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를 기억하십니까?(73년 야구우승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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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3,195회 작성일 2007-11-18 05:32본문
10여년전 대고 졸업 20주년 행사 당시 나 한준구와 함께 공동 사회를 보던 김진원의 글과 귀중한 사진 정말 감개무량하단다.
1972년 당시 우리 야구부 에이스 이영국투수(2학년)를 비롯하여 1년 선배인 3학년 박동훈-최근 10년간 개인적으로 10번은 만난 적 있음.그리고, 박상범-72년 청룡기 야구대회 10타수 5안타로 타격상받음.-2명의 선배와 함께 고교 2학년 시절 청룡기 대회에서 준결승 까지 올라 당시 중앙고교-에이스는 윤몽룡,포수는 김승수-위대한 감독 김영조 감독의 아들-에게 석패한 생생한 기억이 납니다.
그 당시 대전고교 야구선수들은?
투수는 이영국,포수는 서대전 초등-대전중 출신의 안의현,1루수는 1년 후배인 육상훈-키크고 잘생긴 후배-지금은 어떻게 지내는 지 궁금?-2루수는 오남진(정구선),3루수는 이광열 ,유격수는 이은구, 외야수는 좌익수 박동훈, 중견수 박상범,우익수는 잘 기억이 안남-(후배 김정표? 동기 이동훈?)-1970년 당시 대전중 에이스였던 박상열이 서울 동대문 상고로 잡혀가지 않았더라면 -당시 소문에는 방 3칸 전세값에 해당하는 40만원에 마무리 되었다는 뜬소문을 직접 들은 바 있는 데 만일 박상열이 우완 사이드 암 투수로서 좌완인 이영국과 원,투 펀치를 구사했더라면 당시 최강 경북고나 경남고 서울의 몇몇 명문 고교와 늘 명승부를 연출했을 터 인데 30여년이 지난 지금도 박창열 선생님등이 왜 잡아두지 못했나 하는 아쉬움이 크게 남지요! --1971년 대전고교는 탁구부 창단을 기획하여 서천 계명중의 윤요한과 대전중 한동우를 중심으로 창단하려 하였으나 한동우가 서울 동대부고로 잡혀가는 바람에 금방 무산된 상황이 또 기억에 납니다.-다음에 계속됨-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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