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유학 서적에도 안나와
술 없으면 물 올려도 무방
전통음식 차리란 법도
없어”
“차례상을 차릴 때 ‘홍동백서’ 같은 규칙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간단하게 차려도 조상님들께 정성을 다하고 가족들이
한 데 모여 친목을 도모하게 해주는 게 차례상이죠.”
한국 유교문화의 본산인 성균관에서 유교 전통행사를 책임지고 있는
박광영(42·사진) 의례부장은 민족 최대 명절 추석을 이틀 앞둔 25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차례상을 차리는 데 언급되곤 하는 엄격한 규칙은
근거가 없는 이야기”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차례를 지낼 때 규격화된 절차나 법칙이 있는지 물어오곤 한다”며
“하지만 ‘홍동백서’나 ‘조율이시’ 같은 말은 그 어떤 유학 서적에도 나오지 않으며 그저 과일을 올리라는 이야기만 나올 뿐 어떤 과일을 쓰라는
지시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 문헌에는 바나나를 썼다는 기록까지 있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차례상에 꼭 전통 음식만 올려야
하는 규범이 있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그는 “차례 음식은 음복하는 것”이라며 “후손들이 조상을 위해 여는 행사이니 요즘 시대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올려도 예법에 맞고, 구하기 어려운 음식이 아니라 시기에 맞는 음식을 올리면 된다”고 말했다.
물론 형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는 “차례상엔 조상들이 신과 교제하는 과정에서 가장 향기롭고 아름다운 음식이라는 뜻을 갖고 있는 술이 반드시 올라야 하고 술에
따라오는 안주인 고기도 필요하다”며 “돌아가신 분들이 드실 밥과 국도 준비해야 하며, 나물과 함께 후식으로 과일도 올라가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종류별로 한두 가지만 올려도 예법에 어긋나는 건 아니고, 술이 없을 땐 물을 써도 무방하다고 박 의례부장은 설명했다.
그는
많은 음식을 장만해 차례상에 올려야 조상에 대한 도리를 다하는 것으로 여기는 고정관념에 대해서도 “제사와 차례의 차이점을 혼동하는 것으로부터
비롯된 잘못된 생각”이라고 지적했다. 박 의례부장은 “제사는 돌아가신 분에게 그동안 못다 했던 효도를 다 한다는 의미에서 과할 정도로 할 수도
있다”며 “그런데 차례는 그 자체로 간단하게 지낸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처럼 차례는 간단하게 지낸다는 의미인데도 명절 때만
되면 음식을 장만하는 문제로 가정불화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이에 대해 박 의례부장은 “명절마다 제수음식을 준비하면서 전통에 맞게 간소한 차례상을
차리면 가족 간 불화가 생길 일이 없다”며 “명절은 가족이 모두 모여 조상님을 생각하고 그분의 좋은 점을 기리며 결속력을 다지는 잔치판이라는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핵가족화가 가속화된 지금은 차례가 그동안 못했던 가족들 간 소통의 기회도
제공하고 친목을 도모할 수 있는 좋은 기회도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 의례부장은 마지막으로 “차례라는 형식에
얽매이기보다 조상을 향한 효(孝) 정신이 변치 말아야 한다”며 “이번 명절은 형식에서 벗어나 효를 생각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노기섭 기자 mac4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