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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타리카-**평화 전도사-아리아스 前 대톨령-87년 노벨평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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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3,845회 작성일 2016-03-09 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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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시시각각]
 
 
 
“전쟁보다 평화가 쉬운 길…
 
 
 
그 길로 이끌어가는 사람이 좋은 지도자”
 
 
 
파바스(코스타리카) | 장은교 기자
 
 
ㆍ‘평화를 수출하는 나라’
 
 
 
 
코스타리카 전 대통령 아리아스를 만나다
 
 
 
 
코스타리카의 오스카르 아리아스 산체스 전 대통령은 중미 분쟁해결을 이끌어내 1987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br />지난해 12월8일, 수도 산호세 북쪽 파바스의 자택으로 찾아가 지금도 세계를 돌며 평화를 설파하는 그를 만났다.<br />아리아스는 “평화가 전쟁을 하는 것보다 훨씬 쉬운 길”이라며 무력보다 대화를 선택하겠다는 의지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br />파바스(코스타리카) | 김정근 기자 jeongk@kyunghyang.com
코스타리카의 오스카르 아리아스 산체스 전 대통령은 중미 분쟁해결을 이끌어내 1987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지난해 12월8일, 수도 산호세 북쪽 파바스의 자택으로 찾아가 지금도 세계를 돌며 평화를 설파하는 그를 만났다. 아리아스는 “평화가 전쟁을 하는 것보다 훨씬 쉬운 길”이라며 무력보다 대화를 선택하겠다는 의지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파바스(코스타리카) | 김정근 기자 jeongk@kyunghyang.com
74세의 노인은 차에서 혼자 내렸다. 동네 이발소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코스타리카에서 1980년대와 2000년대 두 차례 대통령을 지낸 오스카르 아리아스 산체스 전 대통령에게는 운전사도 경호원도 없었다.
아리아스는 동시다발 내전에 휘말린 중미 국가들을 평화의 협상장으로 나오게 해 1987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1948년 호세 피게레스 대통령이 군대를 없애면서 코스타리카는 세계에서 드문 평화의 나라가 됐고, 아리아스의 활약을 통해 ‘평화를 수출하는 나라’로 자리매김했다. 퇴임 후에도 여전히 세계를 돌며 평화 전도사로 활약하는 그를 만났다.
지난해 12월8일 수도 산호세 북서쪽 파바스에 있는 자택에서 만난 아리아스에게 ‘경호원도 없이 혼자 다니느냐’고 묻자 “수십년 된 단골 이발소에 가는 데 경호원을 데리고 다닐 이유가 없다”고 했다. “적이 없으니 두려움도 없다”는 그에게, 테러와 분쟁으로 가득한 시대에 평화의 의미를 물었다.
- 세계를 무대로, 특히 중남미에서 군대와 무기를 없애자는 운동을 계속해왔습니다.
“나는 군대에 돈을 쓰는 것이 가장 비뚤어진 지출이라고 생각합니다. 전 세계에서 약 1조8000억달러(약 2172조6000억원)가 무기와 군인들에게 지출됩니다. 국민들이 굶어죽는데도 엄청난 돈을 핵무기에 쏟아붓고 있어요. 북한, 파키스탄이 그런 나라죠. 무기를 가졌다는 건 언젠가는 쓰겠다는 뜻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숨지겠죠. 생명보다 더 소중한 건 없습니다.”

1970~1980년대 니카라과,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온두라스 네 나라에서는 군부독재정권의 폭압과 이에 맞선 유혈투쟁, 내전과 혁명이 잇달아 피바람이 일었다. ‘중미 위기’라 불린 이 사태 때 4개국의 사정은 제각각이었지만 그 밑에는 냉전시기 미국의 군사개입과 그에 대한 반발이 깔려 있었다. 아리아스는 이런 상황을 끝내기 위해 1980년대 초반 올로프 팔메 스웨덴 총리와 함께 ‘콘타도라 그룹’이라는 평화중재회의를 만들었고, 에스키플라스 플랜이라 불리는 평화협상을 이끌어냈다. 4개국의 학살과 유혈분쟁을 상당 부분 종식시킨 것은 물론 미국의 군사개입도 멈추게 하는 효과를 거뒀다. 노벨평화상과 알베르트 슈바이처 인권상 등을 받은 평화 중재자 아리아스의 역할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는 2013년에는 무기거래금지조약(ATT)을 만들어 유엔에서 통과시켰다.
니카라과에서는 1979년 산디니스타민족해방전선이 좌파 혁명을 일으켜 집권했으나 1990년까지 미국의 지원을 받는 우파 콘트라 반군의 공격으로 내전이 끊이지 않았다.   UPI 자료사진
니카라과에서는 1979년 산디니스타민족해방전선이 좌파 혁명을 일으켜 집권했으나 1990년까지 미국의 지원을 받는 우파 콘트라 반군의 공격으로 내전이 끊이지 않았다. UPI 자료사진
- 평화를 퍼뜨리려는 노력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죠.
“남미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 다니면서 군대를 폐지하거나 군사지출을 줄이자고 설득했어요. 파나마와 아이티의 군대를 폐지시켰고, 아프리카에선 군사지출을 줄이는 데 성공했습니다. 2012년 ‘코스타리카 컨센서스’를 발표했어요.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IMF)에 환경보호나 보건예산보다 군사지출이 많은 나라에는 채무를 면제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죠. 2013년엔 지뢰처럼 민간인을 살상하는 무기거래를 금지하는 조약이 유엔에서 통과됐어요. 1987년에 중미 평화협상을 타결시켰는데, 원래 내 생각은 중미를 세계 최초의 비무장지대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 꿈은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 군대를 없애자는 것은 너무 이상적인 얘기로 들립니다.
“그럴 겁니다. 1986년 2월 대통령으로 뽑혔을 때 나는 코스타리카를 중미와 세계의 분쟁에서 떼어두고 싶었어요. 처음에는 국민들도 지지해주지 않았어요. 당시는 냉전 시기였어요. 미국 편에 서지 않았다가 로널드 레이건 정부로부터 지원이 끊길까봐 걱정한 거죠. 나는 유럽과 중남미를 돌아다니면서 국제적 지지를 받으려고 노력했고 국민들을 설득하려고 애썼습니다. 불안해하는 동료들에게도 평화는 우리의 손에 달려 있고, 우리의 미래도 (다른 나라가 아닌) 우리 손에 달려 있다고 설득했어요. 용기가 필요했어요. 지금 코스타리카는 적이 없는 나라입니다. 평화가 유지될 수 있는 건 민주주의가 뒷받침됐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문제가 생기면 국제사법재판소(ICJ)를 통해서 해결합니다. 코스타리카는 사회복지제도가 어느 나라와 견주어도 평균 이상이에요. 군대를 폐지하면서 지출을 교육, 보건, 환경보호에 썼기 때문이죠. 탱크나 전투기, 대포 대신 학교나 병원에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미국 의회조사국은 2014년 한국이 무기 수입에 78억달러를 써서 1위에 올랐다고 밝힌 바 있다. 2위는 이라크였다. 한국은 전쟁과 테러를 겪는 이라크보다도 많은 돈을 무기 수입에 썼다. 7일 영국 BBC방송은 “북한이 남한과 미국을 위협하고 있다”며 한반도의 긴장 고조를 인터넷판 톱기사로 올렸다. 이날부터 다음달 30일까지 한·미 연합군사훈련인 키리졸브(KR) 연습과 독수리(FE) 훈련이 역대 최대 규모로 진행된다. 북한의 위협이 상존하는 한국에서 ‘군대를 없애고 평화의 나라로 가자’는 주장은 비현실적으로 들릴 수밖에 없다. 아리아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협상과 대화를 통한 노력을 더 많이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전을 피해 달아나는 엘살바도르 주민들. 엘살바도르에서는 1979~1992년 내전이 계속돼 8만명가량이 숨졌다. 데스티니칠드런
내전을 피해 달아나는 엘살바도르 주민들. 엘살바도르에서는 1979~1992년 내전이 계속돼 8만명가량이 숨졌다. 데스티니칠드런
- 전쟁과 테러가 끊이지 않는데, 먼저 무기를 내려놓는 것이 정말 최선일까요.
“나는 스스로를 평화주의자라고 말하진 않아요. 예를 들어 히틀러를 멈추기 위해, 테러를 막기 위해 군사력을 사용하는 것에는 동의합니다. 어떤 지역에서는 군대를 없앤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도 압니다. 한국도 분단된 상황에서 군대를 없애겠다는 건 비현실적인 얘기죠. 그렇지만 외교협상이나 대화를 통해 할 수 있는 노력을 얼마나 하고 있나 묻고 싶어요. 나는 지금까지 외교와 협상을 통해 갈등을 해결하려고 노력해왔습니다. 평화를 달성하는 것이 전쟁을 하는 것보다 언제나 훨씬 쉬운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중미가 내전에 휩싸여 있을 때 미국과 소련이 군사력으로 해결하도록 두었다면 지금 문제가 해결됐을까요. 넬슨 만델라가 힘으로 반대파들을 처단했다면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어떻게 됐을까요. 평화로운 세상은 그저 유토피아가 아니에요.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중동발 테러가 유럽과 아시아까지 위협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이라크에서 사담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렸지만 그러고 난 뒤에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명확하게 알지 못했어요. 알카에다와 이슬람국가(IS) 문제도 거기에서 비롯됐죠. IS의 수장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는 미국이 만든 감옥에 갇혀 있던 사람입니다. 테러조직들은 서양에 대한 증오와 복수심으로 가득 차 있어요. 증오하는 사람은 죽일 수 있지만, 증오는 죽일 수 없습니다. 마하트마 간디도 말했죠. ‘눈에는 눈’으로 나가면 결국 온 세상을 눈 멀게 만들 것이라고요. 폭격으로 IS를 약화시킬 수는 있겠지만 없앨 수는 없습니다. 군사력만으로는 IS 같은 테러조직을 멈출 수 없어요. 저는 협상의 힘을 믿어요. 생각해보면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미국과 러시아 같은 나라들이 한자리에 앉아 있는 것조차 상상하기 힘든 일 아니었습니까. 시간이 걸리더라도 협상에 나서야 해요.”
- 증오를 다른 것으로 대체해야 한다는 뜻인가요.
“테러조직이 난무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이 덜 가난하고 불평등이 적다면 분쟁과 충돌을 만들어낼 만한 조건들이 훨씬 줄어들 겁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더 공정하고, 덜 탐욕적이고, 이기적이지 않다면요. 20세기에 우리가 갖고 있던 가치관과는 다른 새로운 가치를 지키는 세상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해결책이 쉽게 나오지는 않겠지요. 그래도 포기하면 안됩니다. 특히 지도자들이 더욱 살기 좋은 세상과 평등한 세상, 공정한 세상, 새로운 가치관을 실천하는 세상을 만들려고 노력한다면 분쟁을 방지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1987년 온두라스에 설치된 엘살바도르 난민촌.<br />위키피디아
1987년 온두라스에 설치된 엘살바도르 난민촌. 위키피디아
- 한국은 전쟁 이후 세계사에 남을 만한 발전을 이뤘습니다. 모든 지표에서 상위권인데 청소년, 노인 자살률도 1위입니다. 더 부자가 됐는데 왜 더 불행해진 걸까요.
“어려운 문제입니다. 한국 사람들이 불행하다고 하니, 저도 그 까닭을 잘 모르겠네요. 우선…, 돈이 행복의 근원인 것은 아닙니다. 아주 불행한 백만장자도 있죠. 빈곤은 상대적인 겁니다. 코스타리카 사람들은 적게 갖고도 크게 만족합니다. 어쩌면 코스타리카의 경제가 빠른 속도로 발전하지 못해서 자연스레 그렇게 된 것 같기도 하군요. 정부가 코스타리카 국민들에게 더 좋은 삶을 제공하는 데 실패한 면도 있습니다. 한국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물질적인 부나 소비가 우리에게 행복을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 코스타리카에서 유일하게 대통령을 두 번 지냈습니다. 국민에게 두 번이나 선택받은 비결이 무엇인가요. 좋은 지도자, 혹은 나쁜 지도자는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좋은 리더는 꿈을 실현시켜주는 사람입니다. 명확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사람들에게 이 나라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지 보여줘야 해요. 국민들이 나를 다시 뽑아준 것은 내가 정직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봐요. 나는 국민들이 듣고 싶어 하는 얘기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알아야 할 것을 말해주는 사람이었으니까요. 평화협상을 말할 때도, 경제개혁을 할 때도 처음엔 다 반대했고 인기가 없었어요.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했고, 대통령을 하면서 불행하거나 슬펐던 적은 없습니다. 코스타리카와 중미의 많은 국민들이 좀 더 평화롭게 살 수 있게 돼서 기뻐요. 두 번째 임기 때에는 월급을 받지 않고 모두 기부했어요. 내 돈이 좋은 곳에 쓰일 수 있었고, 정말 필요로 하는 곳에 도움을 줄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나쁜 지도자는 국민에게 폐를 끼치는 사람이죠. 무력으로, 또는 국민들이 뽑아준 사람 중에도 대통령의 자리에 올라서 국민의 돈으로 자기 주머니를 채우는 리더들도 있죠.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처럼 자국민에게 무기를 쓰는 지도자도 있고요.”
- 100년 후의 코스타리카, 100년 후의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요.
“코스타리카는 100년 후에도 여전히 평화의 오아시스, 민주주의와 자유를 상징하는 나라일 것입니다. 아무도 몰랐던 중미의 작은 나라가 나와 많은 사람들의 노력을 통해 ‘평화로운 나라’로 세계사에 기록될 것이라는 사실이 참 기쁩니다. 군대를 없앰으로써 코스타리카가 잃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아마 이 나라 국민 누구에게 물어봐도 같은 대답이 나올 겁니다. 세계는…, 글쎄요. 불평등과 부정의, 증오와 복수심이 남아 있는 한 앞으로도 폭력은 존재하겠죠.”

두 차례 대통령 당선…첫 임기 때 중미 평화협상으로 노벨평화상

오스카르 아리아스 산체스는



1940년 코스타리카 수도 산호세 북쪽 교외의 헤레디아에서 태어났다. 산호세의 성프란치스코 칼리지를 졸업하고 미국 보스턴대에서 의학을 공부했으며, 귀국해서 코스타리카대학에서 법학과 경제학을 전공했다. 영국 에섹스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사회민주주의 성향의 민족해방당(PLN)에 가입해 정치에 입문했고, 1986년 대통령에 당선돼 1990년까지 재임했다. 2006년 재선돼 2010년까지 두 번째 임기를 보냈다. 첫 임기 때 중미 평화협상을 이끌어내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커피와 바나나 수출에 주력해온 코스타리카 경제를 다각화하고 생태관광을 주요 산업으로 키웠다. 이 과정에서 사회민주주의를 포기하고 신자유주의에 경도됐다는 비판도 있다. 두 번째 임기 때에는 대만과의 관계를 끊고 중국과 수교했으며, 달라이 라마의 코스타리카 방문을 보류해 인권운동가들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2009년 온두라스에서 정쟁으로 헌법 효력이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졌을 때 다시 중재자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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