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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스타들중 悲運에 요절한 선수들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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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2,483회 작성일 2011-08-01 02:58

본문

 
 
 

@@제목: 非運-不運에 간 요절 야구 스타

 

들은 누구?

 

 

86년 25세에 떠난 ob 김영신-프로야구
 
첫 영구 결번
 
 
이라부 死亡으로 본 요절한 야구스타

  •  
  • alba01201107292310330.jpg

 

1.광속구 투수로    명성을 날렸던 이라부

 

 

히데키(42)

 

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 됐다.

2.ap통신은 29일(한국시간) "이라부가 미국 로스앤젤레스 인근의 란초 팔로스 베르데스 자택에서 사망했다"면서

 

"아직 구체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자살이 명백해 보인다"

 

고 보도했다.

 

3.이라부는 부인과 이혼한 뒤  실의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4.1987년 일본 프로야구 지바 롯데에 입단한 이라부는?

 

당시 일본 선수로는 가장 빠른 158km의 공을 던져 화제를 모았다.

 

5.강속구를 앞세워 97년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에 입단한

 

이라부는?

 

3시즌 동안 활약한 뒤

2000년 몬트리올,

2002년 텍사스로 둥지를 옮기는 등

 

메이저리그에서 34승 35패 16세이브, 평균자책점 5.15를 기록했다.

6.이라부는?

 

 2003년 일본 프로야구 한신으로 돌아와

2005년 무릎 부상으로 은퇴했다.

 

일본 통산 성적은 72승 69패 11세이브, 평균자책점 3.55.

7.이라부는?

 

선수 생활을 접은 뒤 미국에서 우동가게를 열기도 했지만

 

야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8.2009년 6월 독립리그로 복귀했다가

 

다시 유니폼을 벗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9.이라부처럼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비운의 야구스타들은 많다.

 

10.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타격왕 루 게릭은?

 

 38살의 젊은 나이로 요절했다.

1923년부터 16년간 양키스에서 1루수로 뛴 루 게릭은

2,130경기에 연속 출전하면서

통산 타율 3할4푼1리에 2,721안타, 493홈런(만루홈런 23개)을 기록했다.

 

11.루 게릭은 불치병인 근위축성 측상경화증(속칭 루게릭병이라고 함)에 걸려 38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세계적인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도?
젊은 시절 조정선수로 활약할 만큼 아주 건강한 외모였으나
루게릭병에 걸려 사지를 거의 못쓰는 장애인이 되었으나
후일 이를 극복하고 아인쉬타인 박사 이후 최고의 천체물리학자로서
그 명성을 드날린 바 있으며 아직도 생존해 있음!



12.작년에는 메이저리그 올스타 출신인 호세 리마

 

심장마비로 사망해 야구팬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13.1972년생인 호세 리마는?

 

2008년에는 kia에서 활약해 국내 야구팬들에게 친숙한 이름이다.

 

리마는 99년 메이저리그에서 21승을 거두는 등

통산 89승 102패 평균자책점 5.26을 올렸다.

14.국내에도 비운의 야구스타들이 적지 않다.

고교와 대학시절부터 150km가 넘는 강속구를 던진 부산고교 출신의

 

박동희는?

 

2007년 부산 광안리에서 교통사고로 세상을 등졌다.

**비오는 날 음식점 장사 마감후 귀가 운전중 갑자기 튀어나온 보행자

를 피하려다 전봇대를 들이받아 현장에서 사망했다고 함

 

 

메이저리그 토론토의 입단 제의를 뿌리치고

 

90년 롯데에 입단한 박동희는?

 

92년에는 한국시리즈에서 2승1세이브로 mvp를 차지하며

야구 인생에서 최고의 순간을 만끽하기도 했다.

15.이 밖에도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우승 주역인 투수 겸 타자

 

김정수(당시 mbc 청룡)는 1986년 27살의 젊은 나이에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예비군 훈련 다녀오다 내리막길 질주하면서

신호에 딱 걸린 버스에 승용차가 치어 그 자리에서 사망했던 것으로

저는 기억합니다.

16.해태 투수 김상진은?

 

 99년 22살의 아주 젊은나이에  위암으로 사망했고,

 

17.ob 포수 김영신(당시 25세)은?

 

 1986년 익사 사고로 숨졌다.

 

18.ob는 김영신을 애도하기 위해?

 

그의 등번호 54번을 프로야구 사상 첫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

 

다음은 2007년 6월14일 경 옛 야구 스타 사이드암 투수였던

 

선린상고 출신의 이길환 선수의 癌으로 인한

 

죽음에 충격을 받아 올린 글이 있는 데 위의 글과 함께 야구팬들은

 

참고로 읽어보시길 권유해 봅니다.

 

 

 

@@@제목: 비운(悲運)에 일찍 타계한 야구 스타들!

1. 70년대 중,후반 당시 아마야구의 스타중의 하나였던

 

윤몽룡 선수는?

 

대전 서대전초등학교 출신으로 고교는 서울 중앙고교를 다녔는 데 당시 투수로서 명성을 날렸고--특히 72년의 고교 메이저 대회인 청룡기 우승과 봉황대기 아쉬운 준우승을 차지한 에이스---당시 포수로는 과거의 대스타 포수였던 김영조님의 아들 김승수가 대형포수로서 둘이 중앙고교 배터리를 하고 있었다.--

이 윤몽룡 선수는 아마도 건국대 선수를 거쳐 대학시절부터 국가대표로 뛰었고 후일 광주상고 감독등을 역임하였는 데  그의 나이 32살에 정말 안타깝게도 백혈병으로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다. 아직도 그의 투수로서의

와인드 업 모션이 생생히 기억납니다.

2.그리고, 1982년 당시 서울에서 개최된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서 우리 한국이 한대화의 3점 홈런,김재박의 귀신 같은 개구리 점프 번트,등등으로 영예의 우승을 일본을 누르고 차지할 때의

 

주전 포수였던 심재원선수도

 

후일 프로팀 코치를 하다가 94년도 즈음에 폐암으로 세상을 하직하였다.

3.이길환선수: 선린상고 출신으로 프로야구 초창기 사이드 암 투수로 명성을 날렸던 이길환은?

 

 2007년 6월12일 지병인 췌장암으로 타계하였다. 1959년생으로 당시 48세의 나이여서 창창한 나이에 세상을 떠나게 되어 참 아쉽다.

 

 

 특히, 1982년 3월27일 당시 서울 운동장 야구장였고 한동안 동대문야구장을 개명되었던 그 운동장에서 프로야구 원년 개막전 투수로 나서 당시 삼성라이온스의 강타자이자 1번타자였던 천보성선수를 상대로 제1구를 던져 프로야구의 출범을 알리는 초구의 주인공이었다.

 

 당시 주심-치프 엄파이어- -chief  umpire--는 김광철심판이었다.

4元年1982년도- mbc 청룡의 포수였던 김용운도?

 

 2005년에 안타깝게도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하였다.

 

김용운선수는 위의 이길환투수와 함께 배터리를 이루었던 명포수 출신이다.

 

3년동안 활약한 후 85년에 롯데자이언츠로 이적해 1990년을 끝으로 선수생활을 마감한 바 있다.

 

이후 마산에 살며 골프에 입문,레슨프로로서 변신해 새로운 생활을 모색하였는 데

김용운은?

 

2005년 12월 대전에서 야구 명문 한밭중 동기들의 망년회에 참석했다가 집에 오던 길에 쿄통사고를 당해 숨졌다.

 

특히 아쉬운 것은 그날 저녁 모임 직후의 새벽에 골프레슨이 있다고 술을 입에도 대지 않고 있다가

 

밤 12시경 마산으로 향했는 데 새벽1시경 경부고속도로 구미 부근에서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더욱 안타까운 점은?

 

당시 앞차와 가벼운 접촉 사고가 있어 도로에 자신이 승용차를 세우고

 

차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마침 뒤에서 오던 관광버스가 이를 발견하지 못하고 들이받으면서 그 자리에서 숨진 케이스가 되고 말았다.

5.최초의 교통사고 사망 케이스는?

 

아쉽게도 mbc 청룡의 김정수였다. 프로 입단후 외야수로 나서며 일발 장타를 보여줬던 그는 가끔 투수로 마운드에 오를 정도로 어깨가 강했으며 그라운드의 개그맨 소릴 들을 정도로 입담도 좋았다고 한다.

1986년 11월 팀동료인 중앙고 출신의 안언학, 신일고교 출신의

 

김경표선수와 함께 병역 특례 보충역 훈련을 마치고 

 

저 한준구의 기억으로는

 

헌,인능 근처의 큰 길로 나오는 샛길에서 차로 좌회전 신호을 완전히 받고

즉시 출발하기는 하였는 데

 

당시 서울 을지로 6가에서 성남가는 66번 버스인지 어떤지 고갯 마루에서 내려오던 탄력으로 아마도 1초나 2초 사이로 그대로 내리막길에서의 충돌로 김정수는 사망하고 나머지 선수들은 구사일생격으로 살아났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이 생존한 2명의 선수들은 이 교통사고 후유증 이후 별다른 활약을 벌이지도 못하고 은퇴하게 된 것을 저 한준구는 알고 있습니다.

6. 위에서 언급한 김경표 선수---고교 시절 촉망받던 유격수였는 데

 

당시 김재박이 명유격수로서 있었기에 등용기회는 적었고 ---는

 

위의 김정수 교통사고 사망시 김경표 선수는 기적적으로

 

안언학선수와 함께 생존하였는 데 약 3년뒤 김경표는 또 다른 교통사고로 타계하고 말았다.

 

7.김대현선수--1986년에 해태타이거스에 입단한 유망 투수였는 데

 

1988년 8월 승용차편으로 광주에서 서울로 이동하던 중 천안휴게소에 들어서면서 운전 미숙으로 인해 화물트럭을 들이받고 현장에서 사망하였는 데

조수석에 동석했던 호타준족의 명타자 이순철은?

 

다행히 의자를 뒤로 젖히고 안전벨트를 매고 있어서 목숨을 건졌고 이후 스타선수로 맹활약하여 해태의 코리언시리즈 여러 차례 우승의 최고 전성기의 핵심멤버가 된 바 있고 지금 해설위원등으로 맹활약하는 중이다.

8.큰 교통사고를 당해 죽을 뻔했던 야구 스타중에는?

 

그 유명한 홈런타자 김봉연 있었다  그는 군산상고 역전의 명수 당시 핵심 투수겸 4번타자로 김준환, 김일권등과 함께

 

1972년 황금사자기 부산고교와의 결승전에서

 

9회초까지 4대1로 패배 직전에 있다가 기적같은 5대4 역전승을 일구어 내

 

그후로도 군산상고는 역전승을 유독 많이 만들어내 소위 '역전의 명수'라는 아름다운 별칭을 갖게되었고

 

당시 군산상고야구팀 감독님은?

 

전 국가대표 출신의 명감독 최관수 감독이었다.

 

그리고 최고의 특급 후원자는 경성고무의 이용일 사장이었다고 기억됩니다.

김봉연은 연세대학에서도 4번타자로 맹활약하였고 아마도 프로 원년인가 두번째 해인가 홈런황을 차지한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런데 ,그는 선수생활 몇년하던중 큰 교통사고를 당해 다행이 목숨을 건졌는 데 그 사고 후유증으로 오랜동안 상처를 가리려고 콧수염을 기르고 다닌 것이 기억되고 그 이후 한참 지나

 

프로선수 틈틈이 공부를 아주 열심히 하여 그의 소망이던

교수자리를 얻어 지방의  극동대학교 교수로 맹활약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9.휘문고교 시절 3연타석 홈런의 주인공--그것도 공주고교의 에이스 박찬호 선수를 상대로---밑줄

 

즉, 1989년  휘문고 시절 봉황대기에서----저 한준구는 그당시를 기억하고 있고--- 4연타수 홈런도 기록한 바 있어 장래가 촉망되던

제2의 장훈 선수라고 기대했었는 데 

박정혁선수는?

 

엘지 2군에서 있다가 은퇴한 후 개인사업을 하다가 1999년 교통사고로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다. 

 

당시 휘문고에는 제2의 선동열로 손꼽히던 임선동 투수가 밤하늘 아래에서 강속구를 뽑내던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소위 92학번 중에는 조성민-임선동-손경수-박찬호-정민철 등 좋은 투수들이 유독 많이 있었는 데

신일고교의 강타자겸 에이스인 조성민선수는 고려대-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잠시 활약한 바 있고 5년연상의 그 유명한 봅탈렌트 최진실과의 결혼으로 세상을 떠들석 하게 한 바도 있었는 데  조성민은 재활공장 공장장이란 닉네임을 가진 바 있던 한화이글스의 김인식감독휘하에서 재활하다가 실패하여 지금은 서울 강남의 선릉 근처의 오피스텔에서 새로운 사업을 하고 있다는 데 일단 잘 되었으면 좋겠다. 그 이후 최진실과 최진영의 죽음으로 그는 아주 심적인 타격이 컸는 데 지금은 어떤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임선동선수는 고교 당시에는 정말 불같은 강속구로 제2의 선동열로 칭송이 자자하였으나 연세대 졸업후 프로가는 상황에서 매끄럽지 못한 여러 추문으로 한동안 이름이 잊혀지다가 현대 유니콘스에서 당시 김시진 투수 코치의 지도로 한 시즌 17승을 거둔 적이 있어 부활의 청신호라고 저 한준구도 여겼으나 세월의 흐름을 막지 못해 그 이후 그냥 사라지고 말았다.

임선동의 대학 졸업 당시 연고지 구단 엘지에서 한 2년 활약하다 인정을 받고 일본 프로에 진출하였더라도 아마도 10승 정도는 무난하였을 터인 데

중간 단계를 거치지 않으려 했던 부모와 본인의 선택은 다소 위험한 투기였다고 보며 결국 국내 팬들에게 강인한 인상을 주지 못한 것은 축구의 김종부와 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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