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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대 인물탐구 [디트뉴스]김영진(6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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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66 손정기 홈페이지 이름으로 검색   댓글 0건 조회 2,527회 작성일 2002-02-02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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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고 신선한 정치 꿈꾸는 30대 기수

상식이 통하는 사회 만들고 싶어

차세대 인물탐구(정치)-김영진 대전청소년문화원 이사장


젊다는 것은 무엇일까?
단지 연령이 낮아 혈기왕성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꿈을 가지
고 항상 새로움을 추구하며 도전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일까.
30대의 나이로 세상의 주목을 받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정도로 우리사회는 보수적인 성향이 만연돼 있다고 해도 과
언이 아닐 것이다. 정치권에서도 40대 기수론을 외치며 세대
교체의 명분을 내세우지만 쉽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도 아니
다.

김영진 (사)대전청소년문화원 이사장(39)은 30대의 젊음으
로 새로운 도전을 펼쳐나가는 인물 중에 하나다. 그는 안정
된 직장으로 평가받고 있는 공직을 과감히 떨치고 자신의 꿈
을 펼치기 위해 민선 구청장 선거에 출마하는 등 정치적인
도전을 행했다. 또한 청소년 선도와 봉사활동 등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등 현대화의 물결 속에서 갈수록 건조해지는 인
간성을 회복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김 이사장은 공직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14년여간의
공직생활 동안 대부분 기획업무를 담당했기 때문에 기획통이
라는 별칭이 붙어있다. 그는 '자랑스럽고 즐겁고 보람있는
직업'이라는 함축적인 말로 공직을 대변한다. 그 정도로 애
착이 많다.

"공직이란 정말 보람있는 직업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지역민들에게 봉사하며 즐거움과 편안함을 줄 수 있다
는 것은 하늘이 내려주신 직업입니다. 항상 지역발전과 지역
민들에게 기쁨을 줘야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봉사하는 마음으
로 생활했습니다."

대전시 장기계획 수립한 기획통

대전시 기획관리실 송무계장, 시정연구계장, 교통운영과장,
국제협력과장, 기획관을 거친 김이사장은 대전시의 장기발전
구상을 수립했던 인물이다. 또한 WTA(세계과학도시연합)를
구상하고 궤도에 올려놓는 등 대전시의 세계화에 앞장서기
도 했다.

국제협력과장 시절 WTA 발족을 위한 준비단계에서 일어난 일
화 한 토막.

영국에서 열리는 WTA 집행위원회에 정영조 대사(현 방글라데
시 대사)를 단장으로 참석하기로 되어 있었다. 집행위원회에
는 8개 회원 도시 중 5개 도시가 참가했다. 그러나 정대사
가 갑자기 병이 나는 바람에 단장으로 참석할 수 없었다. 어
쩔 수 없이 김이사장이 직원 1명과 함께 영국으로 건너가 4
시간 동안 WTA에 대해 영어로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다.
설명하는 4시간이 4일과 같이 길고 진땀나는 시간이었지만
그는 결국 회원도시들의 결의를 이끌어냈다. 돌아오는 비행
기 안에서 당시 상황을 회고하며 '자신감만 있으면 무엇이
든 해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생의 목표를 향한 그
의 발걸음을 가볍게 하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김이사장은 행정가이면서 법률가이기도 하다. 서울대 법대
를 졸업해서 행정고시를 통해 공직에 입문했지만 법학에 대
한 미련은 버리지 못하고 있다. 법학은 행정의 근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법학 공부를 함으로써 더욱 진보된 행정
을 펼치겠다는 생각으로 94년 어려운 관문을 거쳐 미국 워싱
턴대 대학원의 국비유학을 떠났고 미국 로스쿨에서 국제변호
사 자격을 취득했다. 또 대전대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마치
게 하기도 했다.

"처음 법대를 진학할 때는 뚜렷한 소신이 없었습니다. 경제
학을 전공해서 교수가 되겠다는 생각은 가졌지만 선생님들
의 추천으로 법대로 방향을 선회했어요. 법학공부를 더 하
지 못한 것은 지금도 아쉬움이 있습니다. 미국유학에서 국제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고 대전대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밟
은 계기도 못 다한 공부를 마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법학을 다시 공부한 데는 법은 모든 것을 포괄하는 것이라
는 생각에서 였습니다. 법을 공부함으로써 더 나은 행정서비
스를 제공하자는 취지지요."

민선 서구청장 도전 고배 마셔

김이사장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안정적인 직장이라
꼽히는 공직을 버리고 30대의 나이로 민선 선거에 출마한 것
도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14여년 동안 생활했던 공직을 떠난다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어요. 하지만 하급직에서 고위직까지 공직을 거치면
서 공직자들의 모든 생활과 생리를 알았다고 자부합니다. 그
래서 결정했죠. 공직의 연륜보다는 뜻을 펼 수 있는 적기가
왔을 때 과감하게 도전해보자고요. 이런 생각을 하고 나니
아쉬움은 남지만 공직을 떠나는 것에 대한 부담이 없어지더
군요."

도전의 길은 순탄치 않았다. 당시 지역 구청장들이 총선에
출마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하는 등 정치적 변화가 많았다. 고
위층으로부터 대덕구청장 선거에 출마하라는 권유를 받은
뒤 집을 이사하는 등 준비를 해왔으나 현직 구청장이 총선출
마를 포기해 무산됐다. 이런 가운데 서구청장의 유고로 어렵
게 보궐선거에 출마하게 됐다. 그것도 정당 공천 과정이 쉽
지 않아 선거일 며칠을 앞두고 결정됐다.
하지만 서구청장 보궐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것이 그에게는
고배의 눈물로 되돌아왔다. 그는 '돈 없이 치르는 선
거', '정책대결'을 주창했지만 현실정치의 한계를 뛰어넘지
는 못했다. 30대 구청장 출마라는 신선함은 29%라는 지지율
을 기록하는 선전을 하게 했지만 2등은 없었다.

"정말 아쉬웠습니다. 처음 쉽지 않은 싸움이라는 생각은 했
지만 자민련에 대한 여론과 보수성향의 벽은 정말 높았습니
다. 젊은 층이 투표에 많이 참여했다면 상황은 변했을지도
모르겠는데 젊은층의 투표율이 저조했다는 점도 아쉬움이 남
습니다. 하지만 돈을 쓰지 않고 정책대결과 이미지 부각만으
로 이 정도의 득표율을 기록했다는 것은 세대교체에 대한 많
은 사람들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 생각됩니다."

청소년 문제·봉사활동 등에 눈 돌려

낙선의 고배는 우울한 나날의 연속이라는 결과물을 던져줬지
만 청소년과 봉사활동이라는 또 다른 분야에 눈을 돌리게 하
는 계기도 됐다. 대학때 교회 주일학교 교사활동을 했으며
유학시절 교포 2-3세들이 가족들과 단절한 채 생활하는 모습
들을 지켜보며 청소년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고 낙선은 이
를 실행에 옮기게 했다. 대전청소년문화원을 인수해 운영하
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또 청소년들의 고민을 해결해 주
기 위해 자원봉사 상담도 마다하지 않는다.

"유학시절 교포 2-3세대들의 탈선과 방황을 지켜보며 청소
년들의 생각과 고민을 해결하는 단체를 운영하고 싶었습니
다. 그 때문에 대전청소년문화원을 운영하게 됐고 이곳에서
는 청소년 선도 웅변대회, 역사기행, 영상강좌 등을 통해 청
소년들이 반듯한 사고와 행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습
니다. 앞으로도 이 사업은 계속해 나갈 것입니다."

청소년 문제뿐만 아니라 어두운 사회와 그늘진 이웃을 돌보
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장애인들이나 불우한 이웃들
을 찾아다니며 소중한 마음을 전하는 것은 물론 소록도 봉사
활동 등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만들어 가고
있다.
그는 이런 활동 등을 통해 낙선의 좌절과 낙심을 하나씩 걷
어가고 있다. 오히려 이들을 찾아다니며 자신을 돌아보는 계
기가 되는 지도 모른다.

"소록도 나환자촌에 봉사활동을 갔는데 웃음을 잃지 않고 감
사하며 생활하는 그분들의 모습을 보고 내 자신이 부끄러웠
습니다. 한번 낙선한 것 가지고 많은 시간 좌절과 낙심으로
허송세월했던 제 모습이 형편없어 보이더군요. 돌아오는 길
에 마음을 다졌습니다. 이런 분들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사는
데 젊은 내가 옹졸한 모습을 보여서야 되겠는가..."

둘째아이 태어난지 15일 만에 죽어

그에게 낙선은 두 번째의 좌절이다. 낙선은 정치적인 좌절
이지만 자식을 잃어버리는 아버지로서의 아픔이 첫 번째 좌
절이었다. 김이사장에게는 대학시절 만나 6년 열애 끝에 결
혼에 골인한 부인 이근안씨(39)와의 사이에 두 아들이 있
다. 큰아들은 중학교 1년생이고 막내가 초등학교 1년생이
다.
터울이 많다는 질문에 머뭇거리며 꺼낸 이야기가 둘째 아이
의 사망이다. 둘째아이는 91년에 10달동안 자라왔던 어머니
뱃속을 나왔다. 하지만 그에게 주어진 이승의 시간은 15일이
었다. 태어날 때부터 심장이 좋지 않았던 둘째 아이는 서울
대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난 후에도 차도가 없어 부모들의 노
력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등졌다. 눈앞이 노랗게 변하고 귀에
서는 멍하는 이명만이 들릴 뿐이었다. 아내는 죽은 아이를
붙들고 절규했고 결국 충격을 이기지 못해 넋을 잃기도 했
다. 아이의 유골은 산에 뿌려졌다. 아이가 죽은 후 화목했
던 가정에는 냉기가 흘렀고 부부는 의욕을 상실한 것처럼 멍
하니 창 밖을 내다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둘째아이가 세상에 나온 지 15일만에 저승으로 떠나는 것
을 보며 내 부모의 마음을 느꼈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집
안분위기는 엉망이 되었지요. 아내는 한동안 말을 않고 살았
고 모든 일에 의욕을 상실했습니다. 일에 파묻히고 신앙의
힘으로 가까스로 극복했지만 가슴속에 남아있는 아이의 한
은 지울 수 가 없습니다."

기독교·운동권 집안서 자라

대전시 대사동에서 출생한 김이사장은 목회일에 일생을 바
친 아버지 때문에 어린시절을 신앙과 함께 보냈다. 아버지
는 45년여를 개척교회에서부터 현재 제일감리교회 목사까지
목회자로 지낸 분이다. 이 때문에 종교는 성장배경에서 떼어
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지금도 가슴 속에 좌우명처럼 '남
을 돕고 봉사하라'는 아버님의 말씀을 간직하고 산다. 특히
제일감리교회는 5공 시절 운동권 학생들이 모이는 이른
바 '대전의 명동성당'이라 불리기도 했고 아버지는 운동권
의 대부로 칭해졌다. 형님도 운동권에서 활동하며 두 번씩이
나 투옥되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 김이사장은 이런 환경 속
에서 자라나 어려움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꿋꿋이 일어서
며 항상 도전하는 마음을 길렀다.

김이사장은 꿈을 갖고 있으면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생각한
다. 또 모든 일에는 최선을 다한다는 마음으로 생활해 나간
다. 그는 정치적인 꿈을 갖고 있다. 구청장에 만족하지 않
고 대전시장, 중앙 정치무대에 진출하고 싶어한다. 젊은 생
각을 행정이나 정치에 반영시켜 신선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서다. 하루 2-3시간씩 인터넷에서 대화를 나누고 정보를 얻
는 이유도 젊은 생각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젊음 하나만 믿고 뛰지는 않는다. 준비된 정치인이
되기 위해 오늘도 다양한 경험을 체험하는데 시간을 보낸
다. 쉬지 않고 마음의 양식을 쌓고 그늘진 이웃이나 방황하
는 청소년을 찾아다니며 그들과 대화한다. 14년의 행정경험
과 법률지식을 바탕으로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드는 게 그
의 바램이다. 그리고 기다린다. 盡人事 待天命(진인사 대천
명)의 자세로....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꿈을 쫓는 도전자″

친구 가 본 김영진- 김용효(변호사)


“자기관리가 철저합니다. 자신의 목표를 세워 놓고 밀어붙
이는 추진력과 기획력이 돋보이기도 하죠. 미래가 보장된 기
획관 자리를 버리고 뛰쳐나갔을 때는 가만히 자리보존하고
있으면 부시장은 할텐데 하며 안타까워했던 친구들이 많았습
니다. 자기 자리에 만족하지 않고 꿈을 향해 도전하는 모습
이 웬만해선 흉내도 못 내죠. 또 친구들 사이에 애경사가 있
으면 바쁜 일정에도 동창들에게 핸드폰 문자 메시지를 보내
는 등 신세대 감각을 유지하는 친구죠. 행정고시 출신이 미
국에 2년 있는 동안 미국변호사를 취득한 것은 본인의 노력
이 대단했다고 생각됩니다.
다만 친구로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젊은 정치인답게 기존 정
치가들의 모습을 답습하지 말고 본인이 갖고있는 추진력과
참신성을 앞세워 주민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진정한 정치가
의 모습을 보였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이석호 기자·ilbolee@dtnews24.com,
우종윤 기자·man-pa@dt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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