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화산 등산 모임 참여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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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41 진만석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2,197회 작성일 2007-07-21 05:32본문
開花山 登山 모임 參與 記
우리 同窓들이 서울에서 만든 登山모임이 開花山, 牛眠山, 아차산 등 세 곳이라는 所聞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또 各各의 登山모임이 會員들의 健康增進은 물론 同窓들의 親睦을 더욱 鞏固히 하면서도 우리들의 格에 맞게 品位도 維持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래서 나도 언제 한번 參與해 보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우리 大田에도 그 年輪이 比較的 오래된 雄飛 山岳會(會長 張世雄)와 近間에 새롭게 活潑한 活動을 보이고 있는 白雲 山岳會(會長 宋翼淳)가 있다. 또 大田 月例 모임도 尹明浩 會長, 睦榮奎 總務의 主管으로 登山으로 行해지고 있기도 하다.
나는 退職 후 雄飛 山岳會에 入會하여 山行을 즐기고 있다. 또 白雲 山岳會 모임에도 옵서버로 몇 번 參與했었다.
지난 6월에는 每週 土曜日에 모인다는 牛眠山 모임에 陽谷 徐弘圭와 함께하여 한 때를 즐긴 바 있었다. 그때는 會長 潤亭 吳榮錫 先生 말고는 卒業 後 처음 보는듯한 同窓들을 많이 만났었다. 正天 朴永祥, 蒼岩 劉京鍾, 松山 申明均, 曉然 任曉鍾, 유泉 朴喜雄, 雲空 田光男, 瑞亭 李信燮, 厚光 李光雨, 廣天 具滋浩, 白民 吳斗凡 等의 面面이었다.
이번에는 지난 7월 15일 開花山 모임에 參與했다. 7시에 맞추어 가려고 하였으나 地理에 익숙하지 못하여 20여분 늦게 방화역에 到着했다. 陽谷이 나를 기다렸고, 조금 늦게 온 文炳祿 大使와 앞서 간 一行을 뒤쫓았다. 山行을 거의 다 마무리하는 地點에서 徐聖根과 吳長燮을 만났다.
朝餐費는 李大勳이 낸단다. 마침 初伏이라 메뉴는 蔘鷄湯이었다. 지난번 보다는 아는 面面이 좀 있었다. 李大勳과 金承玹, 宋熙相, 咸太泓, 徐聖根은 알겠으나, 역시 다른 同窓들은 낯이 설었다.
이 홈피에서 그 이름을 익히 알고 있는 李鍾八을 보았고, 會長인 閔大植, 金善浩, 權寧佑, 白台鉉, 鄭照雄, 鄭光秀 等을 만났다.
특히 鄭光秀의 先代와 先親은 무슨 因緣이 있는 것 같았다. 내 아버지는 每年 설날이면 나를 데리고 文昌洞 냇가의 엿집으로 歲拜를 다니셨다. 高校 時節에는 光秀도 나도 서로 모르고 지냈다. 그 집 방안에 大高 帽子를 쓴 學生의 寫眞이 걸려 있는 것은 보았었다. 玄光緖 等의 이야기 속에 鄭光秀의 元來 집이 文昌洞이었고, 엿집을 했었다는 말을 들은 바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 光秀에게 確認하였더니 그 엿집이 내가 歲拜 다녔던 바로 그 집이었다.
아침을 먹은 後 閔大植 會長이 運營하는 藥局으로 가 時勢보다 싸게 아로나민 골드 2통을 샀다. 閔 會長은 大田에서 온 膳物이라며 1통을 거져 주었다. 廉恥없이 받았다.
宋熙相은 내가 모처럼 서울 나들이를 하였는데 그냥 보낼 수 없다며, 撞球 게임으로 時間을 보낸 後 한 盞 더 하자고 서둘렀다. 個人的으로 親分이 두텁지 아니한데도 그런 配慮를 베푸는 宋熙相이 고마웠다. 弘圭 말로 熙相이는 平素에도 우리 同窓들을 끌어안으려는 包容力을 보였다고 했다. 그러하지만 나를 위한 그의 厚意는 고맙기만 하였다. 附近의 곱창집에서 宋熙相, 金承玹, 咸太泓, 弘圭, 나 이렇게 다섯이서 옛날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弘圭도 査頓과 約束이 있었고, 나 또한 저녁에 初等學校 同窓 모임이 있어 자리를 罷했다. 함께한 金承玹과 咸太泓에게도 고마움을 表한다.
此後에는 나머지 아차산 登山모임에도 參與할 機會를 갖고 싶다. 이제 나이 먹어감에 따라 옛 親舊들이 그립기도 하며, 아련한 옛 學窓時節의 追憶에 빠지고 싶어서이다.
2007. 7. 18.
儒廣 陳 萬 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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