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교 교가가사를 바꾸는 문제에 대하여
페이지 정보
작성자 : 41 진만석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2,346회 작성일 2007-03-19 17:54본문
모교 교가 가사를 바꿔야 한다는 장홍기님의 생각에 전적으로 찬성합니다. 그에 대하여 한준구 후배님의 글에 답하는 글도 잘 읽었습니다.
이미 지적하신 바대로 중국은 고래로 당치도 않은 중화사상에 빠져 그 주변을 모두 저들에게 복속하는 졸개로 아는 착각 속에 살아 온 민족입니다. 더구나 요즘에 와서는 소위 동북공정이란 것을 추진하며 고구려와 발해의 옛 역사를 통째로 집어 삼키려는 야욕을 보이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건데 우리 선조들은 {춘추(春秋)의 부월(斧鉞)밑에서 자라면서, 공자의 <春秋>를 역사의 극칙(極則)으로 알고 그 의례(義例)를 흉내 내어, 존군억신(尊君抑臣:군신을 높이고 신하를 억누름)을 주장하다가 민족의 존재를 잊어버렸고, 숭화양이(崇華攘夷:중국을 숭상하고 오랑캐를 물리침)를 주장하다 끝에 가서는 자기 나라까지 배격하는 벽론(僻論:편벽된 주장이나 논리)에 이르게 된 것 - 단재 신채호 선생 ‘조선 상고사’} 朝鮮, 扶餘, 三國, 東北國 (발해), 高麗, 李朝를 거치는 5천년 이래 전 조선은 거의 하나같이 文弱하고, 치우치고 작음(偏小)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이제 와서는 여기에서 과감하게 벗어나야 하겠습니다.
실제에 있어 우리 옛 三朝鮮은 당당하게 燕, 趙, 秦, 漢을 핍박하였습니다. 그들은 이를 겁내 장성을 쌓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다만 우리 선조들이 역사기록물을 소홀하게 취급하고, 업신여겼으며, 그로 인한 滅失로 전해지는 것이 적었습니다. 사마천이 지은 <史記>를 비롯한 중국 쪽의 왜곡된 기록들만이 남아 우리를 왜소하게 만들었습니다. 그에 더해 일제 강점기에 이병도 같은 식민사학자들에 의해 더 더욱 왜곡된 바 있습니다.
우리 조선족은 일찍이 송화강 변의 하얼빈(扶餘)에 그 뿌리를 내리고 定住하였습니다. 그 송화강은 <아리라:오리 鴨)이고, 하얼빈(哈爾濱)은 <불> (扶餘)이며, 그 곳의 산이 阿斯達(완달산)입니다.
차제에 모교 교가를 바꾸는 김에 아예 ‘장백’은 ‘아사달’로, ‘백마강’은 ‘아리라’ 로, ‘남팔’은 ‘大단군’으로 함이 어떨지요?
중국 측의 동북공정에 대한 엇박자로 아예 그들의 영토이지만 우리의 옛 고토인 송화강까지 올라가 봄이 차라리 낫겠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