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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難의 ^역사]--은퇴-100세 시대-행복의 3大 조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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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1,024회 작성일 2015-04-10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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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難의 역사… 서울로 벼슬하러 온

 

퇴계 이황도 **전셋집 살았다

 
 
 
 
 
▲ “조선에서 가장 일반적 가옥 임대차 방식”

조선총독부 보고서에 첫 공식 용어 등장

1910년 통상 계약기간 서울은 100일


▲ 대출 어렵던 때 집주인엔 목돈마련 기회

세입자엔 내집마련 ‘징검다리’ 역할


▲ 60,70년대 ‘집 없는 설움’ 기사 많아

1980년 자기 집 사는 사람 44.5%뿐

1981년에야 주택임대차보호법 마련


▲ 호황에, 외환위기 역풍에, 저금리에…

반복되는 전세난은 끝날 줄 모르고


미국·유럽은 물론 이웃 나라 일본에서 온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놀라는 것 중 하나가 ‘전세 제도’다. “어떻게 월세도 내지 않고 2년 동안 살다가 그 돈을 그대로 돌려받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집을 빌려 쓰면 매달 집세(rent)를 내는 것이 상식인 그들에겐 ‘전세’가 이해하기 어려운 제도다. 전세는 영어 사전에도 한국 발음 그대로 ‘jeonse’로 등재돼 있다.

한국의 고유한 임대차 제도로 인정받는 ‘전세’는 언제, 어떻게 시작됐을까. 최근 ‘전세난’이 심각한데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가 겪은 전세살이의 설움은 어땠을까.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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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계 이황도 전셋집에 살았다

전세의 역사는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시대엔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목돈을 빌려주고 집을 빌려 쓰는 가사전당(家舍典當)제도가 있었다. 빚에 대한 담보로 논과 밭을 넘기는 ‘전당(典當)’제도가 집으로 확대된 것이다.

“한양의 셋집에 동산 뜰이 비었더니(漢陽賃屋園院空) 해마다 울긋불긋 온갖 꽃이 피어나네(年年雜樹開繁紅).” - <퇴계선생문집> 권2

조선의 대학자 퇴계 이황(1501∼1570)이 어느 봄날 세 들어 사는 집에서 정원에 핀 살구꽃을 보고 쓴 시다. 이황처럼 지방에서 서울로 벼슬하러 온 정승도 재산을 모아 집을 사기 전까진 전셋집을 구해 살았다.

전세가 공식 문서에 등장한 첫 사례는 1910년 조선총독부가 만든 ‘관습조사보고서’다. 여기엔 전세가 “조선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가옥 임대차 방식”이며 “차주가 가옥 가격의 반액 내지 7·8할을 소유자에게 기탁하며 별도의 차임을 지불하지 않고, 반환 시 기탁금을 돌려받는다”고 설명돼 있다. 전세 계약 기간은 지방에서 통상 1년, 서울에서는 100일이었다. 방이 많은 한옥에서 방 한두 칸을 전세로 내놓기도 했다.

■ 집주인과 세입자 모두에게 ‘남는 장사’

광복 후엔 도시화·산업화 물결과 함께 전세 제도가 본격적으로 자리 잡았다. 전세는 집주인과 세입자 모두에게 이득이었다. 한국은 빠른 경제성장으로 집을 살 여력이 커지면서 집값이 빠르게 뛰었다. 아파트는 분양만 받으면 몇 배를 남길 수 있는 ‘남는 장사’였다. 하지만 지금처럼 집을 사기 위해 은행에서 돈을 빌리지 못했다. 정부는 산업 발전에 재정을 투입하기 위해 ‘개인 대출’을 억제하고, 대신 국민이 저축한 예금에 높은 이자를 줬다.

전세는 집주인들이 집을 살 때 모자란 목돈을 보충하는 통로였다. 전세 보증금이 이자 없는 은행 대출 역할을 한 것이다. 전세 보증금을 받아 은행에 넣어둬도 이자가 연 10~20%에 육박해 월세보다 나았다. 전세 보증금은 불확실한 세입자의 신원을 보증하는 역할을 했고, 집주인은 매달 월세를 걷는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었다.

시골에서 집과 논을 팔아서 올라온 세입자도 매달 월세를 내기보다 목돈을 전세 보증금으로 맡겨두는 것이 편했다. 게다가 전세는 당장 가진 현금으로 살 수 있는 집보다 훨씬 넓고 좋은 집에 살 수 있게 해줬다. 전세는 목돈을 강제로 저축하게 해 나중에 집을 사게 하는 ‘징검다리’ 역할도 했다.

경향신문
1976년 3월5일자 경향신문.

■ 집 없는 세입자의 설움

하지만 세입자의 ‘집 없는 설움’도 컸다. 1958년 민법에 전세 세입자의 권리가 명시됐지만 말뿐인 권리였다. 전세 계약을 6개월마다 맺어 세입자들은 집주인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문간방에 세 들어 사는 어머니는 밤이면 ‘주인집에 혼날까’ 봐 우는 아기의 입을 틀어막아야 했다. 1963년 7월10일자 경향신문은 “다섯 식구를 거느린 실직 운전사가 돈이 없어 셋방을 비워주지 못하고 괴로워하다가 부인, 세 자녀와 함께 집단자살을 기도했다”는 사연을 전했다. 이 운전사는 불과 6개월 전에 월세로 이 셋방을 얻었지만, 집주인이 일방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전세를 줘 10일 전부터 새로운 세입자가 마루에서 살아왔다고 한다.

급격한 도시화로 서울에 많은 인구가 몰려들었지만 서울에는 집이 부족했다. 변두리 구릉지와 제방, 하천변 등에 무허가 주택이 들어섰다. 1980년 서울에서 반 이상은 남의 집에 살았다. 자기 집에 사는 사람은 44.5%뿐이었다. 1976년 3월5일자 경향신문은 “서울 도봉구에 저소득층이 몰려 방 1칸이 작년보다 5만원 이상 오른 20만~30만원씩 나와도 방이 나오기가 무섭게 나가 방을 구하기가 힘들다”, “서울 서대문구와 마포구 일대의 셋방값이 지난해에 비해 20~30% 크게 올랐으나 전세나 월세로 내놓은 집이 없을 정도로 셋방의 인기가 크게 치솟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금의 전세난은 ‘전세’가 부족한 것이지만, 당시는 ‘셋방’ 자체가 부족한 절대적 전세난이었다.

정부는 1981년에야 ‘주택임대차보호법’을 만들었다. 주택 소유권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서 전세 보증금을 떼이는 일이 다반사였던 때, 새 집주인에게도 보증금을 요구할 수 있게 됐다. 또 계약 기간을 최소 1년으로 정해 세입자의 숨통을 틔웠다.

경향신문
현대식 다가구 주택과 초가집이 함께 있는 1981년 서울의 모습. | 경향신문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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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15년 주기 전세난, 이번엔 다르다

한국엔 1987년 이후 세 차례 전세난이 있었다. 1987~1990년은 경제 호황형 전세난이었다. 3저 호황으로 경제성장률이 10%를 웃돌면서 여유 자금이 부동산에 몰려 집값이 폭등했고, 전셋값이 그에 따라 뛰었다. 주택보급률이 70%로 여전히 낮았는데 분당, 일산 등 1기 신도시 입주를 준비하는 전세 수요가 늘었다. 전국 평균 전세가는 3년 만에 3300만원에서 5800만원으로 뛰었다. 갑자기 뛰는 전셋값을 감당하지 못해 서울 외곽, 지하방으로 밀려나는 서울 시민들의 불만이 컸다. 게다가 주택임대차보호법을 개정해 1990년부터 계약 기간을 2년으로 늘리면서 집주인들이 전셋값을 한꺼번에 올렸다. 1990년 봄에는 전셋값 파동으로 17명의 세입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정부는 임대주택 공급을 늘리기 위해 ‘다가구주택’ 건설을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지금 서울의 골목마다 늘어선 빨간 벽돌의 3~4층짜리 다가구주택이 그 유산이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에는 집값이 폭락하면서 전셋값도 떨어져 세입자들이 집주인들에게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역(逆) 전세대란’이 일어났다. 집주인이 빚을 내서 보증금을 돌려줘야 할 처지에 몰린 것이다. 위기를 극복하자 1999년부터 다시 전세가가 급상승했다. 외환위기 때문에 주택 공급을 하지 못한 상황에서 실직·파산한 집주인들도 집을 날리고 전세로 몰렸다. 1999년 7000만원을 밑돌았던 전국 평균 전세가가 2002년엔 1억원을 돌파했다.

세 번째가 2008년 금융위기를 극복한 후 찾아온 지금의 전세난이다. 현재의 전세난은 과거의 전세난과 양상이 다르다. 주택 재고가 부족하지 않은 상황에서 집주인이 전세를 월세로 빠르게 전환하고, 세입자가 전세(가급적 새집과 아파트)를 고집하면서 발생하는 상대적 전세난이다. 집값이 정체되고, 기준금리가 1%대에 다다를 정도로 낮으니 집주인은 전세를 놓을 이유가 없다. 세입자는 전세의 주거비가 자가 주택, 월세보다 낮으니 전세 보증금이 집값과 별 차이 없을 정도로 뛰어도 전세를 선호한다. 전문가들은 이번 전세난은 저성장·저금리라는 장기 추세에 따른 구조적인 변화라서 단시간에 끝나지 않고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하고 있다.

<조미덥·주영재 기자 zor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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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백서]
 
 
 
 
 
 
'행복한 100세 시대' 위한 3가지 조건
 
 
 
 
 
 
조선비즈|김태우 한화생명 은퇴연구소 연구위원
 
 
 
 
 
 
2015.04.10 03:06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의 행복에 대한 기준은 거의 비슷하다. 건강하며, 오래 살고, 돈 많이 벌고, 명예와 권력을 누리는 것들일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이러한 행복의 기준을 오복(五福)에 담고 있다. 오복(五福)이란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을 말한다. 수는 오래 사는 복, 부는 부유함을 말하고 강녕은 큰 우환 없이 살고, 유호덕은 덕을 즐기며, 고종명은 주어진 명을 다하고 편안하게 숨을 거두는 것 이라고 한다. 오복 가운데 수를 제일 먼저 내세우듯이 오래 사는 것이야말로 큰 복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최근에 100세 시대라는 말이 매스컴에 자주 등장하는데, 실제로 우리 주변에서도 90세, 100세를 넘긴 어르신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그러나 무조건 오래 사는 장수(長壽)만이 능사가 아니다. 정말 축복받고 건강한 장수의 삶을 위한 3가지 조건을 찾아보도록 하자.

수명의 '양(量)'이 아닌 수명의 '질(質)'을 늘려라
조선 왕조 500여년 동안 모두 27명의 왕이 있었는데, 평균수명은 46.1세로 비교적 짧은 편이었다. 실제로 회갑을 넘긴 임금은 태조(74세), 2대 정종(63세), 15대 광해(67세), 21대 영조(83세), 26대 고종(68세) 등 5명뿐이다. 단명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특히 50세를 넘긴 왕들이 대부분 고혈압, 심근경색, 동맥경화, 당뇨병을 앓았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이는 오늘날 성인병에 해당한다.
조선 임금들은 아마도 새벽부터 시작하는 과도한 업무와 스트레스, 부족한 운동량, 고칼로리의 밥상 등이 성인병을 유발했을 가능성이 높다. 미국 '워싱턴대 건강측정 평가연구소'에서는 건강수명을 단축하는 위험 요소와 기간을 조사한 결과 '식습관'이 13.4년으로 가장 큰 위험 요소로 나타났다. 보건사회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평균수명은 81.9세, 건강수명은 70.7세로 약 10여년 동안은 질병 등 병치레를 하면서 다른 사람이나 가족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장수(長壽) 시대에 '건강수명'을 늘려가는 생활방식의 변화가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최빈수명 고려해 보장 기간 늘려라
한 해 동안 사망한 사람들을 나이별로 나열할 경우 가장 많이 사망하는 연령을 '최빈사망연령 또는 '최빈수명'이라고 한다. '최빈수명'이 90세 이상이 되는 사회를 100세 시대라고 볼 수 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최빈수명'은 이미 85세를 넘어섰다. 이 추세라면 2020년경 '최빈수명'은 90세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앞서 우리나라 건강수명이 70.7세, 평균수명이 81.9세 그리고 최빈수명 85세를 감안하면 결국 장수 시대에 노후생활 중 병치레 기간은 점점 늘어날 수밖에 없다. 통계청에 따르면, 60세 이상 고령자가 꼽은 노후에 대한 고민으로 경제적 어려움이 38.6%, 건강 문제가 35.5%로 특히 장수 시대에 발병률이 상승하고 있는 치매는 노후의 가장 두려운 질병으로 꼽히고 있다. 앞으로 10년 후, 그러니까 2025년에는 치매환자가 현재 약 54만명에서 100만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어(전국 치매유병률조사, 2013, 보건복지부) 건강수명에서 최빈수명까지 축복받은 장수를 위해 가입된 보험의 보장 기간과 보장 범위를 다시 한번 재점검해봐야 할 것이다.

◇3G(3 Generation(제너레이션)·3대) 상속을 준비하라
장수사회로 갈수록 노노(老老) 상속에 대한 고민은 깊어간다. 장수사회의 대표 국가인 일본에서는 노노 상속이라는 말이 유행한 지 오래인데 말 그대로 노인이 사망하면 노인이 가지고 있던 재산을 젊은이가 아닌 '노인 자식'에게 물려준다는 말이다. 하지만 고도 성장기에 재력을 축적한 장수 조부모가 '노인 자식'이 아닌 손주들에게 미리 재산을 넘겨줄 경우, 대략 40% 정도는 절세가 가능하다. 이른바 3세대에 걸친 상속 준비다. 이를 3G 세테크라고도 부른다. 조부모들이 갖고 있는 풍부한 자산을 젊은 세대로 이전하면 증여·상속세에 대한 절세 효과를 거둘 수 있고, 자녀 세대는 교육비 부담을 줄일 수 있다.

ⓒ 조선일보사측에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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