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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3,152회 작성일 2014-09-21 14:50

본문

 
 
 
 
@+제목: 
 
孝女歌手 현숙의 ‘부모님 누워계신
 
 
내 고향 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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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4-09-13
 
 
歌手하러 상경하기 위해
 
 
고향 ^김제 등지던 ^딸 손에
 
 
쥐여준 것은?
 
 
당시 돈 ^1만원, ^김치 한통, ^쌀 한말!

 
 
 
 

 
66357297.1.jpg
김제 조정래아리랑문학관의 ‘현숙효열비’ 앞에 선 가수 현숙.
처음 효열비 소식에 부담감이 엄청나
석 달 동안 잠을 못 이루고 목소리까지 나오지 않았다.
김제=김경제 기자
 
‘효녀가수’ 현숙(정현숙)
 
 
12남매(6남 6녀) 중
 
막내딸(11번째)이다.
 
어머니(김순애·1922∼2007)는
 
 
문고리를 잡고 끙끙대며
 
 
혼자서 현숙을 낳았다.
 
논에서 모심다가 산기를 느끼고
부랴부랴 집에 들어와 출산했다.
현숙 어머니는 잠깐 누워 있다가
다시 물 벙벙한 무논으로 모를 심으러 나갔다.
 
 
어머니는 동래 정씨 종갓집 맏며느리였다.
 
 
동네가 온통 일가친척으로 집성촌이었다.
 
 
 
붉은 해가 동산에서 떠올라
아득한 지평선 너머 논바닥으로 사라지곤 했다.


 
 
현숙은 형제가 많아 둥글게 자랐다.
 
 
어딜 가서도 사람들과 곧잘 어울렸다.
동네 인기 넘버원이었고,
학교에서도 주위엔 친구들로 시끌벅적했다.
 
 
현숙은 새 옷을 거의 입어본 적이 없었다.
 
 
교복도 늘 언니들이 입었던 것을 이어 받았다.
검정치마가 빛이 바래 희끄무레했다.
하지만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씩씩하고 시원시원했다.

조회시간엔 애국가 지휘를 도맡아 했고,
체육은 뭐든지 만능이었다.
 
운동회 땐
 
 
음악선생님과 체육선생님이
 
서로 현숙을 데려가겠다고
 
 
 
신경전을 벌였다.
 
 
급기야 중학교 땐 배구선수로 뽑혔다.
 
그땐 큰 키(163cm)였지만,
 
 
 
아쉽게도 그 이후로 전혀 자라지 않았다.

 
“지금도 내 손이 엄청 맵다.
배구선수 흔적일 것이다.
제대로 했으면 국가대표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ㅎㅎㅎ
 
하지만 중3 여름 합숙훈련 때
 
 
 
그만 허파에 ‘가수 바람’이 들었다.
 
당시 군산서해방송에서
노래자랑이 열렸는데
 
 
거기에 나가 엉겁결에 1등을 한 것이다.
주장친구와 가발 쓰고
듀엣으로
펄 시스터즈의 ‘커피 한 잔’을
신나게 불러 젖혔다.
그때부터 내 꿈은 가수로 바뀌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친구와
서울행 완행열차를 탔다.
가수가 되겠다고 무작정 도발했다.
온 식구들이 펄펄 뛰었지만
내 귀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겁이 없었다.
 
아버지(정광진·1917∼1996)는
 
 
딸자식 버렸다며 몸져누웠다.
그때 내 손엔
 
어머니가 몰래 쥐여준
 
 
1만 원(당시 서울시내버스 요금 50원)과
 
 
김치 한 통, 그리고 쌀 한 말이 전부였다.”

현숙은 같이 간 친구 언니집인 뚝섬에서 묵었다.
그 친구와 그곳에서
오아시스레코드사가 있는
종로5가까지 걸어 다니며
노래연습을 했다.
 
 
 
그리고 얼마 후 데뷔 곡
 
‘타국에 계신 아빠에게’가
 
 
 
라디오전파를 타기 시작했다.
 
‘오늘도 보고파서♪
 
가족사진 옆에 놓고♬
 
철이 공부시키면서♩
 
당신만을 그립니다♬∼’
 
 
 
중동근로자 가족의 애타는 심정을 담은 노래였다.

그 무렵 어머니가
현숙 뒷바라지를 위해 올라왔다.
그리고 1980년
‘가슴이 찡할까요♪ 정말로♬∼ 눈물이 핑돌까요♬∼’의
‘정말로’가 대박을 쳤다.
 
 
^^김정택 SBS예술단장이
 
 
 
‘밝은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현숙의 간곡한 부탁에
 
 
 
만들어준 곡이었다.
2년쯤 뒤엔 아버지도 자연스럽게 합류했다.
마침내 서울 영등포 당산동에
현숙 가족(남동생 포함 4식구)이 둥지를 틀었다.
남부러울 게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10년을 채 넘기지 못했다.

 
 
“1989년 아버지가 ^^치매에 걸리셨다.
 
아버지 속옷에
 
‘가수 현숙 아버지입니다’와
 
‘전화번호’를 새겨드렸다.
그래도 가끔 집을 나가셔서 행방불명이 되곤 했다.
도대체 어떻게 그 먼 곳까지 가셨을까.
은평구 응암동파출소에서 연락이 온 적도 있었다.
늘 불안했다.
어머니도
관절염 등
온몸이 종합병동이라
아버지 뒷바라지를 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목욕시킬 때마다
 
내 머리칼을 사정없이 쥐어뜯었다.
 
머리카락이 한 줌씩 빠졌다.
아버지는 밤새도록 고래고래 소리도 질렀다.
견디다 못해 가끔 나도 모르게
아버지에게 꽥꽥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혼자 울었다.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가슴이 아프다.
치매 어르신은 아기나 마찬가지인데
내가 왜 그랬을까.
그만큼 난 늘 잠이 모자랐다.
 
한번은 KBS가요무대 녹화 대기 중
 
깜빡 잠이 들어 차례를 놓쳤다가
 
나 혼자 따로 찍은 적도 있었다.
1993년엔
어머니마저 중풍으로 쓰러졌다.
말도 못하고 목에 호스를 꽂고 누워서 살아야 했다.
밥 한술 물 한 모금 할 수 없어,
 
돌아가실 때까지
 
14년 동안 호스를 통해
 
영양액을 공급했다.
앞이 캄캄했다.
우선 엄청난 병원비부터 벌어야 했다.
내가 공연하러 밖에 나갈 땐
언니 오빠 올케가
돌아가면서 도와줬다.
1996년 KBS 김덕기 PD가
부모 모시는 모습을
다큐멘터리로 찍겠다고
연락이 왔다.
난 펄쩍 뛰었다.
너무나 당연하게 부모를 모시는 것뿐이고
 
어머니 아버지 기저귀 찬 모습도
 
결코 보여주기 싫었다. 그
 
분들도 자존심과 품위가 있는데….”

김 PD는 끈질겼다.
결국 현숙이 졌다.
 
김 PD는
 
현숙의 집에서 25일 동안 먹고 자며
 
 
모든 것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렇게
 
KBS다큐멘터리
 
 
‘사람과 사람들’이 방영
 
 
(1996년 6월 12일)됐다.
 
 
반향이 엄청났다.
시청률 42%에 재방송까지 이어졌다.
배경음악 현숙의 ‘사랑하는 영자씨’까지 덩달아 떴다.
 
 
그때부터 현숙은 ^^‘효녀가수’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리고 현숙의 아버지는 그해 12월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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