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만폴란스키-귄터그라스-박정희-미당 서정주-이항녕박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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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3,994회 작성일 2009-12-05 11:51본문
***최근 고 박정희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씨가
민족문제연구소(www.minjok.or.kr)가 오랜 각고의 노력끝에
'친일인명사전'을 만들어 11월8일 일요일 공식으로 편찬 발표회를 가지려 하는 데 대해 자기 부친의 친일 행적이 별로 없음의 이의제기를 통해 그 명단에서 빼줄것을 법원측에 고소하였으나
6일 법원측으로 부터 친일행적이 충분한 근거에 의했음을 인정하고
박지만씨의 고소를 기각하였다. 박지만씨에게는 설상가상격으로 위의 민족문제연구소측은 박지만씨의 고소 제기에 대응하여 서둘러 고 박정희의
일본 만주군관학교 입소 관련 자필 혈서를 폭로하여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아울러 1905년의 을사늑약에 대항하여 그 유명한 '시일야방성대곡'을 써서 그의 필명을 만천하에 널리알린 바 있던 위암 장지연선생도 시일이 지나면서 경남일보 등에 친일을 입증하는 결정적인 기고문이 있는 등 친일 행각이 두드러져-정말 아쉽지만-그의 후손들이 제기한 소송도 아울러 기각당하였다.
@@@그리하여,위의 내용과 관련한 경향신문 논설위원 이대근 기자의 명논설을 폄글로 가져왔사오니 시간을 쪼개어 여러분의 가족,친지,친척,동료,선후배들에게 널리 읽도록 메시지 메일로 보내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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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2009년 11월7일 토요일자 경향신문의 이대근 논설위원의 기고문입니다.
a. 영화감독 로만 폴란스키의 경우!
1.세계적인 영화 감독인 로만 폴란스키 는 요즘 스위스 가막소에 갇혀있다.
2.무려 32년전인 1977년 미국의 유명 배우 '잭 니콜슨'의 집에서 13세 소녀를 성추행한 혐의로 재판받던 중 외국으로 도망간 그를 스위스가 지난 9월26일 체포하는 데 성공한 결과이다.
3.그 유명 감독의 체포에 대해 그에게 국적을 부여했던 프랑스 및 폴란드 정부가 항의했고, 일부 팬들도 과거사로 처벌을 해서야 되겠느냐고 반발하기도 하였다.
4.그러나 ,세계 여론은 우호적이지 않았다. 그는 미국에 송환되면 최소 3년형을 받아야 한다. 32년전에는 48일형에 불과(?)했던 가벼운 범죄가 세상이 바뀌어 중죄가 되었기 때문이다.
***위의 내용에서 세월이 흐른다고 해서 과거사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것이 아님을 웅변적으로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b. 세계적인 문학가 독일의 귄터 그라스
5.독일의 노벨상 작가 귄터 그라스-저 한준구는 2002년 5월29일및 30일
그가 한국의 중앙대학교를 방문하였을 때 그를 아주 가까이서 본 적이 있고 그의 명강의를 그당시 들은 기억이 생생하다.-그 당시 그의 한국통일에 대한 조언에서 그는 한국인들이 진정 북한과의 물리적-화학적 통일을 원한다면 여러분의 월급의 3분의 1을 통일기금으로 낼 정도의 마음의 자세가 없으면 불가하다 라고 하였는 데
소위 갑작스럽고 감성적인 통일은 독일처럼 엄청난 후유증을 가져옴음 경계하였던 기억도 생생하다.
6.그는 그의 명저 '양철북'-양철로 된 어린이용 북-영화로도 제작되어 세계적인 명품 영화중의 하나가 되기도 하였고 -저 한준구는 서울에서 아마도 80년대 초반인가 중반인지 에 본 기억이 납니다.
7.그런 그 유명한 독일의 작가 귄터그라스도 폴란스키 꼴 날 뻔하였다.
그는 유럽의 좌파로서 평소 쓴소리를 잘하기로 아주 유명한 지식인이었다.
8.그런 그가 소년시절 나치 친위대였는 데 이 사실을 60년간이나 숨겨오다 그가 뒤늦게 고백하자 "이중인격자가 아니냐?"라며 거센 비난을 피할 수는 없었고 오랜 기간 쌓아온 그의 명성이 하루아침에 진흙땅 속에 파묻힐 뻔하였다.
9.그러나,그는 그의 결정적 치부를 드러낸 용기를 평가받아 사회적 복귀가 가능하였다고 한다.
*** 귄터그라스는 한국의 시인중의 위대한 시인 서정주님과 비교된다.
c. 한국의 미당 서정주 시인 과 이항녕 총장의 경우!
10. 미당 서정주는 '국화옆에서'라는 명시로 우리 고교 국어 교과서의 맨 앞장을 오래도록 장식한 바 있는 위대한 시인임에 이의를 다는 전문가들은 거의 없다고 본다.
11.그는 친일 시인으로도 모자라 전두환 전 대통령 찬양시까지 쓴 ,말하자면 수십년에 걸쳐 '변절없이'일제든 독재든 권력이라면 그 성격을 가리지 않고 추종한 드문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12.그러나,그의 시는 진정코 얼마나 아름다운가!
폴란스키의 반사회적인 범죄 행위는 잠시 잊고 그의 영화에 감동하는 것처럼 모국어의 아름다운 속살을 보여준 그의 시만을 사랑할 수는 없는 걸까?
13.하지만 그는 인생의 말년에 치매 예방을 위해 전세계의 산맥을 1650개인지 2650개를 꾸준히 외우는 열성은 보였지만----그의 서울 사당동 집에서 그는 방석밑에다가 일제 치하에서의 잘못된 행적을 반성문 형식으로 써 놓고 '고종명'하길 저 한준구는 바랐지만 마지막 기대를 저버리고 그는 그냥 천수만 누리고 아무 반성없이 다른 악덕 친일파처럼 그냥 영원히 가버렸다.
14.서울의 홍익대학교 총장을 역임한 바 있던 지성인!
이항녕박사는 과거 일제 고등문관 시험에 합격하여 경남 하동등지에서 군수를 지내고 징용,징병을 독려하는 역할도 담당한 바 있었는 데 그는 50년이 지난 어느날 인생 말년에 그의 과거 행적을 솔직히 여론에 고백하는 데 까지는 좋았는 데
15. 아뿔사! 대학 총장을 역임한 지성인인 그였지만 그날 여론에 친일을 고백한 이후 그의 집에는 친일 잔존 세력으로 부터 왜 너만 잘났냐? 는 등 집에 협박 전화가 한동안 끊이지 않았다고 하며 이로인해 아마도 천수를 다 누리지 못하고 예상보다는 일찍 세상을 떠난 듯 하지만 그의 마지막 인생 마무리는 미당 서정주시인과는 달랐다고 봅니다.
16.미당 서정주의 오래된 그의 서울 사당동의 집은 그의 사후 서울시에서 사적으로 관리를 하는 듯하였으나 얼마 안지나 그의 집은 폐허로 변하였다고 보도된 바 있다.
17. 을사 5적의 대표적인 이완용의 후손은 한국에서는 거의 멸문지화가 되었으나 나머지 2급 친일파들의 후손들은 이제는 한국의 정계,경제계,학계등에서 뿌리를 완전히 내려 어떻게 손을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우리 민족의 정체성 확립에 엄청난 심적 장애 요인이 되고 있다.
@@@ 저 한준구가 보는 한국사회의 3대 악으로
다음을 지적하고 있고 틈만나면 사회학자,정치학자,역사학자들에게 아래의 3대 적 해체를 위해 함께 노력해 줄 것을 강조하고 있고 심지어는 어린 진보적인 대학생들 모임에서도 강조하고 있습니다.
### 한국의 3대 악의 축(the axis of evil)
첫째: 반성하지 않는 친일 잔존 세력
(하나의 지엽적인 예를 들면:부친의 친일 경력을 속인 신기남 전의원은
고문 피해자들의 생생한 현장 증언으로 한때 대통령 후보에도 물망에 올랐던 신기남의원은 악성 거짓말 탄로로 정치생명은 한 방에 끝나 버렸다!
그 반면에 저 한준구의 지역구 국회의원인 이미경의원은 저 한준구와의 토론회 쉬는 시간에 만난 잠깐의 조우에서 저 한준구가
신기남처럼 거짓말하지 말고 가족의 친일경력을 속이지 말고 솔직히 말하고 국민에게 용서를 구하라고 직접적인 조언을 한 바 있는 데
그녀는 그렇게 하겠다는 표정을 지었고 이를 실천에 옮겨 3선의원에서 4선의원이 되는 고비를 넘기는 것도 기억이 생생하다.
둘째: 반통일 냉전 수구세력---대령연합회, 조갑제 추종세력등등-필자주
셋째: 베풀지 않는 산업화 또는 근대화 세력
d. 친일파 고 박정희 대통령!
18. 18년 동안 한국의 대통령으로 군림한 바 있던 박정희는 1917년생으로 1979년 최측근이던 김재규의 총에 맞아 죽을때까지 62년간의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왔다.
19. 대구사범학교를 건성으로 다니다 -교련 시간에만 신나서 아주 열심히 교련을 이수하였다고 하며 대구사범의 교련담당 일본인 대좌는 학생 박정희군을 총검술 시범 조교로 부릴 정도였다고 함-나머지 수업시간은 대충하다 친구들은 도회지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시작하였으나
그는 성적 부진으로 당시로서도 오지인 문경보통학교에서 약 3년안팎 교사생활을 하다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하게 되는 데 위의 교련지도 육군대좌의 추천서가 결정적으로 작용하였다고 합니다.--한때는 박정희 교사의 두발이 비교적 긴 것을 지적한
일본인 장학사와 대판 싸우고 교사생활을 그만두고 만주로 향했다는 견해
도 있었는 데 사실이 아닌 듯함!-필자주
20.1917년생인 박정희 초등 교사가 20대의 나이에 일본의 만주군 군관 지원을 위해 죽음으로써 충성하겠다고 혈서를 썼다는 충격적인 1939년의 만주신문 기사 사본을 민족문제연구소가 공개하여 박지만에게 결정적인 카운터 펀치를 먹인 격이 되었다.
이게 사실이라면 그는 친일파임에 틀림없다!
21.박정희 신화에 젖어있는 다수의 사람들은 역사적 맥락을 들먹이며 변호할 것이며 산업화 공적을 역시 들먹이며 사면을 당연히 주장은 할 것이다.
22.박정희의 부정적인 유산이 아직도 여전히 남아있고 이를 극복해야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친일파 박정희를 용서하지 말자고 할 것이다.
23.그런데, 지금 한국이 박정희로 부터 자유로운 사회가 되었다면 친일문제는 이제 시사적 논쟁이 아니라 역사연구자들의 논쟁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면, 좀더 친일한 박정희를 관대하게 대할 지도 모른다.
24.하지만 박정희는 반성한 적이 없고, 우리는 여전히 박정희 시대의 연장전속에서 이전투구를 벌이는 것을 감수해야 할 지도 모른다. 끝
@@@위의 뼈대있는 이야기는 대부분 경향신문 이대근 논설위원-50세-의 기고문이며 후반부에 저 한준구의 견해를 몇몇 첨언하였음을 알려 드립니다.
@@@위의 내용과 사실과 다른 것이 있거나 의문사항 ,질문사항이 있으시면
서슴치 마시고 질문을 해주시길 간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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