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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 !-- 남아공,홍수환,옥회,이세연,변호영,버어마축구--연속 보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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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3 한준구 이름으로 검색 댓글 0건 조회 2,276회 작성일 2006-07-03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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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 성 자 : 한준구 [alfonsohan@yahoo.co.kr] 2006.06.27


글 제 목 : 한국 축구 !-- 남아공,홍수환,옥회,이세연,변호영,버어마축구--연속 보완함!


4년후 2010년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개최!--

27년간 감옥에 있었던 넬슨 만델라-

출옥후 대통령이 된 바 있고 아파르트헤이트 인종 차별 악독 분자들도 다 관용의 정신으
로 용서한 바 있어 과거 청산의 모델케이스로 자주 거론되며 -

우리 프로 복싱 역사에선
1974년 7월 4일 한국 프로 복싱의 불멸의 복서 홍수환 선수가 그곳 도시 더어반에서 홈링
의 아놀드 테일러 선수를 3번 다운시킨 끝에 홈디시즌 때문에 15라운드 채점 결과를 조마
조마하게 기다리다 다행히 (실제 점수 차이는 8,9점이상 나지만) 판정승을 거둬 세계
챔피언에 등극한 곳으로 늘 기억하고 있으며 당시 라디오로 생중계된 내용중

시합후 어머니와의 대회에서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그래, 대한국민 만세다! 라고 해
서 한동안 국민사이에 인구에 회자된 바 있었고- 얼마뒤 조강지처를 접어두고 당시 정상
급으로 막 올라서고 있던 댄스가수----1980년대 대표적 댄스가수인 김완선의 원조격--
옥희-- 옥희 본인은 군부 정권의 일상적 견제로 제대로 어깨 높이 이상 손을 휘젓지도 못
했다고 실토한 바 있음--와 공전의 스캔달 로 홍수환 엄마와 더불어 지금까지도 기억되
고 있으며 --남아공 대첩 이후 멕시코의 강타자 알폰소 사모라(자모라는 본토 발음 아님
예: 곤잘레스는 곤살레스가 맞음) 에게 타이틀을 빼앗긴 후 몇년후 2체급 석권에 나서 파
나마에서 카라스키야-- 그는 나중에 혹시 유망주에서 폐인이나 낭인으로 전락하지 않았
을까 다소 걱정을 지난 20년간 간헐적으로 해왔는 데 너무도 다행히 몇년전 홍수환이 직
접 그곳 파나마까지 찾아 확인한 결과 아주 의젓한 구의회 의원으로 변신하여 비교적 차
분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티브방송을 보고 흐뭇하고 안도의 마음을 가졌던 기억이 생생
합니다.그의 발전과 안정된 생활을 저 한준구는 늘 기원하고 있는 바 이는 과거의 소매치
기 복서 세계챔피언 김성준의 비극적 삶이 떠올라 그랬음-- 를 그 유명한 4전5기 끝에 챔
피언에 올라 당시 온 국민에게 평생 잊
혀지지 않을 신선한 충격을 준 바 있으며-- 옥희 와는 2번째 재결합이후 홍수환은 다소 옛
모습을 잃은 그녀와 잘살고 있으며 홍수환은 특강 강사로 한국의 인기있는 또다른 의미
의 스타이기도 함.

*** 다소 삼천포로 빠졌으나 다음 기회에 한국 프로복싱사에 빛나는 스타들을 연재할
예정임***

### 현재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

월요일에(2006.6.26일 저녁) 우리 한국축구 협회측은 이영무 기술위원장이 차기 한국
축구국가 대표팀 감독으로 핌 베어백 현 수석 코치를 승진 임명하였는 데 --그는 조국
네덜란드로 가 당분간 휴식을 취하며 향후 거취문제를 생각해 보겠다고 인터뷰에서 밝
힌 바 있는데 갑작스런 발표로 많은 축구팬들이 당황하고 있으나 그 속내를 살펴보면축
구협회의 면피성계략과 당장 8월에 있을 아시안컵 예선이 맞물려 있어 다소 수긍이 가나
조금은 성급한 결정이 아닌가 하는 마음을 지울 수 없다.우리 한국은 지난 2002년 4강이
후 마음씨 좋은 코엘류, 독선과 신뢰성이 부족한 본프레레감독의 3년간의 허송세월을
보낸 후회막급의 되풀이는 하지 않아야겠다는 마음이 앞선 것으로 사료되며,

첫째: 공격진 보다 오랜 숙성기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수비진의 세대 교체가 절대적
으로 시급하다.
우리는 2002년 4강이후 유상철,김태영 등에 큰 대회 대비 임시 방
편 겸용으로 미련을 둔 바 있고 특히 최진철은 국가대표를 은퇴하겠다고 여러 차
례 공식적으로 언론에 밝혔으나, 홍명보같은 리더가 필요하다는 중론으로 재등용
하였는 바 ,그는 늘 성실한 플레이로 국가대표팀의 후배 수비선수들을 잘 이끈 편
이었으나 잦은 수비선수의 교체및 스리백,훠백등의 기본 전술 확립마저 국민에게
거의 신뢰를 주지 못한 상태에서 이번에 " 대충 까이꺼!" 하는 상태로 월드컵에 임
했던 인상을 주었던 이번 한국 축구 수비진의 실상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김남일,이영표,이을용,김영철,최진철 등 30세 전후의 대표선수들에게
-- 일부 선수는 매우 아깝고 세명정도는 지금이 최전성기이지만-- 과감히 후진
들의 젊음 피 수혈을 위해 본인들이 용퇴하거나 교체시켜야 한다. 그리고, 대형
수비수를 발굴하여 4년간 안정된 체제로 가야한다.

둘째: 21세기 축구에서 중요성이 더해가는 미드필더진으로는 이호-김동진과 함께
러시아 프로축구팀에서 앞으로 활약하게됨-아드보카트 감독 주선으로- 김두
현 ,김정우 또는 이들 또래의 선수들을 1년내 실력 검증하여 적어도 3년은
안정된 선수운용으로 창조적 플레이 메이커를 2명을 확실히 키워야 한다.

셋째: 골키퍼는 이번 아시안컵 예선부터 김영광과 김용대를 주전경쟁의 첫무대로
삼아야하며 잠시 역대 국가대표 골키퍼의 계보를 보면

1950년대의 홍덕영(50년대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라 자,타가 공인하던
동유럽의 헝가리 무적함대를 이끌었던 대포알 슈팅의 푸스카스선수가 칭찬
한 바도 있는 홍덕영은
스위스 월드컵당시 세계최강 헝가리팀의 대포알 슈팅을
막느라고 가슴이 시퍼렇게 멍들었고 크로스바를 정통으로 맞출 때의 굉음을
두고두고 잊을 수 없다고 술회한 바 있고 수십개 슛중 겨우 9골만 먹어 당시
관중및 헝가리 선수로 부터 큰 칭찬을 받은 적 있으며
당시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서 헝가리는 지금의 브라질처럼 우승후보 1순위 였으
나 서독측의 교묘한 예선에서의 힘빼기 전략과 계속되는 주전 선수들의 부상으로 결승전
에서 다시 맞
붙게 되어 -예선에선 이겼지만- 석패하여 준우승에 머물렀는데(우승은 헝가리
김빼기 작전의 성공으로 서독이 최초 우승함) 이후 단 한번도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고 -- 아마도 국내 소련에 항거하는 1956년의 자유쟁취를 위한
대규모 반소 항쟁의 여파로 인한 국내 정치불안의 연속과 소련의 집중 탄압으로
헝가리 축구 무적함대는 회생하지 못하고 수십년간 축구의 변방국가로 전락하고 말
았다.(이는 마치 1970년대 초반의 동남아의 버어마(나중에 미얀마)는 몽에몽,몽윈몽
몽몽틴등의 몽씨 형제들이 주축이 되어 당시 김호 ,김정남,이회택 등의 한국과 거의
대등한 경기를 박스컵에서 보여준 적이 여러번 있었는 데 버어마의 군사 독재와
축구 지원 소홀및 북한 처럼 해외 원정 금지로 아시아의 축구 3류 국가로 전락한
것과 헝가리는 비슷하며 축구팬의 입장에서 매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1960년대에는 함흥철 골키퍼가 유명하였는 데 이분은 70년대에서 80년대에 걸쳐
가장 많이 축구국가 대표감독을 역임하였고 이 어르신의 아들 뻘 선수들에 대한
사랑 즉, 연저지인( 환자의 신체의 고름을 입을 사용하여 빼내는 참사랑의 덕)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으며 최초의 기독교 계통의 프로축구팀 초대감독으로
유명하였으며 현역 감독 은퇴 이후에도 늘 한국축구를 걱정하셨고 늘 건강하게
지내셨는 데 몇년전 백두산 관광중 돌개바람에 발을 헛디뎌 연부역강하신 상태
에서 돌아가셔서 마음이 아픕니다. 특히 이 어르신은 70년대의 그 유명한 이세연
선수와 변호영 선수를 키우면서 한국 축구의 위상은 물론, 특히 주전공인 골키퍼
의 실력을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킨 공로도 함께 갖고 계신분임.

1970년대에는 위에 언급한 이세연과 변호영이 있었는 데 이들은 한국 축구의 위
상을 차범근-- 당시 장덕진 대한 축구협회장이 청소년 대표이던 차범근과 황재만
을 (둘다 고려대 간판스타) 지금의 박주영처럼 국가대표로 데려오도록 특별 지시
를 내린 바 있음-- 1973년경임-- 차범근과 황재만은 이차만 고재욱등 1970년대
초,중반 고려대 축구부의 최전성기를 열었던 장본인들로 당시 고려대는 국가대표
를 무려 7명을 보유하고 전성기를 누린 바 있음.

그런데,1970년대의 이세연, 그리고, 이세연의 그늘에 묻혀 오랜동안 불운한 2인자
골키퍼 였던 변호영 이 2명의 불세출의 골키퍼는 대단히 아쉽게도 월드컵축구와
는 그 징글맞은 호주때문에 아시아의 표범 이회택과 더불어 단 한번도 월드컵 본
선에 가보지 못하는 한을 남기고 은퇴한다. 당시에 지금처럼 4.5장의 티켓이 보장
되었더라면 너끈히 그화려한 무대에 한을 풀고 명예롭게 은퇴했을 텐 데 하는 큰
아쉬움을 남겼고 우리 대고 53회들은 그당시 고교 2,3학년때 였고 특히 고3학년때
호주와의 홈엔 어웨이 무승부이후 홍콩에서 벌어진 제3지역최종 문턱에서 통한의
중거리 슈팅 한방으로 이세연이 만세를 불렀던 아쉬운 장면이 지금도 아련히 떠
오르고 지금도 가슴이 저민다.--

그리하여, 이세연은 그이후 은퇴하여 신탁은행 선수겸 코치로 가끔 공격수로 실
업 축구에서 활약한 바 있고 신탁은 감독을 거쳐 한참지나 지금은 경기도 축구
협회 전무 이사로 활약하고 있다.-- 부인은 아마 한정숙님 인데 고교 시절 죽마
고우인 한철우에게 당시 월간 축구 창간호를 보여주면서 한철우 누님과 이름이
같아 우연의 일치를 철우네 집에서 얘기나눈 기억이 생생하다.

변호영은 국가대표 자진 반납후 홍콩으로 건너가 홍콩 프로 축구(한국의 선배)
세이코팀에서 맹활약하여 돈을 모았고 지금은 홍콩 한인회 회장으로 맹활약하
고 있어 __ 세이코 팀에서는 파워넘치던 국가대표 박병철선수가 맹활약한 적
도 있고 별명이 컴퓨터 링커인

조광래도 러브콜을 많이 받았으나 아마 처가쪽이 비교적
잘살아 굳이 고생할 필요있겠나 싶어 여러번 사양한 바 있고 나중에 1986 멕시
코 월드컵 본선에 출전하여 박창선-부산 동아고 경희대 출신의 현 경희대 감독
- 최순호, 정용환,김평석 허정무,차범근 등과 맹활약한 바 있으며 - 조광래는
진주고교 시절 전국대회 3관왕을 이끌었고 연세대를 거쳐 나중에 프로 축구
안양 엘지 감독으로 우승한 바 있어 그 지도력을 인정받은 적이 있고 지금은 나
중에 대비하여 내공을 쌓고 있으며 본인은 장래 한국 국가 대표 감독을 해 보고
싶은 마음을 숨기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이세연 골키퍼 시절 아시아 최고의 스트라이커는 별명이 아시아의 표범
이었던 풍운아 이회택과 일본으 장신 스트라이커 가마모도 였다.시간허락대로 계속
보완함
펌- 류동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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