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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쏘공 作家 趙世熙님이 현 정권에 주는 죽비 소리는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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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2,191회 작성일 2011-07-08 20:20

본문

 
 
 
 
 
@@제목: 아름다운 청년-난쏘공-조세희(趙世熙)!
 
 
1.3년만의 침묵끝에 다사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조세희 作家는?
 
공식 석상에 섰다.
 
2.2011년7월1일 서울 마포구 마포아트센터에서 열린
 
인권연대 12주년 창립기념식에 참석해 약 40여 분 동안 강연을 진행했다.
 
'난쏘공' 출판 30주년 행사 이후 첫 공식 자리였다.
 
 
3.이날 사회를 맡은 안수찬 <한겨레> 기자는?
 
조세희 작가를 두고 "35년 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나에게 글을 쓰는 것에 귀감이 되고 시대의 귀감을 보여주는 작가"라며
 
"우리 시대의 정직한 교과서를 썼고 힘 있는 문학적 성취를 이뤘다"고 소개했다.

4.안타깝게도 폐기종 등 여러 病을 앓고 있는 조세희 작가는?
 
 이날 연단에 서는 것조차 힘에 겨워보였다.
 
5.미리 준비종이를 든 손은 시종 덜덜 떨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정신은 여전히 35년 전 '난쏘공'을 쓸 때와 똑같았다.
 
시대가 바뀌지 않는 것에 좌절해 냉소주의자가 되지 말라는 것.
 
 


 
6.그는 "현재 한국 사회는 엉망진창"이라며 "현재의 문제를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7.조 작가는 "악을 저지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으면 그에 대한 책임을 같이 나눠 가져야 한다"며 "현실을 비관하거나 냉소하지 말고 분노하라"고 당부했다.


@@@ 아래 그가 연단에서 말한 내용을 정리해서 싣는다.
 


 
▲ 조세희 작가. ⓒ프레시안(여정민)

 
 
A.朴正熙, 아주 묘한 사람이다

ㄱ.내가 아프다. 요즘이 아니라 정확히 말하면 2005년 11월 15일부터다.
 
왜 그런가 하면 현재 200여 개의 국가 중에서 대한민국에 태어나 여러 가지 제한조건 속에서 무거운 짐을 지고 살다가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에 몇 마디를 국가에 전하기 위해 여의도올라왔다.

그러다 이 국가를 지탱하게 하는 큰 힘 중에 하나인
경찰의 진압 작전에 휘말려 두 분이 돌아가신 날, 나 역시 다쳤다. 그 때부터 아프다.
 
(2005년 11월 15일, 서울 여의도에서 전국농민대회에 참여한
 
농민 두 명이 경찰진압과정에서 머리를 맞아 사망했다.)

 
ㄴ.몇 군데를 크게 다쳤다. 5.18 때 이 땅에 태어났기에 겪은 가슴 아픈 일 다음으로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날이었다. 그때부터 밖을 나가지 못했다. 여러 해가 지났지만 병원출퇴근하는 기분으로 다니고 있다.
 
ㄷ.여기에 젊은 분들이 와 있다. 여러분과 달리 난 한국의 농경사회에서 태어났다. 거기서 태어나 박정희라는 아주 묘한 인간을 만났다.
 
ㄹ.여러분이 어떻게 배웠는지 몰라도 난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라 배웠다. 그 치하에서 자랐기에 잘 안다. 전두환, 노태우에 대해서도 잘 안다. 동족을 학살하고 피 흘리게 한, 가장 나쁜 일을 한 사람이다. 그 사람과 악수를 해서 대통령이 된 김영삼 시대도 살아서 김영삼을 잘 안다.

 
B.한국의 미래는 엉망진창, 왜?

ㄱ.말이 샜는데, 어쨌든 박정희 시대에 우리는 몇 백 년 동안의 일을 단숨에 이뤘다. 박정희가 했다고 한다.
 
도로도, 전기도 다 박정희가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박정희가 그렇게 부자집에서 태어나서 한 나라를 다 먹여 살렸는지 몰랐다.(웃음) 박정희는 가난한 농민의 작은 집에서 태어났다.

ㄴ.난쏘공을 한 권 써놓고 가만히 있었다.
 
아이들이 자라면 (박정희가 모든 것을 만들었다는) 그런 생각이 달라지리라 생각했는데 자꾸 엉뚱한 상황으로 나가더라. 박정희는 늘 우리가 선진국으로 될 거라 했다. 늘 발전한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선진국인가.

ㄷ.노태우 때, 전두환 때도 마찬가지다.
 
몇 년 뒤에 우리는 전 세계에서 가장 선두에 선 뛰어난 국가가 되겠다. 모든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배우겠다. 그런 허깨비 같은 소리를 해댔다.

ㄹ.그러나 우리는 지금 아주 후한 점수를 줘서 2.5세계에 도달해 살고 있다.
 
국민총생산은 여전히 2만 달러를 넘어가지 못했다. 아시아에서 그렇게 열심히 한다고 '으쌰으쌰' 하더니 어떻게 됐나. 후하게 쳐줘서 2.5세대에 와 있다.

ㅁ.근데 지금 우리의 대통령도 똑같이 늘 이상한 소리를 한다.
 
이명박은 박정희처럼 우리에게 잘 살게 하겠다고 하지만 한국의 미래는 내가 볼 때는 답답하다. 엉망진창이다.
 
한 가지 분명한 이유는 서양인들이 500~600년에 걸린 것들을 단숨에 해치워버리기 때문이다.

ㅂ.이명박은 땅 파는 게 뭐라고 왜
토건 사업을 하는지 모르겠다. 서양에서는 500~600년에 걸쳐 해온 것을 이 뛰어난 인간들은 단숨에 하려고 한다.

ㅅ.하지만 여러분은 이런 사회를 보면서 비관주의자가 되어선 안 된다.
 
나로 충분하다. 냉소주의자가 되어도 안 된다. 그것은 정치가들이 제일 좋아한다. 나쁜 정치인들, 무식한 정치인들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다. 스무살 청년들이 엉망진창이 되어선 안 된다.

ㅇ.학자들도 엉터리다.
 
4대강이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한다. 우린 이명박 대통령이 뭘 생각하는지 다 안다. 하지만 우리는 무식에게 끌려 다니고 한 가지 밖에 모르는 사람에게 끌려 다니고 있다.
 
이명박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외국에도 안 나가봤는지 궁금하다. 건물 하나가 몇 백 년이 지나도 그대로 있고 다리 하나가 몇 백 년 동안 그대로 있는 걸 못 봤나.

 
C.여러분은 비겁자의 자식이다

ㄱ.요즘 유행이 '분노하라'다.
 
하지만 난 힘이 없어 분노하지 못한다. 어제 밤에도 제대로 잠을 못 잤다. 이 병은 완쾌되지 못하는 병이다. 언제 나를 쓰러뜨릴지 모른다. 힘이 하나도 없어 분노할 수가 없다. 분노에는 힘이 필요하다. 그리고 공부가 필요하다.

ㄴ.하지만 몰라서 그런지 힘이 없어서 그런지 우리는 엉망진창인 인간을 그대로 놔둔다. 전두환, 노태우. 이 둘은 지금도 편하게 살고 있다. 200여 개의 나라에서 이런 일이 또 있겠는가.
 
ㄷ.독일의 철학자 칼 야스퍼스 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는 연대감이 존재하기 때문에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잘못된 것은 공동의 책임이라고 했다. 악을 저지하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으면 그것들에 대한 책임을 같이 나눠지게 된다는 것이다.
 
ㄹ.여러분이 미래의 주인이고 희망이고 세계다. 역사에 우리가 참여해 같이 해야 한다. 그렇기에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ㅁ.하지만
 
나를 포함한 기성세대는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
혁명도 이루지 못했고 범죄자가 감옥으로 가지도 않았다.
되레 범죄자들은 피땀 흘려 낸 세금으로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
 
내가 일을 제대로 못했다.
독재에 굴복을 받아내지도 못했다.
그래서 내가 여러분에게 부탁한다.
 
여러분은 여기서 끝내면 안 된다.
아버지 세대가 뭘 못했는지 알아야 한다.
여러분은 떳떳하다고 큰 소리 치면 안 된다.

여러분은 비겁자의 자식이다.
제3세계 아버지의 자식이다.
그게 억울한가.
그럼 달라지자.
청와대가 달라지지 않으면 청와대로 갑시다. 이런 말을 하겠다.
나 자신에게도 욕을 하고. 냉소주의자가 되지 마라.
 
나도 언제 죽을지 몰라도 냉소주의자가 되진 않겠다.
 
강연요지 끝!
 
******
 
 
소설가: 조세희 [趙世熙, 1942.8.20~]
icon_sum.gif요약
소설가. 대표작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통하여 1970년대 한국사회의 최대 과제였던
 
빈부와 노사의 대립을 극적으로 제시하고 연작 형식으로 소설 양식의 확대를 가능하게 하면서 이야기 형식의 긴장과 이완을 동시에 추구하였다.
본명 조세희
국적 한국
활동분야 문학
출생지 경기 가평
주요수상 제13회 동인문학상
주요작품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1978)
icon_con.gif조세희는 누구?
 
ㄱ.1942년 8월 20일 경기도 가평군에서 태어났다.
ㄴ.1963년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1965년 경희대학교 국문과 졸업
ㄷ.. 1979년 난장이 연작으로 제13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ㄹ.1965년 《경향신문신춘문예에 소설 《돛대 없는 장선()》이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하였다.

ㅁ.등단한 것은 1960년대 중반의 일이지만,
 
    문단의 각광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75년 난장이 연작의 첫 작품인 《칼날》을 발표하면서부터이다.
 
ㅂ.1976년 난장이 연작 《뫼비우스의 띠》《우주여행》《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등을 발표하였으며, 1977년 역시 난장이 연작 《육교 위에서》《궤도회전》《은강 노동가족의 생계비》《잘못은 신에게도 있다》 등을 발표하였다.

ㅅ.1978년 《클라인씨의 병》《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에필로그》를 이전의 난장이 연작과 함께 묶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라는 작품집을 출간하여,
 
  문학적 성취와 상업적 성공을 함께 이룬 문제작으로 주목받았다.

ㅇ.그의 난장이 연작은?
 
  1970년대 한국사회의 모순에 정면으로 접근하고 있다.
 
  여기에서 난장이는?
 
  정상인과 화해하며 살 수 없는 대립적 존재로 등장하고 있으며, 1970년대 한국사회의 최대 과제였던 빈부와 노사의 대립을 극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ㅈ.이러한 소설적 접근을 통해 한국의 1970년대가 이 두 대립항 의 화해를 가능케 할 만큼의 성숙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ㅊ.그는 가장 현실적인 문제를 그려내고 있는 난장이 연작에 환상적 기법을
   도입함으로써,
 
    계급적인 대립과 갈등이 마치 비논리의 세계나 동화의 세계에 존재하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그 결과 현실의 냉혹함은 더욱 강조된다.

ㅋ.연작 형식은 소설 양식의 확대를 가능하게 하면서 이야기 형식의 긴장과 이완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다.
 
    이같은 형식이 난장이 연작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1970년대 소설이 종래의 단편 형식으로는 현실에 적절히 대응할 수는 없으며
   그렇다고 장편 양식으로 현실을 개괄할 수 있을 만큼의 성숙에는 이르지 못했다
   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 볼 수 있는 주제와 양식과 기법에 대한 도전과 그 성과는?
 
   1970년대 문학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ㅌ.그밖의 작품으로는?
 
  《오늘 쓰러진 네모》(1979),
  《긴 팽이모자》(1979),
  《503호 남자의 희망공장》(1979),
  《시간여행》(1983),
  《하얀 저고리》(1990)를 비롯하여,
 
   소설집으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1978), 《시간여행》과
   사진산문집 《침묵의 뿌리》(1986), 희곡 《문은 하나》(1966)가 있다. 
 
 
 

1970년대 후반 이후 「오늘 쓰러진 네모」(1979), 「긴 팽이모자」(1979), 「503호 남자의 희망공장」(1979), 「시간여행」(1983), 「1979년 저녁밥」(1984) 등을 발표하고 있다.

 

소설집으로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1978), 『시간여행』(1983),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1995) 등을 간행하였다.

 

1979년에 난장이 연작으로 제13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끝까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를 드리며 조세희 작가의 쾌유를 빕니다.

 

조세희 작가의 발언중 일부 내용은 필자의 견해와 조금은 다를 수도 있습니다.

 

 

*****즉각 생각나는 여러 단상들--펜가는 대로 써본것임!

 

 

1.난쏘공은 매년 꾸준히 3만부이상 팔리는 소위 '스테디 셀러'의 대표적인 소설이라고 합니다.

2.지금까지 200만부 이상 팔렸으며 앞으로도 언젠가 300만부도 상회하리라 봅니다.

3.급속한 경제 발전과 수출 드라이브 속에 그리고 경제 성장의 열매를 골고루 분배가 독재 정권에 의해 제대로 안되는 사이

 

1970년11월13일의 청계천 노동자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분신 사건이후 수많은 악덕 기업주들의 횡포와 노동 착취 사건들이 이어졌고 특히 Y.H. 여직공들의 신민당 농성 사건과 김경숙씨 사망사건 동일방직에서의 노동자 탄압및 그들에게의 오물 투척사건 사북탄광 사건등

 

수많은 노동 탄압 관련 사건을 알다 보면?  정말 가슴아픈 일이 너무 많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4.그리고, 한국 사회의 최하위권의 생활보호대상자 약 180만명안팎은?

그래도 정부및 지방 정부의 미흡하나마 호구지책의 일부를 보조해주고는 있으나

 

5.그 차상위권 450만명 안팎은?

사회 안전망이 허술하여 그냥 무한 경쟁 사회에 내동댕이 쳐지고 있는 듯하며 이들이

물심양면의 고통을 이기지 못해 1년에 1만2천명 안팎의 자살 적지않은 범죄에 연루되는 안타까운 현실에 가슴이 아픕니다.

 

 

6.그리고, 서울양천구청의 어느 하급 공무원이 해당 구청내 생활빈곤 계층에 돌아갈

수십억의 돈을 횡령하여 사회적 큰 물의를 빚은 바 있고 본인은 외제차를 타고 다니며

처갓집에서 해 준 것이라고 둘러대는 등 소위 람보르기니-고급외제차-형 공무원 범죄자들이 그 직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한국 공무원 사회를 어지럽히고 있으며 다수의 선량한 공무원의 마음을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정부출연기관 정부투자기관의 도덕적 해이는 정말 어처구니없습니다. 말이 안나옵니다.

국가청렴도 세계 통계에서도 40위권에서 지난 10여년간 벗어난 적이 거의 없을 정도라고 저는 봅니다.

 

7.난쏘공에서 암시하듯 지난 30여년간의 소위 독재정권의 비호아래 산업화 세력으로 크게 성장한 사회 부유층은?

 

빌 게이츠 나 워렌 버핏 처럼 소위된 계층에 그동안 벌어 놓은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는 마음을 우리 한국사회의 부유층에게  기부 분위기 조성과 아울러 좀더 베풀길 기원해 봅니다.

 

8.현재 중국의 소위 농민공-농민이 도회지에 몰려와 하급 노동자 계층 형성-의 불만이 보여주듯 우리 한국 사회도 그러한 70년대의 모습이 아직도 원근 각처에 산재해 있는 데

 

이를 공평하고 합리적인 사회 복지를 통해 점진적인 치유의 정책이 지속되길 다시금 기원해 봅니다.

 

9.기업인의 양심적인 기업 경영과 축적된 부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사회 분열을 봉합하는 한 방법임을 깨닫고 이를 실천에 옮기는 한국 사회가 되면?

 

필시 한국은 21세기 작지만 강한 나라 즉 강소국의 대표적인 국가가 되리라 봅니다.

 

 

그러나, 다음 내용 참조바랍니다. 위의 내용과 다소 거리감이 있더라도 양해 바랍니다.

 

@@ 조금 잘 사는 주변 사람들은 자식들을 거의 해외에 보내 1인당 연간 5,000만원 이상 쓰는 것을 아깝지 않게 다들 그러는 데 나만 외화 절약 애국 행위 한다고 누가 표창주는 것도 아닌 데 공연한 소릴 하질 말아라 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에 살고 있는 듯합니다.
 
@@해외 여행도 웬만한 사람들은 그냥 무분별하게 남들이 중산층이면 다가는 데 나만 빠지면 마치 그런 부류에서 밀려나는 인상으로 여름 한 철이면 모든 항공사의 티켓이 바닥이 납니다.
물론, 자식의 장래를 위해 본인의 인생 즐기기의 방편으로 한다는 데 말릴 이유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질없는 짓일 것이다.
 
다만, 이런 것들이 사회 지도층부터 사회 부유층 중산층까지 그들의 무분별한 골프 여행까지 합하면 정말 우리네 곳간은 순식간에 텅비고 말것이다.
속칭 개나 소나 다한다는 데 나만 독불 장군인양 애국자인양 나서 보았자
비아냥과 조롱의 대상이 되기 십상인 데 이러다가 정말 큰 일나야 정신 차리지 않겠나 싶다.
 
I.M.F위기 직전에도 수많은 징조가 우리 경제계에 나타났으나 아무도 그런 것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경제학자,
경제전문가, 경제인들이 없었다는 것은? 단지 한 번 뿐이 아니라 97년의 그런 국제적 망신의 위기가 또 올 개연성이
농후함을 부산저축은행의 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해이 상태를 보면 능히 짐작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런 사태가 만일 또 온다면?  일반 서민들만 죽어납니다 정말 큰일 나야 정신 차릴지 심히 걱정이 되는 구석이 한 두 군데가 아닌듯 합니다.
 
 
오죽 했으면 소설가 난쏘공으로 유명한 조세희 작가가 그 아픈 몸을 이끌고 강단에 서서 한국은 엉망진창이란 망발(?)을 내 뱉어야만 했는 지
 
곰곰히 지도층,부유층,경제인,공무원 등 모두 반성을 깊이
해야만 할 것입니다.
 
 
 

 

10.다시금 조세희 작가의 건강 회복을 충심으로 기원하며 한국 사회가 난쏘공의 음침한 그늘이 걷어지길 희망하면서 이만 줄입니다.

 

생각나는 대로 글을 올렸으므로 다소 중복된 감을 지울 수 없는 것을 양해 바랍니다.

 

****

 

 

그리고, 위의 글 내용중 사실과 다르거나 이견이 있으신 분은 필히 댓글 올려주시길 간곡히 청하며  댓글에 대한 첨삭보완을 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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