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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군인 장태완 장군의 보완 내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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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1,705회 작성일 2010-08-03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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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참 군인 장태완 장군 -보완내용은?

 

 

1. 1931년생---79세를 일기로 운명함

 

2.경북 칠곡 출생으로 대구상고,육군종합학교를 수료한

후 한국 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전쟁 일어난 해에 소위로 임관하여 수많은 죽음의 전장을 누빔

 

3.전두환-노태우 등의 육사 정규1기이자 11기들은

장태완 장군보다 장교 임관은 5년 정도 늦게 됨

 

4.장태완 소령이 광주보병학교 교관할 당시 육사 11기생들이 육사 졸업후 중위 계급으로 교육을 받아 장소령과 조우하는 첫 계기가 있었음!

 

5.장태완 전 수경사령관이 지난 1993년 집필한

 

 

'12.12쿠데타와 나'   라는 책에는  쿠데타 전후의

 

상황이 잘 나타나 있다.

 

 

6.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이후 부임한 직후 장태완 장군은 작전 참모를 시켜 파악을 해 본 결과는?

 

**중대장급 이상의 수경사 휘하 장교들은 거의 사조직인  '하나회' 장교였다고 한다.

 

7.하나회 장교들은 4년 마다 진급하도록 규정한 군 인사법을 무시하고

 

김계원 육군참모총장에게

 

압력을 행사해   '육군인사규정'을 새로 만들어

 

 '특별 진급'을 시킬 수 있도록 했습니다.

 

** 육참총장은 물론, 박정희의 최측근이던 박종규등에게도 손을 썼다는 후문입니다-필자주!

 

8.불법인지 초법적으로 2년 마다 진급시키는 바람에

장태완 장군이 하나회 핵심 전두환-노태우등 보다 장교 임관 5년 선배였으나

 

9.장태완 장군이 1971년 장군 진급한 지 2년 뒤인

73년 전육사11기 선두그룹인 전두환-손영길-최성택 등이 진급하게 되었고

 

10.장태완 장군이 그후 26사단장으로 나갔더니 전두환은 같은 소장으로 장태완장군보다 상관격인 보안사령관에 되었다 

 

장태완 장군은 그 당시에  대통령 및 그  최측근세력의  비호를 받은 私組織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았다고 한다.

 

11.장태완 장군이 비 하나회인 순수 야전 사령관 출신의 정승화 참모총장의 하나회 전두환 그룹 견제를 위한 목적으로

 

 김재규에 의한 박정희 시해 사건인 1979년10월26일 직후 약 3주 뒤인 1979년 11월16일 장태완 장군은 그 운명의 수도경비사령관에 임명되었다.

 

12.그리고는 부대 파악 채 한달도 되지 않아 운명의 12.12쿠데타가 벌어진다.

 

13.쿠데타 당일 저녁 전두환의 密命에 의해

수경사 장장군 휘하의 헌병단장 조홍 대령은

 

서울 연희동에 있는 요정으로 정병주 특전 사령관, 김진기 헌병감,장태완 수경사령관을 초대하여

 

조홍대령으로 하여금 쿠데타 완료 시점인 그날 저녁 8시 30분까지 요정에서 그들을 잡아놓게 된다.

 

14.또 한가지 놀란 것은?

 

그 술집 좌중에 배치되어 있는 여인들은  평범한 양장 차림에 화장도 그리 눈에 띄지 않게 하고 나이도 20대 초반으로 보였는 데 접대 여인들 같지가 않아 보였다고 한다.

 

15.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된 것은?

 

장태완 장군이 요정으로 들어갈 때 맞아 준 마담이란 여인은 전두환 장군이 가는 곳마다 따라 다닌 여자였다.

 

16.요정에서 연회가 시작된 지 10분만에 정승화 계엄사령관 공관에서 총격전이 벌어졌다는 보고를 받고는 즉시 장태완 장군은 수경사령부로 직행하였다.

 

17. 사령부로 가자마자 참모장 김기택준장으로 부터

수경사 휘하의 경복궁30단에 모인 쿠데타 모의 세력의 명단을 보고받고는 장장군은

 

"나는 여기까지 보고를 받는 동안 마치 태산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받고 당장 30경비단(단장 장세동 대령)으로 달려가 그들을 박멸하고 싶었다."

 

"나쁜 놈들!  정치 군인으로 안하무인격으로 놀아나더니 이제는 모반까지 해!"

 

18. 노재현 국방장관은?

 

ㄱ.육사 3기 출신으로 육참총장을 거쳐 국방부 장관에 오른 박정희가 총애하는 유능한(?) 장군이었으나

 

ㄴ.서울 한남동 소재의 정승화 육참총장 공관 총격 사건이후 그는 바로 가까이 살던 국방장관 공관 담을 넘어 국방부로 들어 갔으나 전두환을 따르는 반란군에 잡혀 이미 전두환 세력에 포섭된 상태가 되고 그 이후 장태완장군에게 명령 직속 상관으로서 통화를 하게 된다.

 

19.노재현 국방장관의 통화 내용은?

"야! 장태완!  넌 왜 자꾸 싸우려고만 하나?"

"말로 하란 말야!  피를 흘려서는 안돼!"

 

20.장태완 수경사령관의 통화 내용은?

"장관님! 저에게 무슨 병력이 있어야 지요?"

"언제 쳐들어 올지 모르니 자체 방어태세만 갖추고 있습니다."

"병력들이 다 저쪽으로 넘어가고 여기는 전투병력이 없습니다."

"장관님 지시대로 하겠습니다."

 

**이리하여, 국방장관의 명령이후

 

 결국 전두환 세력의 新군부세력에 의한 무장해제후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끌려간다.

 

그 당시 장태완 장군의 심경은 무엇?

 

"19세의 어린 나이로 6.25전쟁 발발로 조국이 누란의 위기에 처했을 때 오직 구국의 일념으로 군문에 투신하여

3년 한국전쟁 기간 동안 수많은 죽음의 사선을 넘고 넘어 오늘에 이르기 까지 파란만장했던 군생활을  명예롭기는 커녕 12.12군사반란 세력에 의해 반란 제압을 못한 불충의 죄인으로 30년 동안 몸담아왔던 군을 떠나야한다니 억장이 무너짐을 느꼈다."

 

21.불행은 여기서 끝난게 아니었다.

ㄱ.약 3개월 동안 서빙고 분실에 있다가 1980년3월에 나온 장태완 사령관은 약 6개월 동안 가택연금상태에 직면하게 된다.

ㄴ.장태완의 부친은 가택연금상태에 있던중 특히 부친께서 아들 장장군이 반란세력에 의해 끌려가는 장면을 텔레비젼을 보신 후 곡기를 끊고 막걸리만 드시다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ㄷ.1962년생-살아있다면 지금은 48살의 장년이 되었을 지도 모를--의 아들은 장성호는 부친이 이런 불행한 상태에서도 열심히 공부하여 서울대 자연대에 수석입학하는 등 수재로서 전도유망한 청년이 될 국가의 동량지재 감이었으나 

 

ㄹ.1982년 1월9일 아침에 학교(서울대)에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남기고 집을 나간 후 영원히 돌아오지 못했다.

ㅁ.장태완은 전두환과 육사 동기생인 당시 민정당 사무총장이던 권익현--73년 윤필용장군 모반사건 당시 제거된 바 있음-을 통해 수소문해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ㅂ.장태완의 아들은 경북 왜관읍의 조금 떨어진 낙동강 인근의 산 기슭에서 얼어죽은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12.12군사쿠데타를 진압하려던 장장군의 집안은 3대가 모두 비운을 당하게 된다.

 

ㅅ.장태완은 세월이 흘러 김영삼 대통령에 의한 최초의 문민정부가 들어서자 - 군사쿠데타이후 14년이 지난 -

1993년에-전두환 노태우 전임 대통령등 34명의 반란 가담 세력들에게 반란 및 내란죄 혐의로 대검찰청에 고소했다.

 

ㅇ.4년 전인 1989년 당시 노태우 집권 당시에는 대검찰청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몰역사적인 판단을 이미 내린 바는 있지만-필자주!-

 

ㅈ.4년이 지나고 집권 초기 하나회 숙청을 기습 단행하여 무려 90%의 지지율을 확보하였던 김영삼 당시 대통령의 문민정부 아래에서는?

 

검찰에서 1994년에 12.12군사쿠데타를 '군 형법상의 군사반란'으로 규정하고 전두환등의 피고소인 전원에 대해 반란죄를 인정했다.--물론, 주지하다시피 전두환 및 노태우 등은 다른 죄목(불법 정치자금 수수등)과 함께 가막소에 들어가  

 

*** 장태완 장군은?

 

사필귀정 파사현정으로 당연히  歷史의 勝利者

 

 된다.

 

** 그리고 장태완장군은 텔레비젼 드라마를 통해 참군인으로 묘사되면서 국민들의 마음속에 존경받는 군인의 표상으로 영원히 자리매김 하게 된다.

 

**그는 1994년 한국 최초의 경선으로 재향군인회장을 연임하는 등 6년간의 재임기간 최선의 노력을 다하여

 

쿠데타 당시 진압은 못했을 지언정 장태완 장군에게 손을 들어주는 문민의 승리도 재확인하게 된다.

 

**이제는 고인이 된 장태완 장군은?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진정한 군인으로 우리 역사속에서 오래도록 살아 있을 것이다.

 

@@@위의 내용은 2010년 8월8일자-시판은 8월2일-

 

최다 구독율을 자랑하는 일요신문의 박현진 기자의 보도내용을 정리한 것임을 참고로 알려드립니다. 이자리를 빌어 박기자님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일요신문을 매주 사보는 애독자로서 일요신문 측에 감사를 드리며 다른 분들도 자주 일요신문을 사보시길 권유해 봅니다 일요신문은 주간 신문으로서는 가장 구독자가 많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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