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진진-이색경력의 ^^CEO들] 및 각종 [공제회 비리]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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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4,274회 작성일 2015-04-06 12:48본문
동아일보 > 사회 | 손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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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己 연봉은 깎고 직원 최저연봉은 7만弗 로 올린 CEO2015. 4. 16 (목)미국의 한 중소기업이 '주주이익 극대화'라는 전통적 기업관에 반기를 든 파격 실험에 착수해 화제가 되고 있다. 미 워싱턴주 시애틀에 본사를 둔 신용카드 결제서비스업체 '그래피티페이먼트'는 직원 최저 연봉을 7만달러(약 7700만원)로 인상하기로 했다고 뉴욕타임스가조선일보 > 국제| 나지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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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2]
스포츠맨·판사·의사·기자…
이색 경력 자랑하는 CEO들
최고경영자(CEO)는 ‘기업의 꽃’이다. 신입사원부터 임원까지 모두가 CEO를 꿈꾼다.
CEO가 되는 길은 멀고도 험하지만 다행히도 외길은 아니다.
평소 준비만 잘하면 전문직도, 군인도, 만화가도, 운동선수도 누구나 CEO가 될 수 있다.
여기 다양한 경력을 가진 CEO들이 이를 입증한다. 이들에게 익숙하고 안정된 직장을
박차고 나와 불꽃 튀는 경영 현장에 뛰어든 이유를 들어봤다.
잘나가던 ‘士’자 출신 CEO들
김상헌 네이버 사장, 판사서 IT벤처로
현직 CEO 중엔 전문직 출신이 꽤 있다. 요즘이야 전문직도 포화 상태라지만 이들이 소싯적엔 소위 ‘士’자들이 잘나가던 시절. 안정적인 미래를 마다하고 치열한 경영 일선에 뛰어든 이유는 단 하나, 꿈을 좇았기 때문이다.
판사 출신인 김상헌 네이버 사장이 대표적인 예다. 김 사장은 1986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서울형사지방법원 판사를 지냈다. 1996년 LG그룹 법무팀으로 자리를 옮겨 대기업 사내 변호사로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그는 2008년 돌연 IT기업인 네이버로 옮겨 대표이사 사장 자리까지 꿰찼다.
“한 우물을 파는 것도 좋지만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갖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할 때 진정한 자유와 행복감을 느낄 수 있죠. 훗날 인생을 돌이켜 봤을 때 후회하지 않으려면 자기가 끌리는 곳을 선택해야 합니다.”
의사 출신은 셀 수 없이 수두룩하다. 안철수 전 안랩 사장, 강신호 동아쏘시오홀딩스 회장, 홍광표 크리스탈밸리CC 회장, 양윤선 메디포스트 대표, 이성진 레이캅코리아 대표, 정희두 헬스웨이브 대표 등 열거하기도 힘들다.
특히 양윤선 대표는 서울대 의대 수석 졸업, 의사고시 수석 합격 등 의사로서 촉망받던 인재였다. 그럼에도 그는 지난 2000년 불확실성이 높은 바이오 벤처기업 메디포스트를 설립했다.
“백혈병, 소아암 등 난치병 환자들이 골수 기증자를 찾지 못해 치료를 못 하거나 사망하는 사례를 많이 접했어요. 골수 대신 제대혈을 이식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병원 안에서는 제대혈은행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기 어려워 직접 회사를 차리게 됐죠. 병원과 전혀 무관한 분야가 아니어서 연구개발이나 사업을 하는 데 있어 의사 경력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고재일 동일토건 회장의 전 직업은 공인회계사다. 1968년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1995년 동일토건을 설립했으니 따지고 보면 회계사로서 일한 세월이 더 길다. 고 회장은 “정년 없이 일하고 싶다는 생각에 57세 늦깎이 나이에 공인회계사 일을 접고 창업을 결심했다”고 ‘전직’ 이유를 설명했다. 건설사 회계 업무를 많이 맡았던 경험도 건설업계에서 인생 이모작을 시작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곽태선 베어링자산운용 한국법인 대표는 미국 변호사 출신이다. 하버드 로스쿨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기업전문 변호사로 명성을 날렸다. 그러던 어느 날, 지원 업무 위주인 변호사는 ‘조연도 아닌 엑스트라’란 생각이 들었다. 한 번쯤 ‘주연’으로 살아보고 싶었던 그는 때마침 영국 베어링증권 한국지사에서 일해 달라고 온 제안을 놓치지 않았다. 생소한 증권 용어와 한문을 익히기 위해 경제신문과 옥편을 찾아가며 공부했다.
“법학 수업 대부분은 ‘팩트가 무엇이냐’가 중심입니다. 이렇게 쌓은 습관이 훗날 투자자들의 자산을 운용할 때도 객관적 시각으로 다가서게 도움을 줬습니다.”
모바일게임 회사 드라이어드의 서영조 대표는 변리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변리사 시험에 합격한 후 로펌에서 2년간 근무했다. 그러나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지루하게 느껴졌다. 다음커뮤니케이션으로 옮겨 모바일게임 사업을 기획, 관리하는 업무를 하게 됐고 재미를 느껴 이내 창업까지 했다.
“안정적이고 편한 것도 좋지만 내가 성장한다는 느낌이 없었어요. 내가 즐길 수 있는 일을 하고, 젊었을 땐 고생도 해 봐야 된다 싶었죠. 일을 하면서 자신이 성장하고 있음을 느낀다면 그게 바로 자신에게 맞는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재능과 성실로 인생 역전
김승남 조은시스템 회장, 50대에 창업
사(士)자 직업은 아니지만, 각 분야에서 다양한 경력을 쌓고 CEO가 된 이도 적지않다.
이석우 다음카카오 사장, 박근태 더맥키스컴퍼니(옛 선양) 사장은 기자 출신이다.
1982년 대전일보 기자가 된 박근태 사장은 같은 사옥에 입주해 있던 조웅래 선양 회장과의 인연으로 2010년 CEO로 자리를 옮겼다. 이석우 사장은 중앙일보 사회부·국제부 기자로 2년여간 근무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로스쿨을 졸업하고 국제변호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단 이 사장은 기자 활동이 짧은 것을 고려해 관련 언급을 꺼리는 것으로 알려진다.
모바일게임 업체 조이풀게임즈의 엄주봉 대표는 만화가로 활동한 이력이 있다. 한 게임 업체의 외주 작업에 참여했던 게 게임업계에 입문한 계기가 됐다. 마침 모바일게임 개발 기술은 만화가 시절 틈틈이 독학으로 익혀둔 터였다. 만화가로서 상상력을 바탕으로 콘텐츠를 만들었던 경험이 생동감 넘치는 게임을 개발하는 데 톡톡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군인 출신도 있다. 김승남 조은시스템 회장은 육군 중령 출신, 도상철 NS쇼핑 사장과 장세욱 유니온스틸 사장은 육군 소령 출신이다. 특히 김승남 회장은 61사단 179연대장을 끝으로 전역한 뒤 50대 중반의 나이에 조은시스템과 잡코리아를 창업해 화제가 됐다. 그는 저서 ‘좋은 성공’에서 “하나님께 불만 한 가지가 있다. 나 같은 경우 하루 40시간이 꼭 필요하다. 무료하게 사는 사람들에게는 15시간 정도를 주고 남는 시간을 내게 주면 얼마나 공평할까”라고 썼을 만큼 일에 관한 남다른 열정을 자랑한다.
전문성 내세워 업계 ‘러브콜’
리서치센터장 출신 김경원 디큐브 대표
전공 분야 전문성을 살려 경영에 도전한 사례도 있다.
박용관 오이솔루션 사장은 30년 가까이 광통신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응용물리학을 전공하고 벨연구소에서 수석연구원으로 근무했다.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KT 회장 후보로 거론됐을 만큼 업계 안팎에서 신망이 두텁다. 그는 “바닥에서 출발한 벤처기업이 글로벌 기업으로 커가는 것을 보여주는 게 더 의미 있다”는 신념으로 오이솔루션 사장 자리를 고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경원 디큐브시티 대표는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 출신이다. 보통 증권맨들은 자리를 옮겨도 증권이나 금융업 자체를 떠나진 않는다. 유통 업체 대표로 옮긴 그가 눈에 띄는 이유다.
“삼성경제연구소 금융실장, CJ경영연구소장 등 대기업에서 경영 전략을 총괄하는 일을 오래 했습니다. 덕분에 유통업을 비롯한 다양한 사업에 정통하게 됐죠. 리서치센터장을 지내며 계속 기업을 들여다 본 경험도 도움이 됐고요. 업종이나 회사가 달라도 경영의 요체는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김정근 오스코텍 사장 이력도 특이하다. 서울대 치의학 박사를 거쳐 단국대 교수를 역임했지만 그의 꿈은 치과의사가 아닌 ‘뼈 전문가’였다. 그는 단국대 교수 시절 골다공증 등 뼈 질환 관련 효과 높은 치료제가 아직 나오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 동료 교수들과 함께 자본금 5000만원으로 오스코텍을 설립했다.
고성학 한국정보인증 사장은 김형오 전 국회의장 보좌관 출신이다. 김 전 의장의 상임위가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여서 통신보안 분야를 두루 공부하며 업계와 인연을 맺게 됐다고.
체육인 출신 CEO도 있네
농구 감독 최희암, 고려용접봉도 ‘감독’
체육인에서 CEO로 변신한 이도 꽤 찾아볼 수 있다.
최희암 고려용접봉 사장은 젊은 시절 농구 선수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1990년대에는 연세대 농구팀 감독을 맡아 대학 농구 전성기를 이끌기도 했다. 2009년 인천 전자랜드 프로농구팀 감독 임기를 마쳤을 때 그는 홍민철 고려용접봉 회장의 제안으로 중국 다롄법인장으로 변신하게 된다.
전문경영인도, 중국 전문가도 아니었지만 그는 발군의 경영 실력을 자랑했다. 2013년 STX다롄조선소의 부도 여파로 고려용접봉 다롄법인이 연쇄부도 위기에 직면했을 때 발 빠른 구조조정으로 수익을 개선해 좋은 점수를 받았다. 이런 성과를 인정받아 그는 지난해 5월 고려용접봉 국내영업 총괄 사장으로 승진했다.
“농구팀이나 회사나 사람과 함께 일한다는 점은 비슷하더군요. 빨리 전략을 짜고 바로바로 업무에 적용한 게 도움이 컸습니다.”
교육전문기업 대교에듀캠프의 서명원 대표는 1970년대 배드민턴 선수로 활약했다. 이후 서울체육고에서 10여년간 교직생활을 한 후 1997년 창단한 대교눈높이 배드민턴단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대교그룹과 인연을 맺었다. 이곳에서 방수현, 라경민 등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을 육성하며 지도자로서 인정받은 서 대표는 2013년 9월 대교에듀캠프 대표로 발탁됐다. 대교에듀캠프 관계자는 “서 대표는 운동선수 출신 특유의 에너지로 직원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며 “대표이사로 취임한 지 1년여 만인 지난해 흑자전환에 성공, 경영 능력도 입증했다”고 전한다.
치킨 프랜차이즈 또봉이통닭의 최종성 대표는 중학교부터 대학교 시절까지 씨름선수로 활동했다. 키가 크고 덩치가 있어 중학교 체육 선생님이 씨름을 권유한 게 계기가 됐다고. 그러나 20대가 되고 보니 세상 보는 눈을 더 넓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다시 경영학을 전공했다. 이때 생활비를 벌기 위해 장사를 시작한 게 창업까지 이어졌다.
“선수생활을 통해 몸에 밴 승부사 기질과 인내심, 자기관리 습관이 경영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씨름은 몸을 부딪치며 단 몇 초간에 승부가 나야 하는 경기다 보니 상대방의 심리를 꿰뚫는 게 중요한데요. 사업도 마찬가지로 상대방의 마음을 읽어내고 그에 자신을 맞추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씨름과 공통점이 있다고 봅니다.”
해외 대표적인 이색 경력 CEO
영어 강사 출신 마윈, 美 출장이 알리바바 창업 단초
최근 글로벌 IT업계 거물로 떠오른 알리바바의 마윈 창업자 겸 회장은 평범한 대학 영어 강사 출신으로 유명하다. 특이한 외모 탓에 취업조차 쉽지 않았다는 그는 1995년 번역일로 미국에 출장 갔을 때 인터넷을 처음 접하고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IT 시장에 눈을 뜨게 된다. 이후 마윈 회장은 수차례 창업에 도전했고 2007년 알리바바를 설립했다. 오늘날 알리바바 시가총액은 237조원에 이른다. 영어 강사로서 얻은 미국 출장의 기회를 인생 역전의 기회로 삼은 것이다.
온라인 공개강의 학습 플랫폼 업체 칸아카데미를 설립한 살만 칸 사장은 펀드회사에 다니던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인 사촌동생에게 수학 과외를 해주다가 일일이 시간 맞추기가 어려워지자 과외 내용을 동영상으로 만들어 온라인에 올리기 시작한 게 칸아카데미의 시작이 됐다. 칸아카데미는 설립 후 현재까지 약 40여개의 언어로 4억4000여개 동영상 강의를 무료로 제공하며 월간 1200만명의 접속자를 끌어모으고 있다.
세계 최대 전자결제 업체 페이팔의 창업자 피터 틸도 처음부터 금융권에 종사했던 인물은 아니다. 틸 대표는 미국 스탠퍼드대 로스쿨에 진학해 변호사가 됐지만 이내 적성에 맞지 않음을 깨달았다. 7개월 만에 변호사 생활을 청산한 그는 금융계로 눈을 돌려 크레디트스위스에서 파생상품 트레이더로 제2의 삶을 시작했다. 이후 1996년 틸캐피털이라는 헤지펀드 회사를 차렸고 2년 뒤 모교 스탠퍼드대에서 강의를 하다 만난 24살의 유대인 맥스 레브친과 페이팔을 공동창업했다.
온라인 숙박 공유 서비스 에어비앤비를 세운 브라이언 체스키 사장은 출판사 디자이너 출신이다. 틀에 박힌 일상이 싫증 난 그는 어느 날 직장을 그만두고 달랑 1000달러가 있는 통장을 들고 무작정 샌프란시스코의 실리콘밸리로 이사했다. 하지만 그가 처한 현실은 샌프란시스코의 비싼 집세를 감당하기 어려운 청년 실업자 신세였다. 여기서 힌트를 얻은 그는 자신이 살고 있던 아파트 거실에 매트리스만 깔아 임대 사업을 시작했다. 싸구려 매트리스 3개로 시작한 민박 비즈니스는 6년 만에 100억달러 가치를 지닌 에어비앤비로 성장했다.
트위터의 딕 코스톨로 대표는 코미디언 출신이다. 코스톨로 대표의 유머 감각이 트위터 기업문화에도 스며들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한편 페이스북과 구글이 온라인 광고 시장을 독식하면서 커가는 사이 트위터가 실적에 부진을 겪자 코스톨로 대표 퇴진설이 돌기도 했다.
청바지로 유명한 리바이스(리바이스트라우스)의 칩 버그 사장은 야전 군인 출신이다. 미·소 냉전 당시 독일 전투 부대에서 미군 육군 장교로 복역하기도 했다. 이후 2006년 P&G를 거쳐 2011년 리바이스 전문경영인(CEO)으로 영입됐다.
[취재 : 노승욱·정다운 기자에게 감사드립니다 / 일러스트 : 정윤정님에게도 감사드립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801호(2015.04.01~04.07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측에게도 감사를 드립니다]
CEO가 되는 길은 멀고도 험하지만 다행히도 외길은 아니다.
평소 준비만 잘하면 전문직도, 군인도, 만화가도, 운동선수도 누구나 CEO가 될 수 있다.
여기 다양한 경력을 가진 CEO들이 이를 입증한다. 이들에게 익숙하고 안정된 직장을
박차고 나와 불꽃 튀는 경영 현장에 뛰어든 이유를 들어봤다.
잘나가던 ‘士’자 출신 CEO들
김상헌 네이버 사장, 판사서 IT벤처로
현직 CEO 중엔 전문직 출신이 꽤 있다. 요즘이야 전문직도 포화 상태라지만 이들이 소싯적엔 소위 ‘士’자들이 잘나가던 시절. 안정적인 미래를 마다하고 치열한 경영 일선에 뛰어든 이유는 단 하나, 꿈을 좇았기 때문이다.
판사 출신인 김상헌 네이버 사장이 대표적인 예다. 김 사장은 1986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서울형사지방법원 판사를 지냈다. 1996년 LG그룹 법무팀으로 자리를 옮겨 대기업 사내 변호사로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그는 2008년 돌연 IT기업인 네이버로 옮겨 대표이사 사장 자리까지 꿰찼다.
“한 우물을 파는 것도 좋지만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갖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할 때 진정한 자유와 행복감을 느낄 수 있죠. 훗날 인생을 돌이켜 봤을 때 후회하지 않으려면 자기가 끌리는 곳을 선택해야 합니다.”
의사 출신은 셀 수 없이 수두룩하다. 안철수 전 안랩 사장, 강신호 동아쏘시오홀딩스 회장, 홍광표 크리스탈밸리CC 회장, 양윤선 메디포스트 대표, 이성진 레이캅코리아 대표, 정희두 헬스웨이브 대표 등 열거하기도 힘들다.
특히 양윤선 대표는 서울대 의대 수석 졸업, 의사고시 수석 합격 등 의사로서 촉망받던 인재였다. 그럼에도 그는 지난 2000년 불확실성이 높은 바이오 벤처기업 메디포스트를 설립했다.
“백혈병, 소아암 등 난치병 환자들이 골수 기증자를 찾지 못해 치료를 못 하거나 사망하는 사례를 많이 접했어요. 골수 대신 제대혈을 이식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병원 안에서는 제대혈은행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기 어려워 직접 회사를 차리게 됐죠. 병원과 전혀 무관한 분야가 아니어서 연구개발이나 사업을 하는 데 있어 의사 경력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고재일 동일토건 회장의 전 직업은 공인회계사다. 1968년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1995년 동일토건을 설립했으니 따지고 보면 회계사로서 일한 세월이 더 길다. 고 회장은 “정년 없이 일하고 싶다는 생각에 57세 늦깎이 나이에 공인회계사 일을 접고 창업을 결심했다”고 ‘전직’ 이유를 설명했다. 건설사 회계 업무를 많이 맡았던 경험도 건설업계에서 인생 이모작을 시작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곽태선 베어링자산운용 한국법인 대표는 미국 변호사 출신이다. 하버드 로스쿨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기업전문 변호사로 명성을 날렸다. 그러던 어느 날, 지원 업무 위주인 변호사는 ‘조연도 아닌 엑스트라’란 생각이 들었다. 한 번쯤 ‘주연’으로 살아보고 싶었던 그는 때마침 영국 베어링증권 한국지사에서 일해 달라고 온 제안을 놓치지 않았다. 생소한 증권 용어와 한문을 익히기 위해 경제신문과 옥편을 찾아가며 공부했다.
“법학 수업 대부분은 ‘팩트가 무엇이냐’가 중심입니다. 이렇게 쌓은 습관이 훗날 투자자들의 자산을 운용할 때도 객관적 시각으로 다가서게 도움을 줬습니다.”
모바일게임 회사 드라이어드의 서영조 대표는 변리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변리사 시험에 합격한 후 로펌에서 2년간 근무했다. 그러나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지루하게 느껴졌다. 다음커뮤니케이션으로 옮겨 모바일게임 사업을 기획, 관리하는 업무를 하게 됐고 재미를 느껴 이내 창업까지 했다.
“안정적이고 편한 것도 좋지만 내가 성장한다는 느낌이 없었어요. 내가 즐길 수 있는 일을 하고, 젊었을 땐 고생도 해 봐야 된다 싶었죠. 일을 하면서 자신이 성장하고 있음을 느낀다면 그게 바로 자신에게 맞는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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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과 성실로 인생 역전
김승남 조은시스템 회장, 50대에 창업
사(士)자 직업은 아니지만, 각 분야에서 다양한 경력을 쌓고 CEO가 된 이도 적지않다.
이석우 다음카카오 사장, 박근태 더맥키스컴퍼니(옛 선양) 사장은 기자 출신이다.
1982년 대전일보 기자가 된 박근태 사장은 같은 사옥에 입주해 있던 조웅래 선양 회장과의 인연으로 2010년 CEO로 자리를 옮겼다. 이석우 사장은 중앙일보 사회부·국제부 기자로 2년여간 근무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로스쿨을 졸업하고 국제변호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단 이 사장은 기자 활동이 짧은 것을 고려해 관련 언급을 꺼리는 것으로 알려진다.
모바일게임 업체 조이풀게임즈의 엄주봉 대표는 만화가로 활동한 이력이 있다. 한 게임 업체의 외주 작업에 참여했던 게 게임업계에 입문한 계기가 됐다. 마침 모바일게임 개발 기술은 만화가 시절 틈틈이 독학으로 익혀둔 터였다. 만화가로서 상상력을 바탕으로 콘텐츠를 만들었던 경험이 생동감 넘치는 게임을 개발하는 데 톡톡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군인 출신도 있다. 김승남 조은시스템 회장은 육군 중령 출신, 도상철 NS쇼핑 사장과 장세욱 유니온스틸 사장은 육군 소령 출신이다. 특히 김승남 회장은 61사단 179연대장을 끝으로 전역한 뒤 50대 중반의 나이에 조은시스템과 잡코리아를 창업해 화제가 됐다. 그는 저서 ‘좋은 성공’에서 “하나님께 불만 한 가지가 있다. 나 같은 경우 하루 40시간이 꼭 필요하다. 무료하게 사는 사람들에게는 15시간 정도를 주고 남는 시간을 내게 주면 얼마나 공평할까”라고 썼을 만큼 일에 관한 남다른 열정을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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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성 내세워 업계 ‘러브콜’
리서치센터장 출신 김경원 디큐브 대표
전공 분야 전문성을 살려 경영에 도전한 사례도 있다.
박용관 오이솔루션 사장은 30년 가까이 광통신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응용물리학을 전공하고 벨연구소에서 수석연구원으로 근무했다.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KT 회장 후보로 거론됐을 만큼 업계 안팎에서 신망이 두텁다. 그는 “바닥에서 출발한 벤처기업이 글로벌 기업으로 커가는 것을 보여주는 게 더 의미 있다”는 신념으로 오이솔루션 사장 자리를 고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경원 디큐브시티 대표는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 출신이다. 보통 증권맨들은 자리를 옮겨도 증권이나 금융업 자체를 떠나진 않는다. 유통 업체 대표로 옮긴 그가 눈에 띄는 이유다.
“삼성경제연구소 금융실장, CJ경영연구소장 등 대기업에서 경영 전략을 총괄하는 일을 오래 했습니다. 덕분에 유통업을 비롯한 다양한 사업에 정통하게 됐죠. 리서치센터장을 지내며 계속 기업을 들여다 본 경험도 도움이 됐고요. 업종이나 회사가 달라도 경영의 요체는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김정근 오스코텍 사장 이력도 특이하다. 서울대 치의학 박사를 거쳐 단국대 교수를 역임했지만 그의 꿈은 치과의사가 아닌 ‘뼈 전문가’였다. 그는 단국대 교수 시절 골다공증 등 뼈 질환 관련 효과 높은 치료제가 아직 나오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 동료 교수들과 함께 자본금 5000만원으로 오스코텍을 설립했다.
고성학 한국정보인증 사장은 김형오 전 국회의장 보좌관 출신이다. 김 전 의장의 상임위가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여서 통신보안 분야를 두루 공부하며 업계와 인연을 맺게 됐다고.
체육인 출신 CEO도 있네
농구 감독 최희암, 고려용접봉도 ‘감독’
체육인에서 CEO로 변신한 이도 꽤 찾아볼 수 있다.
최희암 고려용접봉 사장은 젊은 시절 농구 선수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1990년대에는 연세대 농구팀 감독을 맡아 대학 농구 전성기를 이끌기도 했다. 2009년 인천 전자랜드 프로농구팀 감독 임기를 마쳤을 때 그는 홍민철 고려용접봉 회장의 제안으로 중국 다롄법인장으로 변신하게 된다.
전문경영인도, 중국 전문가도 아니었지만 그는 발군의 경영 실력을 자랑했다. 2013년 STX다롄조선소의 부도 여파로 고려용접봉 다롄법인이 연쇄부도 위기에 직면했을 때 발 빠른 구조조정으로 수익을 개선해 좋은 점수를 받았다. 이런 성과를 인정받아 그는 지난해 5월 고려용접봉 국내영업 총괄 사장으로 승진했다.
“농구팀이나 회사나 사람과 함께 일한다는 점은 비슷하더군요. 빨리 전략을 짜고 바로바로 업무에 적용한 게 도움이 컸습니다.”
교육전문기업 대교에듀캠프의 서명원 대표는 1970년대 배드민턴 선수로 활약했다. 이후 서울체육고에서 10여년간 교직생활을 한 후 1997년 창단한 대교눈높이 배드민턴단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대교그룹과 인연을 맺었다. 이곳에서 방수현, 라경민 등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을 육성하며 지도자로서 인정받은 서 대표는 2013년 9월 대교에듀캠프 대표로 발탁됐다. 대교에듀캠프 관계자는 “서 대표는 운동선수 출신 특유의 에너지로 직원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며 “대표이사로 취임한 지 1년여 만인 지난해 흑자전환에 성공, 경영 능력도 입증했다”고 전한다.
치킨 프랜차이즈 또봉이통닭의 최종성 대표는 중학교부터 대학교 시절까지 씨름선수로 활동했다. 키가 크고 덩치가 있어 중학교 체육 선생님이 씨름을 권유한 게 계기가 됐다고. 그러나 20대가 되고 보니 세상 보는 눈을 더 넓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다시 경영학을 전공했다. 이때 생활비를 벌기 위해 장사를 시작한 게 창업까지 이어졌다.
“선수생활을 통해 몸에 밴 승부사 기질과 인내심, 자기관리 습관이 경영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씨름은 몸을 부딪치며 단 몇 초간에 승부가 나야 하는 경기다 보니 상대방의 심리를 꿰뚫는 게 중요한데요. 사업도 마찬가지로 상대방의 마음을 읽어내고 그에 자신을 맞추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씨름과 공통점이 있다고 봅니다.”
해외 대표적인 이색 경력 CEO
영어 강사 출신 마윈, 美 출장이 알리바바 창업 단초
최근 글로벌 IT업계 거물로 떠오른 알리바바의 마윈 창업자 겸 회장은 평범한 대학 영어 강사 출신으로 유명하다. 특이한 외모 탓에 취업조차 쉽지 않았다는 그는 1995년 번역일로 미국에 출장 갔을 때 인터넷을 처음 접하고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IT 시장에 눈을 뜨게 된다. 이후 마윈 회장은 수차례 창업에 도전했고 2007년 알리바바를 설립했다. 오늘날 알리바바 시가총액은 237조원에 이른다. 영어 강사로서 얻은 미국 출장의 기회를 인생 역전의 기회로 삼은 것이다.
온라인 공개강의 학습 플랫폼 업체 칸아카데미를 설립한 살만 칸 사장은 펀드회사에 다니던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인 사촌동생에게 수학 과외를 해주다가 일일이 시간 맞추기가 어려워지자 과외 내용을 동영상으로 만들어 온라인에 올리기 시작한 게 칸아카데미의 시작이 됐다. 칸아카데미는 설립 후 현재까지 약 40여개의 언어로 4억4000여개 동영상 강의를 무료로 제공하며 월간 1200만명의 접속자를 끌어모으고 있다.
세계 최대 전자결제 업체 페이팔의 창업자 피터 틸도 처음부터 금융권에 종사했던 인물은 아니다. 틸 대표는 미국 스탠퍼드대 로스쿨에 진학해 변호사가 됐지만 이내 적성에 맞지 않음을 깨달았다. 7개월 만에 변호사 생활을 청산한 그는 금융계로 눈을 돌려 크레디트스위스에서 파생상품 트레이더로 제2의 삶을 시작했다. 이후 1996년 틸캐피털이라는 헤지펀드 회사를 차렸고 2년 뒤 모교 스탠퍼드대에서 강의를 하다 만난 24살의 유대인 맥스 레브친과 페이팔을 공동창업했다.
온라인 숙박 공유 서비스 에어비앤비를 세운 브라이언 체스키 사장은 출판사 디자이너 출신이다. 틀에 박힌 일상이 싫증 난 그는 어느 날 직장을 그만두고 달랑 1000달러가 있는 통장을 들고 무작정 샌프란시스코의 실리콘밸리로 이사했다. 하지만 그가 처한 현실은 샌프란시스코의 비싼 집세를 감당하기 어려운 청년 실업자 신세였다. 여기서 힌트를 얻은 그는 자신이 살고 있던 아파트 거실에 매트리스만 깔아 임대 사업을 시작했다. 싸구려 매트리스 3개로 시작한 민박 비즈니스는 6년 만에 100억달러 가치를 지닌 에어비앤비로 성장했다.
트위터의 딕 코스톨로 대표는 코미디언 출신이다. 코스톨로 대표의 유머 감각이 트위터 기업문화에도 스며들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한편 페이스북과 구글이 온라인 광고 시장을 독식하면서 커가는 사이 트위터가 실적에 부진을 겪자 코스톨로 대표 퇴진설이 돌기도 했다.
청바지로 유명한 리바이스(리바이스트라우스)의 칩 버그 사장은 야전 군인 출신이다. 미·소 냉전 당시 독일 전투 부대에서 미군 육군 장교로 복역하기도 했다. 이후 2006년 P&G를 거쳐 2011년 리바이스 전문경영인(CEO)으로 영입됐다.
[취재 : 노승욱·정다운 기자에게 감사드립니다 / 일러스트 : 정윤정님에게도 감사드립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801호(2015.04.01~04.07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측에게도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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