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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도 모르는 김정일의 카터면담 피한 진짜 속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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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1,271회 작성일 2010-09-05 12:29

본문

 
 
 
中國에만 의존-- 가장 '非자주적'인
 
 김정일의 訪中!
 
 
1.김정일의 비밀 방중 및 알수없는 動線으로 인해
그의 신비주의는 더욱 증폭되었다.
 
2.이번 방중(訪中)은?
 
철저한 후계체제를 위한 대내용행사라고 본다.-김근식評!
 
 
3.무려 44년만의 당대표자회 를 앞두고
 
 만주항일 유적지를 즉, 김일성의 항일 유적지라는 곳을 방문하였다. 아마도 후계자로 지목된 아들 김정은도 함께하였다는 설도 무성하다.
 
4.영원한 수령이라는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의 역사적 정통성을 재확인하여 김일성-정일-정은 으로 이어지는
백두산 줄기의 혁명 適子임을 정치적으로 과시하는
의미였다.--상투적인 수법의 연속성이고 그게 북한에서는 씨가 먹힌다는 점이다.-옮긴이 評!
 
5.북한의 靑年節은?
 
 8월28일인 데 이 날에 맞추어 김일성주석의 청년시절 항일 혁명 지역을 들른 시점도 주목할 만하다.
 
6.이번 방중은?
 
ㄱ.急한것은?-----
 
신의주 지역의 엄청난 수재 피해 및 전국토의 주민의 식량난의 위기를 극복하려는 김정일의 다급한 식량 지원 요청과 向後 지속적인 식량지원을 확답받으려는 것이었다고 본다.-옮긴이의 생각임-
 
**북한 사정에 밝은 연세대학의 정외과 문정인 교수는?
 
머니머니해도 경제 지원 요청이 첫째가는 김정일의 방중목표였다고 논평하고 있다.-
 
ㄴ.전략적으로는
 
오랜 혈맹관계의 재확인 작업으로 공고한 유대와 연대를 만천하에 다시금 과시하여
 
향후 북한 통치에 제3자의 범접을 용인하지 않으려는 적극적 자세라고 봅니다--옮긴이 논평!
 
 
 
7.북한전문가 김근식박사의 논평 이어집니다.
 
44년만의 당대표자회 를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해서
즉, 승리자의 축제로 승화시키려면 머니머니해도 중국으로 부터의 대규모 경제적 지원이 급선무인 데  세상 그 어느 곳에서부터 지원받을 낌새는 전혀 없으니
 
오랜 혈맹이면서 최근 세계 2대 강국으로 용솟음 치는 중국밖에 없는 판국이니 당연한 방중아닌가?
 
8.중국 네티즌의 조롱은?
 
 
"큰 뚱뚱이와 작은 뚱뚱이가 왔다.먹을 것을 줄테니 중국을 괴롭히지 말라!"
 
9.이는 '自主나라 북한'이 가장 非자주적인 방중을 선택하고 있는 것을 조롱하고 있는 것 같다.
 
10.김근식 박사의 논평이 이어집니다.
 
ㄱ.언제부터인가 한반도는 미국과 중국의 갈등의 대결장이자 대리인이 되고 있는 듯하다.
 
ㄴ.남,북 관계가 경색된 이후 북한은 일이 생길 때마다 중국으로 달려가고  한국은 일이 터질 때마다 미국만 바라보는 형국이 되었다.
 
ㄷ.이는 마치 과거 냉전시대에 외세 의존의 분단 구조를 재현하는 느낌이 들지 않는 가?
 
ㄹ.지금부터 100년 前 풍전등화의  조선에서는?
 
봉건 수구세력을 혁파하겠다며 일본을 끌어들인 개화파
 
그리고, 조선의 봉건제만은 결코 버릴 수 없다며 청나라에 의존한 척사파의 분열과 대결은 결국 亡國의 부끄러움으로 귀결되고 만 것을 기억하는 가?
 
@@@위의 내용은 2010년8얼30일자 경향신문의 시론 편에 북한대학원대학교 김근식 교수의 기고문이 85%안팎이며 일부 옮긴이의 논평도 있음을 참고로 알려드립니다.
 
김정일이 가장 非자주적인 방중을 하였다는  김근식 박사의 기고문을 우리 검색자들이 읽으셨는 데
 
이번에는  제가--이번에 방중한 가장 非자주적인 김정일에 대해
 
가장 非 科學的인 기고 논평을 해보겠습니다.-저의 글이 비과학적이라는 말입니다.
 
한국의 내로라하는 북한 전문가 800 여명중-필자주!- 이를 공개적인 언론에 표명하는 전문가는 최근에는 물론 단 한 명도 없으며
저같은 아마추어 북한 평론가 입장에서 논평하는 것이 바람직하리라고
저는 보고 있답니다.
 
@@@ 제목: 김정일이 지미 카터와의 면담을 피한
 진짜 첫번째 이유는 무엇?
 
아래 기고의 일부내용은 다소 비과학적임을 전제로 기고하는 것입니다.
 
1.재임시절 역대 및 지금까지 현역대통령 중에서는
 
가장 형편 무인지경이었던 지미 카터 대통령은?
 
현역 시절 한국을 굉장히  '한국인권유린지적' 관점에서
대내,외적으로 道德외교를 내세우며
당시 장기집권하고 있던 박정희 대통령을 아주 집요하게 괴롭혔다.
 
2.지미 카터는 한미정상회담을 위해 방한한 직후
 
박정희대통령을 만나지도 않고
즉시 미 2사단 사령부를 불시 방문하여 장병들과 평소에
좋아하던 조깅을 하였고 그들과 장교식당에서 여군 한명도
 옆에 두고 식사를 함께 하였고 
 
3.그 다음날, 한.미 정상 회담에서는 둘다 날선 공방을 일삼아 그 회담 분위기가 아주 어수선하였다고 합니다.
 
4.그리고는 , 몇년 안가 박정희는 죽게 됩니다.
**도덜드 그레그--
당시 미국중앙정보국 즉,C.I.A한국 지부장을 역임함-
는 박정희 시해 2달 전 미국의 어느 대학 특별 강연에서
 
이렇게 한국이 장기집권하고 인권유린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有故 사태가 날 지도 모른다고 공개리에 천명한 바가 있습니다-필자주!
 
5.그리고 조금 세월이 흘러 현역시절 가장 못난 미국 대통령이었지만 퇴임후에는 가장 훌륭한 대통령으로 명성을 자연스럽게 얻은 지미 카터 전 미국대통령은?
 
ㄱ.6.25전쟁이후 가장 남,북한 전쟁 일보 직전의 상태까지 진짜로 가게된 1994년 6월 위기 당시  지미 카터는
북한을 방문하여 당시 김일성의 유감 표명을 받아내었고
이로 인해 남,북한 절체절명의 전쟁 상황을
카터가 막아냈다는 것이 국제정치학자들의 공통되고 일관된 논평입니다.
 
***저와 안면이 자주 있던   동국대학의 강정구
교수-만경대 발언으로 아직도 유죄 판결중이며-필자주-대법원 확정 판결이 아직 안난듯함-필자주!-
2010년 8월말로 65세 정년퇴임하였음-는 공개 토론회에서 위의 한반도 위기 상황에서
 
지미 카터가 그당시 한시간만 늦게라도
북한 주석 김일성의 유감표명을 받아내지 못했다면?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날 확률은 거의 100%였다고 자주 언급하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ㄴ.그런데, 지미 카터와 북한 주석 김일성과의 극적인 만남이후 한 달이 지나자 북한 김일성은 사망하게 됩니다.
(1994년 7월8일 사망)
 
ㄷ.그리하여, 한국의 觀相장이 또는 일부 好事家들이
'관상학적으로 독수리 관상인 지미 카터가 호랑이 관상
김일성을 죽였다'
라고 다소 신빙성이 떨어지지기는 하지만 일면으론 그럴싸 하다고 저는 믿어왔답니다.
 
***우리 게시판의 맨 처음의 기고문 페이지의 저의 글인
'무속인 심진송과 김일성과 사명대사' 편을 보면?
위의 저의 글을 조금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이해를 약간은 하시리라 확신합니다. 
 
ㄹ.남,북한의 장기집권의 독재자였던 김일성과 박정희의 사망에는 모두 지미 카터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ㅁ.박정희의 관상은 호랑이인지 아니면 다른 것인지 그것은 잘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만 혹시 아시는 분?
 
ㅂ.그래서, 결론은?
김정일이 지미 카터를 면담 약속까지 해놓고 만나기를 피한 진짜 이유는?
 
어쩌면 김일성처럼 본인도 카터 면담후 어쩌면 그럴리야 없으리라 김정일 본인도 반신반의하였겠지만,
 
김일성의 급서 사망의 원인이 카터에 있었음을 상기하여
아무래도 무척 찜찜한 김정일 본인 이거나 아니면
최측근이 건의하여
 
 중국의 후진타오에게 읍소하여 일정 조정하여서라도
 
첫째:김정일 본인도 생명을 연장하고 (면담불방으로)
둘째:북한도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는다는 의연한 자세를  미국을 비롯한 만방에 대외 과시용으로 면담 불발을 일부러 사용하였다고 봅니다.
셋째: 비록 미국 억류인 곰즈 씨를 미국으로 데려가는 데는
성공하였지만, 지미 카터는 미국에 돌아가 열불나서 단 한마디도 공개 발언을 하지 않고 있다고 하여
넷째: 이번에는 지미 카터가 열불이 너무 나서 그 화를 제어못하여 혹여 김정일 보다 먼저  유명을 달리할 지
저 아마추어 논평자로서는 심히 걱정이 됩니다.
 
다섯째: 빌 클린턴이 미국 여기자 2명을 북한에서 데려갈 때에는 두대의 비행기가 와서 그 한대는 푸짐한 선물을 대령하였다는 후문입니다-첩보 수준일듯함-필자주!
그런데, 카터가 그것도 특사 자격도 아닌 개인 자격으로 방북하고 선물조차 변변치 않아 김정일 집단을 우습게 본다고 대노하여 그렇게 면담 불발을 한 것이라 저는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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