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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불멸의 성웅 이순신장군!-후손이 끊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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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2,189회 작성일 2009-05-08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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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임진왜란 당시 우리의 영웅 성웅 이순신장군에 대한 최근 신문 명칼럼들을 재편집하여 우리 동기생들에게 알려드리오니 관심있는 분들의 일독을 권하며 가능하다면 각 동기별 홒페이지에 각 총무님이나 회장님이 폄글로 올려 주셔도 무방함을 참고로 알려드립니다.-이를 계기로 다수의 우리 동문들이 방문객 수가 너무 적은 총동창회 홈피 활성화에도 다소나마 기여를 했으면 하는 소망입니다.
 
 

***세계 해전사에서도 4대 해전(살라미스,칼레,트라팔가및 한산대첩---일부는 레판토해전이나 악티움해전을 넣어 4대해전이라 칭하는 경우도 더러 있음)중의 하나인

 

 한산도 대첩의 이순신 장군-임진왜란에서  23전23승의 전승기록함-그리고 1904년 러시아의 발틱함대를 무찌른 일본의  러일전쟁의 영웅이자 해신으로 추앙받던 도고 헤이 하치로 제독도 말하길

"나를 넬슨 제독과는 비교할 수는 있지만 이순신장군에 비하면 나는 일개 하사관에 불과할 따름이다."  라고 하여 많은 일본인들을 놀라게 한 적도 있음.

 

***불멸의 이순신이란 드라마에 자주 나온 바 있던 실재 인물이었던 일본의

와키자카 장수는

"내가 제일 두려워하는 사람은 이순신이고 ,가장 미워하는 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좋아하는 사람도 이순신이고  가장 죽이고 싶은 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차를 마시고 싶은 사람도 바로 이순신이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음

 

***영국의 조지 알렉산더 제독 왈

"넬슨 제독과 견줄 만한 해군 제독이 있다는 사실을 영국인들은 시인하기 힘들겠

지만 이순신은 동양의 위대한 해군사령관임에 틀림이 없다."

 

***일본의 해군 전략 연구가  가와다 고오 말씀

"한국인들은 이순신 장군을 성웅으로 떠받들기만 할 뿐 그 분이 진정 얼마나 위대한

분인지 우리 일본인보다 더 모르는 것 같다."라고 일침을 가한 적이 있음--바로 이

말이 현실로 되어 돌아왔다.

 

***서울 중구 인현동에서 태어난 이순신은 성장기 부터 무과에 급제한 32세까지 살

았던 충남 아산시 염치읍 현충사 경내 고택과 활쏘기와 말타기등 무예를 닦던 방화

산 자락의 임야등이 법원 경매 물건으로 나왔으며 1차 유찰되었음

***충무공의 혈통이 15대에서 끊어진 것도 모자라서 이순신 관련 유허들이 팔릴 지

경이라니 충격적이고 고개를 차마 들 수가 없다.

***뒤늦게 문화재청에서 지자체에서 덕수이씨 문중에서 나아가 독지가등이 나서서

일단 구입한 뒤 보존하겠다니 그나마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다.

***장군에 의해 섬으로 쫓겨난 일본 사람들이 이 뉴스를 듣는 다면 어떤 반응을 보

일까? "역시 .........."라면서 혀를 찰지도 모를 일이다. 참으로 부끄럽다!

 

 

***이런 성웅 이순신장군의 집안 사정이 정말 국민에게 큰 실망을 안겨주고 있다.

 

ㄱ.3월27일 덕수 이씨 충무공파 종친회에 의하면----2001년 충무공의 15대 종손인

   이재국씨(당시 65세)가 사망한 이후 8년이 지난 지금까지 16대 종손을 못 내세움!

ㄴ.이재국씨는 대학 재학 중 병을 얻어 요양하다 늦은 나이에 최모씨와 결혼했으나

   후손을 얻지 못하고 사망함

ㄷ.가족법 개정으로 호주상속제가 호주승계제로 바뀌면서 1990년에

   호주 사망 시 사후 양자를 세울 수 있다는 규정이 삭제되었기 때문에 절손상태임

ㄹ.덕수이씨 종친회에서는 대를 이으려 15대 종손이 숨진 뒤 사망신고를 미루고 인척

    인 이모씨(2001년당시 29세)를 서둘러 16대 종손으로 세웠으나 15대 종손 이재국

    씨-사망-의 부인이자 종부인 최씨는 양자와의 재산다툼이 일자 입적을 백지화함!

ㅁ.종부는 양자를 들이는 조건으로 양자의 재산 포기 각서를 요구했고 이를 종친회가

    반대함으로써 양자관계 파기소송을 제기하게 됨

ㅂ.대법원까지 가는 소송에서 법원은 15대 종손이 이미 사망한 뒤의 양자 입적을 이

    유로 종부 최씨의 손을 들어줌

ㅅ.후손이 매우 귀한 이충무공 가계---이번 16대 종손 후사 잇기 문제 이전에도 다수의

    우여곡절을 겪어온 바 있음

ㅈ.15대 종손 이재국씨의 4대조 역시 후손이 없어서---고조부를 양자로 들였음

ㅊ.증조부는 외아들이었지만 아들을 낳지 못했음

ㅋ.이에따라 할아버지가 양자로 다시 대를 이었음

ㅌ.아버지 역시 외아들인 이재국씨-15대 종손-만을 남겨 겨우 명맥을 이은 바 있음

ㅍ.종친회장 이재왕씨의 말----여러번 양자를 들일 정도로 종갓집은 대대로 후손이

      귀했다.

ㅎ.이재왕씨의 말---법률적인 문제도 있고 종부 최씨가 종가 재산 대부분을 매각처분

     하고 남은 것 마저 경매로 넘어간 상황에서 양자를 원하는 후손이 있을 것 같지 않

     다고 본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후손이 끊길 걸 생각하니 밤잠이 오지 않는다.

 

****이순신장군 시절로 다시 회상해 봅시다 ***

ㄱ.이순신장군의 셋째 아들 면---아산 고향에서 죽었음!--명량해전에서 이순신 제독

에게 참패한 일본군은 아들의 머리를 원했다.적의 칼은 몸을 어깨에서 세로로 갈랐다.

자식은 이순신이 두만강 삼수-녹둔도-에서 여진족과 목숨걸고 싸울 때 태어나서 아비가 남쪽 해안에서 일본군과 싸우는 동안 죽었음

 

ㄴ.적의 칼이 아비 자식 순서대로 따라 주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전쟁터에서 일생을 보낸 아비는 그 씨내림의 운명에 말을 잃었다.

 

ㄷ.자식을 앞서 보낸 아비의 고통은 깊은 바닷속에서 해일같았다 소설가 김훈은

"밀려 내려갔던 울음은 잇새로 새어 나오려 했다.혼자서 소금창고에 갔다.나는 엎드려 겨우 숨죽여 울었다. 적들은 오지 않았다."

 

ㄹ.이순신의 삶에는 죽음은 일상사였다. 적과 아군의 시신은 산과 바다에 널려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자식의 죽음을 가슴에 묻어야만 했을 것이다.

ㅁ.전라도 고금도에서 낮잠이 들었는 데 꿈에 아들 면이 나타났다 면이 말하길

"자식의 원수를 갚아주십시오!" 라고 하며 울었다.

ㅂ.이순신은 일본 포로 중에서 자식을 죽인자를 찾아내곤 "잘라 죽이라."고 명했다.

ㅅ.이순신은 아들 면이 숨지기 4개월전 옥에서 풀려나 남하하던 중 어머니의 부음을

접했다. 난중일기에 이순신은 "가슴을 치고 뛰며 슬퍼하니 하늘의 해조차 캄캄하였다."

고 썼다.

ㅇ.어머니와 아들을 먼저 보낸 이순신은 다음해 노량해전에서 그들을 따라갔다.

ㅈ.그의 죽음에 자살설-은둔설-전사설이 혼재하는 것은 그의 삶이 너무 극적이어서

그럴것이다.--현재 까지도 그러하다!

ㅊ.이순신의 마음을 아프게 한 아들 면의 묘소는 아산시 현충사 고택터에 있다.

이순신도 이 고택 인근에서 무술을 연마한 바도 있는 데 이 고택터 주변땅이 후손 빚을 못 갚아 경매에 내놓는 지경이 이르게 됨--만일 어느 일본인이 경매 예상 최고가의 몇배를 주고 사버린 다면 이를 어찌하겠는 가?

ㅋ.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바람앞의 등잔불 신세였던 조국을 온 몸으로 막아 싸운 장군의 혼이 서린 유허-유적지가 이런 지경에 처했는 지 

그리고 어쩌다 재산 다툼에 16대 종손도 제대로 내세우질 못해서 절손되었는 지

ㅌ.정말 가슴이 아리다. 뒤늦게 사태 수습에 나선 문화재청의 뒷모습이 아주 왜소해

보인다

ㅍ. 현충사에 걸린 이순신 제독의 칼이 부르르 떠는 것 같다.

ㅎ.충무공 탄신 464주년을 맞이하여 그의 생신달인 4월 유독 마음이 아프다.

***그리고 다음은 저 한준구 지난 수십년간 성웅 이순신 장군에 대한 여러가지 단상을 그냥 생각나는 대로 적어 보았습니다.

1.중학교 시절 단체 영화 관람한 성웅 이순신 장군이 지금도 기억이 나는 데 당시 그 영화에서 주연,감독 및 제작을 도맡아 한 지금은 작고한 김진규님의 열연 모습이 맨 먼저 떠오릅니다.

그런데, 나중에 20세 넘어 들은 슬픈 얘기로는 그 영화가 흥행

에 실패하여-지금 생각하면 세트 시설 및 판옥선, 거북선등이

그 당시에도 다소 조악하여 보였음-어릴적 우상이던 김진규님이

부인과 이혼하고 집안을 들어먹고 아주 힘든 기간을 보냈다는 소식에 가슴이 저미었으며 지금도 교육방송 티브이 일요일 한국 40년전이나 30년전 영화 리바이벌을 보면서 마음 아파한 적이 다수 있었음

2.몇년전 대하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 열연한 김명민주연의

사극이 생각나고

3.특히 황윤길 및 김성일의 일본 정탐 보고가 엇갈려 수많은 백성들의 피해를 자초하였고

4.7번 과거 시험을 보고 7번 모두 장원 급제한 바 있던 율곡 이이선생의 10만 양병설도 큰 아쉬움으로 생각나고

5.선조가 의주 방면으로 몽진하면서 "내가 죄인이야 ! 죽어야지 죽어야지 하면서 임란 발발이후에도 15년이상을 살았으며

6.이순신에 대한 모함을 막지 못하고 오히려 이순신에게 반역의 죄를 들먹이며 옥에 가두고 심한 체형을 가하던 역사적 사실에 치를 떨었고--친구인 서애 류성룡으 적절한 비호가 없었다면 이미 옥사하였을 지도 모르며 명량대첩은 물건너가고 아마도 어쩌면 호남 곡창지대가 약탈되어 임란이 더욱 장기전으로 치닫고 백성은 더욱 많은 피해자를 보았으리라 생각하면 지금도 그런 위정자들에 대해 치가 떨린다.

7.함경도에서 27세의 나이에 북관대첩의 쾌거를 이룬 정문부 장군은 비교적 승승장구하다 말년에 어느 모함에 걸려 옥에 갇히는 등  어려운 노년을 보낸것도 마음이 아픕니다.

8.중학이나 고교시절 소풍이나 수학여행을 가면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이 문화재는 임진왜란당시 불타 100여년 뒤에 중건하였고 내지는 이 문화재는 몽고의 내침으로 불타 200여년뒤에 재건하였고 등을  여러번 보아온 것이 새록새록 기억이 납니다.

9.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너무 큰 양대 난리를 겪고도 정신을 못차린 조선 왕조의 지도층--특히 노론 계열--은 다시 일본에 유린당하는 슬픔을 또 겪게됨

10.정유재란부터는 엄청 포악해진 일본 수뇌부는 보는 즉시 조선 양인들의 귀나 코를 베어 소금에 절여 배로 실어 나를 것을 명령하는 등 만행을 일삼던 일들에 지금도 치가 떨립니다.

11. 일부 학자들은 임진왜란은 문화재 약탈 전쟁이었다고 보고 있으며 특히 일본에 잡혀간 학자 강항은 일본 유학계가 퇴계 이황의 학설을 정치 통치의 기반을 잡는 데 본의아닌 길잡이가 되었고

12.특히 조선의 도자기 기술자들은 특별 대우를 받으며 본의아니게 일본에 정착하여 일본 도자기 기술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고 이것이  후일 전 유럽에 수출하여 엄청난 외화를 벌여 들여 이 돈이 결국 일본 제국주의 및 명치 유신 근대화에 크게 기여하게 되어 임란후 400년뒤 또다시 조선 침탈및 강제 합병하게 되는 기폭제가 되는 역사의 아이로니를 어떻게 보아야 할지요?

나중에 시간나면 또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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