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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룡? 선생 상경기의 변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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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41 진만석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1,795회 작성일 2007-06-30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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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룡? 先生 上京記의 변종 

 

 막내 子息 놈이 서울에서 職場 生活을 하고 있는데, 여름 洋服을 宅配로 보내 달라는 連絡을 해 왔다.

 宅配로 보내주는 것보다 우리가 直接 가져다주는 것이 낫겠다고 마누라와 合意한 뒤 6월 18일 上京하기로 하였다.


 交通便은 乘用車를 가져가기로 했다. 지난 6월 2일 먼저 子息 놈이 살고 있는 집을 갔다 왔던 마누라가 乘用車를 가져가도 좋다는 말을 해서 그에 따르기로 했다.

 서울 料金所를 지나 開浦 IC로 빠져 直進하다 道谷驛 쪽으로 左回轉 하면 쉽게 住公 開浦 2團地가 나온다는 것이었다.


 그 놈이 그 쪽으로 집을 옮긴 지 한참 되어 한 번 가 보아야 할 터이지만, 그동안 마누라가 허리 痛症으로 여러 차례 入 退院을 反復하는 통에 미루어 오던 차였다.


 事實은 6월 1일 子息 놈이 내려 와 우리를 데려 가기로 되었던 計劃이 제대로 이루어 졌었더라면 좀 더 일찍 上京의 機會가 있었을 뻔하였다.

 萬若 子息 놈 車타고 6월 2일 上京했었더라면, 고 姜大植 同門의 殯所도 들리고 兼事兼事 同窓들도 만날 수 있었을 텐데, <그날 당장 내려 와야 한다> 는 마누라 固執에 화가 나 上京을 抛棄했던 것이다.

 그 때는 <마누라 버릇 고치기>를 하는 冷戰 中이었었다.


 18일은 子息 놈과 셋이서 저녁을 먹고, 7.5 坪밖에 안 되는 좁은 곳에서 하루를 묵었다. 아직 장가를 가지 않은 놈이었기에 可能했다.


 이튿날 19일 10時傾에 서홍규한테 連絡을 하여 우리가 목동 쪽으로 가기로 하였다.

 <서울 地下鐵 案內圖>를 ‘보고 또 보고’ 하며, 道谷驛에서 3號線 타고, 다시 敎大驛에서 循環線으로 바꿔 타 永等浦區廳驛에서 내려, 5號線으로 갈아타고 목동역에서 내리다 보니 點心時間이 훨씬 지난 午後 2時 傾이었다. 허리 수술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마누라 걸음이 늦어 더욱 시간이 遲滯되었다.

 弘圭가 자기 車를 가져 왔다. 近處에서 잘 한다는 李朝食堂에서 咸興式 冷麪을 도가니와 곁들여 맛있게 늦은 點心을 먹었다. 肉水의 입맛이 그럴듯했고, 도가니도 適當히 졸깃하여 입에 맞았다.


 점심 후 淸溪川을 구경하기로 하였다. 마누라가 보고 싶어 한다는 말을 하자 홍규도 仔細히 구경하지 못했다며 그 쪽으로 方向을 튼다. 은근히 期待가 되었다.

 광교에서부터 시작하여 내려가며 구경하였다. 잘 造成된 청계천의 새로운 모습에 感歎詞가 절로 나왔다. 흘러가는 맑은 물에 洗足도 했다.

 淸溪川 造成에 否定的이었던 與黨의 反對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이를 推進하여 결국 成功한 李明博 前 서울市長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다음은 仁寺洞 쪽으로 갔다. 오고 가는 사람 중 相當數가 外國人이었다. 日本人, 西洋人, 東南아시아계의 사람, 黑人 등 人種도 多樣했다.

 일 萬원 주고 밀짚모자를 샀다. 正裝에 밀짚모자를 쓰고 다녔으나 아무도 觀心 두지 않아 神經이 쓰이지 않았다.

 저녁은 寺刹음식을 잘 한다는 <산촌>이라는 곳에서 먹었다.

 煙燈을 천장에 나지막하게 걸어 놓고 밥상마다 촛불을 켜 분위기는 얼싸 그럴 듯하였다. 그러나 우리들에게는 음식이 별개 아니었다. 식사는 오직 한 가지 메뉴뿐이었는데, 여러 가지 菜蔬를 무쳐 놓았고, 튀김을 만들어 내 놓아 가지 수는 열 몇 개가 넘었다. 외국인들이 우리의 傳統을 體驗한다는 意味라면 괜찮은 곳이었다.

 젓가락과 숟가락은 나무로 만들어 옻칠을 한 것을 썼다. 옻칠이 벗겨져 남이 먹던 것처럼 보였다. 차라리 대나무로 된 것을 썼으면 더 나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식 값이 너무 비쌌다. 一人當 3萬 5千 2百 圓이었다. 과거 中國이 外國人 觀光客과 그들 內國人의 觀光料金에 差를 둔다고 하였는데 그리함이 어떨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너무 폼만 잡는 食堂이었다.


 上京 3일 째 午前은 마누라와 함께 東大門 市場을 돌아 다녔다. 旅行用 가방을 사고, 여름용 모자도 흥정해 보았다.

 오후는 전날 總同窓會 홈페이지에서 母校 籠球팀이 4시에 蠶室 學生體育館에서 決勝戰을 치른다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應援을 가기로 하였다.

 마누라는 집에 있으라고 하고, 개포동에서 그리 멀지 않은 그곳으로 또 地下鐵을 타고 갔다. 到着했더니 벌써 競技는 반 가까이 進行되고 있었다. 前半戰을 40:31로 이겼다. 前半戰 終了 몇 秒 前 우리가 멋진 長距離 슛을 成功시킨 結果였다.

 後半戰에서도 서울 대진고의 追擊이 있었지만 끝까지 餘裕롭게 競技를 마무리 지었다.

 기뻤다. 만약 내가 經濟的 餘裕가 있었다면 後輩들을 激勵하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하여 젊은 時節 돈을 벌어 놓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다.


 上京 4일 째 午前에는 전날 사지 못했던 여름용 내 모자를 사기 위해 또 동대문 市場에 갔다.

 집에서 떠나기 전, 홍규에게 오늘 저녁은 그럴듯한 곳에서 品位를 維持하며 먹을 수 있는 곳을 정하면 내가 사겠노라고 하여 驛三驛 부근의 <트라이 베카>에서 弟嫂씨?(차숙자 여사)도 함께 하기로 約條하였다.

 19일 우리는 둘이었지만, 弘圭네는 車 여사가 그들 둘째 딸이 하는 인테리어 業所의 디스플레이를 돕기 위해 같이 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날은 꼭 參席하기로 約束 받았다.


 食堂 <tri beca>는 驛三驛 <現代 타워> 1層이었다. 우리들이 品位를 維持할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이 부근에서 일을 한다는 弘圭네 둘째 女息이 追薦한 곳이란다.

 우리들은 주로 子息과 며느리 이야기를 했다. 子息과 며느리는 맘대로 안 된다는 것이 주된 內容이었다. 麥酒를 곁들여 저녁을 즐겼다.

 내가 서울 同窓들이 모인다는 <개화산 팀>의 日曜日 登山모임에 參席하고 싶다는 말을 하자 홍규가 對馬島 島主 ‘종의지’ 後孫의 招請? 으로 土曜日 午後에는 出國한다고 하였다. 그 대신 土曜日 午前에는 時間이 있으니, <우면산 팀>에 가면 어떻겠느냐고 하여 그리 하기로 하고 헤어졌다.


 上京 5일 째는 아들놈이 사는 데 不便하지 않도록 不足한 것을 마련하고, 整理하는 일을 주로 하였다.

 아파트 바로 옆의 公園에서 散策도 하였다. 자식 놈이 사는 2단지와 3단지 사이에 있는 公園은 숲이 우거져 걷기에 좋았다. 區民들이 運動하고 休息하기 좋게 江南區廳에서 잘 造成해 놓았다. 住居地 바로 옆에 이런 숲이 있는 것은 우리 大田보다도 나았다.


 上京 6일 째 아침 7시 <선바위>驛에서 만나기로 하여 일찍 나섰으나 20余分 늦었다. 同窓들 여러 名이 나왔으나, 오영석만 確實하게 알겠고 나머지는 잘 모르겠다.

 1시간 30여분 정도 登山을 마치고 아침을 먹으러 갔다. 朝餐 費用은 돌아가며 負擔한다던데, 천둥에 개 뛰어들듯 와서 ‘짜공’으로 밥 얻어먹고 가기 거시기 하여 그날 費用은 弘圭와 같이 負擔하기로 오영석 會長에게 말해 두었다.

 이름을 알기 위해,

 내 마누라가 나를

 <大高를 뒷문으로 入學하여 뒷문으로 卒業한 形便없는 인사>

 라고 못 믿고 있다는 구실을 내세워,

 

 <진만석이 틀림없이 大高를 正式으로 入學하여 卒業했다>

라는 確認書를 받았다.


 오영석을 비롯하여 박영삼, 신명균, 임효종, 유경종, 전광남, 이광우, 박희웅, 오두범, 구자호, 이신섭 등이었다.

 

 다른 사람들과는 다 헤어지고, 李光雨와 弘圭가 바둑을 두기 위해 내리는 교대역에서 따라 내렸다. 그들은 서로 맞수로 이겼다 졌다하는 莫上莫下였다. 結局 勝負를 가리지 못하고, 늦은 점심을 먹기로 하였다.

 近處 粉食店에서 칼국수를 시켜 먹고 있는 途中에 마누라한테서 연락이 왔다.

 시집 간 딸에게 청계천을 구경 시켜 주기로 하고 여태까지 안 오면 어쩌겠느냐는 詰難이었다. 서로 죽고 못 사는 마누라와 딸은 자기들끼리 미리 약속을 하고 <놀土>를 이용하여 土曜日 午前에 딸애가 올라 와 合流하기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決判을 내기위해 다시 棋院으로 가고, 나는 아들 집으로 향했다.  그 시간 아들 녀석도 敎育(國際購買士 資格 取得 敎育)을 마치고 함께 저녁을 먹고 있단다. 집 부근의 식당으로 갔더니 7시가 넘어 있었다.

 

 나는 하루 더 자고 日曜日 午後에 내려가자고 하였으나, 제 男便이 혼자 있으니 此後에 다시 오기로 하자는 딸아이의 대견한 말을 따르기로 하였다.

 

 장마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가운데 그 아이가 運轉을 하는 車中에서 나는 잠에 골아 떨어졌다. 실컷 자다 깨어보니 大田에 到着했다.

 

 딸아이 집인 경성 큰 마을 아파트에 가서 그 애는 내리고, 약간 술이 덜 깨어 걱정이 되었지만, 내가 運轉하여 집에 到着하니 子正이 넘어 있었다.

 

 그리 길게 있을 豫定은 아니었는데 머물다 보니 一週日이 되어 버렸다. 火曜日 西區 文化院 장구배우기에 缺席했고, 水曜日 역시 文化院 장구 練習에 缺席, 木曜日 屯山 2洞 장구 팀 點心 會食과 장구 練習에 不參했으며, 金曜日 西區廳 <서람이 大學 講義>에 缺講이 되어 그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2007.  6.  26.

                                             陳  萬  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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