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10월1일 국군의 날입니다.
이날은 6.25전쟁 발발후 9.15 인천상륙작전 성공 9.28 서울 수복에 이어 우리 국군이 처음으로 38선을 처음으로 돌파해 북진한 날이었는 데 우리 대한민국은 이날을 반공냉전체제하에서 큰 대안없이 그냥 '국군의 날'로 기념하고 un day(국제연합의 날-10월24일)처럼 정식 공휴일로 지내다가 추석연휴-대개 3일 안팎-의 영향으로 공휴일을 줄이자는 산업계의 하소연으로 가장 만만한 유엔데이의 휴일을 없애고 또 국군의 날 그리고 한글날의 정식 공휴일을 없앤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육군 정훈감을 지낸 개혁성향의 표명렬 장군등은 우리 대한민국의 헌법 전문-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에 의거하여 국군의 날을 10월1일이 아닌 광복군 창설일인 9월17일로 당연히 바꿔야한다고 도하 각신문이나 시민단체 신문에 자주 기고를 하고 있으나 아직은 소위 '찻잔속의 태풍'으로 치부되고 있는 안타까운 실정입니다. 그는 자신의 저서 '개혁은 혁명보다 힘들다.'에서 이는 해방후 광복군 계열의 군인맥이 정일권등으로 대표되는 만주군 및 일본군 인맥에 의해 제거되었고 군에도 오래도록 친일파및 친일 추종세력등이 잔존하여 과거의 친일경력을 반공세력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여러 잘못된 군사문화가 형성되었고 이중 하나가 국군의 날 설정 잘못이라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날 10월1일은 한미동맹의 날이기도 합니다. 아마 언젠가는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은 광복군 창설일인 9월17일 되리라 사료됩니다.그리고 저의 단견으로는 아마 인천상륙 성공이후 38선을 넘어 북진할 바로 그무렵 유엔군 총사령관은 엄청 고민을 하였고 -왜냐하면 북진을 하려면 사실 유엔의 승인이 필수였으나 당시 남한의 국민 정서및 욱일승천의 기세로 밀어 부치는 당시 상황으로 보아 그 누구도 38선에서 일단 멈추자는 소수의 의견이 무시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며 최근 밝혀진 극비문서를 열람한 방선주 박사에 의하면-이분은 미국 극비 문서중 해제된 것을 지난 30년간 열람한 거의 유일무이한 한국인임- 6.25전쟁 1년전 전 중국 대륙을 통일한 공산주의 모택동 중공을 일거해 밀어내고 수복하기 위해 한반도로 중공군을 유인한 증거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음-만주 핵폭격으로 민주 중국대륙 완성 목표-한 바 있으나 너무 민감한 사안이라 아직 한국에서도 거론을 기피하고 있는 듯함- 미국 정보 요원으로 6.25전쟁 전 부터 근무해온 '박하리마오'님도 몇년전 죽기전에 꼭 밝힐 것이 있다고 하면서 일본에 있던 전후 미군 최고 사령부에서는 이마 한국전 발발의 d-day h-hour 를 정확히 4개월 전에 알고 있었다고 술회한적이 있었고 45년 태평양전쟁및 유럽의 2차대전이 예상보다 빨리 끝나 미국은 유럽에서 돌아온 수많은 전쟁 용사들의 취업-6.25직전 미국에선 최소한 500만명의 미취업자가 있었다고 함-과 혹시 다시 올지 모를 1929년이후의 두번째 대공황 예감에 적절한 국지전을 구상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는 것 같다. 1898년의 미국과 스페인전쟁 유발-이당시 미국 해군 수병 800명을 이 전쟁 유발을 위하 미필적 고의로 적의 공격으로 수장시킴-나중의 베트남전도 통킹만 메덕스호가 적에게 피격당하게 내버려 둠- 1990년의 걸프전쟁도 미국은 일본및 유럽 각국에서 420억 달러의 전비를 지원받고 구식 무기 체제를 이 걸프전에서 많이 쏟아 버리도 새 무기체계로 업그레이드 시키고 약 100억불이 남았다고 합-4년전 대 이라크 전도 대량살상무기가 있는 것으로 치고 -미국 정보부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허위보고 최근 폭로됨-공격을 감행하여 엄청난 피해를 주고 받음-등을 미루어 짐작하건 대 위에 기술한 방선주 박사및 박하리마오 정보원의 주장은 다소 신빙성이 있다고 저는 개인적으로 봅니다. 다음에 계속됨 ***우선 댓글은 추후 수정및 보완이 안되오니 당분간 사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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