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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한국 현대바둑의 개척자 ,조남철 선생의 서거에 삼가 애도의 뜻을!-조남철훼밀리와 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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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3 한 준 구 이름으로 검색 댓글 0건 조회 2,587회 작성일 2006-07-28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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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준구 [alfonsohan@yahoo.co.kr] 2006.07.04

글 제 목 : 아! 한국 현대바둑의 개척자 ,조남철 선생의 서거에 삼가 애도의 뜻을!-조남철훼밀리와 박정상후지쓰배 우승!

한국 현대 바둑의 개척자,선구자 이신 송원 조남철 선생께서 83세를 일기로 타계하
심에 삼가 애도의 뜻을 표하며 그를 기리고자 재경 53회 기우회 촘무로서 다음과 같이
그분의 이력을 간략히 기술하오니 바둑애호가는 물론, 동기 제위의 바둑에 관한 배전
의 관심을 이번 기회에 가져주셨으면 하며 후일 재경바둑팀과 대전 동기 기우회간의
친선 수담의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입니다.

**** 조남철 선생께선 일제말엽의 격동기에 아무도 돌보지 않던 우리 바둑계의 아주 척박
한 토양을 개간하고 씨앗을 뿌려 1990년대 조훈현,이창호등이 우리를 매우 우습게 보
던 일본,및 중국의 모든 천재급 기사들을 모조리 누이고 세계를 완전히 제패하는 데
그 초석을 단단히 하셨던 선구자 이셨다.

조선생께선 1923년 전북 부안의 줄포에서 태어나셨으며 -- 그 유명한 영화배우
허장강(현역배우 허준호의 친부)도 1923년생 이셨으나 이분은 1975년 서울 운동장
에서 연예인 축구대회 시함도중 심장마비로 52세로 돌아가심-- 매주 일요일 이비에스
교육방송 티브이에서 밤 11시 한국명화 시리이즈에서 최근 몇년 사이에 돌아가신 옛
40년전의 명배우인 김진규,최무룡,황해,장동휘,독고성,김희갑,박노식,여배우 문정숙-그
리고, 생존하고 계신 남궁원,이대엽, 신성일, 황정순, 엄앵란 등의 모습을 볼 수 있음--

1937년 만 14세의 어린 나이에 도일하여 그 유명한 기타니 9단의 문하에 들어가 조센징
차별을 동료 연구생들로 부터 극복하고 사모님의 잔심부름도 끊임없니 해나가면서 밤잠
을 줄이고 이를 악물고 공부한 끝에 만 18세인 1941년 -- 그 유명한 일본의 하와이 기습
으로 -- 1941.12.07-- 과 같은 해 한국인 최초로 일본 기원 정식 프로 기사가 된다.

조남철은 이후 일본 명문 가문의 양자로 오라는 제안을 거절하고 1944년 귀국함.

*** 1945년 겨울-- 한성 기원 설립( 한국기원의 효시로 인정되어 2005년 60주년 행사
를 이를 기념하여 한 적 있음)
이때부터 바둑은 오락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라는 인식 전파노력함!

1950년6월22일: 27세의 조남철- 전국의 노년의 국수,초년의 고수들 모두 모아
전국규모 단위 결정 시합 개최-- 6.25당시에도
미아리 포성과 한강다리가 끊겨도 이대회를 마침.

*** 2004년 조남철 회고록: 그 유명한 3번의 눈물에서

첫번째; 도일 유학시절의 조센징의 설움으로 눈물
두번째: 6.25전쟁중 파괴된 기원을 둘러보다 바둑돌을
주섬주섬 챙기면서 바둑돌이 예쁘다는 생각을
처음 하며 눈물을 쏟는다
세번째: 기원의 셋방살이 16차례 이사끝에 현재 종로 2가
번화가 관철동에서 한국기원회관 빌딩 기공식애
서 첫삽을 뜰 때 등 총 3번 이 선구자는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 6.25사변에 참전: 적의 총탄을 맞고 간신히 목숨 건져 부산에 내려가 상이용사
요양원에서 기원재건 노력.
**** 1955년 최초의 바둑 입문서 이며 불후의 명저인 "바둑개론'출간-- 수십판 거듭한
베스트 셀러가 됨!--승단제도 확립!

**** 1956년 : 최초의 프로 기전인 국수전(당시에는 국수1위전이라 불림) 개최- 최고 권
위의 기전으로 발전하고 그
어느 프로바둑 기사도 이 국수전에서 우승하여 국수 칭호를 얻는 것이
최고의 영예로 알고 있으며 6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 대회에서 조남철
이 9회 연속 우승하고 이후 김인-윤기현-하찬석-조훈현-서봉수-이창호
- 중국계 바둑 마녀 루이 나이웨이(당시 조훈현을 완전히 싸움바둑으로
완전히 이겨 - 우승하여 이는 전세계 남여가 함께 경쟁하는 대회에서
세계 최초의 어쩌면 전무후무할 대사건임.)- 최철한 이 국수의 칭호를
받았으며 세계 최고의 공격수 유창혁도 넘보지 못한 최고 권위로 지금
도 인정 받음
**** 1950년대 및 1960년대 최강 조남철: 국수전 9연패및 총 30회 우승
1962년 조남철에 도전하다 패한 김인이 도일
유학후 돌아와 드디어 1966년 김인 시대를
열게됨.
**** 1962년 조남철에 패한 20세의 김인을 - 기타니 문하에 갈 수 있도록 주선하고
이후 윤기현(지금도 여성프로와 바둑케이블티브에서 맹활약하고 있으며 수십년
간 테니스로 체력단련을 하고 있음)-- 경상남도 합천 도사 하찬석-- 조치훈--
조훈현등의 바둑 천재들을 소년시절,아동시절 일본 유학을 주선하여 귀국후
모두 국수위 쟁취를 1번이상 해보는 기염을 토한 진기록을 이끌어 낸 조남철임.

**** 저 한준구가 처음 바둑을 배울 때인 1970년대 저는 바둑을 두다 변이나 귀에서
꼼수나 암수로 동원하여 2집을 내려 바둥바둥 하면 주변에서 이것은 조남철이
와도 2집 못내 소리를 듣곤 했으며 지금까지도 원근 각처에서 "이건 조남철이
와도 안돼!"는 하나의 브랜드로 수십년간 수많은 기원에서 고수들이 늘 써왔던
추억의 바둑 명언중의 하나였는 데 이젠 "전투의 귀재 조훈현이나 3중허리 이
창호가 와도 안돼!" 등으로 아쉽게도 바뀌어야 하는 조선생의 서거는 이런 의
미에서 조차 무척 마음이 에린다.

**** 한국 최초의 9단은 ? 아쉽게도 조남철국수가 아니라 조선생이 직접 만들어
놓은 세계에서 제일 어려운 승단제도(특히 9단 승단이)
로 인해 20년간 8단으로 머무는 동안 --이후 다소 쉽게
고쳐 당시 바둑황제인 조훈현이 수혜자가 되어 최초의
9단이 되나 - 그당시 연로하신 조남철 8단에게 먼저
헌정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여 두고두고 지금까지도
프로바둑계에선 수치스런 일로 호사가에 의해 이따금
인구에 회자되고 있음.- 한참지나 9단으로 헌정하게됨.

**** 조남철 9단의 집안 프로기사 : 일본 프로바둑계를 10년이상 완전히 평정한
바 있는 목숨걸고 둔다는 조치훈 9단

--그는 6세에
도일하여 11세에 당시 최연소 입단하였으며 일본
최고 오래된 기전인 본인방 10연속 우승의 금자탑
을 포함하여 기성,명인,본인방의 한시즌 3관왕을
(일본에서는 대삼관이라함) 3회이상한 유일한
조치훈이며
총69회의 우승기록으로 일본 1위이며

2위는 은퇴한 면도날 사카다9단이 64회- 조치훈
9단의 바둑인생 최고의 라이벌 고바야시(소림광일)
9단이 3위로서 총 59회 우승으로 (은퇴 직전임)


어쩌면 이조치훈
의 총 우승 횟수는 영원히 깨지지 않을 듯함.

그리고, 일본 기원 5단의 치훈의 친형 조상연 프로-
이분은 오로지 동생의 일본 정복을 위해 헌신함.

그리고,조치훈의 외조카인 최규병9단과 이성재7단
이 있으며 - 특히 최규병 9단은 12세에 입단한
천재로 만약 고교와 대학을 안가고 바둑공부에
일로매진했으면 한국 바둑계를 뒤흔들었을 지도
모르는 인재--적어도 최철한이나 이세돌정도는
가능했을 수도- 이런 얘기를 하는 애기가들이 많음.

**** 7월 4일의 일본 국제기전 후지쓰배 박정상 6단의 우승은 조남철 대국수의 서거
소식에 접한 박정상이 그 분의 업적을 더욱 빛내기 위해 투혼을 발휘하여 파죽의
4연승으로 우승을 거머쥔 쾌거임. --그의 우승을 점친 사람은 거의 없었을 정도--

그리고 , 이 우승은 일본 한복판에서 1998년부터
지금까지 9년 연속 한국우승의 대기록을 이어가는 쾌거이며 박정상 개인으로는 그
동안 독사 최철한, 황태자 박영훈의 그늘에 가려 마음 고생이 극심해 바둑을 한 때 포

하려고 한 적이 있을 정도의고비를 완전히 씻어낸 것이며

일거에 6단에서 우리승단
규정에 의해 9단으로 승단하였으며 병역특례의 보너스는 물론, 상금 1억2천만원도
챙기는 겹경사를 맞이하였고 올해초 부터 유난히 중국 인해전술전략에 걸려 세계
대회5회 이상 계속 우승을 놓치는 -- 이창호에게 15회 이상 패하여 현역은퇴한 마효춘
이 총감독이 되어 타도 이창호 전략을 수립하고 어린 후배천재들에게 맹훈련을 시킨
상황에서 중국이 올해 세계바둑대회를 휩쓸고 있던 중-- 우를 범하곤 하여 한국900만
바둑팬을 실망시키곤 하던 차 박정상이 정상에 올라 무더위에 소나기 내리고 시원한
비개인 오후같은 상쾌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 다시 한번 조남철 선구자의 명복을 빌며 이만 줄임니다.

**** 그리고, 정부에서는 돌아가신 조남철 대국수에게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함.


2006.7.4 재경 53회 바둑모임 총무 한준구 올림

펌 : 53 류동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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