력으로 동료 들과 함께

전국대회 메이저 대회 4개 대회중에서 대통령배-황금사자기-봉황대기

등 3개 대회를 휩쓸어 대구상고 전성기를 이끄는 데 특등 공신이 된

바 있다. 그는 그 다음해 고교 3학년 시절 전국 모든 고교 팀이 참가

하는 봉황대기에서 2회 연속 우승을 차지하는 특등 공신이 됩니다.

 

 

 

 

4.장효조가 고교 졸업후 곧바로 프로야구에서 활약할 수 있었다면,

즉, 1975년 고교 졸업 당시 프로경기가 있었다면 훨씬 더 많은 기록을 남겼을 것이다.

5.우리 고교야구에는?
 
지난 1958년 제정된 이영민 타격상이 있다.
 
 
6.이영민은?
 
1928년 연희전문학교 재학시절 경성의전 주최 야구대회에서 한국 최초로 홈런을 날리고 타격왕까지 차지했던 전설적인 인물이다.
 
 
7.이영민 타격상은?
 
 
ㄱ.매년 9개의 전국 규모 고교야구대회 가운데
ㄴ.5개 대회 이상,
ㄷ.15경기,
ㄹ.60타석 이상을 모두 기록한 선수 가운데
가장 높은 타율을 기록한 고등학교 선수에게만
 
수여된다.
 
8.메이저 리그에도 타격왕에게 수여하는 이 있다.
바로 야구 역사상 최다인 755개의 홈런을 날린 헨리 루이스 행크 에런을 기리는 ‘행크 에런 상’이다.
 
 
***베리 본즈의 762개의 홈런은 물론 메이저 리그 최다 홈런이지만
약물 복용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하여 제대로 인정을 못 받고 있다.
 
 
9.위의 행크 에런 賞 은?
 
 
 
1999년부터 아메리칸 리그와 내셔널 리그의 최고 타
 
자에게 각각 수여한다.
 
 
10.야구팬이면 누구나 거의 다 아는 상식-메이저 리그에서 최고의 활약을 보인 투수에게는?
 
 
‘사이 영 賞’을 주고 있다.
 
 
11.이름이  덴턴 트루 ‘사이(클론)’ 영 은?
 
 
ㄱ.1890년부터 1911년까지 선수 생활을 하면서
 
 
ㄴ.906경기에 출전해
     511경기 승리,
     749경기 완투,
     76경기 완봉이라는
 
 
불세출의 기록을 세웠다.
 
 
12.일본 프로야구에도
 
ㄱ.그해에 가장 뛰어난 활약을 보인 선발투수에게
 
 
 사와무라 賞을 수여한다.
 
 
ㄴ.일본 미에 縣(현) 출신으로
 
ㄷ.일본 프로야구 초창기 최고의 투수였던
 
'사와무라 에이지' 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ㄹ.1947년 ‘열구’(熱球)라는 잡지가 제정했다.
 
13.장효조 타격상이 제정돼 성공적으로 운영된다면?
 
 
매년 최고의 활약을 보인 투수들에게 주는 상도 뒤따를 가능성이 크다.
 
 
14.야구팬 가운데는 선동열이나 최동원의 이름을 딴 투수상을 줘야 한다는 의견을 내기도 한다.
 
 
15.장효조 타격상이나 선동열·최동원 투수상 제정은 단순히 야구계나 스포츠계의 이벤트로만 볼 수 없다.
 
 
16.사람을 키우기보다 죽이는 데 몰두했던 한국사회에서
영웅 만들기라는 새로운 흐름을 열 수도 있기 때문이다.
 
 
*** 저 한준구의 의견 20%에다가 서울신문-이도운 논설위원 의 글이 80%임
 
 
*****************
 
@@@ 다음은 70년대 중반 야구 마니아 박은규님의
 
故 장효조 당시 선수의 맹활약상에 대한 
 
미있는 회고담입니다.
 
야구팬은 참고로 일독을 바랍니다.
 
 
ㄱ.1973년 중학교 2학년이던 제가 고교야구에 빠져든 지 얼마 되지 않을 때였습니다.
 
ㄴ. 대통령배대회에서 대구상고 2학년인 한 선수가 경기하는 걸 tv로 보고 조그만 선수가 저렇게 잘할 수가 있나 하고 감탄하며 약간은 시샘하는 심정으로 보던 기억이 납니다(저는 군산상고의 팬이었습니다).
 
ㄷ.결국 그 선수는 0.583(12타수 7안타)이라는 고타율로 타격1위를 차지하며 대구상고의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ㄹ.그가 장효조 선수인데, 그는 그 뒤로도(프로야구에 와서도) 나올 때마다 안타를 칠 것같은 예감 때문에(그리고 실제로도 잘 쳤고) 군산상고와 해태를 응원하고 김봉연 선수와 김일권 선수의 팬이던 저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ㅁ.대학야구에서도 장효조 선수의 고타율 행진은 계속되었습니다.
 
ㅂ.김일권 선수가 군산상고 졸업 후 실업팀으로 가서 몇 년 동안 뛰다가 뒤늦게 한양대에 입학해서 대학야구에서 뛰면서 홈런도 많이 치고 무시무시한 포스를 보여주던 때가 있었습니다.
 
ㅅ.실업팀에서 뛰다 온 선수라 역시 다르다는 등 언론에서 김 선수에 대한 찬사가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그때 김 선수의 타율을 보니 0.472(36타수 17안타; 정확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타수와 타율이 이 정도였다는 것은 확실합니다)라는 어마어마한 타율이었습니다.
 
ㅇ.그런데 김 선수는 타격 2위였고, 1위 자리는 5할이 넘는 타율을 기록하고 있던, 같은 한양대 소속 장효조 선수의 차지였습니다.
 
 
 
 
 
ㅈ.그리고 홈런타자인 김봉연 선수(연세대)가 대학야구에서 역시 무서운 기세로 홈런을 치고 있을 때였습니다.
 
ㅊ.김 선수는 홈런은 많이 쳐도 타율이 아주 높은 선수는 아니었습니다. 언젠가 대학야구를 보러 동대문야구장에 갔다가 어떤 팬이 김 선수를 칭찬하며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ㅋ.“김봉연은 타격 순위는 별로 안 높은데…” 그 다음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더니 이런 말이 이어졌습니다. “홈런은 장효조 다음이야.” 이 말을 듣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ㅌ.“도대체 장효조는 인간인가 신인가? ㅠㅠ”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제가 김봉연 선수와 김일권 선수의 팬이었기 때문에)
 
 
 
 
ㅍ.그렇다고 해서 제가 장효조 선수를 싫어한 것은 절대 아닙니다. 응원하는 팀을 떠나서 정말 좋아하고 존경하던 선수였습니다.
 
ㅎ.위대한 타자 장효조님의 명복을 빕니다.
********************************************
 
 
 

굳이 야구에 큰 관심이 없는 분이라도 장효조란 이름은 한번쯤 들어보셨을 법한데요.

 

안타까운 마음을 뒤로하고 장효조 감독님의 기록을 살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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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효조하면 타격왕이란 단어가 떠오를만큼

타격부문에 있어서는 지금까지도 최고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장효조는 1982년 국가대표 선수로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해서 사상 첫 우승을 기록하고

프로 무대에 첫 선을 보여서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미 데뷔때부터 뛰어난 타격 감각과 선구안으로 큰 돌풍을 일으키기도 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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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효조 기록 중에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프로야구 최초로 8연타석 안타와 3연타석 홈런을 기록했다는 점입니다.

 

3연타석 홈런은 2000년 현대의 박경완이 4연타석 홈런을 날려서 17년만에 깨졌지만,

 

특히, 8연타석 안타 기록은 1986년 이만수와 2000년 김기태도 달성했었지만

그 이상을 넘지는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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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에는 317타수 117안타의 0.369 타율로 첫 타격왕 타이틀을 차지했었는데요.

 

그 밖에도 장타율과 출루율에서도 1위를 차지했었지만,

홈런과 타점, 승리타점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한 이만수에게 밀려서

최우수선수 등극에는 실패했었습니다.

 

장효조는1985년 0.373의 타율로 타격왕 타이틀을 되찾으면서

1987년까지 3년 연속으로 타이틀을 지켜냈으며

 결국 최우수선수에도 뽑히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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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효조는 삼성에 몸담고 있었던 6년동안 모두 567경기에 출전해서 645안타를 기록해

평균 타율 0.356이란 엄청난 기록을 세웠는데요.

 

사실 야구의 꽃은 홈런이라고 여기는 분들이 많은만큼 홈런 48개, 타점 305개에 그쳐서

같은 시기에 홈런 124개와 405타점을 기록한 이만수에게 비교되는 부분이 없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장효조는 지금까지도 타격에 관해서는 자타가 공인하는 선수이며,

1992년에 롯데에서 은퇴할때까지 최우수선수 1회, 타격왕 4회, 장타율 1회,

골든글러브 5회 수상이라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장효조 감독님 부디 좋은 곳으로 가시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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