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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從北]-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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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914회 작성일 2015-04-16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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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미

 

“나는 위법, 美 단체는 표현의 자유?”

 
강제출국 소송 제기, 앞으로도 당당히 할 일 할 것.
[CBS 시사자키 제작진]
 
 강제출국 후 체중 7kg 줄어. 美서 건강회복에 전념

- 종북콘서트? 여행서 만난 동포들 얘기한 것

- 北 독재 찬성하지 않아. 인권 향상은 찬성

- 종북 콘서트 낙인, 종편 허위보도로 시작

- 국가보안법 위반 조사, 책에서도 北 고무찬양 못 찾아

- 관광비자로 정치행위했으니 출입국 관리법 위반?

- 통일문화 콘서트는 말 그대로 문화 행사

- 北 여행기는 진보, 보수 구분없이 어디서나 얘기

노컷뉴스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00~20:00)

■ 방송일 : 2015년 4월 15일 (수) 오후 7시 35분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신은미 (미국 교포)

◇ 정관용> 시사자키 3부, 오늘은 재미교포 신은미 씨를 전화로 연결합니다. 지난 연말 통일콘서트, 일부에서는 종북콘서트 논란이 시끄러웠죠. 결국 검찰로부터는 기소유예 처분 당했지만 강제출국조치 됐는데 지난 3월 말 신은미 씨가 한국법원에 강제출국조치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소송을 제기한 이유, 재미교표 신은미 씨 전화 연결해 직접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나와 계시죠?

◆ 신은미> 안녕하세요? 신은미입니다.

◇ 정관용> 강제출국 그러니까 쫓겨나신 게 언제였죠?

◆ 신은미> 올해죠. 1월 12일로 알고 있습니다, 2015년.

◇ 정관용>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 신은미> 제가 우선 미국으로 돌아와서는 건강 회복에 전념을 했습니다. 한국에서 생각보다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었나 봐요.

◇ 정관용> 그러셨겠죠.

◆ 신은미> 와서 보니까 제가 육체적으로도 체중이 한 15파운드? 그러니까 한 7kg 정도 됐나요, 체중이 줄었어요. 그래서 그동안 아무 생각 안 하고 잘 먹고 또 미국에 계시는 우리 지인 분들, 독자 분들이 또 저에게 많은 따뜻한 격려와 위로를 보내주셨고요.

◇ 정관용> 건강은 좀 회복하셨어요?

◆ 신은미> 네, 많이 회복했습니다.

◇ 정관용> 체중도 다시 돌아왔고?

◆ 신은미> 네, 거진 다 돌아왔고요. 몇 주 전부터는 오마이뉴스에 제가 그동안 한국에서 있었던 일을 ‘재미동포 아줌마, 남한에 가다’라는 제목으로 지금 연재하고 있어요.

◇ 정관용> 그전에 ‘재미교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라는 책, 그것도 역시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다가 펴내셨잖아요?

◆ 신은미> 네. 그리고 이번에는 제가 또 우리 한국, 모국에 가서 있었던 일을 ‘재미동포 아줌마, 이번에는 남한에 가다’라는 제목으로 지금 연재를 하고 있는데 3편까지 연재가 올랐고요, 몇 편까지 될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올 6월, 돌아오는 6월에는 일본에서부터 초청순회강연을 제의를 받아서 갈 예정이고요. 또 올 8월에는 광복절을 전후해서 유럽에 초청강연을 제의받은 상황이에요. 그래서 그렇게 계획이 짜여 있습니다.

◇ 정관용> 일부 언론에서 또 ‘종북콘서트, 전 세계로 가다’ 이렇게 하면 어떡하시려고 그러세요?

◆ 신은미> 글쎄요, 저는 제가 당당하니까요. 종북콘서트가 아니고 이것은 우리 남과 북, 온 해외동포 모두가 한마음으로 바라는 평화로운 통일을 염원하는 그런 아주 기분 좋고 신바람 나는 통일콘서트이기 때문에 저는 제가 당당하기 때문에 그냥 제 할 일을 할 것입니다.

◇ 정관용> 그냥 내가 평양에 가서 본 북한의 모습을 강연을 듣기 위해 온 사람들한테 그냥 있는 그대로 전해준다, 그런 생각이신 모양이죠?

◆ 신은미> 그렇죠. 저는 그러니까 평양에만 갔다 온 것이 아니라 사실은 전국, 함경북도 저 끝에서부터 북쪽의 전역을 그래도 속속들이 여행을 간 사람 중의 하나일 거라고 생각을 해요. 그렇기 때문에 그동안 예전에는 남과 북, 남쪽의 우리 동포 분들이 북한에 자유롭게 갔던 시절이 있잖아요. 그래서 특별히 왔다갔다하면서 북에 대한 소식들을 많이 알 수 있었는데 요즘은 남과 북 관계가 경직되어 있다 보니까 북한이 지금 어떤가라는 것, 뭐 궁금한 부분들이 있는 것을 저는 해외동포로서 그래도 조금은 자유로운 상황이니까요. 가서 제가 물론 북한의 전부를 봤다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 정관용> 전부를 볼 수도 없죠.

◆ 신은미> 그럼요. 그냥 여행자가 가서 여행 속에서 만난 우리 북녘 동포들의 살아가는 모습, 생각 그런 것을 얘기하는 겁니다.

◇ 정관용> 거기서 좋은 모습, 나쁜 모습, 좋은 점, 나쁜 점을 다 보셨죠?

◆ 신은미> 그렇죠. 그리고 책에는 제가 본 범위 안에서 좋은 모습, 제가 생각해서 가슴 아팠던 안 좋은 모습들 이런 게 골고루 다 책에 있어요.

◇ 정관용> 그런데 일부 주장에 따르면 그 콘서트에서는 나쁜 얘기는 별로 안 하고 좋은 얘기만 한 것 아니냐, 이런 지적은 어떻게 보세요?

◆ 신은미> 저는 글쎄요, 대동강 맥주가 맛있고 북녘 땅에 아직은 강이 우리 예전 60, 70년대 아직 산업화 발전이 아직 덜 됐기 때문에, 오염이 덜 된 그런 상황 속에서 북녘의 물이 깨끗해서 북녘 사람들은 아직도 샘물이나 물을 그냥 밥물을 떠먹고 식수로 사용하고 있더라, 이런 것들이 뭐 그렇게 북한을 찬양했다든지 좋은 모습이라고만 생각을 하는 건...

◇ 정관용> 그건 아니다?

◆ 신은미> 있는 대로 말씀을 드리는 거고요.

◇ 정관용> 그리고 또 그런 지적하시는 분들이 꼭 듣고 싶어 하는 얘기가 북한의 3대 세습 그리고 민주주의가 없는 독재체제, 이것은 어떻게 평가하세요?

◆ 신은미> 저는 일단 어쨌든 간에 그런 독재랄지 이런 것은 전 세계 무엇을 막론하고 그런 것은 찬성하지 않고요, 인권 문제에 있어서도 어느 나라 인권이든 인권 향상을 위한 것이라면 저는 찬성하는 사람이고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저는 여행자로 가서 우리 동포들의 얘기를 하는 건데 다른 어떤 얘기를 하는 것에 대해서는 제가 드릴 말씀이... 아는 게 없습니다.

◇ 정관용> 최근에 서울행정법원에 소송 내셨잖아요. 그건 결국 강제출국조치가 부당하다, 이거죠? 그 이유는 뭡니까?

◆ 신은미> 지금 사실은 법률적으로 자세한 것들은 변호사님께서 잘 아시겠지만 지금 일단은 아홉 분의 변호사님들께서 지금 저를 도와주시고 계세요, 모두 무료로 자원봉사를 하고 계신데요. 제가 강제출국 당한 그 이유는 국가보안법을 제가 위반을 해서, 다시 말하자면 제가 우리 국가의 공공안전에 위해, 위협을 가할 그런 우려가 있는 사람이다. 쉽게 말해서 저를 국가보안법위반으로 제가 강제출국을 당한 거잖아요. 그런데 저는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적이 없거든요. 그리고 제가 네 차례에 걸쳐서 검경 조사를 통해서도 다 밝혀진 바지만 처음에는 소위 종북콘서트라고 낙인찍은 그 사건, 그것은 지난번 한 종편 방송이 제가 북한을 지상낙원이라고 했다면서 어떻게 날조된 허위보도를 시작하면서 생긴 거잖아요.

◇ 정관용> TV조선에서 그렇게 보도했죠.

◆ 신은미> 네, 그런데 이미 그 조사 과정에서 경찰도 그런 발표를 했잖아요. 토크콘서트에서 지상낙원이라고 말한 적이 없었다라고 분명히 경찰도 얘기를 했어요. 그리고 또 네 차례의 검경 수사를 통해서도 어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토크콘서트에서 국가보안법 위반한 점을 찾으려고 했는데 찾지 못했기 때문에 50시간, 4차례 불려간 것이 그다음에는 제 책을 가지고 조사를 시작한 거죠. 토크콘서트에서 못 찾으니까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 그 책에서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즉, 북을 제가 고무 찬양했는지를 발견하기 위해서 사실 서문부터 아주 매 줄을 쳐가면서 조사했지만 아무것도 위반한 사항을 못 찾은 거예요. 만약에 제 책이 정말 북한을 고무 찬양을 했다면 어떻게 2013년도에 문화체육부, 문체부에서 제 책을 우수문학도서로 선정을 했을 것이며.

◇ 정관용> 물론 그러다가 취소를 하기도 했습니다, 다시.

◆ 신은미> 그러니까 그 취소한 이유도 너무 재미있지 않아요? 저는 어이가 없었는데 예전에는 그런 사람인지 몰랐다는 이런 이유들 그리고 또 2013년도 8월에는 통일부에서 저를 불러서 제 책과 강연내용을 주제로 통일에 도움이 된다면서 통일 다큐멘터리를 찍었잖아요.

◇ 정관용> 그랬던 적도 있죠.

◆ 신은미> 그런데 결국은 그것도 다 웹사이트에서 내린 것 같더라고요. 그 이유가 그런 사람인지 몰랐다, 이런 얘기를 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저는 똑같은 신은미이고 제 본질은 달라진 것이 없고.

◇ 정관용> 변하지 않으셨다?

◆ 신은미> 책 이야기도 달라진 것이 없고. 그렇기 때문에 거기서도 찾지 못하니까 마지막으로 정말 재미있었던 것은 책에서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간 것은 출입국 관리법 위반을 했다는 것으로 저를 위반혐의를 걸었거든요. 그런데 그 출입국 관리법 위반을 한 첫째 이유가 비자면제 프로그램에 따라서 무비자로 들어오잖아요, 관광을. 그런데 입국 목적에 위배되는 어떤 정치적인 행위를 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분명한 것은 통일문화콘서트는 말 그대로 문화 행사이지 정치 행사가 아니었고요. 만약에 그렇다면 얼마 전에 미국인들이 한국에 입국해서 대북전단 풍선 날리고 막 그런 행사 있었잖아요.

◇ 정관용> 있었죠.

◆ 신은미> 네, 그들이야말로 정말 전쟁까지도 일으킬 수 있는 위험천만한 정치적인 행사를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그들이 출입국 관리법을 위반해서 조사를 받았다는 뉴스를 저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요. 더욱이 한국 정부 즉, 통일부는 대북전단, 그때 풍선 날리는 그 행위에 대해서 뭐라고 했느냐면 ‘표현의 자유에 해당하기 때문에 잡을 수 없다’라고 그렇게 발표를 하지 않았습니까? 저는 그 얘기를 들으면서 참 어이가 없다라는 그런 말밖에 할 얘기가 없었어요.

◇ 정관용> 신은미 씨의 표현의 자유는 어디 갔느냐, 그런 얘기로군요.

◆ 신은미> 그렇죠. 그리고 그걸로 저보고 무비자로 들어와서, 관광을 목적으로 들어와서 왜 이렇게 정치적인 행위를 하느냐? 그렇게 하면서 제가 위반을 했다는 그런 얘기를 한 거죠. 그리고 두 번째로 이유를 들은 것이 제가 입국 목적에 위배되는 행위로 강연을 하고 강연료를 받은 사실인 거예요.

◇ 정관용> 돈 문제.

◆ 신은미> 그러니까 강연을 하고 강연료를 받으려면 취업비자를 받고 들어와야 하는데 무비자로 들어와서 강연을 하고 강연료를 받지 않았느냐라는 것으로 저를 조사를 했거든요. 그런데 사실 저는 주최 측에서 첫 번째 강연 후에 강연료를 받았는데 다시 다 돌려주고 앞으로 강연하는 것 강연료 안 받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한 푼도 안 받았어요. 그 이유는 우리 모국에 가서 보니까 통일운동 하시는 분들이 다 경제적으로 너무너무 힘들게 사시는 거예요. 오히려 제가 돈을 받을 게 아니라 제 호주머니에 있는 것을 털어드리고 오고 싶은 그런 심정인데, 어떻게 강연료를 받을 수가 없어서 안 받았다 하니까 그다음에 검찰에서 조사해 온 것이 저는 까마득하게 머릿속에서 잊고 있었는데 제가 교회에 가서 간증을 한 적이 있어요. 탈북자들이 7, 80% 모이는 교회에서 목사님도 탈북하신 분인데 거기서 아주 은혜롭게 간증 예배를 드렸는데 그때 목사님께서 우리 차비하라고 남편한테, 사례비라고 하나요? 그걸 드린 것을 남편이 받았죠. 그런데 그걸 찾아 오셨더라고요, 검사 분께서. ‘그 교회에서 돈 받지 않았느냐. 그러니까 그거는 위법이다’ 이렇게 그런 얘기가 됐는데 제가 말이 너무 길어지는데, 한 가지 이 상황에 있어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제가 2013년 8월에 대한민국 통일부에서 다큐멘터리 홍보동영상에 출연을 했잖아요?

◇ 정관용> 그렇죠.

◆ 신은미> 그리고 통일부로부터 저는 출연료를 받았습니다. 그때도 똑같이 무비자로 들어가서 입국한 거예요.

◇ 정관용> 그건 왜 문제 삼지 않느냐?

◆ 신은미> 그때도 출연료를 받았는데 그때는 왜, 그렇다면 통일부는 외국인을 불법으로 고용하는 것이 되는 것 아니에요?

◇ 정관용> 네, 신은미 씨 충분히 전달이 된 것 같습니다, 이 정도 말씀 듣고요. 어쨌든 지금 검찰은 이런저런 조사를 했지만 기소유예 처분을 했고 그리고 법무부 출입국관리소는 검찰은 재미동포인 점 등등을 고려해서 기소유예 했지만 출입국관리법 위반 때문에 강제 출국한다라고 조치했는데 그게 위법하다라고 소송을 제기하신 거니까.

◆ 신은미> 네, 그렇죠.

◇ 정관용> 그건 이제 재판 결과를 같이 지켜보도록 하겠고요. 마지막 질문이 될 텐데요. 우리 신은미 씨 콘서트에 대해서 일각은 통일콘서트, 일각은 종북콘서트 이런 식으로 논란을 벌이고 부릅니다만 한 중간쯤 서 계신 분 가운데 이런 주장 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순진한 신은미 씨가 사실은 좀 종북 혐의가 있는, 지금 구속되어 있죠. 황선 씨나 이런 분들한테 이용당했다, 이런 식의 주장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 신은미> 저는 요, 그런 얘기를 경찰이나 검찰에서도 말씀을 했어요.

◇ 정관용> 아, 그랬어요?

◆ 신은미> 그런데 저는, 제가 만약에 예를 들어서 주최 측이 저를 불러서 주최 측이 원하는 대로 이러이러한 얘기를 해 주십시오. 그리고 나는 주최 측에서 원하는 얘기를 따라서 얘기를 했다면 이용을 당한 거죠.

◇ 정관용>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 신은미> 그렇지만 그게 아니고 그들은 제가 북에 갔다 와서 보고 들은 여행기, 제 책의 내용 그리고 북에서 보고 동포들과 나눈 그러한 나의 얘기를 해달라고 저에게 제의를 했고 저는 그래서 간 것이지 제가 뭐 한두 살 먹은 어린 아이도 아니고 이용한다고 이용을 당하는 그런 것은 아니고요. 그리고 중요한 것은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이런 남과 북이 통일을 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우리가 소위 말하는 진보다, 보수다, 좌다, 우다 이런 것을 따지지 말아야 된다고 생각을 했고요. 통일된 조국은 어떤 소수의 사람들이 통일된 조국을 만드는 게 아니라 우리가 서로 막 헐뜯고 하는, 소위 말하는 함께 살아가는... 통일 조국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어떤 주최 측이 됐든 예를 들어서 이런 종북 마녀사냥이 있기 전에는 저를 지금은 마녀사냥식 종북몰이를 한 종편 방송하고도 많은 출연을 했습니다. 그들이 저를 불러서 제가 북한에 갔다 온 사진이나 얘기들이 너무나 좋다고 해서 제가 시리즈로 방송에 출연하고 했을 때가 있었어요.

◇ 정관용> 그 TV조선에도 쭉 시리즈로 나가셨던 거예요?

◆ 신은미> TV조선이 아니고 MBN에서 시리즈로 했고요. 채널A, 채널A에서도 제가 했고 YTN에서도 했고 뭐 연합뉴스Y인가 그렇게...

◇ 정관용> 여러 곳에 했었다?

◆ 신은미> 그랬죠. 그러니까 뭐 교회에서 부르면 교회에서 대학에서 부르면 대학에서.

◇ 정관용> 알겠습니다. 나를 부르는 곳이면 진보, 보수 따지지 않고 나는 어디든 가서.

◆ 신은미> 따지지 않고 저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저의 북한 여행 얘기를 하는 것이고 제 책 얘기를 하는 것인데. 주최 측이 어떤들 저는 구애를 받지 않았다는 얘기고요. 혹은 오히려 제가 한마디 말씀드리고, 제가 검찰, 경찰에서도 얘기한 것인데요. 이용당한 얘기를 했을 때는 저는 그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오히려 저를 이용한 곳은 정부’라고 얘기했습니다. 언제는 제 책이 통일에 너무 유익하다 하면서 저를 불러서> 다큐멘터리도 찍고 상도 주고 했을 때는 그때는 그렇게 저를... 쉽게 말해서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이용을 한 것이고 또 언제는 종북몰이 저를 똑같은 책 내용을 갖고 이런 식으로 이용을 하고 그래서 저는 오히려 제가 이용을 당한 것은 주최 측이 아니라 오히려...

◇ 정관용> 정부다?

◆ 신은미> 북한도 아니고 우리 남한 정부에서 저를 오히려 이용한 것 아니냐, 정말 속상하고 너무 화가 나서 저는 그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오히려.

◇ 정관용> 네, 오늘 시간이 좀 부족해서 여기까지 말씀을 들어야 되겠고요. 언제 한국에 오시면 스튜디오에 모시고 또 얼굴 보면서 얘기하고 싶은데 일단 법상 5년 동안은 못 오시네요.

◆ 신은미> 네.

◇ 정관용> 이번에 소송되신 게 잘 되면 그 사이에 또 오실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때 또 뵙도록 하고요. 건강관리 잘 하시고 오늘 고맙습니다.

◆ 신은미> 네,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 정관용> 논란의 주인공, 재미교표 신은미 씨 함께 만났습니다.
 
 


@+기독교방송사측 및 정관용 앵커에게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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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은미 ^^그의 ^^착각!
 
 
 
 
김창균 부국장 겸 사회부장 사진
김창균
조선일보
副局長 겸 ^사회부장
'내가 만난 사람들은
한결같이 체제(體制)에 박수를 보냈다.
그곳에서 사는 것에 만족했고 즐거워했다.'

유태계 독일인 소설가였던
 
^^'리온 포이히트방거'(1884~1958)의 저서
 
 
'모스크바 1937년'의 한 구절이다.
 
 
그가 소련 기행문을 쓴 1937년은
수백만명을 무자비하게 숙청한 '스탈린의 공포정치'가 정점(頂點)을 찍던 시점이다.
포이히트방거는
그 유혈 참극의 한복판에서 시민들의 행복한 미소만을 목격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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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남한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다.
평양 거리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고,
아이들은 재잘거리며 뛰어다녔다.
 
출근길 지하철은 붐비고,
밤에 술집을 가면 여자들끼리 와서 수다를 떨었다."


종북(從北) 콘서트 논란의 당사자
 
재미교포 신은미씨가 강제 출국에 앞서 가진
 
인터뷰 내용이다.
그는
평양에서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본 것만 쓰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탈북자들이 증언한 고단한 삶도 북한의 한 부분이고, 내가 목격한 평양시민들의 삶도 북한의 또 다른 부분"이라고 했다.


포이히트방거
 
히틀러의 위험성을 가장 먼저 경고했으며,
히틀러가 독일 총리가 되자
미국 방문 중 귀국을 포기하고 망명 생활을 시작했다.
그랬던 그가 왜?
스탈린 체제의 진짜 모습은 알아채지 못하고 오히려 감싸고도는 잘못을 범했을까.

공포 사회는 체제 내부와 외부를 철저히 분리한다.
숙청과 처형 같은 폭정(暴政)의 도구는
주민들을 겨냥해 은밀하게 작동시키면서
바깥세상을 향해서는
지상낙원을 건설 중인 양 위장한다.
이히트방거
 
나치 체제 내부에서
그 어두운 그림자가 덮쳐 오는 것을 눈치챘지만,
 
스탈린 체제에선
뜨내기 방문객으로서
프로파간다의 매체로 활용됐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탈북자들은
김씨 체제 내부에서 공포를 몸으로 겪었던 반면,
신씨는 공포의 실체를 볼 수 없는
가림막 밖을 서성거렸을 따름이다.
"탈북자들이 증언한 것도 북한의 일부이고, 내가 관광객으로서 목격한 것도 북한의 일부"라는 신씨의 주장은 그래서 타당성이 없는 것이다.

포이히트방거는
 
모스크바 시민들과의 만남은
 
"예정에 없이 우연히 이뤄졌다"면서
 
"그들이 나에게 한 말은 미리 준비해 온 게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신은미씨도 "북한의 전국 방방곡곡이 세트장일까. 관광객에게 보여주기 위해 모두 연기(演技)하는 것일까"라고 했다. 두 사람 모두 당국의 각본에 따라 동원된 사람들에게 속은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 것이다.

정통성이 부족한 정권은 외부인과 접촉하는 주민들을 통제하거나 입단속을 하곤 한다. 체제에 불만이 있는 주민들이 불쑥 등장해 치부(恥部)를 드러낼까 염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반(反)체제 세력이 존재하고 때때로 정권과 충돌하는 나라,
이를테면 우리나라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나 벌어지는 일들이다.
체제에 맞선다는 생각은 머릿속에도 담아둘 수 없는
절대 공포 사회에서는 사전(事前) 연출이 필요없다.

김정은과 공동 정권을 운영한다는 말까지 들었던
고모부 장성택이
'건성건성 박수를 쳤다'는 죄목을 뒤집어쓰고
하루아침에 처형장으로 끌려가는 게 북의 체제다.
함부로 입을 놀리다가 어떤 일을 겪게 된다는 것을 주
민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공포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상황별 대처법도 DNA에 아로새겨져 있다.
거리에서 마주치는 낯선 사람들은 모두 잠재적인 고발자로 간주한다.
그들이 말이라도 걸어오면 행복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최고 지도자를 향한 감사를 되뇐다.
공포 사회에서는 전(全) 주민을 대상으로 상시 연출 시스템이 작동한다.

신은미씨는
평양 주민들이 서울 시민들과 똑같이 평범한 삶을 살고 있더라고 했다.
신씨에게 북한을 공포 사회라고 하면 "근거를 대라"고 반박할지도 모르겠다.
소련 反체제 운동가 출신인 나탄 샤란스키
 
공포 사회를 손쉽게 감별할 수 있는
'광장 테스트'를 제시했었다.
광장 한복판에서 자신의 견해를 두려움 없이 밝힐 수 있다면 자유 사회,
그렇지 못하다면 공포 사회라는 것이다.
서울 광화문광장에는 '7시간 잠적, 구명조끼 타령, 어느 나라 대통령이냐'는 대형 플래카드가 며칠째 버젓이 걸려 있다.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 대통령 행적에 대한 비난이다.
신씨는 평양 김일성광장에서도 최고 지도자를 비난하는 격문을 본 적이 있는가.
신씨가 '평범한 평양 시민의 삶'의 예로 들었던 술집의 수다 가운데
김정은이나 부인 리설주에 대한 험담을 한마디라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신씨가 자신의 강제 출국을 정치적 박해로 포장해
순교자 흉내를 내는 것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시비를 걸 생각은 없다.
그러나
자신이 북한의 진실을 보고 전했기 때문에 쫓겨난 것이라는
 
착각에서만큼은 깨어나 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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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균 부국장 겸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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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균 부국장 겸 사회부장
 
 
신은미 책을 우수도서로 선정?
 
정부조직도 점검을 해야하지 않나
 
2014121601952_0_thumb.jpg[뉴스 인사이드]'종북 논란' 신은미씨의 방북기가 우수문학도서로 선정되기까지박돈규 기자
 
 
 
 
 
 
[조선 Video] 박 대통령 물고 늘어지는 신은미차재문 기자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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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들 중에서 최고위급으로 94년에 탈북하여 95년도에 대한민국에 정착하여
최근 북한에 대한 정확한 비판에 앞장서고 있는 강명도씨는?
북한 2200만명 안팎의 인구중
약 20만명의 최상층은
남한 중산층부럽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저 한준구의 짧은 북한 지식에 의거하더라도
최소한 40만명안팎의 북한 최상층은 3대 왕조체제를 떠받드는 핵심 세력으로서
등 따뜻하고 배고프지 않은 데 굳이 남북 통일을 해서 뭐하나? 하는 세력임에 틀림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김일성대학출신의 엘리트로서 탈북하여
지금은 인기있는 동아일보 기자로 맹활약하고 있는 주성하 기자는?
탈북의 도화선은?(탈북의 견인 원조는?)
 
89년의 임수경 방북과 환영회에서의 발랄했던 임수경
 
쇼크 때문이었다고 여러번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이제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들이 2만 7천명 안팎에 이릅니다.
북한에서 최상층이나 이에 버금가는 생활상만 보아온 재미동포이자 미국 국적의
신은미씨가
최근 원근각처를 돌면서 북한에 대한 토크쇼를 벌이다가
서울 조계사 경내의 문화관에서 있었던 소위 종북 콘서트에서
임수경 현역 의원이 잠시 참석하여 한마디 하는 바람에 일이 더욱 커지게 되고
언론에 크게 보도되면서
수많은 일들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북한의 최상층 0.1%에 해당되는 곳만 안내받은 신은미가
비록 6차례 방북하면서 그들의 하위층의 실상을 정말 대충이라도 짐작을
못햇을 까하는 의구심이 가고
 
특히--
 
 
탈북자중에서 그들중
 
^^몇분을 모시고--끝장 토론을 햇더라면?
 
 
강제 퇴거-강제 출국 조처라는 사태는 안 당했을지도
 
모릅니다.
 
중앙일보의 이철호 논설위원은
이석기 사태의 이석기 전의원이 매우 고맙다 라는 글을 올린 바도 있습니다.
이석기 사태 땜에--반공에 대한 경각심을 높여주었기 때문이고
아직도 국내 주요시설 파괴 공작에 대한 말을 거론하는 그룹이 있다고 것도
설마설마하다가 실체로 파악되었으니
국가안보차원에서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하고 말입니다.
황선씨 같은 분들이--자꾸 또 국가보안법 저촉등으로 언론에 노출되면?
결과적으로 건전한 진보세력까지 목줄을 죄는 일임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할 말은 많으나 후일을 도모하고
정동영 전의원이 탈당하여 김세균 전 교수 및 명진스님 이수호 전 민주노총위원장
정의원의 고교 후배인 임종인 전의원등이 합류하는
 
국민모임이 최근 18%안팎의 지지율을 보여
 
모든 언론에 놀라움을 주고 있습니다.
 
핵심주도하는 김세균 교수의 말처럼
종북세력을 제거하고 다시 제3세력을 형성하자는 취지를
건전한 진보세력은 참조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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