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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 4.3 사건 희생자 3만명과 김익렬 장군 그리고 일본 우익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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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1,716회 작성일 2011-08-21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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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제주 4.3사건과 김익렬 장군이 남긴글은?

 

1.김익렬 장군은?

8사단장과 국방대학원장을 역임하고 육군 중장으로 예편한 우리 군의 원로중의 한 분으로서

 

2.제주도의 현대사의 최대 비극인 제주 4.3사건에 대한 글을 남겼다는 데?

 

3.그가 노환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에 반드시 제주 4.3

사건과 관련하여 진실을 남겨야 하겠다는 소명의식이랄까 사명의식이랄까 아니면 약 3만명 안팎으로 추정되는

제주도민의 원혼을 조금이라도 위로할 마음으로 마지막 유고의 글을 남기게 되었다고 저는 봅니다.

 

4.그의 말에 의하면?

"제주 4.3에 대한 각종 기록이 너무 왜곡되고 미군정과 한국 경찰의 실책은 물론 나아가 그 죄상이 은폐되는 데 크게 공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 핵심 요지다.

 

5.그는 첨언하길:

"나의 마지막 진실된 원고가 가필정정이 되지 않은 그대로, 세상에 알려질 수 있을 때에 가서 역사 앞에 밝히길 빈다."라고 하였다

 

6.그만큼, 제주 4.3의 진실을 알리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었음을 능히 짐작하게 된다.

 

7.김익렬 장군에 의하면?

 

ㄱ.1947년 경찰의 3.1절 민간인 발포에 분노한 제주도민의 총파업,및 경찰의 대대적인 검거 선풍으로 제주도민의 민심이 끓고 있을 때인 9월(6개월이 흘렀다)

 

ㄴ.즉 1947년 9월 김익렬은?

제주도 9연대로 배속받아 이듬해인 1948년 2월 9연대의 연대장으로 승진한다.

 

ㄷ.그로부터, 약 2개월뒤인 48년 4월3일 남로당 무장대가 경찰지서 등을 기습하는 사건을 접하게 된다.

 

ㄹ.미 군정당국은?

한국군 및 한국 경찰에 토벌작전을 명한다.

 

 

8.그러나, 김익렬 연대장의 생각은?

 

ㄱ.아주 극렬한 분자들은 200명이나 300명 안팎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된다.

 

ㄴ.그런 만큼, 화평 선무 작전을 먼저 시도해 보고

 

ㄷ.그래도 안된다면?

 

"그때가서 토벌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라고

미군정 제주도 최고 책임자들에게 설득 시도하게 된다!

 

9.김익렬 연대장은?

 

ㄱ.자신의 가족을 4월28일경 인질로 잡혀둔 채 무장대

은신처로 간다.

 

ㄴ.그리고는, 무장대 책임자중의 한 명인 김달삼과 담판을 벌여 평화협정을 이끌어내는 성과를 거둔다.

 

10.그러나, 이 무슨 해괴한 일이 벌어졌는 지?

 

ㄱ.김익렬에 의하면?  경찰측이 뭔가 석연치 않아 보이지만 경찰 수뇌부는 평화협정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 분위기로 몰고 가버리는 등 한마디로 평화를 원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ㄴ.그리하여, 경찰에 의한 사단이 터지고 만다.

 

ㄷ.평화협정 체결 3일뒤 쯤인가 경찰의 끄나풀들에 의해

'오라리 방화 사건'이 발생한다.

 

ㄹ.경찰측은?

이를 무장대 소행 탓으로 돌리고 만다.

 

11.평화협정을 이끌어 낸 김익렬 연대장은?

 

ㄱ.그 오라리 방화 사건의 조작의 증거를 들이대면서 경찰측이나 군정당국에 반박하였으나

 

ㄴ.김익렬 연대장은?  오히려 빨갱이 자손이라는 누명만을 뒤집어 쓰게 되고 육지로 전출되고 만다.

 

12.이후 경찰과 군당국의 초토화 작전이 전 제주도에 전개되면서 수많은 어린이,노인을 포함한 부녀자들의 희생도 많아 지면서 약 2만5천명에서 3만명 안팎의 희생자들을 낳게 된다.

 

13.물론, 이 희생자들의 대부분은?

 

ㄱ. 양민, 즉 민간인이었고

 

ㄴ.어린이-노인-여성이 약 3분의 1이나 되는 참극이었다.

 

14.김익렬 당시 연대장이 말하는 4.3사건의 성격은?

 

ㄱ.미군정의 감독 부족과 정책 실책 즉 실정의 책임이

크다.

 

ㄴ.그로 인해서 제주도민과 경찰이 충돌한 사건이다.

 

ㄷ.그리하여, 관(미군정및 경찰및 공무원)의 극도의 압정을 견디다 못한 제주도민이 최후에 들고 일어난 민중 폭동이라고 봅니다.

 

15.제주도민의 불만을?

 

ㄱ.미군정 및 경찰의 수뇌부들의 일부 라도 진실로 제대로 파악해 보고

 

ㄴ.진압 직전 초기에 현명하게 대처했더라면?

극소수의 인명 피해로 단시일내에 충분히 해결 될 수도 있었을 사안을

 

ㄷ.우리 현대사에 있어서 우리 민족 자체 비극 중의 하나로 기록되는 참극이었다.

 

**************

 

에필로그!

 

1.그 당시 돌아가신 제주도민 들의 명복을 빕니다.

2.억울하게 돌아가신 그 분들의 원혼을 위로해 드려야 합니다.

3.아직도 살아계신 그들의 유가족들에게 아주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빨갱이 라는 누명을 벗겨 드려야 합니다.

 

4.물론, 노무현 정권 당시 국가가 제주도민 앞에 사죄의 뜻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고개 숙여 사죄한 바는 기억되는 바

 

5.그들의 원혼들을 위한 위령비 건립등은 제대로 되지 않은 듯한 상황이라고 봅니다.

 

6.부디,당시 실책을 범했던 미군정 당국자들과 한국 경찰 수뇌부 및 제주도 파견 군부대내의 빨갱이들 그리고 제주도민속에 섞여 있던 빨갱이 출신들은 진정 우리 민족의 이름으로 깊이 저세상에서 반성하고 참회하고 희생자들을 진심으로 위로하는 마음을 갖길 빌 따름입니다.

 

**************

 

당시 4.3 사건 즉 48년 4.3사건은?

한달 여 뒤에 있을 전국적인 5월10일의 선거 즉 5.10선거를 잘 치르게 하기 위한 미군정과 경찰의 뭔가의 제주도민을 희생양으로 한 선거 몰입의 한 방편이 아니었나 하는 의견을 제시하는 학자들도 다수 있는 듯합니다.

 

당시 해방정국에서 서울은 물론 전국 원근 각처에서 좌익과 우익 갈등 으로 정말 무고한 양민들이 얼마나 많을 희생을 치렀는 지 태평양 전쟁이후 패전한 일본이 분단이 안되고 한반도가 분단된 것이 정말 원통스러울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그 분단으로 45년이후 남한과 북한에서 그 얼마나 많은 사건과 사고로 점철되었는가?

소위 분단 정국 ,해방 정국에서 수많은 인재들이 희생당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농민들도 희생당하고

 

그러다 6.25전쟁으로 수백만명의 사상자를 낳고

1천만 이산 가족을 낳고 정말 일본의 분단을 왜 우리가 덤터기를 쓰며 우리 고유의 민족 원형이 변질되고 왜곡되고 지금까지 남과 북이 총질,대포질 하며 싸워야 하는가?

 

그럴 때마다 일본의 극 우익들은 쾌재를 부르고 있고

그런 일환책이 잊을 만하면 터지는 일본 우익들의 망언이 아니런가?

 

그런 사이코 패스 같은 극소수의 일본 우익들은 정말이지 물속에 수장시켜야 한다. 아니면 지진 쓰나미 속에 집어 쳐넣던지 해야지

전지전능하신 분은 뭐하시는 지 원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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