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한 청량제! - 프로야구 불멸의 기록!그리고,위대한 장훈,윤몽룡,민병달,장명부,최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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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3 한준구 이름으로 검색 댓글 0건 조회 2,511회 작성일 2006-08-11 15:39본문
시원한 청량제! - 프로야구 불멸의 기록!그리고,위대한 장훈,윤몽룡,민병달,장명부,최동원등!
1972년은 대전고교 야구부(52회는 고3)의 제2의 중흥기였습니다. 초고교급 투수인 이영국 선수와 52회의 강타자 박동훈,박상범 동문의 맹활약으로 72년 당시 최고 인기의 청룡기 고교야구 전국 선수권대회에서 승승장구하던 모교 야구팀은 준결승에서 당시 우승후보였던 윤몽룡 투수의 중앙고교와 맞붙어 우리팀은 아쉽게 석패하게 되고 중앙고는 여세를 몰아 우승합니다.- 윤몽룡은 나중에 국가대표 투수가 되었고 이후 광주상고 감독등을 역임하다 불의의 백혈병으로 채 야구감독으로 꽃을 피워보기도 전에 너무 아쉽게도 84년 7월27일 31세의 나이로 운명하게됨.-포수 부산고 출신 국가대표 심재원은 94년5월 폐암으로
너무 아쉽게 유명을 달리함
1972년 부터 많은 대고인들은 다시 야구에 눈을 뜨게되는 계기가 되었지요- 이후 15년 동안 메이저 대회(대통령배,청룡기,봉황기,황금사자기 고교야구대회) 우승 기록이 없다가 1987년 구대성 투수시절 청룡기 우승- 구대성은 어린 시절 딱지 치기에서 동방불패로 소문이 났는 데 이는 마치 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중반까지 한국 농구의 간판 스타로 활약한 신동파 선수도 어린 시절 구슬치기에서 천부적인 재능으로 진적이 없다고 한 것과 같음-1990년 안희봉 투수 시절의 봉황기 우승 (이때 상대방 팀은 전통의 성남고였고 투수는 지금 방송인으로 맹활약하고 있는 강병규였고 당시 우리 대고는 결승전에서 10대3 으로 가볍게 이겼지요
- 저 한준구도 우승 현장에 있었으며 경기후 운동장 밖 정문 앞에서 어느 대선배가 기분이 너무 좋아서 안희봉이 더욱 열심히 하라고 -100 만원 짜리 수표를 주던 찰나도 기억이 납니다- 당시 그 대선배가 10만원 권 수표를 꺼내려다 순간 잘못 뺀 것이라고 사료됨- 그리고 1994년 김병준 투수시절 대통령배 우승하게 되지요. 그리고, 이후 12년 동안 위에서 언급한 메이저 대회 우승은 지금까지도 "한동안 뜸했었지"가 되고 있지요. - 대개 53회 친구들은 메이저 대회 준결승 정도는 올라가면 10 여명은 모여 들곤 했는 데 약
10 여년전 52회 육사 졸업생 민병달 동문이 야구장에서 용감하게 웇통을 다 벗고-물론 사복임- 스탠드 앞에서 응원을 선도했던 기억이 아주 생생합니다.
그러면, 미국및 한국의 야구 불멸의 대기록을 음미하시면서 청량제로 - 골수팬은 두뇌의 유연성 제고 차원에서 기록을 외워두면 나중에 모임에서도 요긴하게 써먹을 수도 있으며 까마득한 후배들과도-다자란 댁의 아드님과도- 세대 차이를 극복하는 데 다소나마 도움이 되고 자꾸 외우는 습관을 들이면 50대 이후의 삶에도 젊음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지난 7월말 미국 스포츠 채널 ESPN의 칼럼니스트 제이슨 스타크가 메이저 리그 130년 역사에서 거의 깨지기 어려운 불멸의 기록 10 위를 발표하여 전세계 야구팬의 주목을 받았는 데 우리 한국과 비교하여 보면 더욱 재미있으리라 확신합니다.-비록 경기수가 한시즌 약 30 경기 안팎 차이가 나지만
*어려운 정도* 미국 한국
1위: 56경기 연속 안타--- 1941년 조 디마지오 *** 1위; 박종호 39경기,
2위: 악바리 박정태 31경기
*** 조 디마지오는 세계적 섹시스타인 Marlin Monroe 의 전남편이었으며 조 디마지오는 나 중에 M.M 과 헤어지고 오랜 세월 뒤 운명할 적에도 M.M을 못잊어하는 순정파였음
*** 그리고,박종호선수는 특징이 없는 그러저러한 선수로 전락할 위기인 현대 유니콘스시절 타 격 코치였던 김용달 코치가 좌우 양손 타격법을 요청하고 그와 함께 왼손 타법을 완성시킨 후 승승장구하여 삼성에 십수억대 트레이드 후- 위의 불멸 가능성의 39경기 연속안타를 작성함
*어려운 정도*
2위: 4할 타율-- 1941년 테드 윌리엄스(4할 6리) *** 1위: 백인천 (4할1푼2리)
2위: 이종범 (3할 9푼 6리)
*** 2006년 미프로야구에서 어떤 선수가 최근 3할 9푼 안팎의 호기록으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고 과거 타격의 달인이었던 장효조선수가 3할8푼대로 타격왕을 차지한 바 있고 야구천재
이종범선수가 위의 3할 9푼6리로 가장 근접한 바 있고 지금 기아타이거스의 서정환 감독이나
국민 수비수 이진영 선수도 시즌 중반까지 꿈의 4할 대를 한동안 유지한 바 있으나 시즌 후반
에 들어 모든 팀의 집중 견제와 한경기 멀티히트-1경기 2안타 이상-의 부담감으로 인해 이제
는 미국,한국,일본 모두 꿈의 4할 타자가 되고 있는 데 점점 투수 분업화- 선발 ,중간 계투의
홀드, 세이브 투수로 나눔- 로 인해 더욱 힘들어지고 있으며 한미일 프로 대개 3할 4푼 대 안
팎으로 타격왕이 결정되고 있음
*** 한국 프로 야구 원년(1982년)일본프로야구에서 20년 활약하던 백인천이 한,두 수 아래인
초창기 실업야구 수준의 프로여서 백인천은 손쉽게 4할 타율을 시종일관 유지한 바 있지만
지금은 일본 프로 대타자도 4할은 어려우며 아마 장훈 선수도 백인천의 나이에 한국프로야구
에서 1,2년 정도 뛰었다면 아마 4할 타율을 한번 정도는 충분히 가능했으리라 사료됨
3위: 생애 개인 통산 안타 -- 피트로스(4256개) *** 1위: 양준혁 1919 개 진행
2위: 장종훈 1771개 완료
*** 장훈 3085 안타 (일본 1위)
*** 피트로스는 이 불멸의 기록을 작성한 후 야구 도박 사기 혐의로 피소되어 명예의 전당
에서도 삭탈 관직되어 큰 아쉬움을 남겼고 -한국 축구에선 과거 아시아의 표범이라 불리
워졌던 이회택선수가 60년대 말 메르데카배 대회에서 한번 져주기 게임에 참여한 걸 실
토한 바 있고 축구 대 스타 차범근의 부인 오은미씨도 한때 프로축구 시즌 막판 져주기
게임의 실체가 있었다고 폭로하여 한동안 차감독은 중국에서 약 5년간 방황했었음.
*** 위대한 재일 동포 야구 대스타인 장훈은 프로 20년간 3085 안타의 대기록을 작성하였는 데
이 기록은 일본 프로야구 70년 역사에서 불멸의 기록으로 계속남아 그의 위대성에 야구팬
들은 고개를 숙이고 있으며 조센징이라는 멸시와 집중견제 ,수많은 빈볼시비 속에서 작성된
기록이어서 설령 똑딱이 타자 스즈키 이치로가 20년간 지속적으로 일프로야구에 머물었다
면 깨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지만 이제는 거의 난공불락으로 간주되고 있다. - 우리의
재일 동포로 일본에 자의반 타의반 귀화한 김전정일(김정일)은 시즌 20승이상을 17번 작성
하며 불멸의 400승 을 작성했는 데 이젠 투수 분업화-세분화 시대에선 영원히 깨어지지 않
을 진짜 불멸의 기록으로 일본 야구 전문가들은 확신하고 있다.
4위: 시즌 30승 투수(1968년 데니 멕클라인의 시즌 31승) 한국 1위: 1983년 너구리 장명부 30승
2위: 1984년 롯데의 최동원 27승
3위: 1985년 삼성 김시진 25승
1985년 삼성 김일융 25승
*** 8회의 최다 사이영상에 빛나는 로켓맨 로저클레멘스는 살아있는 전설-현역으로 매년 2000
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은퇴를 번복하면서 -휴스턴의 친구때문에, 구단주 등살에, 아들 때문
에 현재 343승을 올리고 있는 위대한 스타로 과거 전설의 대투수 사이영의 511승에 필적하
고 있는 성적을 올리고 있는 데 지금은 투수 분업화로 한시즌 35경기 안팎 출전하여 20승조차
올리기도 하늘의 천우신조와 팀의 도깨비 방망이의 조화 아니면 불가능한 기록인데 -물론
양대 리그 에서 대여섯명의 20승대 투수는 늘 나오나 위의 로켓맨이나 콘트롤의 마술사인 그
랙 메덕스-현재 320승 을 넘어서고 있으며 17년 연속 15승이라는 대위업을 이미 작성한 바 있
음- 처럼 20년 이상 꾸준한 성적을 올리는 투수는 아주 드물다 박찬호도 전성기 시절 34회
나 35회 정도 선발로 나왔는 데 18승 정도에 만족한 2급 투수로 지속하고 있는 데 이젠 30승
투수는 언감생심임.-미국 프로야구에서도 가끔 26,27승은 나오는 경우 지금도 드물게 있음
-- 박찬호는 연간 세전 160억 정도 지난 5년간 챙겨왔고 지금 150승 생애 목표로 삼고 있음
*** 한국 프로야구 원년 최고 스타인 박철순 투수는 미국프로 마이너 더블A 정도의 실력을 유지하다 한국에 와서 오비베어스에서 전무후무할 22연승및 24승4패의 위업을 달성한 바 있고 계형철과 더불어 최고령 승리투수를 유지하다-별명이- 4번이상의 부상을 이겨낸 바 있어 불사조임- 최근 송진우가 최고령 기록을 경신했음- 대투수 1호로 이름을 남겼고 이듬해 1983년 일본 프로야구에서 온갖 풍상을 겪고 귀국한 장명부는 거액을 받고 도깨비팀 삼미 슈퍼스타스에서 맹활약하여 영원히 깨지지 않을 시즌 30승의 위업을 작성하였고 -장명부는 이후 한국에서 도박등의 추문에 휩싸이다 일본으로 거의 추방되다 시피 돌아가게 되었고-해태의 포수 재일동포 김무종의 서글서글한 인상과는 대조적으로-
-- 만일 한국에서 1983년 당시 엄청난 연봉을 부동산에 투자했더라면 -장효조,이만수,김성한,유승안 등 처럼 부동산 알짜 부자가 되어있을 터인데 단도박을 못하여 일본에 돌아가 도박 낭인 생활- 그리고 하우스 꽁지 생활등으로 겨우 연명하다 2년전 하우스 소파에서 자다 운명함 -55세의 나이로 -- 그리고 장명부에 자극받은 강속구의 한국 대명사 최동원은 이듬해인 1984년 시즌 27승으로-- 이젠 순수 한국 출신으로는 전무후무할 27승으로 대투수 반열 2호로 우뚝 서게 되었고
__ 이듬해인 1985년에는 삼성의 대구상고 출신인 김시진은 -지금은 현대 유니콘스 투수 코치로 지난 몇년간 투수 신인왕 제조기로 명성을 날리고 있고 - 지금도 형편없는 2류 선수를 규합하여 여우 김재박 감독과 함께 현대 상위권 유지의 견인차가 되고 있으며 - 25승을 작성하여 같은 팀의 재일동포 투수인 김일융과 함께 합작 50승의 대위업을 작성하여 1985년 전후기 통합 챔피언의 위업을 달성-
-코리언 시리즈가 없어진 최초이자 마지막 해임- 하였고 아직도 최동원은 포수 박해종과 함께 연세대 야구 무적함대를 한동안 이끌기도 하여 그의 다이나믹한 투구폼을 그리워하고 있으며- 박해종은 연대 졸업후 코칭 스탭에 건방지게 대든 이유로 프로 야구계에선 빛을 볼 수 없었으며 -야구계 왕따의 원조 가 아닌가 저 한준구는 지금도 그의 실력을 보아 패자 부활의 기회를 못살린 것을 못내 아쉬워 하고 있음.
-- 타격코치로는 김용달을 최고로 치고 있으며 그리고, 최고의 투수 코치로는 25승 위업의 롱다리 투수 김시진을 뽑고 있으며 200년 시즌 최고의 괴물 투수이자 프로야구24년동안 선동열 선수 한번 밖에 없었던 투수 트리플 크라운 (다승,평균자책점, 승률)을 향해 질주하고 있는 한화이글스의 류현진을 지도하고 있는 최동원의 - 작년에는 최진실 전남편 조성민의 재기를 도운 바 있음- 능력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으며 많은 팬들이 미스터 롯데 김용희에 이어 강병철 감독다음으로 롯데의 사령탑으로 오길 학수고대하고 있으며 그동안 내공을 쌓아주길 팬의 입장에서 바라며 -김일융선수는 삼성에서 잘 기용하다 더 비싼 값으로 다시 일본으로 트레이드 시켜 트레이드 성공 사례의 모법으로 인구에 아직도 회자하고 있음.
시간 관계상 그리고 분량상 다음 기회로 이어지며 52회 야구팬 선배 제위의 댓글과 혹시 틀린 점이나 부족한 점에 대해 지적해 주시면 꼭 후사하겠사오며 저를 알고 있는 여러 선배님의 성원의 글 부탁드리며 무더위에 늘 건강에 유의 하시옵고 이만 인사에 갈음합니다.
2006.8.11 53회 한준구 올림
펌: 53기 류동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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