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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수 조정문제 논란 진행 한눈에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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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25 안병섭 홈페이지 이름으로 검색   댓글 0건 조회 2,537회 작성일 2003-05-13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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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굴레를 벗어 던집시다.


대전고등학교 졸업생들에게 이 동창회는 일제의 굴레를 씌워왔습니다.
이 글을 쓰는 사람은 20회 졸업생입니다. 그러나 20회 졸업생이라는 사실을 안 것은 며칠 되지 않습니다. 그 전에는 50회인 줄 알아 왔습니다. 고등학교 졸업할 때 몇회 졸업생인지 관심이 없었고, 대학가고 직장에 들어가느라 직장생활 하느라 동창회에 관심을 둘 수가 없었고, 어느 정도 사회생활을 하다 동창회에 나오게 되었는데, 50회라고 하니 그런 줄 알고 50회로 행세해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2002년 대능인만남의 날에 처음으로 대전에서 열리는 총동창회에 참석했다가 갑자기 나오는 일본말에 어리둥절했고, 일본인동창이라는 말에 무엇인가 잘 못 됐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지난번 서울동기회모임에 나갔다 다시 한 번 이 문제를 생각하는 계기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총동창회홈페이지에 들어와 동창회칙을 보고, 또 졸업장을 찾아보고, 졸업앨범을 찾아보았습니다.
그 결과 졸업장은 찾지 못했고, 졸업앨범에는 분명히 1971년 1월 20회졸업기념으로 되어 있었고, 1917년에 일제가 세운 경성중학교 분교와 그 이후의 일제시대의 학교는 그것이 일제의 공립학교였고, 이는 일제시대에 우리민족에 의해 설립되고 민족교육을 담당했던 우리의 사립학교와는 달리, 일본인들의 일본황국신민을 교육하기 위한 학교였으므로(일부 조선인이 입학했지만), 대한민국정부수립과 동시에 폐교되고, 대한민국 법령에 의해 대한민국의 인재를 교육하기 위해 다시 세워진 대전고등학교와는 그 어떤 연관도 가질 수 없는 학교인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읍니다.
따라서 1951년에 첫 졸업생이 배출된 이래의 졸업생들에게 대한민국이 그 존립을 부정하여 폐교한 일제공립학교와 그 무슨 역사적연관과 전통이 이어지고 있는 것 같이 30회를 더하여 51년 졸업생을 31회다 그리고 2003년 졸업생을 82회다 하는 것은 >"3ㆍ1運動으로 建立된 大韓民國臨時政府의 法統을 계승"함을 명시한 대한민국 헌법전문의 헌법정신과 그에 따른 법률을 모독하고, 일제강점을 무의식 중에 정당화하는 우를 범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동창과 동문이라는 것이 학교건물과 교정을 같이 사용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정상적인 상황에서이지, 다른 민족의 침략이라는 특수상황에서 적국의 지배하에 세워진 그 공립학교교사와 교정을 이 민족을 몰아 내고 몰수해, 다시 우리의 학교를 세운 경우 그 두 학교에 무슨 같은 학교의 개념이 들어 갈 여지가 있고, 그 졸업생사이에 동창이라는 관계가 성립한다는 것입니까?
또한 더욱 놀라운 사실은, 오늘 고등학교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역대 교장선생님이라는 데에는 일본인 교장들 사진을 가져다 놓고, 1대 교장 아무개에서부터 현재 교장선생님까지 사진을 수록해 놓았은데, 이것이 대한민국의 공립학교 홈페이지라는 것인지 한심하기 그지 없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이완용이 처럼 일제의 침략을 미화하고 정당화하자는 것인지! 이 동창회와 대전고등학교는 대한민국의 대전고등학교 졸업생을 일제의 공립중학교졸업생인 것처럼 굴레를 더 이상 씌우지 말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는 더 이상 일제 30년의 굴레를 대전고등학교 졸업년도에 더하여 머리에 덮어쓰고 다녀서는 아니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대한제국의 군대주둔지에 일본군이 진주하면 대한제국 군대가 됩니까? 일제 조선점령군 주둔지에 대한민국 국군이 주둔하면 일제 점령군이 됩니까? 대전고등학교홈페이지식으로 하면 청와대홈페이지에 일제 초대조선총독부터 초대 대통령으로 사진을 걸어야 됩니까?
대한민국 건국 50년이 되는데, 아직도 일제 35년의 찌꺼기가 대한민국의 명문이라는 대전고등학교와 기타 명문고라는 곳에서 아직도 고약한 악취를 풍기고 있습니다.






제 졸업년도나 졸업회수를 스스로 판단할 수 없는 나이입니까? 총동창회회칙이라는거 금과옥조의 철칙도 아니고 얼마 안 있으면 자연적으로 개정될 거고요 왜냐하면 일제시 대전공립중학교니 6년젠가 나온 분들 세상떠나면 그 규정이 필요없겠지요. 제가 보기엔 그런 규정자체가 문제가 되지만, 동창이라고 볼 수 없는 사람들이 무슨 총동창회라는 것을 조직한다는 것이. 만보를 양보해서 설사 총동창회를 결성하더라도 자기가 가진 그대로 경성중학교 25회다 6년제 뭐 3회다 그리고 대전고등학교 5회다 이러면 되는 것이지...
어떻게 공립대전중학교 20회가 대전고등학교 20회가 됩니까? 대한국인의 언어자체를 쓰지 못하게 한 일제의 공립중학교를 대전고등학교라고 하고, 대전고등학교 5회는 무슨 대전고등학교 35회가 됩니까? 동창회구성원이 될려면 졸업장이나 기타 준하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졸업장에(직접확인 은 못했지만 졸업앨범에) 몇회라 되어 있으면, 그 자격으로 동창회가입조건이 되는 것인데, 그것을 바꾸어서 30회를 더해서 동창회에 들어 갑니까? 졸업회수를 졸업앨범에 나오는 대로 기록하는 것이 이렇게도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이 나라 대전고등학교 20회동기회 참 문제 많습니다. 이렇게 시끄러운 줄 몰랐네요. 우리가 모르고 속았다 할 줄 알았더니 제 나라 찾고도 옛날 일제가 그립다고하는 것 같아요.
더 이상 20회니 50회니 논쟁하지 말고요. 이 사이트는 대전고20회로 분명히 졸업앨범에 나온대로 표기합니다. 총동창회나 서로 간에 20회로 하든 50회로 하든 각자 알아서 합시다. 그리고 이 사람은 총동창회사이트에 들어가 분명히 대전고 20회라고 하고요 그것이 확산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요즘은 인터넷시대니 인터넷으로 여론을 형성하여 옳은 방향으로 고쳐지도록 노력할 밖에 없습니다. 총동창회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여기 졸업앨범 세번째장을 올립니다. 거기 왼쪽에 1971년 1월 제20회졸업식거행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것이 바람직한 일이었다면, 법령에 경과조치를 두어서 뭐 구 공립대전중학교졸업생을 대전고등학교 졸업생이라고 본다든가 대전고등학교 1회졸업생은 대전고등학교 31회로 하고 이하 같은 방식으로 한다든가 했을 것 아니겠습니까? 그럴 수 없어서 그런 것일 것인데. 슬그머니 뒷구멍으로 지금까지 괴롭히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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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결 진실 용기?
한가지 사실확인에 대한 대응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데 대해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집지기가 간판을 갈아달면서 논쟁을 중지하고 각자 알아서 하자고 했고, 총동창회를 바꾸어 달라고 요구하거나 그런 노력를 해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납득될 수 없는 논리의 글이 자꾸 올라오니 난감하다. 이 하나의 문제가 이 사회가 가지고 있는 모순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단초인가?
우리는 대전고등학교라는 공립고등학교를 다녔다. 물론 수업료를 냈고, 의무교육은 아니었으나 국민의 세금으로부터 혜택을 받은 사실을 부인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일제시대 이 나라 이 민족은 이루 형언하기 어려운 고초를 겪었고 광복을 맞이했으나 분단과 동족상잔 아직도 통일되지 못한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 그런데 모교라는 학교에서는 일제시대 일인 교장을 역대교장이라고 홈페이지에 올려놓고 후배들에게 역사의 유구함을 교육시키고 있는 것인가?
삼일독립정신을 계승하는 대한민국정부수립과 함께 새로이 세워진 대한민국의 공립고등학교에서, 요즘은 상해임시정부까지 계승한다는 노무현정부아래서...
그 학교를 나온 우리들은 자신이 몇 회 졸업생인지도 모르고, 올바른 졸업횟수는 알 필요도 알고 싶지도 않고, 일제 공립학교 출신들과 동창으로 잘 지내왔는데 이제 왜 평지풍파를 일으키느냐고 힐난한다. 우리는 현실을 확실히 인식해야한다. 우리는 대한민국헌법과 교육관계법령에 의해 대전고등학교를 졸업한 것이며, 졸업횟수는 이들 관계법령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지 어디 다른 데에서 좌우하는 것이 아니다. 동창회라는 것은 이러한 기초에서 결성을 하든 말든 하는 임의의 친목단체인데 여기서 졸업횟수를 마음대로 한다고 해서 그것이 졸업생을 구속하는 것이 아니고, 이 집지기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동기회홈페이지를 대한민국법령에 의해 주어진 대로 표기하겠다는 것인데, 무슨 치욕의역사도 우리역사로 받아 들여야 한다고까지 주장하는 포용력이 있고 관대한 논리까지 내세우면서 그것을 용인하지 못하겠다고 나오는 그 자세는 무엇인지 모르겠다. 더구나 50회로 살아왔고 자랑스럽게 살아왔기 때문에 20회라는 것은 알 필요도 알고 싶지도 않다는 주장에 이르면, 완전한 자기부정이요 착각과 환상속에서 계속 살고 싶다는 절규 같다.
이것이 그 학교의 교훈인 순결이 내선일체의 순결이며, 허위의식의 진실이며, 현실부정의 용기인가? 그래 동기회 간판을 가는 것이 그렇게 생사를 좌우하거나 생업에 지장을 주거나 명예에 치명적인 용기를 필요로 하는가? 그리고 각자 총동창회나 동기 상호간에 20이라 하던 50이라하던 취향대로 하라는데, 여기에 일제대전중학교 30회이하의 사람들이 방문하여 문제를 일으킬 것인가 아니면 대전고등학교 다른 기수의 동문들이 방문하여 문제를 일으키고 시비를 걸 것인가?
31회이후의 후배는 동창이 아닌가? 라고 묻는데, 대전고등학교졸업생을 후배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대전충남에서 입시를 쳐서 입학한 졸업생과 대전지역에서 어떤 선발절차를 거쳐 들어 온 졸업생을 완전히 동일한 선후배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도 현실대로 그만큼의 차이를 가진 선후배로 상호인식하면 그만이다. 결코 현실이하도 이상도 아닌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우리 동기동창들이 가지고 있는 이런 인식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대전고20회의집 간판의 교체로 간단하게 생각했던 이 사람의 생각은 이제 이 문제가 의도했던 것보다 확대되어가는 것을 느낀다. 총동창회로 그리고 다른 비슷한 문제가 있는 고등학교로 그리고는 소위 명문고라는 소리를 듣는 일부학교들의 졸업생들의 편협한 학연을 매개로한 집단이기주의에 대한 국민적 비판으로...
우리 동기에 있는 몇몇 법조인들이 명쾌한 논리로 이 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해 주기 바랐는데, 마침 판사로 재직 중인 유 동문이 의견을 주어 대단한 기대를 했다. 그러나 너무나 실망이 크다. 정치한 법논리도, 국가 사법권의 담당자로서의 투철한 국가관도 공평해야할 형평성도 찾아 볼 수 없다. 1951년이후 졸업생들이 이 역사가 계속되는 동안 계속 배출될 졸업생들이 동창회라는 데에 자동 가입되어 일제 공립중학교를 모교로 생각하는 이상한 굴레를 쓰게 될 불이익과 일제시 졸업한 대한민국의 대전고등학교와 전혀 무관한 몇 안 되는 사람들의 부당한 대전고등학교 졸업생으로서의 대우상실이라는 이해관계 중에서 후자를 택해 현실을 변경해서는 안된다는 지극히 위함한 결론을 도출하고 있다. 이 사이트에 올라 오는 글은 경우에 따라서는 많은 국민이 볼 수도 있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주기 바란다. (임승웅)


Re..일제의 굴레를 벗어 던집시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대전’이란 이름도 본래의 이름이 아닙니다. 대전의 본래 이름은 콩밭인 콩 태자 한밭 태전입니다. 1917년 일본인 다나까 이찌노스께田中市之助가 엮은 『조선대전발전지朝鮮大田發展誌』에 따르면, 조선총독부 총감 이토오 히로부미가 순종 황제를 수행하고 태전역을 지나다가, 이 곳의 지형이 웅위雄偉함을 보고, 차라리 ‘태전이라는 지명을 바꾸어 대전으로 부르는 것이 좋겠다’고 역설함에 따라 ‘태전’이 ‘대전’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지세地勢가 뛰어난 이 곳 이름 ‘太’ 자에서 점을 빼어 평범한 ‘大’ 자로 만든 것입니다. ‘太’ 자는 태조라는 이름에서 보듯이 국가를 창건한 창건군주에게만 주는 칭호 혹은 무로써 나라를 건국한 창건군주에 이어 동일 왕조에서 새로 혁명하여 나라명을 안바꾸고 그대로 계승한 실질적인 개창군주(태종)나 왕의 부왕 태상왕 등에서 보다시피 지엄하고 고귀한 대상에게 쓰이는 말입니다. 철학에서는 태극이라 하여 음양을 품고 이발되어 가장 작을 수 있고 동시에 가장 클 수 있는 성장에너지를 가진 현실태를 말합니다.
반면 ‘大’ 자는 단지 크다는 뜻밖에는 없습니다. 이등박문이 일본황실에서나 사용할 수 있는 말이라 하여 태전의 지명을 바꾸어 오늘날 대전으로 바뀌었으니 원래대로 하면 ‘대전’은 ‘태전’으로 바뀌어야 하며, 역사성이나 정명正名학상으로 봐도 ‘태전’이 바른 지명이므로 대전고교는 태전고교로 바뀌어야 옳을 것입니다. 일제가 대전고로 이름을 붙여 해방이후 1950년까지 그 전통을 다하고 51년부터 다시 1기로 붙여 사용한 것이 사실이라면(51년부터 앨범에 1기로 사용) 원래 그 이름도 태전으로 바뀌었어야 옳았다.
그러니 늦었지만 이등박문이 지은 대전이라는 용어를 바꾸어 태전고로 개명해야 한다. 황국신민의 국민학교 칭호도 결국 초등학교로 바뀌었듯이 대전, 대전중, 대전고는 당연히 태전, 태전중, 태전고로 바뀌어야 옳다. 중국의 선양(심양)도 일본이 봉천으로 바꾸었으나 모택동이 선양으로 다시 바꾸었고 레닌이 볼셰비키 혁명후 페테스부르그에서 바꾼 레닌그라드도 공산주의가 무너지고 옐친 시대로 넘어오면서 민족주의자 소브챠크에 의해 원이름 페테스부르그로 원상복귀되었습니다. 일제 시대를 계승하는 고교 기수는 아무 역사 의식 없이 대세에 밀려 그냥 쓰고 있고 그냥 따라가고 있지만 민족정사와 민족혼을 깨닫고 보면 참으로 한심한 것입니다.
일제시대의 기수 30년을 빼고 순수한 기수만을 사용하자는 주장과 용기에 찬사를 보냅니다. 저도 뜻을 따라 25기로 사용합니다. 민족정기 수립. 이제는 대전고 동창회가 나설때입니다. 대전고 출신의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반민족적 이승만 동상 세우기에 찬성이나 하는 등 반민족 작태를 벌였음에도 역사혼에 눈뜬 동문 하나없이 비판하나없는 죽은 빈껍데기의 동창회로 전락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동창회에 누가 되고 민족사에 누가 되어도 오직 같은 동창이라 하여 이를 감싸고 돌 기만 할 뿐 뿐 누구도 이를 지적하지 않는 것은 민족적 차원에서 보면 동조내지 방관 방조의 범죄행위에 불과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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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있는 자만이 앞설수 있다. 홀로하는 항해는 외롭지만 빛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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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두서없이 한 자 적겠습니다. 본인은 태전 지명찾기 운동본부 본부장으로 과거 쇠말뚝 뽑기 운동본부와 황국신민의 약칭 국민학교 명칭 바꾸기 운동본부와 연락해 세종문화회관에서 행사를 함께 주관하여 세인의 여론몰이를 했던 장본인이기도 하고(이때 김원웅 동문이 함께 참여해 준적 도 있고) 태전지명찾기를 위해 미진하나마 100만인 서명운동을 벌여 서명까지 받았던 사람입니다.



결과 대전 시장을 갈아치우기도 했었고 쇠말뚝은 전 국민의 열성적인 참여로 많은 성과를 보았으며 국민학교 명칭은 초등학교로 바뀐지도 10여년이 그렁저렁 다되어 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의 왕조 혁명사로 볼 것 같으면 고등종교 혁명사입니다. 본래 우리민족에게는 10월 상달을 정해 천제를 지냈던 봉선제례의식이 있었습니다. 애신각라의 신라를 생각한다는 동이 핏줄 만주족 청이 베이징에 천단을 쌓아 청나라 역대 황제들이 천제를 지내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산동성 태안이라는 도시를 가면 공자가 등태산하니 천하가 좁아보였다고 한 바로 그 태산이 있는데 이 곳이 바로 중국 오악의 하나로 대륙의 천자들이 소위 봉선의식(천제)을 행했다한 바로 그곳이지만 막상 지나 한족의 역사는 한나라 유방에 의해 시작되었으므로 봉선의식은 사실상 동이 제족의 신앙의식에서 나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환단시대의 천제는 물론이거니와 고구려마저 임금은 천제지자라 하여 천제의 아들이라 하여 소위 왕권신수의 이름하에 천제라 칭하고 원방각의 3.1철학아래 단을 쌓고 천제를 지냈습니다. 왜 이 말을 하냐면, 우리 민족은 본래 우리 고유의 천제 신앙 곧 신교 소도(수두)신앙이 있었는데 후일 열국시대를 맞이하고 대륙에서 한반도를 유입해 들어가면서 부여의 영고 고구려 동맹, 삼한의 불구내, 백제의 교천 등 서로 다른 이름으로 쪼개지고 이름과 전통만 앙상하게 남아 풍류니 화랑이니 조의선인이니 하면서 빛바래 갑니다.



그러는 와중에 도교니, 불교니 하는 것들이 들어오면서 왕조가 바뀌면서 아는 망각하고 비아가 안방을 차지하기 시작합니다. 김춘추가 대륙의 불교로 드넓은 만주 대륙을 포기하고 쪼그라든 이래 주자학으로부터 비롯된 공자의 유교가 조선을 문약의 길로 인도하면서 천제의 나라 한겨레를 사대 모화의 길로 인도합니다. 일만년 대륙사를 보면 대륙의 주인은 한겨레 동이 제족인데 유방때서야 자기정체성을 갖기 시작한 한족의 무릎아래 천제지자의 한겨레가 종속당하기 시작한 겁니다. 저는 중국 대륙 곳곳의 고고학 유적지를 직접 누빈 사람입니다.(홈피기록 참조)



지나의 대륙사학자는 대륙 곳곳의 고고학 유적지가 바로 동이족 유적지라 인정합니다. 한국의 사학은 반도사학입니다. 일제 식민사관의 결과입니다. 따라서 누구도 여기에 대해 입한 번 벙긋하지 않습니다. 지나족은 56개 소수민족이 이룬 국가입니다. 따라서 그들의 국가관은 동북삼성에 포진한 소수민족 조선족도 중국민족으로 인정합니다. 그러다 보니 한반도의 대한민국은 국가로서만 독립국가일뿐 그들의 눈으로 보면 중화민족을 이루는 소수민족의 하나 동북삼성 조선족의 연장으로밖에 안봅니다.



이러한 일면은 임혜상의 문화인류학적 종족구분방식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아무튼 우리의 왕조혁명사는 고등종교의 혁명사로 수많은 잘못을 저질러 왔습니다. 민족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유교는 사대모화 사관으로 한겨레 대륙사에서 벌어져 나아간 지나족을 되려 숭배하는 종놈의 역사를 심어주었고, 기독교는 일제치하에서 조직적으로 창씨개명하고 가장 열렬하게 친일운동을 하여 민족을 괴롭힌 단체임에도 불구하고 해방이후 지금까지 사과한 번 하지 않은 후안무치한 집단일 뿐 아니라 신격의 위상만으로 보아도 한민족 고유의 천제(상제) 신앙에 비하면 중동 사막의 골목대장 군신에 불과한 야훼의 종속을 도모하는 집단입니다.

오늘날의 기독교의 참모습은 바울이 왜곡한 거짓 세계입니다 (탈무드 임마누엘 전문Click), 또 본인이 80년대 초에 국내 최초 번역소개한 보병궁의 성약(원제;Aquarian Gospel of Jesus The Christ:안원전 역)을 보면 기독교의 본질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지금 한참 광고중인 "이것이 개벽이다"를 보아도 핵심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대전고 출신은 대전고가 명문이라 합니다. 그러면서도 경기고나 경복, 서울 등에는 한수 접습니다. 그러나 가치관적으로 본인은 경기 경복도 명문으로 보기를 망서립니다. 그러한 관점은 일제의 무한정 경쟁 시스템으로 인한 획일적 인간 양산을 목표로 창교되어 해방이후 어떠한 교육정책의 전환없이 지속된 출세지향의 기존의 가치관으로 본 것이기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대전고도 명문은 아닌 것 같습니다.기수 조정문제는 그런 면에서 타당합니다. 민족사적인 차원으로 보면 천 번 만 번 맞는 이야기입니다.



일제하의 군국식 교육의 폐해는 무한정의 경쟁 속에서 인간을 소위 "된 인간"이 아니라 피폐한 "난 인간" 만을 부지기수로 양산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회가 어지럽게 되고 이기적으로 변했습니다. 내가 예전 35기 서용석 간사장 시절 총동문회 움직임을 10여년간 지켜 본적이 있습니다. 어느 동창회나 마찬가지겠지만 대부분 사회에서 실패하여 갈 곳없어 하는 사람들이 동창회를 등에 없고 자신의 일을 도모하는 것을 많이 지켜보았습니다. 또 동창회에 꽤나 크게 기여도 하지 않는 사람이 무슨 엄청난 일을 한다고 개인적으로 무슨 주장이라도 할라치면 지금이 쓸데 없는 주장으로 단합을 깰때냐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역사는 어차피 선구자가 벌이는 투쟁입니다. 본인은 대학생 시절 영적 회복운동 하면서 미친놈 소리 들었습니다. 여학생에게도 미친놈, 사이비에 빠진 놈이라는 소리를 밥먹듯이 들었습니다. 저는 80년대 초에 120개 대학에 증산도 써클 조직을 했으며 지금은 민족 신앙의 영적 신앙운동의 구심점 증산도를 나름대로 반석위에 올려 지금 지금 부종정의 직책에 있습니다. 대전고 동문들- 제가 보기에는 일제하 주입식 교육의 일환으로 보면 각계각층에서 성공했다고 자부심이 대단하겠지만 소수 훌륭한 몇 분을 제외하면 역사관이라든가 민족관 등 가치관적으로 보면 선후배를 막론하고 모두 유치 찬란한 수준입니다.



유치 찬란한 수준을 그들이 깔고 있는 소위 사회적 경륜과 Authority로 속이고 있는 겁니다. 역사관이 바로 박혀 어준선, 김범명 등 국회의원이 반민족적 매국노이자 114만 명 무고한 양민을 학살한 이승만 동상 세우기에 표를 던졌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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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동상 국회건립과 세종로 충무공자리 및 (당시보도) 세계에서 가장 큰 남산 81척(56년 이승만 81회 생일을 기념) 동상 4,19때 끌어내려지는 모습Click here!


이들을 교화하기 위해 몸을 던져 투쟁하십시오, 명문의 척도가 무엇입니까 출세입니까? 좋은 자리 차지하는 것입니까? 지금은 구시대가 아닙니다. 명예를 얻고 출세를 많이 한것으로 명문을 따지는 시대는 갔습니다. 절대 아닙니다. 차라리 박세리라든가 박찬호 안정환 등 같은 사람들이 시궁창같은 오염된 정치판 속의 국회의원보다 나은 세상입니다. 이 사회에는 역사청산이 안 된 비극으로 일제하 친일 수구로 기득권을 가진자는 부와 권력을 내림하며 누리고 있고 일제하 독립운동하던 자손과 그 일족은 교육도 못받고 천하게 살고 있는 모순된 세상입니다.

동창회도 사회의 축소판 소집단이므로 주의 주장은 다양할 수 있습니다. 표현의 자유는 헌법에도 명시되어 있는 조항입니다. 그러나 역사는 사필귀정의 세상입니다. 정의는 바로잡혀야 하며 빛이 있는 곳에 어둠은 물러가기 마련입니다. 선배님의 주장은 그동안 입이 수 만 개인 동창회에서 그 누구도 말한마디 벙긋 못하고 있었던 질곡의 동창회 역사위에 빛을 비추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그 빛은 어둠과 왜곡의 역사를 바로잡을 단서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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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하 친일지 조선, 동아의 민족최대 독립운동 자금원 민족종교 보천교(증산도) 죽이기 보도 Click 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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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김용구
◎ 졸업기수:54
◎ 2003/4/26(토) 22:19 (MSIE6.0,Windows98) 211.183.172.2 1024x768
◎ 조회:64

Re..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1. 안동문이 지명찾기 운동이나 쇠말뚝뽑기운동을 하여 얻은 성과는 무엇입니까
2. 선배가 아닌 염홍철시장을 뽑고 홍선기 선배를 갈아치우는데 앞장선 것을 동창회 홈페이지에서
공공연히 말하는 것은 예의상 맞지 않네요
3. 동창회 홈페이지를 이용해 증산도 홍보와 전도를 하려는 의도가 보이네요.
4. 명문고에 대한 안동문의 견해는 무엇이고 안동문의 역사관,민족관,가치관과 맞지않는다고 유치한 사람이라고 비하해도 되는 것인지요.
5. 안동문이 그동안 동창회를 위해 기여한 일을 무엇인지 알고싶습니다.
6. 동창회에서 합의하여 결정한 사항도 아닌데 기수를 25회로 표기한다면 25회 선배와 55회를 어떻게 구별해야 할까요

안동문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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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창회칙에 대한 짧은 견해(그 모순성)


대전고등학교 동창회칙 제1조는 “본회는 대전고등학교 동창회라 한다.” 고 하고 제 4조 본회의 의 회원 자격은 다음과 같다.
1. 대전공립중학교 졸업생
2. 구제(舊制)대전중학교(6년제) 졸업생
3. 대전고등학교 졸업생 이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 21조는 “본 회칙은 서기 1946년 5월 30일 제정한다”고 했고,
(서기 1952년 8월 5일 개정)
(서기 1965년 8월 8일 개정)
(서기 1966년 5월 22일 개정)
(서기 1986년 5월 18일 개정)
(서기 1992년 58월 24일 개정)으로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 회칙은 1946년 5월 30일 제정되었으므로 그 교정에서 소위 1946년 6월 18일 해방후 첫 졸업생이 졸업하기 전에 만들어졌고, 1951년 9월 1일 대전고등학교 1회 졸업생이 나오기 전에 그리고 그들이 입학하기도 전에 제정된 것입니다.

따라서 제 1조는 “본회는 대전고등학교 동창회라 한다”가 아니고 “본회는 대전공립중학교 동창회라 한다”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그 당시에는 대전고등학교는 존재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52년 65년 언제 그것을 개정해서 대전고등학교 동창회가 되었는지 모르겠으나, 이 대전고등학교동창회는 처음 태어날 때부터 잘 못 태어났습니다. 일제공립대전중학교동창회가 한바퀴 굴러 대전고등학교동창회로 둔갑을 했으니 말입니다.

제 2조에서 공립대전중학교 졸업생이라 했으므로 국적은 명기하지 않았으므로 일본인 졸업생도 동창회원이 됩니다. 따라서 초청도 하고요. 그런데 적어도 3개의 학교 졸업생이 모여 동창회를 구성했으면, 최소한 각 자 공립대전중학교 몇 회다, 구제대전중학교 몇 회다, 대전고등학교 몇 회다 하지 않고, 모두 대전고등학교 몇 회다 하여, 일제 공립대전중학교 졸업생은 대전고등학교 졸업생이 되고, 대전고등학교 졸업생에게는 30을 더하여 횟수를 계산하는 우스운 일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것은 앞에 1, 2호는 무시하고 제3호 대전고등학교 졸업생만으로 동창회가 구성되었다 하는 것과 같은데, 이는 스스로 모순입니다.

대한민국의 대전고등학교가 일제 공립대전중학교 졸업생과 동창이 될 근거는 아무데에도 없습니다. 교육은 국방과 함께 국민의 4대 의무에 속하고, 교육은 군대와 같이 국가권력의 가장 핵심적인 상징분야입니다. 우리나라를 강점해 창씨개명을 강요하고, 우리 언어를 말살하고, 민족과 민족혼을 내선일체라 하여 말살하려한 일제의 국권의 상징이자 앞잡이 일제 공립대전중학교와 대한민국의 대전고등학교가 동질성이 있는 연속성이 있는 학교입니까? 일제시대 그 학교 나온 것을 이해는 합니다. 그러나 엄연한 대한민국의 대전고등학교 졸업생을 그 명예롭지 못한 학교의 후배라고 억지를 부리지는 말아야 할 것 아닙니까? 일제 시 세워진 교사와 운동장이 있다면, 그 교사나 운동장의 연혁을 일제시대에 대는 것은 타당하나, 어찌 교육이념이 최고의 가치를 가지는 학교의 연혁을 거기에 연관시킬 수가 있겠습니까?

대한민국 건국 후 세워진 다른 고등학교와 동창회를 같이 할지언정, 어찌 일제의 공립대전중학교와 동창회를 같이 할 수 있겠습니까? 말도 안 되는 협잡은 이제 때려치웁시다. 일제 공립대전중학교가 대전고등학교입니까? 그 졸업생이 대전고등학교 졸업생입니까?

대전고등학교 졸업생이 일제 공립대전중학교 후배 졸업생입니까? 일제 대전공립중학교의 일본인 교장과 일본인 교사가 대한민국 대전고등학교 졸업생의 역대 교장이고 스승입니까? 그래서 일본인 교장의 사진을 대전고등학교홈페이지에 걸어 놓습니까?
더 이상 대한민국의 헌법과 민족정기를 짓밟지 맙시다.
더 이상 대전고등학교 졸업생과 재학생들은 우롱당하지 맙시다.
좁은 소견에 어리석은 의견을 피력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현명하신 동창제위의 고견을 듣기를 바라며, 이런 문제점은 속히 고쳐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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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님 말씀 잘 보았읍니다
저도, 근간에 들어와서 역대 교장들을 보니까 저 재학중의 선생님도 계시고 일제시대의일본인들도 보이고,일제시대에 재학하셨던 선배님들이 어떤 교육을 받으셨는지는 자세히 모르지만은 그당시의 시대 상황으로 보아 근대적인 지식과 일본인化하여야 하는 교육이 主되었으리라 짐작합니다
하여,교육의 정통성과 일관성이 상반되는 시점을 기준으로 하여 교육의방향이 바뀌며 교육주체가 바뀌었다 함은 바로 그전의 학교와 그 이후의 학교는 전혀 다른 학교가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추첨제에 의해 저도 대능인의 한사람이 되었지만은,저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교육당국의 방침에 의해무조건적이고 맹목적인 획일적인 교육방침에 의한 대능인이 되었읍니다
지금도 대능인인것이 자랑스럽니다
바라옵건데,지금껏 논란이 되고 있는 일제 잔재의 청산과도 일맥상통이 되는바 선배님들의 중지를 모아 대전고가 전국에서 새롭게 주목받는 요람이 될수 있도록 참다운 졸업 기수를 부여받을수 있도록 부탁드립니다
아울러,현모교의 위치를 둔산으로 이전한다 하여 더나은 명문이 될수 없을 것이며,차라리 북일고도 가지고 있는 전용 야구장을 졸업생들의 중지를 모아 건설한다면은 이이상 대능인의 기백이 넘치는 일이 없다 할것입니다
이상으로 동문들과 모교를 사랑하는 대능인 올림........꾸벅!



◎ No, 539
◎ 이름:안병섭 (dvoucher@hanmail.net)
◎ 홈페이지:http://www.cheramia.net
◎ 졸업기수:25
◎ 2003/4/30(수) 14:09 (MSIE5.01,WindowsNT5.0) 61.106.77.110 1280x1024
◎ 조회:39

이 곳에 이 글을 올리는 이유는 이 사이트가 첫 발제자인 임 승웅 동문의 기수 사이트임으로 인해서 동문 기수 중에서 본 현안에 대해 가장 많은 정보를 상호간에 공유하고 있다고 보기때문입니다. 우리 기수만 해도 아날로그 세대로 전락해 사이트를 만들어 놓으면 들어오지 않아 폐쇄한 적이 있는데 이에 비하면 이곳 5년 선배 사이트가 마치 5년 후배의 디지털 세대와 같으니 적어도 이 점에 대해서는 그저 존경스럽기만 합니다. 임동문 제안에 대한 첫 동의자로 이곳에 입장을 밝힌 본인이 총동문회에 밝힌 입장을 이곳에 올리는 것이 도리라 생각되어 다시 이 곳에 입장을 밝힙니다. 본인은 이 현안이 민족의 역사왜곡 문제의 일환이기때문에 민족적 차원의 역사개혁이 먼저 거족적으로 선행되어야 가능하리라 보고 있지만 다들 똑똑한 동문이라 하니 대전고 동문이 나서서 조속히 바로잡히기를 바라는 사랍입니다. 그러나 일의 순리는 있을것이므로 5.17 총동창회때 공론화 하여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본인은 한민족의 창조적이고 진취적인 성격이 공자 왜곡의 지나 사대주의 노예근성과 일제 황국사관의 식민지 노예근성과 뿌리를 부정하고 말살하는 해방이후 중동의 반민족적 야훼 사막신에 의해 마취되어 그 정기가 크게 고갈되었다고 보는 사람입니다. 개체 프랙탈인 대전고 출신 대부분 역시 마더 프랙탈인 민족적 정기 고갈 상태와 크게 다를 것은 없다고 보여집니다. 그러나 첫 제안자이신 훌륭한 임동문의 기수이므로 보다 훌륭한 분이 성성하게 깨어진 민족혼으로 모교의 기수 조정 현안 문제를 끌러주시는데 앞장서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평지풍파다, 골치아프다 지금까지도 잘 왔는데 왠 뚱딴지같은 소리냐 는 등의 주장은 세계에 유례없이 다사다난한 정신 예속 문제를 경험한 민족 구성원으로서는 매우 무책임하고 소극적이며 나태한 지성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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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 김용구 ┼
│ 1. 안동문이 지명찾기 운동이나 쇠말뚝뽑기운동을 하여 얻은 성과는 무엇입니까
│ 2. 선배가 아닌 염홍철시장을 뽑고 홍선기 선배를 갈아치우는데 앞장선 것을 동창회 홈페이지에서
│ 공공연히 말하는 것은 예의상 맞지 않네요
│ 3. 동창회 홈페이지를 이용해 증산도 홍보와 전도를 하려는 의도가 보이네요.
│ 4. 명문고에 대한 안동문의 견해는 무엇이고 안동문의 역사관,민족관,가치관과 맞지않는다고 유치한 사람이라고 비하해도 되는 것인지요.
│ 5. 안동문이 그동안 동창회를 위해 기여한 일을 무엇인지 알고싶습니다.
│ 6. 동창회에서 합의하여 결정한 사항도 아닌데 기수를 25회로 표기한다면 25회 선배와 55회를 어떻게 구별해야 할까요

│ 안동문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 ┼

Re..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대단히 실망스런 질문입니다. 먼저 본인에 대한 신상과 입장을 모두 밝힌 상황하에서 김동문의 간단한 소개가 있어야 예의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장자에 기성자의 싸움닭 조련 이야기가 나옵니다. 김동문은 아직 길들여지지 않은 싸움닭 같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까? 왜냐 하면 2번의 질문내용과 같이 사실관계가 확실하지 않은 내용을 사실인 양 단정하여 마치 피의자 다루듯하는 질문내용이 무척 불쾌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태전 지명찾기 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한 때는 홍선기 전임 시장때였기때문입니다. 무척 경망하다고 생각지 않으십니까. 본인이 쓴 글은 임 승웅 동문의 글에 대한 답변의 글로 역사관을 말한 것이지 특정 종교의 교의를 밝힌 글이 결코 아닙니다. 함부로 매도하는 질문이 매우 경박하게 느껴지고 불쾌하게 느껴지고 있습니다.

지명찾기 운동이나 쇠말뚝뽑기운동을 하여 얻은 성과는 무엇이냐고 무척 도전적이면서도 묻는이의 역사관과 민족관이 의심스러운 다소 감정섞인 질문을 하고 있는데 답변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하지만 성의를 감안해 간단히 말합니다. 대전 출신은 태전지명찾기의 성과를 잘 알고 있습니다. 아직 지명이 바뀌지는 못했지만 대전 시민에게 많은 사실을 어필했음을 자부합니다. 개인적으로 알고 싶다 하시니 나중에 각종 자료를 올려드리겠습니다. 쇠말뚝뽑기운동을 하여 얻은 성과는 이미 언론보도를 통해 일제에 의해 북악산, 삼각산을 비롯 전국 유명 산하 왕릉에 박힌 쇠말뚝을 제거한 것을 익히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김동문이 이 사실을 모르거나 아무 문제의식이 없다면 역사관과 민족관이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본인은 임승웅 동문의 역사바로로잡기 일환의 주장에 대해 민족사적인 차원에서 역사를 이야기 한 것이지 결코 종교 교리에 대해 언급한 적 없습니다. 종교는 단지 수많은 베리어블 중에 중요한 요소이긴 하지만 역사를 구성하는 수많은 베리어블 중에 하나에 불과합니다. 동창회 홈페이지를 이용해 증산도 홍보와 전도를 하려는 의도가 보인다는 말은 5번의 질문 그동안 동창회를 위해 기여한 일이 무엇인지 알고싶습니다는 말과 함께 다소 조롱섞인 말로 들립니다. 이 질문으로 볼 것 같으면 총 동창회이건 개별 기수 동창회이건 무슨 간부를 하고 있는 모양인데 참으로 치졸한 질문입니다. 대전고 동문회의 간부로서는 함량미달인 유치한 질문이라 생각지는 않습니까.

모든 동문에게 당신이 동문회에 기여한 일이 무어냐고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아니 먼저 김동문이 어떠한 일을 했는지 먼저 답해 보기 바랍니다. 본인은 동창회의 모든 구성원은 모든 조직이 그러하듯이 동창회 내에서 자기 역할을 성실하게 다하면 일단 족하다 생각합니다. 김동문도 자신의 기수 속에서 맡은 바를 성실히 하면 그만 아닙니까. 누가 김동문에게 당신이 동문회에 기여한 일이 무어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제 바로 본인이 묻겠습니다. 당신이 한 일은 무엇입니까. 이러한 질문 자체가 대단히 기분나쁘다고 생각지 않으십니까,

본인은 부족하지만 우리 기수 재경 상임고문이고 반창회 회장 5년째 맡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야구부 후원회 회장도 맡았지만 개인적으로 *백만원 밖에 못내 미안한 마음에 회비 전달식에는 대전회장과 재경회장이 대신 참석해 전달했습니다. 김동문은 동문 기여도를 물량으로 척도질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심정적 Quality로 척도질하는 사람입니까. 질문의 내용을 분석하면 Quality의 하이타치보다는 하이테크쪽의 Quantity로 인생을 척도질하는 부류의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김동문은 비록 물질적으로는 도움이 안되더라도 심정적으로 동창회에 소속감을 느끼고 있는 평범한 동문은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쪽이 되리라 보입니다. 물량으로 인생을 척도질하고 물량으로 동창을 감별하는 눈을 가진 김동문은 얼마나 바친 사람이라서 그렇게 도전적이고 감정적으로 질문하는 것입니까. 우선 김동문에게 이렇게 물어보는게 상당히 불쾌하다고 생각지 않습니까. 역설적으로 이러한 반문 속에서 역지사지의 상황-김동문의 질문이 얼마나 황당한지를 감지하지 못합니까. 정신을 물질보다 중요시 여기는 가치관, 하이테크보다는 하이타치의 가치관으로 평생 살아온 본인이 볼 때 김동문의 이러러한 질문스타일은 수준이하의 질문으로 상당히 불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김동문의 질문 자체는 평범한 전체 동문을 비웃는 질문임을 알아주기 바랍니다.

동창회에서 합의하여 결정한 사항도 아닌데 기수를 25회로 표기한다면 25회 선배와 55회를 어떻게 구별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일제하 일본인이 다닌 대전중학 동문을 해방이후 대전고 동문회의 전신으로 인정해 순수 한국인 학생을 배출한 대전고가 동일 일본인 학교의 뿌리를 갖게 만든 것은 전체 동문들의 합의 얻어 결정 한 바 있습니까? 김동문의 논리로 하면 이것도 전체 동문의 합의를 얻어 만든 기수가 아니기 때문에 이 역시 잘못이 되리라 생각지는 않습니까. 대답해 보시기 바랍니다.인류역사를 보면 사필귀정의 역사바로잡기의 과정-개혁과정은 항상 혼란이 있어왔습니다. 본인이 볼때 소수의 의견제시에 불과한 이러한 입장이 단기간에 바로잡힐 것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방향으로 가려는 과정은 항상 진통이 있기 마련이라 생각합니다.

본인은 동문회의 역사의식의 일 단면을 김동문이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동문은 마치 일제 시대에 이등박문이 태전을 대전으로 강제로 바꾼 상황에서 일본인 엘리트를 배출하기 위해 한국어도 못 쓰게 하고 민족의 글도 빼앗은 채 출범한 일제 대전중학 출신의 일본인을 동문으로 흡수한 것이 과연 옳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들립니다. 개인적인 감정찌꺼기를 제거하고 김동문의 논점을 확실히 제시하는 것이 올바르다고 생각지 않습니까. 지금까지는 모든 동문이 그래왔듯이 다들 자신의 분야에 종사하느라 이러한 역사적인 문제에 별로 주시하지 못하다가 늦은 감이 있지만 사회 곳곳에서 이를 느끼기 시작한 선각자들이 이를 바로잡자고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과연 잘못된 것입니까.

민족정사의 뿌리를 밝히고 정의를 바르게 하는 것은 사통을 바르게 하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대전고가 명문이라 생각한다면 해방이후 다시시작한 대전고가 일제 시대의 왜놈들의 학교 역사로부터 당연히 단절되어야 합니다. 시민단체들이 검찰청 조달청 및 행정관서의 부패 비리가 가장 심하다고 지적하고 있고 국민여론도 그러합니다. 과거 사법 행정 외무고시 등은 거의 경기고, 서울고, 경복고를 비롯한 지방의 과거 명문들이 휩쓸다 시피했습니다. 역사왜곡과 부정부패를 막아야 할 그들이 바로 역사왜곡과 부정부패의 일그러진 주범역할을 자임해 왔습니다.

김동문은 명문의 견해를 밝히라 하는데 본인은 이러한 과거의 명문이라는 것이 일제 군국주의의 주입식, 획일식 교육체제의 무한정 경쟁 시스템을 통해 제국주의 전사를 길러내는 제도를 그대로 이어받은 왜곡된 교육제도의 산물이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과거 명문이라 여겼던 칸셉은 당연히 허물어야 할 개념입니다. 그렇다고 본인이 우리의 모교를 폄하하거나 애교심이 없다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요즘 학벌파괴라는 개념도 이러한 역사 바로잡기의 일환입니다. 경기고 서울대 법대출신의 이회창 후보가 상고 출신의 김대중과 노무현에게 거듭 패한 것은 이러한 역사 제자리 찾기와 결코 무관하지 않습니다.

사회 곳곳에 역사왜곡의 이러한 흔적은 아직 완전히 가시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가 프랑스와 같이 전후 친일파 청산을 제대로 못한 업보입니다. 중국도 한간청산을 확실히 했습니다. 당연히 우리 민족 문제의 일부인 대전고 동문회의 문제도 사회전반이 노정시키고 있는 이러한 모순을 그대로 안고 있습니다. 임승웅 동문과 본인이 이러한 역사적 관점을 제시한 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면 당연히 김동문의 역사관과 민족관을 논리적으로 설명해 보시기 바랍니다.

본인은 물량으로 세상을 재단하는 듯한 김동문의 가치관과는 다소 다를지라도 동창회에 돈을 억만금을 내는 것보다 모교의 뿌리 족보를 바르게 하는 것이 더욱 가치있다고 생각되어 민족사적인 관점에서 이를 밝힌 것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일제하에 일본인 학교인 대전중학을 다닌 한국인 동문은 친일파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우리의 동문이 될 수 없습니다. 더욱이 지금 선배로 인정하고 있는 왜인은 더더욱 동창이 될 수 없습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도둑 왜적에게 나라를 모두 빼앗겨 프롤레타리아 무산자로 전락한 한국인이 일제와 협조 공생관계에 있지 않는 한 무슨 돈이 있어 일제하에 좋은 학교를 다니고(그것도 일본인 전문학교) 외국유학을(장덕수 등 한민당 친일 매판자본가 세력) 다니겠냐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김동문이 이러한 논조와 주장에 대해 반대하는 것은 언론의 자유가 있는 대한민국 헌법하에 적법하기는 하겠지만 민족사관적인 차원에서 걸러보면 반민족적인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적반하장으로 본인의 역사관,민족관,가치관과 맞지않는다고 유치한 사람이라고 비하해도 되느냐 성토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김동문의 역사관과 주장을 모든 동문이 이해 할 수 있도록 한번 조리있게 밝혀보시기 바랍니다.

본인은 김동문이 본인이 전하고자 하는 논조에 대한 질문만 했어야 하고 그외의 감정적인 질문은 삼가했어야 하는 것이 김동문이 자부심을 갖고 있는 대전고 동문의 품격에 어울렸으리라 생각합니다. 김동문은 앞서 본인의 민족관 역사관 등을 물어보았는데 대략은 이미 답변한 바와 같습니다. 그러나 이에 앞서 먼저 김동문의 민족관과 역사관을 밝혀주는 것이 순서라 생각합니다. 만일 본인의 역사관과 민족관에 대한 대답이 부족하다면 15년전에 집필한 바 있는 (안원전 명의의) <통곡하는 민족혼>이 시중 서점에 나와 있으니 구입해 보기를 권합니다. 독자들이 만든 사이트 통곡하는 민족혼도 두 개나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것도 부족하면 필자의 다음 홈페이지에 7부작 담론이 실려 있으니 참고 바랍니다Click 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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