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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국왕 히로히토-아키히토 및 민족 고려대-최장집-강만길-일본 양심 와다 하루키 교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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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1,188회 작성일 2011-08-21 19:13

본문

 
 
 
 
 
@@제목: 일본 國王 히로히토 89년 사망!
 
 
1.히로히토 일본 왕이 쓰러진 것은 1988년 9월19일이다.
 
2.왕의 옥체에 '수술칼을 들이댈 수 있느냐?'의 논쟁 끝에
前例가 없었다는 수술이 행해졌다.
 
3.수술이후 몇달동안 일본인들은 매일같이 자기네 천황의 몸상태에 대한 보도를 예의주시하며 살았다.
 
***저는  천황이라 부르고 싶지 않지만 상황상
천황이라 불러주어야할 경우도 생김을 양해바랍니다.
 
4.토혈,하혈 같은 생소한 단어가 사람들의 일상용어속으로 들어오는 계기가 되었다. 
 
 이것은 '피를 토했다.'보다는 덜 불길하고 ,
 
의학용어인 hematemesis---위장관 출혈등을 의미함!---보다는 덜 의학적이고도 무척 애매모호한 말들이라고 일부사람들에게는 보였다.
 
5.언론은 죄다 최초의 이 옥체 吐血사태 이후 시시각각
노인의 체온과 맥박수 수혈량을 전했다.
 
6. 이 천황의 토혈사태의 의미는???
 
 1946년 1월에 점령군 최고 사령관으로서 천황의
 
생사여탈권을 한손에 거머쥔 더글라스 맥아더원수의
 
지시에 의한  폭탄선언
 
즉, 히로히토 천황이 스스로 말하길
 
 "나는 神이 아니고 人間입니다."
 
라고 했던 對국민방송의 대충격에 버금가는 제2의 인간선언이었다.
 
7.매일 나오는 천황의 용태보도는 일본인들 사이에
 
 自肅(자숙)이라는 말도 유행시켰다.
 
 방송광고에서 '날씨 좋습니다.'라는 가벼운 인사도 사라졌으며
 
 정당의 모금 캠페인 모임에서 술을 마시지 못하게 되었다.
 
8.일본 열도 원근 각처에서 예정되었던 가을 축제는 줄줄이 취소되었고,
 
결혼의 달이라 보는 11월에 결혼식을 올릴 수 없었다고 한다.
 
9.천황 히로히토가 해를 넘겨 1989년 1월7일 사망하였으니 이는 첫 토혈후
死境을 헤맨지 약 110일이 되는 날이었다.
 
10.그의 죽음이 예상보다 훨씬 지체되었기 때문에
 
 궁내청 等에서의 관련 장례 업무는 역사상 가장 잘 준비되었고
 연출은 당연 완벽에 가까웠다.
 
11.천황의 죽음 순간부터 장례식 연출까지의 40일동안
 
일본 관계 기관은 국가의 합헌성과 신비성,서양적 근대성과 동양적 전통을 정교하게 안무해내려고 부심하였다.
 
12.예상되었다시피 일본 NHK방송은 '폐하'의 업적을
 연대기적으로 재구성하였고
 
 새로 등극할 황태자--아키히토-에 대한 다큐멘타리를 만들었다.
 
13.패전후-일본놈들은 종전이라고 한다--40년의 번영을 부각시키면서--패전5년뒤의 한국동란이 일본 성장의 큰 기폭제가 되었음은 참 우리로서는 생각되는 바가 적지 않다고 본다-필자주
 
---왜정탄압시기 해외의 멕시코등지에서는 없는 돈을 아껴쓰면서 독립운동자금을 대었던 우리 민족(디아스포라)들은 내란소식에 고국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고 혼혈을 무릎쓰고 다수가 미루어 두었던 결혼을 하였다고 함!
 
-필자주!
 
일본은 전후40년의 번영을 크게 부각시키면서 그들이 말했던 대동아전쟁
 
이나 태평양전쟁 그 자체는 은근슬쩍 넘어가야만 했다.
 
14.천황이란 존재마저도 당시 세계 경제를 리드하는 한 축이라는 선진국 입장에서 단지 일본자본주의의 자산어었던 것이다.
 
***위의 내용의 대부분은 미군점령기 일본여성과 결혼한
 
2세로 태어났던 혼혈인이었던 
 
 노마 필드 라는 시카고대학의 교수가 썼다는
 
###죽어가는 천황의 나라에서###(1991년발행)
 
 나온  1988-89년 일본 사회의 풍경이었다고 합니다.
 
 
***히로히토의 치세 기간중 썼던 그 유명한
 
             소화(昭和)
 
즉, 문자 그대로 빛나는 평화라고 하던데 이 소화라는
원호(元號)는 그가 죽은 뒤에 그의 이름이 되었다.
 
***패전후 일본만 놓고 본다고 치면 빛나는 평화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히로히토의 치세는 언제 부터였던가???
 
정답은 1926년 12월부터였으니
 
수많은 일본 젊은이들을 죽음의 전장터로 몰아 목숨을 잃게 한 것은 물론
 
 남의 나라 즉 조선및 주변 국가를 침략하고 문화재를 노략질하고 그 식민
젊은이들을 데려다 전장의 총알받이로 사용하였고
 
탄광의 막장에서 폐병으로 죽게 만들었고
 
난징 대학살이나 731부대의 인간 모르모트(마루타)
실험과 중국 및 동남아 침략과 학살 또한 그의 치세 기간에 벌어진 일이니
 
어찌하여 맥아더 최고 사령관은 그의 목숨을 연명시켜주었단 말인가?
 
당연히 뉘른 베르크 전범재판처럼 그 천황도 동경전범 재판을 통해 의당 교수형에 처했어야 마땅하지 않았나?
 
물론 조선은 완전 통일을 보장해주고
 
일본 지역은 미소간에 6대4의 비율정도로 소련과 영국등과 함께 신탁통치를 적어도 5년간 했어야 하지 않았나???
 
우리로서는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한반도 조선이 두동강나고 거기에다가 동족 상잔의 비극적인 전쟁-내란이자 국제전-까지 벌어지게 되는 단초는 역시 극동아시아 사정을 잘 모르거나
간과하였던 미국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지 않은 가?
 
@@@ 일본의 0.1%의 지도층은 종전후 즉 패전후 지금까지 좋은 것들만 기억하고 나머지 99.9%의 일본인들은 그냥 그들하자는 대로 따라가는 판국이 아니고 뭔가???
 
@@@전에도 제가 언급하였지만
 
 일본 패전후의 일본놈들의 버르장머리는
 
 3년내에 모두 고쳐 놓았어야 하는 데 --
 
일본지도층놈들중   일부의 間斷없는 독도 망언과 기타 여러망언은 제가
 
 보기에는
 
점령군 최고 사령관-일본을 약 5년 6개월 통치한 최고 책임자- 
 
 
맥아더 장군
 
 
책임이 제일 크다고 보는 데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지요?
 
맥아더장군을 비롯한 미국 고위층의 태평양 정책과 소련과의 스파이 전쟁에서 한 수 밀린 것 때문에
 
우리 조선 민족만 단지 약소 국가라는 것 하나때문에 
그 엄청난 시련과 광복이후에도 이승만 정권의 조급성 때문에 다시 친일세력이나 부일세력들이 재등장하여
 
우리 민족의 정체성에 심각한 상흔을 남기고  친일파로 분류되는 박정희 정권 18년과 그 아류격인 전두환 정권의 7년여 그리고 그 아류의 아류라고 해도 무방한 노태우정권의 5년등의 세월속에
 
다행히 경제 급속 성장으로 박정희가 경제 성장의 영웅으로 아직도 이의를 달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고
 
심지어는 민족(?) 고려대학의 다수의 학생들이 복제하고 싶은 인간 제 1위를 박정희로 뽑은 적도-아마도 10년前쯤- 있어
 
제가 고려대학의 양심있는 교수들중
 
최장집 교수나 강만길 교수와 함께하는 다수의 토론회에서의
 
 面前에서 이 점을 질타한 적도 있었음을 참고로 알려드립니다.
 
이에 그 교수들은 궁색하게 응답하길:
 
"이게 다 우리 교수들 책임입니다." 라고 실토한 것도
 
저 로서는  잊기 어려운 마음 아픈 순간이었다고 봅니다.
 
 
@@故 히로히토 일왕의      아들 아키히토  現국왕!
 
 
1.아키히토(明仁) 국왕도 세월이 흘러 2011년 현재 78세
이며(1933년생임) 2002년 전립선암이 발견돼 제거수술을 받은 적이 있으며 오랜동안 크고 작은 질병에 시달려 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방일시 아키히토 국왕을 만나 악수하면서 그 큰키임에도 불구하고
 
 90도 각도의 인사를 하는 장면이 크게 보도되어 일본 열도의 국민들은
 
환호작약하였겠지만
 
미국  뜻있는 시민은 물론, 특히 저를 포함한 한국 및 태평양전쟁 피해 국가 국민들의 마음을 언짢게 하였으리라 봅니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단한번의 오버액션으로 일본 1억2천만의 환호를 받으리라 보았으며 당면 과제도 손쉽게 해결되리라 순간 오판으로 그런 행동이 나왔으리라 보는 데
 
이웃 국가들의 여러 정황을 고려했다면 오바마의 그런 짓은 나와서는 안될 경거망동이 아닌가 사료됩니다.--필자주
 
물론 우리 이명박 대통령도 1년여전 방일시 일본 국왕에게 인사할 때 아키히토국왕이 고개숙인 것은 약 5도경사이었는 데
 
이대통령은 약 15도이상 기울어진 인사를 하여 구설수에 오른 바도 있어 저도
 기분이 매우 언짢았던 기억이 납니다.
 
 
 
3.1989년1월7일에 즉위한 아들 아키히토
 
아키히토는 56세에 왕위에 오르게 되었고
 
즉위 3년후인 92년 일본 우파세력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난징대학살의 피해국 중국을 방문하여 유감표명을 한 바 있고
 
93년에는 전쟁피해지역인 오키나와를 방문한 바 있고
 
패전 50주년인 95년에는 원자폭탄 피해지역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방문한 바 있으며
 
그 10년뒤인 2005년에는 해외 피해지역인 미국령
 사이판을 방문하여 일본외무성의 극구반대에도 불구하고  아키히토국왕은
 
그 사이판섬의 한국인위령탑에도 조문한 바 있습니다.-당시 일본 외무성 및 궁내청 및 유관기관에서는 난리법석이었다고 합니다.
 
4.아키히토 국왕은 이웃국가이며 전쟁피해국인 우리 한국을 방문하길 강하게 원하고 있으나
 
일본 정치계에서는 국왕방한 극한 반대데모등으로 인한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릴 것을 우려하여 방한을 반대하고 있고
 
김구선생의 손자이자 국가보훈처장인 김양님은?
안중근의사에 대한 기록과 유해발굴자료를 내놓치 않으면 방한 결사반대 의사를 표명한 바도 있어
 
우리의 수치스런  경술국치이자 한일강제병합 100주년이 되는
 
정말 과거를 반추하고 미래를 깊게 성찰해야 할 
 
 2010년이 허망하게 지나가고 -일본 지도층놈들 정말 나쁜 놈들이다.
 
정말 일본측의 사려깊은 반성과 사죄와 한국측의 용서
 
가 없게 되는 100주년이 그냥 의미조차 없이 지나갔다.
 
일본의 양심있는 한반도 전문가인 와다하루키 님의
 
말대로 방한시 국왕은 고종및 명성황후 묘에 참배하고
순종 묘에도 참배하는 일정을 더 늙기 전에 잡아야 할 것이다.
 
 
 
 
 
 ---특히 일본 국왕의 강제병합 100주년에 걸맞는 사죄 발언이 우리 한국인의 마음을 움직여 주지 않는 이상에는 대통령 방일은 웃음 거리가 될 수도 있음을 참고해야 합니다.-필자주!
 
하고 싶은 얘기는 많으나 시간관계상 후일을 도모하여야 겠으며
 
일본 일부 우익의 발호를 막는 일본 시민 단체의 활성화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며 끊임없이 반복되는 일본놈들의 망언--5년전인가 우리의 뜻깊은
3.1절 직전의 어느 날  주한 일본 대사가 독도는 일본 땅이다 라고 할 정도
 
의 사이코 패스 같은 놈이 지속적으로 나오지 않도록 한일 양심 세력들이
 
더욱 힘을 합하여 대처해 나가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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