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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통일부 장관-인터뷰 모두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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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3,714회 작성일 2015-03-3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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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통일부 장관 초청 한반도 평화포럼 토론회 전문
‘햇볕정책’의 최전선에서 남북관계를 맡았던 전임 통일부 장관들은 김정은 체제와 한반도의 앞날을 어떻게 전망하고 있을까.

한반도 평화포럼과 시민평화포럼이 17일 서울 견지동 한국불교역사문화관에서 연 토론회에 참석한 정세현(29,30대)·이종석(32대)·이재정(33대) 전 장관은 김정은 체제가 상당히 안정돼 있으며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는 김정은 체제와 교류와 대화를 하는 것 이외에는 답이 없다고 말했다. 이들은 핵문제를 남북관계와 강하게 연계시킨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비합리적이었다고 비판하면서 그 이전 10년 간 정책의 업그레이드판인 ‘햇볕정책 2.0’을 ‘2013년 체제’와 함께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은 체제와 한반도의 진로’를 주제로 열린 이번 토론은 문정인 연세대 교수가 진행했고 김근식 경남대 교수, 김창수 전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 정책조정실 국장이 대표질의자로 나섰다. 애초 참석키로 했던 정동영 전 장관(31대)은 부산 출마선언 문제로 불참했다. 토론회는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 오마이뉴스, 프레시안이 공동주최했으며 한반도평화포럼과 시민평화포럼이 주관했다. 다음은 토론 전문.

■ 백낙청 한반도평화포럼 공동이사장·시민평화포럼 고문 인사말

‘김정은 체제와 한반도의 진로’를 주제로 진행될 오늘의 토론자로 특별한 네분을 모셨다. 국민의 정부 말엽부터 참여정부가 끝날 때까지 연이어 통일부 장관을 지내신 정세현, 정동영, 이종석, 이재정 전 장관님이다. 사회를 맡으신 문정인 교수도 그렇지만 이분들은 모두 남북관계에 대해

풍부한 식견과 국정참여의 경험을 갖고 있다. 뿐만 아니라 통일업무의 현장에서 물러난 지금도 한반도의 진로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전문가랍시고 날씨예보 하듯이 한반도가 이리 갈 거다 저리 갈 거다 하고 평론하는 논의와는 다른 절실함을 청중 여러분도 공유하시리라 믿는다.

토론의 흥미를 돋우고 집중을 더하기 위해 두분의 젊은 연구자가 예리한 질문 준비했다. 제가 무슨 말하는 건 사족이지만, 인사말의 기회 얻은 김에 혹시 참고로 삼으실지도 모를 한두마디 제생각 얹어보고자 한다.

‘김정은 체제’라는 표현은 김정일 위원장 급서에 따른 북측의 권력승계가 대체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는 일반적 인식을 2012 신년대토론회의 기획자들도 공유한 결과라 생각된다. 더 먼 장래에 어떤 성격과 내용의 체제가 될지는 지켜볼 일이라 하더라도 일단 체제로서 출범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이로써 김정은 체제의 객관적인 안정성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김정일 이후의 불안정성에 대한 주관적 인식들이 상당히 제거된 건 긍정적 현상이라 본다. 북 체제가 곧 무너질테니 조금 더 기다리며 압박하자는 정책으로는 한반도의 진로를 제대로 개척할 수 없다.

동시에 저는 김정은 체제도 - 김정은 체제가 그러했고 남한의 87년 체제가 그러하듯이 - 한반도 분단체제의 일익이라는 점을 상기하고자 한다. 그 안정성 여부도 분단체제의 안정성 또는 불안정성과 직결되어 있다. 남한의 87년 체제가 그 말기국면의 혼란 속에서도 새 시대를 탄생시키지 못하는 한 그리하여 분단체제의 핵심장치인 1953년의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고 나아가 한반도 평화체제로 이행하지 못하는 한 김정은 체제도 분단체제의 일부로 존속하면서 남측에서 바라는 변화도, 북측 스스로 원하는 안정된 발전도 달성하지 못할 것이다. 이른바 2013년 체제가 한국사회로서는 1987년 6월 이후의 전환 못지않은 일대변화이면서 한반도 차원에서는 87년을 능가하는 획기성을 지녀야한다고 주장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분단체제의 존재와 위력을 무시하는 북조선 비판은 북에 대한 무조건적인 옹호만큼이나 공허하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김정은 체제의 출범을 지켜보면서 3대 세습이 민주주의와 사회주의의 원칙에 얼마나 벗어난 것인지에 대한 비판이 요란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럼 북은 온전한 사회주의 강성국가가 되고 남은 자본주의 선진국이 되어 천년만년 갈라져 살자는 것인가. 분단이 오래갈수록 분단체제를 허물어가지 않고서는 이도저도 안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 것이 이명박 정부 4년이고 그동안 북녘에서 벌어져온 인민의 생활난과 인권상황 아니겠는가. 중요한 것은 우리자신을 포함한 분단체제 전체의 변혁이고 이를 위해 각자 스스로 처한 위치에서 자기 몫을 하는 일이다.

개인적으로 바라건대는 북의 새로운 지도자의 경우도 기왕에 한반도의 진로에 커다란 영향력을 지니는 위치에 올랐으니 젊은 나이에 그 힘을 건설적으로 행사하도록 우리가 최대한 이끌고 길을 열어주었으면 한다. 물론 그 최선의 방도는 우리가 남녘에서 2013년체제를 출범시키고 그것이 남북이 공유하는 새 단계가 되도록 하는 일이다. 그 성패에 최대의 고비를 이루는 올해 2012년 벽두에 이런 토론회를 갖게돼 특별히 의미깊게 생각. 의미있고 보람있는 시간 보내시기 바란다. 감사하다.

■ 1주제 ‘북한의 변화와 남북관계 전망’

-사회 문정인(연세대학교 교수)

-대표질의 김근식(경남대학교 교수)

-문정인 교수(이하 문) = 김근식 교수가 질문을 던지면 장관이 돌아가면서 대답하는 식으로 진행한다.

-김근식 교수(이하 김) = 북의 김정은 체제가 단기적으로는 안정성을 갖고 있다는 전망이 대부분이지만 향후에 장기적으로 불안정성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그에 대한 평가 전제하시고 그런 것을 전제했을 때 역대 통일부 장관 경험과 북한에 대한 식견을 토대로 해서 우리 정부. 혹은 2013년에 출범할 새로운 정부가 될 수도 있다, 여하튼 우리 정부가 김정은 체제 북한을 상대로 대북정책 펴나갈 때 견지해야할 내용 원칙에 대해. 김정은 체제가 개혁개방 쪽으로 하기 위해서 우리가 지켜야할 것들은?

-문= 정세현 장관이 전공 아닌가. 조기붕괴론을 가장 강력하게 비판하셨던 분이 정세현 장관이다.

-정세현 전 장관 = 북한 체제의 장래와 관련해서는 김일성 사후 김정일 체제 불안정할 거라는 전망 많았고 3년설부터 해서 30년지탱설까지 있었다. 다 틀린 얘기가 됐다. 이번 김정은 체제도 밖에서보는 것보다는 상당히 안정이 돼 있지 않나. 장기적으로 불안정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적어도 10년 이내에 북한이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하거나 또는 후계 정권이 붕괴할 가능성은 매우 낮지 않나 이렇게 보고 그걸 전제로 해서 우리의 대북정책 방향이 추진이 돼야하고. 지난 10년 동안에, 98년부터 2008년 2월까지 추진돼 왓던 햇볕정책을 다시 되살리되, 그때 시행착오도 많았었고 미진한 부분도 많았다. 새로 시작할 때는 보완해서 백낙청 이사장의 표현대로 햇볕정책 2.0쪽으로 정책 입안하고 다음 정권준비하는 사람들은 그런 방향에서 지금부터 준비해야하지 않나 싶다.

-문= 이종석 장관님, 정세현 장관의 전망은 너무 낙관적 아닌가. 김정일과 김정은은 차이가 있지 않은가.

-이종석 전 장관 = 차이 있죠. 김정은은 혈통적 정통성가지고 지도자가 돼 있고 김정일은 상당한 정도의 카리스마를 확립한 위에서 지도자에 올랐다. 북한이 왕조적 성격을 가진 가족국가 형태의 사회국가다. 조선시대의 긴 역사와 식민지 반봉건의 역사 그 직후에 북 사회주의가 나왔지만 공산당 그 자체의 특성 때문에 개인숭배가 나오면서 북에서는 개인혈통, 백두혈통이라 표현하지만 김일성 김정일로 이어지는 다른 혈통이 지도자가 되는 건 상당히 어렵다. 이미 기본적인 권력기반은 갖춰져 있다. 여러가지 해왔던 절차 그가 남겨놓은 유훈, 유훈은 비공개와 공개가 있을텐데, 단기적으로는 안정적일거라 본다. 동양적 가족국가에서 장자상속이 상식인데 삼남이 상속한 것은 (그가) 제일 낫다는 것이겠죠. 절대적으로 얼마나 가졌는지는 모르지만 장, 차남 아니고 삼남 상속한 만큼 셋중에서는 가장 낫다(는 뜻일것이다). 김정은을 그리 만만하게 볼 건 아닐 것 같다. 그러나 얼마나 될지는 누구도 모른다. 김정은이 웬만큼 상당하다 그렇게 되면 유훈을 탄력적으로 해석하면서 밖으로 개방, 대남관계 자신있게 나갈 것이다. 하지만 지도력 취약하다면 김정일의 유훈을 좁게 교조적으로 해석하면서 대남관계 등에서 강경하게 나올 수도 있어. 이건 그런데 시간이 걸린다. 일단 이미 해놓은 노선 속에서 나아갈 것이다. 무엇보다 김정은 체제 자체를 인정을 해야한다. 싫고 좋고가 아니라. 인정 않고는 대화 못한다. 일관적 메시지를 보내야한다. 화해 협력을 한다면 그걸 끊임없이 해야(보내야)지, 앞에서는 그러고 뒤에서는 언제 갈지 모른다면서 관 짜고, 그걸 또 보여주고 그러면 안된다.

-문=김정은 체제 혈통적 정통성 갖고 있다고 했는데. 권력기반 있는 것 같나?

-이재정 전 장관 = 혈통적 관점 좁은 거 아닌가. 김정은의 권력해석을 보면, 생전에 2009년에 헌법 개정해서 국방위원장을 강화한다든가 국방위원장 넓은 역할 하게 만들어놓고 2010년에 들어서서 헌법 개정해서 당의 중앙군사위를 두어서 국방위와 당에 있는 중앙군사위가 어떻든 상호 협력 또는 견제 또는 보완의 역할을 할 수 있또록 권력구조 개편하는 거 보면 김정은의 권력승계를 위해서 김정일이 상당기간 염두 준비 제도화한 것 아니냐. 이렇게 볼때 이번장례식 절차에서 보면 정치국의 핵심 인물들이 다 김정은과 함께 운구를 하고 장례식 치른 거 보면 이 자체가 김정은의 뭐라고 할까 안정적인 권력층의 모습을 북한 인민들에게 보여준 것 아니냐 생각한다. 하나만 더 말하면 저는 정말 (북한이) 안정적으로 가야지 정말 불안해지면 그 이후 한반도 문제는 더욱 복잡해지는 것 아니냐 생각한다. 안정적 아니라면 북내 혁명 혹은 급겹한 사태 바라볼 수 있을텐데 이제까지 바라보던 북 지도자의 변모에 따른 급격한 사태도 별로 없는 것이고 안정적으로 갈 것이라 생가한다.

-문 = 그런데 햇볕정책 2.0은 무엇인가. 저는 햇볕정책이 뭐가 잘못됏는지 모르겠는데(웃음).

-김 = 백낙청 이사장을 비롯해 많은 분들이 이명박 정부 대북정책이 총체적 실패라고 평가한다. 2013년에는 대북 화해 정책이 복귀를 해야하는데 과거시대의 (것으로) 기계적 복귀할 게아니라 발전적으로 진화를 해야한다는 의미에서 2.0이라는 버전 업을 말씀하신 걸로 이해한다. 저도 개인적으로 그런 필요성 갖고 있고 제가 생각하는 햇볕정책 내용이라는 것은 두가지라고 생각한다. 이명박 정부 임기 4년 겪으면서 느꼈지만 너무 쉽게 남북관계가 역진했다. 10년동안 피땀흘려서 남북관계 진전시켜 놨는데 정권 바뀌고 이 모든 남북관계가 하루아침에 무력화되는 것 뼈저리게 느꼈다. 다음의 햇볕 포용정책은 비가역적인, 뒤로 물러설 수 없는 제도화 안정화를 꼭 해내야겠다, 정권 바뀌더라도 구조적 안정성 갖게 하는 게 필요하다. 두번째는 북을 우리가 변화시킬 수 잇고 북이 개혁개방으로 가도록 이끌어내야하는 것인데, 짧은 대북정책 기간이긴 하지만 그런 문제도 있었다. 대북 정책 2.0은 구조적으로 좀더 어떻게 하면 변화된 질서 속에서 북한이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그런 의미에서 끈임없이 진화해야.

-문 = ‘2013년 체제’ 얘기가 많이 나오고 있는데 청중은 뭔지 모를 듯하다. 이건 이종석 장관이 설명해달라.

-이종석 전 장관 = 저도 분단문제 공부하고 있지만 저희가 앞에 계신 백낙청 선생한테 빚진 바가 크다. 분단체제를 넘어서지 않고 미래로 갈 수 있는가를 제기한지가 오래됐는데 포용정책 2.0을 김교수가 얘기했고 그리고 2013년체제, 백낙청 선생이 화두 던진 것인데 2013년 체제라면 2012년에 총대선 두번의 선거가 있다. 이 선거를 통해서 정말 과거 87년의 민주주의. 87년 분기점으로 해서 87 이전과 이후 즉 분기점으로 나눠서. 그러나 민주주의 발전 경제 복지 노력 해왔지만 많은 것들 아직 부족하고 그런 것들에 대해서 한번 더 제대로 된 민주주의 경제민주주의 복지 이런 것들을 해나갈 수 있는 걸 만들어보자. 또 하나 평화문제에 있어서는 53년의 정전협정 체결된 다음에 한반도에서는 냉전구도는 이미 깨졌다고 하지만 한반도에서는 남북간의 대결이 위의 상황을 옳아매고 있다. 이런 사안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극복을 해야겠다. 남북 통일 문제가 끊임없이 국내 민주화 제반개혁 발목을 잡았다. 수구세력이 북풍몰이를 한다든가 그야말로 남북관계 그 자체가 퇴행하거나 하는 게 아니라 87년으로 성립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복지 경제 민주주의를 가로막는 원인이 돼 왔다. 이제는 남북문제가 민주주의 가로막지 않는 체제, 52년 정전체제 넘어서는 새 체제 만들어야 한다. 새 틀을 만들고 과제를 제시해야한다.

-김= 다음 질문이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평가해달라. 전임 통일부 장관 입장에서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가장 아쉬운, 가장 실패한 부분은 무엇인지.

-이재정 전 장관 = 2007년 회담에서 10·4선언 만들어냈는데 6·15 선언이라는 남북관게의 대원칙을 실질적으로 어떻게 이행해갈 것이냐에 대한 대단한 합의였다. 두분 남북의 정상이 지금은 다 세상에 계시질 않는다. 기분이 늘 좀 그렇다. 이명박 정부의 가장 큰 잘못이 뭐였냐. 가장 중요한 것은 법이 정한 것들을 근본적으로 무시한 거다. 참여정부가 마지막에 한 것이 남북관계 발전법이 정한, 남북관계 발전 기본 5개년 계획을 정부가 발표를 했다. 국무회의 절차 밟고 국회 보고하고 발표했다. 남북관계는 법이 정한 테두리에서 하고 동시에 국민들이 예측 가능한 그런 관계로 발전 필요하지 않겠느냐. 10·4 마련해서 새로운 차원으로 넘어간다면 이러한 것이 중요한 발전이라 보고 돌이킬 수 없을 거다 생각했다. 김근식 교수가 한층 더 제도적 장치 필요한 것 아니냐 햇는데 제도적 장치 이 이상 필요한 게 아니고 이명박 정권 같은 정부 다시 선출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죠. 중요한 건 그거다. 4년 남짓 넘어가는 동안에 이명박 정부의 철저한 실책 가운데 하나는 서해 평화관계를 근본적으로 깨뜨리고 무력충돌 현장으로 만들어놓은 것이 가장 비극적인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정상회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해평화협력 특별지대라고 얘기한다. 53년 7월 휴전협정 맺을 때 육상은 매듭짓고 해상은 결정 못한 채 큰 섭은 유엔 관할, 작은 섬은 북 관할(키로 하고 끝났다). 해상에 대해서는 특별한 권한 주장하지 못하도록, 그렇게 된 이후에 사실상 남북이 주도적으로 휴전협정이 매듭짓지 못한 서해평화에 관한 새로운 협정을 맺은 것이다. 휴전 협정 이후 가장 중요한 서해 평화협정을 맺었음에도 이걸 깨뜨리고 전운이 감돌고 전쟁의 기운으로 돌이키는 (상황이 전개됐다).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으시시하게 조명해놓고 거기 나와서 협박을 가하는, 이런 치명적인 평화구조를 근본적으로 깨뜨리는 (것은 문제였다).

-정세현 전 장관 = 이명박 정부의 기조 가 잘못됐다고 생각. 비핵개방 3000. 이건 남북관계를 핵문제에 종속시킨 구조지요. 그동안의 경험을 가지고 볼 거 같으면 김영삼 정부때부터 핵문제 발생했다. 그때도 핵 문제에다가 남북관게를 종속시켜서 정권 내내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할 일이 없었다. 그런데 지난 10년동안에는 핵문제와 남북관계 개선을 병행하는 정책을 취했었기 대문에 그나마 핵 문제 해결에 토대가 조금씩 마련됐고 대표적인 것이 2005년의 9·19 공동성명이다 그렇게 해서 해결 기미 보였는데 정권이 교체됐다. 핵문제 해결 않는 한 남북협력은 없다 교류 관계도 있을 수 없다 하는 식으로 남북관계와 핵문제를 선후문제로 혹은 종속의 관계로 설정을 하면서, 통일부는 일이 없어졌다. 저는 전임 통일부 장관 입장에서 후임 장관들이 소위 비핵개방 삼천 논리를 뛰어넘는 새로운 대체 이론을 개발해서 대통령에게 건의해서 해결을 했었어야 햇는데 그걸 못하고 정권 말년에 따라왔다는 것이 안타까워. 다만 다행히도 류우익 현임 장관이 대북 유연성을 발휘해서 뭔가를 좀 해보려고 하는데 정부 내에서 저항이 있는 것 같다. 관성이 있으니까. 마침 북한에서 도와주질 않아요, 상종도 안하겠다 하는데 북도 그러면 안된다. 유연성 발휘하려는 장관 있다면 그분이 일을 할 수 있는 여지를 주어야 한다. 다음 정권이 일을 할 수 잇는 기반을 남은 일년동안 닦을 수 잇었으면 좋겠다. 정부 내의 강경노선도 조금 자기 주장을 입장을 좀 완화시켜줬으면 좋겠다.

-문정인/이종석 전 장관에게 질문한다. 김태효 대외전략비서관을 기획관으로 승진시키면서 혼선이 있는 것 같다. 김태효 기획관은 강경노선의 해심인데 (대통령은) 한편으로는 류우익 장관에게도 힘 실어주고 김태효에게도 힘을 실어주고 있다. 어떻게 읽어야 하나. 이종석 전 장관은 국가안전보장회의 운영해보신 분. 어떻게 평가하나?

-이종석 전 장관 = 김태효 대외전략비서관이 대외전략기획관으로 한단계 승진했다. 외교안보 수석과 비서관 사이에 뭐가 있다고 하는데 저희 땐 없었지만. 글쎄 그게 무슨 필요성에 의해서 그렇게 됐는지는 알지를 못한다. 정세의 변화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면 뭐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말년이 돼서 자리 하나 높여줘가지고 비서관보다 높았다 이렇게 듣게 하기 위해서 하는 거죠. 복잡하게 생각할게 없다. 왜냐면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대외전략을 기획하는 데 비서관이면 됐지 수석이 왜 필요한지. 저는 (현 정부 대북정책에 대해) 두가지 애기하고 싶다. 너무나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점 즉 비합리성. 또하나는 역사의식의 부재다. 비핵개방 3000은 핵포기하고 북 개방하면 3000달러 도와주겠다는 것이다. 우리의 가장 중요한 대북정책 목표가 북 핵 포기와 개방인지 모르겠다. 그보다는 남북 평화롭게 살고 통일로 가야한다고 생각하는데 핵포기 개방 등이 중간목표일 수는 있겠다. 좋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핵포기 시킬 것인가가 전략적 과제다. 그런데 북한 너희들이 핵 보기 하면 얼마 주겠다 그게 무슨 정책인가, 비합리적이다. 북이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남북관계도 의미가 없다면서 천안함 발생 뒤 천암합 사과 않으면 육자회담도 필요 없다고 한다. 북핵문제가 그렇게 사활 걸린 문제라면, 북핵 중요하다는 사람들이 천안함 나고 나서 천안함 사과 없이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 이게 얼마나 비합리적인가. 지속적으로 주입해서 국민들도 그런가보다 하게 만드는 것이 문제다.

6·15 선언과 10·4선언은 유엔에서 만장일치 박수친 것이다. 김대중 국민의 정부나 노무현 참여정부 그야말로 대한민국이 약속한 건데 이 약속을 나중에 가서 버릴 수 있는 건가? 우리 때 안했다고. 정권은 유한하지만 정부는 영속적인 거다.

-이재정 전 장관 = 한마디만 더 추가하고지나갔으면. 이명박 정부가 처음 내놓은 게 경제정책엔 747, 대북정책은 비핵개방 3000. 이 두가지가 얼마나 허황된것인가 아무 근거가 없는 정책이었나 하는 걸 알 수가 있다. 인수위 구성되면서 제일 먼저 시작한 일이 통일부를 없애겠다. 없애서 그럼 다른 대안 어떤 거냐. 그때도 그런 건 없었다. 초창기 이명박 정부 생가한 것이 뭐였을가. 역사의식 없었다는 걸 넘어서서 북한은 곧 붕괴될 거다, 김정일 아프고 붕괴될 나라에 어던 지원도 할 필요 없이 제제와 압박만 가하면 되지 않겠느냐 하면서 온 것 생각할 때 처음 비핵개방 3000 나왔을 때 이걸 목숨 걸고라도 부수고 들어갔어야 했는데 아쉽다.

-문=김창수 국장(전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 정책조정실 국장)에게도 질문한다. 시민사회에선 어떻게 보나.

-김창수 전 국장 = 비핵개방 3000 엎었어야 했다는 말씀 듣고 생각해보니 프레시안에 그런 글을 쓴 기억이 난다. 비핵개방3000 이렇게 가지 말고 거꾸로 3000개방비핵으로 가자. 비핵으로 가는 과정에서 소득수준을 삼천불로 올리는 걸 수단으로 삼아라 그런 글 썼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94년 김일성 사망, 작년 김정일 사망을 비교해볼 때 우리사회 안정됐다고 모든 사람들 한다. 사실은 제가 이거 때문에 당시 신문기사 살펴봤지만 84년도에도 국민들은 차분했다. 정치세력들간 갈등이 있었을 뿐. 이번엔 갈등 없었고 국민은 그보다 더 성숙해졌어. 그 차이가 뭐였겠나. 김대중 노무현 정부 10년동안 남북 교류가 있었다. 2005 8만, 2010 10만 그 이전 건국 이후부터의 방문객보다도 많은 방문객이다. 이제는 사망 발생하더라도 북한을 봤기 때문에 동요하고 흔들리지 않는다. 그런 입장에서 보면 남북교류 단절시킨 이명박 무엇보다 뼈아픈 실수를 한 것이다.

-김 = 지난 정부에서 장관을 하셨기 때문에 스스로의 말씀 듣는 순서. 아 이문제 풀기 어렵구나 생각했던 게 있으면 뭐가 잇는지. 이문제는 꼭 해결돼야겠다 생각했던 게 있는지.

-문 = 아쉬운 것과 후회하는 것

-이종석 전 장관 = 아쉬운 건 많죠 할만큼 했다는 생각도 하지만 아쉽고 죄송한 것도 많다. 한가지 정말 와닿는 것은 뭐냐면, 북한 핵문제와 남북관게와의 관계에서 정말 참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설명한다는 게 너무 어렵고 그렇게 해야만 이해가 있는데 그게 잘 안될 때가 제일 아쉬웠다. 미국의 요구에 의해서 남북관계와 북 미사일 문제가 연계됐을 때 정권 잡은 사람들이 해결 못했던 건 우리 잘못이지만, 남북관계 제대로 풀지 못했던 것 가슴에 남았다. (북핵과 별도로) 남북상태를 해결하려는 또다른 노력을 같이 가지 않으면 안됐는데 국민들로부터 동의받는 기반이 취약했다. 아쉽고 앞으로 한다면 그런 걸 국민에게 정말 설득하고 싶다.

-문 = 잘한 건?

-이종석 전 장관 = nsc때 유엔사무총장을 저희 힘으로 당선시켰는데 균형 외교를 하지 않았으면. 워싱턴에서도 베이징에서도 다 박수 나왔는데 균형외교를 하지 않았으면 그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산가족 상봉 관련. 비디오테잎이라도 수십만개 만들어서 화상으로라도 하는 것. 또 국군포로 납북자 문제도 명단까지 만들어 제안도 했었지만, 그거 못푼 것도 아쉬워. 저는 뭐 이제 흘러간 물이지만 앞으로는.

-정세현 전 장관 = 나이가 있는데 무슨 흘러간 물인가. 앞으로 기회가 있을 거다. 아쉬운 점은 역시 저도 대내적인 정책설명이라고 할까 이거를 많이 못한 것이 아쉽다. 남북관계가 대상이 북이기 때문에 북이 싫어하면 절대 안돼. 비핵개방은 북이 싫어해서 진전 못보는 것 아닌가. 북이 좋아한다고 해도 우리쪽에서 절대 반대하면 안되는 거죠. 북도 어느정도 동의하고 우리도 국민 6-70프로는 동의를 얻어내고 그런 연후에 국제사회 지지를 끌어내면서 3면으로 설득을 해가면서 정책을 추진해야하는데.

요즘 들리는 얘기가 북쪽에서 남북관계 정상회담 했던 사람들이 그때 남쪽이 하자는 대로 순순히 했더라면 좋았을텐데 그때는 몸값 높여보겠다고 벼랑끝 전술 앙탈 부렸달까 하는 것 후회된다는 얘길 한다고 하지만 대북 정책 차원에서 큰 문제는 없었다고 생각. 대미관계 면에서도 2002년 1월부터 2004년 6월까지 있었는데 김대중 대통령이 대미관계를 나이스하게 곤리해줘서 큰 문제는 없었다. 노무현 정부 초기에도 문제는 있었지만 미국이 대북관계 견제하는 그런 건 아니었다. 다만 대북 지원 관련해 퍼주기 논쟁 잠재우기 위해서 남북관계 중대사안이 잇을 때마다 직접 국민 상대로 설득을 시작했다. 전국 돌고 분야별로 미팅갖고 해서 25회에 걸쳐서, 29개월 근무했으니 1달에 한번씩 열린통일포럼이란 걸 열어서 한번 모이면 5~600명씩 모였다. 대북정책에 대한 이해를 상당히 높였다고 자부를 했습니다만 그러나 더 자주해가지고 왜 우리가 먼저 북쪽에 지원을 해야만 북한이 한반도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데 협조적으로 나올 것인지 그렇게 해서 북한이 개방개혁의 필요성을 느끼게 될 것인지를 적극 설명할 수 있었어야 했는데 그걸 좀 제대로 못한 것이 아쉬워. 그다음에 또 걱정이라고 하는 거, 얘기해도 되나, 2000년 9월 18일 남북간 철도연결 착공식했다가 초겨울 되면서 공사가 흐지부지되고 북측 공사는 중단됐다. 당시 차관에서 물러나 학교에 있었는데 언론에서도 그랬고 정부 일각에서도 특히 보수층에서는 ‘그거 봐라 북이 약속 지킬 걸로 예상하고 합의한 게 이상하지 않느냐’고 했다. 밖에 있을 때 혹시 자재가 부족하고 장비가 부족해서 공사 못하는 거 아닌가 하는데에 착안했다. 자재 장비를 주고라도 공사를 지속시키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하는 건의를 드렸는데 잘 전달 안댔던 것 같다. 그러다가 2002년 1월 말에 통일부 장관에 임명됐다. 그때 제 기억에 대통령께 건의를 드렸다. 자재 장비를 주고라도 연결시키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그분은 얼른 그렇게 가부 표현을 잘 안하시잖아요. 특별히 말씀 없으시길래 해도 좋다는 뜻 아닌가 해서 유리하개 해석하고 3월인가 경제인 조찬간담회 가가지고 자재장비 주고라도 연결이 좋겠다는 얘기 했더니 당장 질문 나오기를 얼마 드느냐 해서 비료 한 10만톤 액수면 자재는 줄 수 잇을 것 같다 그랬더니 경제인들 그정도면 우리 있다 해서 제가 자신있게 홍보를 했다. 그래서 그런 회담을 8월에 했죠. 장관급 회담을. 그래서 2002년 9월 18일날 철도 재착공식을 갖고 자재를 줘 가면서 철도공사를 했다. 나중에 2005년 10 25 퇴임을 앞둔 콜린파월 장관이 서울에 왔다가 이튿날 떠난다. 오전에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의미있는 표현을 했다. 인공위성을 통해서 본 한반도의 디엠지 가로지르는 피스 익스프레스 트레인 레일은 감동적이었다. 제가 그 단초를 재임중에 마련할 수 있었고 대통령 허락 매우 감사하게 생각한다. (박수)

-이재정 전 장관 = 저는 앞서 장관들이 준비한 걸 거둬들이며 즐겁게 장관했다. 장관 막 됐을 때 북에서 핵실험했다. 남북관계 완전 단절됐다. 이종석으로부터 바통을 받았는데 그당시 제일 중요한 과제는 남북대화 어떻게 복원이 가장 중요한 과제. 이 과제 풀어나가는데 남북간의 협상이라는 것만으로 될 수 잇는 건 아니었고 당시 6자회담의 진행상황과 맞물려 있었기 대문에 진행이 쉽게 결정되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6년 12월에 취임해서 2007년에 장관급 회담 열게 됐다. 재임 중 남북 당국간 공식 회담이 66회 있었다. 통일부 역사 중 가장 기록적. 만남의 과정 통해서 하나하나 남북이 서로가 변화돼 나가는 모습 현장에서 느낄 수 있었고 이것이 마침내 큰 결실 만들어낼 수 있었다. 정상회담 내용 가운데 가장 중요한 합의사안 있었다면 정상회담으로부터 시작해서 총리회담, 국방회담, 경제회담, 서해 평화협력을 위한 그런 장관급 회담을 네개 만들고 그 이외에 차관급을 위원장으로 하는 남북의 각 분과위를 스무개 이상 조직했다는 것 남북연합의 단계에서 통일 시대 열어가는 기본 초석 열었다는 자부심이 있다. 다시 이뤄야할성과라고 생각.

북에도 미안하게 생각하고 우리도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것중 하나가 있다. 그당시 이명박 당선 직후였지만 과연 어떤 마음 갖고 있는가를 읽었어야 했는데. 북한 설득해서 개성공단 2단계 들어가려면 측량, 지질조사 해야하지 않겠느냐 해서 엄동설한이지만 들어가자 해서 12월에 측량 지질조사 다 했다. 뿐만 아니라 개성협의사무소와 마찬가지로 금강산에도 남북의 상설 대표부를 두자, 국장을 소장으로 하는 상설사무소 두자 해서 남북 이산가족 면회소 양옆에 건물 새로 짓고 각각 남북 사무소를 준공식을 하고 사무소를 여는 걸로 합의까지다 했다. 개성처럼 금강산에 남북간의 상설 대표부가 만들어지면 이것이야말로 구체적으로 남북대화를 체계화하고 통일시대 열어가는 구체적 내용 아니겠느냐 햇는데 지난 4년동안 한발짝도 발전 안된 것 유감스럽다.

-김 = 네번째 질문이다. 금년에 대선이 있다. 정권교체 되느냐 마느냐 판단 분분하겠지만 높다고 가정하고, 여기 계신 장관들이 다시 취임할 수 있다고 생각해보자. 다시 취임한다면 지금 교착된 상태 이걸 정상화하기 위해서 더큰 과제가 있죠. 김정은이 이끄는 북한과 새로운 관계를 위해서 통일부 장관 취입했을 때 뭘 하고 싶은지 포부를 밝혀달라.

-이재정 = 가장 중요한 건 6·15와 10·4 복원시키는 일이죠. 북에는 복원시킬 필요도 없다. 김정일이 서명한 이 문서는 북 의회 통과됐고 북에서는 법률 이상 헌법 이상의 권위와 가치 갖고 있다. 북에서의 복원은 아무 문제 없어. 다만 우리사회에서 어떻게 복원시킬지가 과제다. 새 정부 가장 중요한 일은 이 일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이 일과 함께 기왕에 논의 시작하면서 가증 중요한 점 있다고 하면 1953년 7월에 정전 협정 된지, 내년 되면 만 60년이다. 전세계 인류 역사에서 전쟁을 정전 시켜놓고 60년동안 살아간 나라가 없다. 정전이라는 이름만 붙어있지 남북간의 180만 군대가 무력으로 대치해있는 끊임없이 위험성을 갖고 잇는 이런 지역 전세계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정전협정 문제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 더 나아가 평화체제 만들기 위한 여러 내용 어떻게 할 것이냐가 과제인데 마지막에 장관을 제가 그만두면서 마지막 발표한 것이 말씀드리린바와 같이 남북관계발전 기본 5개년 계획 2008년부터 2012년까지. 그렇게 해서 관보에 게재하고 다 했지만 전혀 진척 안된 상태. 법에 의한 모든 절차를 다시 복원시켜서 남북관계 발전시킬 수 있도록.

-김=김정일 사망했기 때문에 말하자면 (천안함 등에 대한) ‘공소권’ 없어진 것 아니냐는 데 대해 보수진영이 저를 비판하고 있다. 그부분 어떻게 생각하는지 혜안 있는지 궁금하다.

-이종석 전 장관 = 상당히 고뇌에 찬 여러가지 생각 속에서 나온 걸로 생각이 된다. 문제는 천안함 문제가 참 어렵죠 어렵고 우리는 항상 오, 엑스, 기냐 아니냐, 요구받기 때문에 더 그렇다. 천안함을 공소원 없음으로 풀어가려면 북이 천안함 공격해서 피폭을 당했다는 것이 하나의 사실로서 확정이 된다는 것. 저는 북이 천안함 공격할 가능성 있다고 생각. 하지만 그 가능성 있는 것과 공격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다른 문제. 진실의 문제다. 우리가 진실 어떻게 대하느냐는 중요하다. 여러가지 정부의 조사결과에 대해서 믿는다는 국민이 43프로밖에 안된다. 믿지 못하겠다겠다거나 잘 모른다가 3분의 2이다. 그사람들 다 빨갱이인가? 아니지 않나. 정부가 정확하게 조사를 신빙성 있게 내놔서 인정하고 그래야하는데. 오마이뉴스에도 나왔지만 러시아에선 다른얘기하는 것 봤다. 기본적으로 진실이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우리가 그걸 갖다가 그렇게 얘기하면. "아 그래요 맞아요 북한이 했어요" 라고 하면 편하죠 현실적 고통 당하지 않을텐니까. 이런 현실적 필요성 때문에 고개 끄덕이고 넘어가는 순간, 역사 앞에서 우리는 정말 어떻게 제대로 설 것인가. 정부 조사결과에 대해 저도 민 3분의 2와 같은 입장. 그러기 때문에 천암함 좀더 신중하게. 공소권 없음이라고 하면 북한이 햇다는 것을 믿는다, 정부발표대로다,가 된다. 공소권 없음이라는 말로 피해갈 수 없다. 천안함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다. 천안함을 북한이 했따는 게 확정이 된다면 대북 전략 달라져야한다. 미국도 하지 못하는 버블제트로 두동강을 낸 정도의 북한 군사력이라면 우리가 어떻게 북한 군사력을 당하겠나. 그만큼 다양한 다른 전략 구사할 수밖에. 이문제에 대해서는 보다 심도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김 = 제 말은 우리가 공소권 없음으로 하자는 게 아니고 이 정부의 논리에 따르더라도 더이상 책임 묻지 말아야 한다는, 엠비 정부에 대한 얘기다. 엠비정부가 공소권 없음이라는 전향적 태도를 가지고 돌파하라는 얘기였다.

-문= 이제 청중서면 질문을 드리겠다.

-남북교류필요성에 대해 대국민 설득 어떻게 해야하나?

-이재정 전 장관 = 남북교류협력. 여러 오해 있겠지만 대체로 가장 큰 부분이 북 경수로 개발하기 위해서 94년 제네바 기본합의에서 북한의 전력 공급을 위한 케도를 다 한국정부가 다 돈 낸 것. 그게 대부분이고 그외에 쌀 꿔준 것. 그런데 우리 기업인들이 평양 임가공 업체 주문 하면서 800개 업체가 벌어들어와서 세금 낸 돈이 우리가 쌀 지원한 돈보다 더 많았다. 평화를 만들기 위한 남북교류협력은 앞으로 더 강화돼야한다.

-북한이 핵실험 등 신의를 계속 저버리는 어떻게 신뢰구축이 가능한가?

-이재정 전 장관 = 서해 도발 문제를 잘 생각해야한다. 1999년 서해에서 있었던 함정간의 충돌. 2002년에 있었던 충돌 이런 내용들 보면 우발적으로 일어났을 뿐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 보면 꽃게잡이같은 사소한 것이 충돌로 이어졌다. 남북이 잘 관리해서 더이상 분쟁으로 퍼지지 않았다. 우리 문제가 뭐냐면 연평에서의 포격사건만 하더라도 내용 들여다보면 천안함 사태가 없었다면 연평사건도 없었을 거다. 미국의 여러가지 문제가 오히려 한미군사훈련을 통해서 강력한 군사함정에 과도한 군사훈려이 오히려 북을 자극한 것 아니냐 생각.

-정세현 전 장관 = 대북지원 왜 필요한가. 두가지다. 첫째는 상호의존성을 키워줘서 지원받아야한다는 생각 때문에 도발 못하도록 하는 것. 두번째는 대북지원을 하고 교류협력 활성화과정에서 북 사회가스스로 체제의 불합리성이라든지 한계라든지에 대해서 지도부에서부터 시작해서 일반 주민에 이르기까지 각성하고 개방으로 나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역시 교류협력 지원밖에 없다. 남북협력기금 1년에 배정받은 거 다 못썼죠. 해봐야 쌀 비료 줘봐야 우리돈으로 4500억원 정도밖에 안돼. 달러로 하면 4억불 정도. 그걸 가지고 지난 10년동안. 짧게 하면 200년 정상회담부터 20007년말까지인데. 언론통해서 북 그동안 많이 변한 걸 접했을 거다. 4억불 대북지원한데 비해 서독의 동독 지원은, 연간 동방정책 시작돼서 베를린 장벽 무너진 18년동안 576억불. 달러환한하면 그렇게 된다. 1년에 32억불씩이다. 그만큼의 현물 물자가 흘러갔기 때문에 민심이 서독으로 온 것이다. 그리고 안정적 관리. 물론 동독 갑작 붕괴로 인해 서독 책임질 수밖에 없었지만 우리 그러자는 건 아니다. 퇴로 열어주고 그때까지 안정적 관리하는데 인도지원이든 차관이됐든 그것만큼 효과적인 건 없다는 것을 체험을 가지고 확신을 한다.

-북한에도 아랍의 봄 같은 것이 올까.

-정세현 전 장관 = 식량난 등 때문에 붕괴한다면 모택동 시절에 중국은 붕괴했었어야한다. 문화대혁명 10년동안에 중국에서는 농사는 안짓고 데모만 했다. 농사 제대로 안되는 관계로 해서 평균 사망률 외에 6600만명 굶어죽었다. 물론 10억인구에서 별거 아닐 수도 있지만 그만큼 굶어 죽어도 사회주의 체제 특히 폐쇄체제는 그거 때문에 무너진다는 선례는 없다. 모두가 배고플 때는 오히려 사회가 안정된다. (오히려 사회가 개방 돼) 배아픈 사람이 나와야한다. 북한이 백두혈통 김일성 왕조 이렇게 평가하는 동안에 북 내부에서 붕괴할 것이다, (라는 말이 있는데) 저는 경제적 이유로 붕괴할 가능성은 없다. 개방개혁 과정에서 외부 문화가 들어갈 수 잇는 상황 돼야만 붕괴든 격변이든 가능해.

-MB정부 시급한 것

-정세현 전 장관 = 엠비정부에선 국민과의 소통보다 더 시급한 건 관계개선 틈새 벌려나가는 것. 그래놓고 나서 왜 필요한가를 설득하는 순서 잡아야할 것. 남북관계를 임기말년에라도 개선하고싶다면 류우익 장관이 말씀하시는 유연성을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믿어주시고 발휘는 인도적 지원에서부터 시작돼야한다. 식량지원부터 그러다보면 이산상봉 금강산 재개 나올 것. 그때 실무협의 시작하고 임기 끝나기 전에 23차 장관급 회담 열고 끝나는 것이 5년동안 나라 책임 맡은 정권으로서의 역사적 책임 아닌가.

-2012년 강성대국 한다고 선포해놧는데 2013년 체제 어떻게 가능한가?

-이종석 전 장관 = 지금은 강성대국 대신 강성국가라고 한다. 인민들한테 핑계를 대는 거죠. 군사적으로 미국에 대항해서 강한 군대 만들었고 정치도 사상도 강한데 군사하다보니까 경제가 어려워졌다 해서 경제까지 다 완료되는 게 강성국가 된다는 메시지. 경제를 건설하기 위해서 지금가지못했다 하는 것을 핑계를 대는 것이. 군사적 모험심을 그안에 포함하고 잇는 것 아닌가.

-2월에 키 리졸브 한미군사훈련 등을 할텐데 이런 거 하면서 2013년 체제 가능할까. 민주진보정권이 정권 잡아도 할 훈련인데.

/지금 2월달 말씀. 지금 다 아시는 것처럼 야권은 2013년 체제 얘기하지만 한나라당에서도 남북관계 더이상 이런 식으로 나가면 안된다는 거 애기하고 있다. 어쨌든 이 시점에서는 북에서도 정치변동이 잇는 상황이니까 모든 면에서 조심해야한다. 한반도 정세 안적적으로 관리해야한다. 야권에서도 한나라당에다가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유념해서 관리하자 이런 제안할 필요 있다. 그 시기에 새로운 일 시작하긴 어렵다. 그러나 그 이전부터 남북관계가 교류협력이나 인도적 지원이 잘 이뤄지고 있고 남쪽의 진정성을 북이 확인하면 그 기간중에도 이런 훈련 있을 때도 남북관게는 안정적으로 가고 있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는 없겠지만. 내년도에도 새 정부가 진정성 갖고 있는 것만 확인되면. 그 기간 중에 못할 이유는 없다.

-이재정/남북관계 신뢰 있을 때는 훈련 있어도 북한이 하는 것 같고 단절 때는 북도 똑같이 훈련을 했다.

■ 제2주제 ‘동북아 질서 변화와 북핵 해결 전망’

-김창수 전 국가안전보장회의 정책조정실 국장 (이하 김창수)= 북이 중국에 정권을 내줄 가능성에 대해.

-정세현 전 장관 = 중국이 유사시에 북을 점령하리라는 생각은 피해망상이다. 중국이 북한을 함부로 점령할 수 없는 것이 한반도의 특성이다. 미국이 있지 않나. 미국이 남쪽에 주둔시키고 잇는 이유 뭔가. 한반도가 중국이라든지 소련에 넘어가지 않도록 미국의 국가이익을 보유할 수 있는 교두보로서 남아있는데 북한이 완전히 중국에 병탄이 돼 버린다면 전초기지가 그만큼 허약해진다는 것이기에 그때는 미국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우리 안전 보장해주는 측면도 있지만 우리의 운명이 미국과 중국에 달려있다는 점에서 서글픈 현실이기도 하지요. 총선도 승리하게 돼 있지만 시진핑이 집권을 하면 북을 먹을 것이라는 생각 안해도 될 거라 생각한다. 중국 주변에 자기 언어 문화 유지하는 나라는 한반도 인도차이나 월남 그 두개밖에 없다. 한국민족은 방어할 건 하고 협조할 건 하는 그런식으로 협조해왔고 앞으로 그러리라고 본다.

-이종석 전 장관 = 중국은 국경선 2만킬로 54개 소수민족이 있다. 중국의 통치방식은 주변이 안정되는 것이다. 중국이 북한 자기 나라로 만들어서 뭐 하겠나. 조선인민공화국이 그냥 자기 우방으로서 잘 있길 바라지, 중국의 전략적 이해와 안맞는다. 다만 그렇게 보이는 이유는 지금 김정일 시대에 김정일은 그야말로 내부 자원이 고갈되면서 외부 세계에 대해서 (의존 모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중국에 일방 의존했을 때 나오는 여러 문제 있다. 그래서 중국 남한 일본, 북한식 버전으로 하면 '의존의 분산' 정책 썼다. 북한이 볼 때는 미국의 경우 대통령이 클린턴에서 부시로 바뀌면서 갑자기 ‘악의 축’ 하면서 정책이 180도 바뀌었다. 우리는 김정일이 북한이 변덕스럽다고 하지만 (북이 볼 때) 남한이나 미국이 정신없이 롤러코스터 탄다는 거죠. 자기는 미국과 한국과 합의봤는데 정권 바뀌었다고 ‘아냐 싫어’ 이러니까 정신 없다는 것. 이렇게 휘둘릴바에야 중국에 가서 붙자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고 또 하나는 김정일 뇌줄중 때문에, 김정은 체제 공고화시키는 방법으로 확실한 후원국가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 북중간에 2010년 2011년 다양한 협의를 봤다. 황금평 나선이라는 두군데의 공동 경제협력 특구까지 만들었는고 중국을 확실한 후원자로 만들어. 다만 걱정해야할 것은 남북 경혐 너무 오래 단절됐다는 점이다. 북에서는 살아야 된다는 차원에서 북중간에 경제적 의존성이 지금보다 심화돼버리면 남북경제협력을 통한 상호협력 여지 없어져 버리고 통일은 더 벌어진다. 이걸 걱정햐아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중북 관계가 확장된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남북관계가 균형잡아주는 게 중요하다. 북 붕괴한다면 북한에 110만의 군대가 잇는데 우리한테 왜 오겠나. 우리는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아니죠. 북 지도부가 ‘그래도 남쪽에다가 부탁하는 게 낫겠다’ 하는 의존심리가 들어야 그나마 온다. 이상태에서 북한이 남한 좋게 생각하겠는가. 비상사태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남북관계 개선되고 의존하는 심리 가질 때의 얘기지.

-이재정 전 장관 = 이명박 정권이 생각하는 게 대북정책의 강경노선 가려고 하니까 중국으로부터 여러 관계가 좋지 않게 가는 방향으로 설명하고 있는건 아닌가. 과학적 분석이 필요하다. 5.24 조치 이후에 남북간의 경협으로 무역량으로 오고가던 액수가 17-18억불이다. 2007년말 마지막단계였는데 남북관계 깨지면서 이 액수 어디로 갔냐면 다 중국으로 갔따. 평양 임가공 하던 것도 다 중국으로 넘어가. 잘 봐야 한다. 중국이 북을 지배하기 위해서 중국이 공격적으로 북에다 경제투자를 하거나 경제협력을 강화하는 게 아니고 꼭 모자른 부분만 수동적으로 북이 요구하는 한계 내에서 중국이 경제협력 하거나 운용 투자 하는 것이지 무작정 들어가서 하는 거 아니다. 북이 경제발전 하기 위해서 남북간의 경협발전 이뤄졌다고 하면 이건 아마 원만하게 갈 수 잇었을 것. 이게 다 깨지니 그게 다 중국으로 가서. 작년 무역 총량이 50억불인데 내용을 보더라도 오히려 북중관계는 상당히 건전한 관계 아니냐 이렇게 보여진다. 중국의 동북아 정책에 있어서 미중관계 어떻게 가느냐. 이 관점에서 살펴보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남북관계에 대한 문제를 생각하고 북중관계를 볼 때 이런 중국이 갖고 있는 절제된 대북정책을 볼 필요가 있다. 또 하나 중국이 동북삼성 투자 엄청할 계획. 2020년까지 중국 돈으로 2800억위안 우리 돈으로 따지면 457조 막대한 자금 투자해서 중국이 동북삼성 개발한다고 하는데 여기에 북한은 빠져있다. 앞으로 북한경제개발계획에 중국이 얼마나 투자를 할지 역시 남북관계에 달려있다.

-김창수 = 북한의 통미봉남, 남한의 통미봉북 얘기가 나온다. 지금 남북 모두 대화가 잘 되지 않고 미국하고의 대화만 의존하겠다 이런 식이다.두가지 중에서 어느 것이 현실성이 있고 제 3의 다른 가능성은 있는지.

-문 = 통미봉남 정세현 장관이 처음 말했던 거 아닌가?

-정세현 전 장관 = 노재봉 전 총리가 칼럼에서 처음 쓴 용어다.

-문 = 북한의 전략으로 볼 수도있고 현상으로 볼수도 있고. 무엇이라고 보나?

-정 = 현상으로 본다. 현 정부의 북에 대한 불신이라든가, 비핵개방 3000 논의를 구상한 국제정치관이랄까, 통일철학과 관련해 현 정부는 북한은 지금 상태에서는 상대하는 것이 적절치 못하다(라고 생각한 것 같다). 지금 와서는 기대할 수 없게됐지만 초기에는 아마 6개월이면 버릇을 고칠 수 있다 하는 얘기도 했던 것으로 안다. 6개월 지나니까 1년이면 된다면서 자꾸 늦춰졌지만. ‘통미봉남’은 북의 의도된 전략이라기보다는 대북정책의 결과로서 나타난 현상으로 해석해야한다.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얼마든지 통미봉남 깨고 나갈 수 있어.

한반도 평화문제는 엄격하게 얘기해서 북한과 미국 문제다. 엄격하게 대치하는 건 남북인데 북이 강조하는 것은 미국만. 현 정부에서도 자꾸 북한이 통미봉남이 하나의 계산된 정책 전략 아니냐 의심. 북한은 미국이 다 한반도를 좌지우지해왔다고 생각하고 적대적 세력으로서 그들을 압박했다고 봐죠. 우리가 기분 나쁘지 않습니까. 국민의 정부 때 대화를 나누면서 비로소 북한이 우리를 협상상대로 인정했다. 노무현 정부 10·4에서 한반도 평화체제에서 남북역할 필요(하다는 점 강조했다). 현 정부와서 뒤로 많이 돌아갔다. 주한미군 철수 주장 처럼 우리때 거의 애기 안나오던 얘기가 (북으로부터) 나오고 있다.

-이종석 전 장관 = 통미봉남이라는 말 자체가 웃기는 말이다. 북한과 미국 사이 관계에서 북한이 무슨 재주로 통미봉남을 하나. 다만 미국하고 좀 대화를 하겠다 남한 너희하고는 싫어, 정도다. 그런 마술적 언어에 속으면 안된다. 통미 봉북 역시, 억지로 만들어. 다만 우리가 북을 봉쇄하자 이런 말은 할 수 있죠. 그건 가능성이 더 커. 하지만 그렇게 했을 때 북중관계가, 통미봉북이 되면 그때 대한민국 국익은 그야말로 망가진다. 다 소진된다. 5·24 조치가 남북경협 끊었는데 북한이 아니라 우리 업체들이 고통겪었다. 상대방한테 그야말로 열 정도의 아픔을 주기 위해서 우리가 100의 아픔을 받는다는 것은 자해적 행위를 했다는 것. 통미봉북을 할 수 있지만 대한민국의 국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상실되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문 = 미국이 우리에게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재정 전 장관 = 전작권을 미국이 갖고 있으니까요 대단히 우리에게는 무서운 나라죠. 실제로 미국이 사실상 1950년 7월 한국전쟁 이승만으로부터 작전권 가져갔는데 우리가 실제로 전작권 평작권 하지만 실제 작전권은 전시작전권이 중요한 거 아닌가

-문 = 근데 정확한 용어는 통제권이다

-이재정 전 장관 = 하여튼 작전통제권. 이게 우리의 아킬레스건처럼 옭아매. 미국은 북한하고 끊임없이 얘기하고 싶을 때 얘기해. 김정일 사망 직후에도 직접적으로 미국은 북한과 여러 대화하고 있고 우리가 봉북을 할 수가 없다. 우리 힘으로. 미국은 미국이 하고싶은 일들 국익에 이로운 일들 다해. 당장 오늘 아침 신문에도 이란 석유 너희 사지 말라. 이게 대체 주권국가로서 우리가 어떤 입장에 서야 하나. 현실적 과제들 놓고 보면 어려운 문제 아니다. 이란은 역사적으로 몇천년 관게다. 신라때부터. 미국보다 훨씬 이전부터 수년천동안 지속돼온 관계가 미국 때문에 여기서 물러서야 한다, 하는 건 심각하다. 한미관계 근본적을 생각해볼 계제가 아닌가 한다.

-문 = 한미동맹하고 남북관계 같이가기 힘든 부분 아닌가. 이론적으로.

-정세현 전 장관 = 이론적으로 그런지 다시 봐야한다. 김대중 정부 때 미국과의 우호 관계 속에서도 남북 관계 잘 갈 수 있다(고 봤다). 당시 미국에게 ‘냉전 끝난 뒤 우리의 미국 정책 바뀌었다’고 얘기했다. 올브라이트 영문 회고록 416페이지일 거다. 거기 보면 냉전 이후에 미국에 대한 우리들의 생각 바뀌었다. ‘노멀리제이션’ 즉 북한 미국 사이의 관계 정상화 된다면 미군 있는 거 문제 안된다. 미군 있는 속에서도 관계 정상화할 수 있다는 얘기를 했죠. 그러니까 한미동맹은 지금 그동안에 초기에는 대공방어차원에서 시작이 됐지만 이제 앞으로 남북관계가 좋아지고 미북 관계가 좋아진 조건에서 주한민군의 역할은 바뀔 수밖에 없다고 봐. 이미 미군은 밸런싱 롤. 동아시아에서의 밸런싱 롤을 하고 잇다. 동서독 통일할 때도 나토로 파견된 4만 미군은 유럽지역 밸런서로서 주둔 해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미국이 독일통일을 오케이한 것이다. 굳이 제로섬 관계에 있다고 볼 필요는 없고 그때쯤 되면 미군의 역할은 바뀌게 되고. 한미간에 우호관계 유지되는 조건에서 미군이 밸런서 역할 하고 그 속에서 미북, 남북관계 좋아질 수 잇다고 봐. 근데 우리는 으레 제로섬으로 생각하려는 데서 한계에 부딪히지 않나.

-문 = 동맹 유지되려면 공동의 적과 공동의 위협이 있어야 하는데 남북관계 한미관계 다 좋아지면 다 없어진다. 미국은 아프칸 철수 해서 갈데없으니까 아시아 얘기나오고 있다. 미국이 국방비 1조억 줄여야하는데 지금 군사력 유지하려면 한국이 방위비 분담 상당히 해줘야한다. 우리는 남북관게 개선되고 한중관계 좋아지면 동맹유지할 필요 없는데 동맹체제 유지한다?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이종석 전 장관 = 국민의 선택이겠죠. 어려운 문제다. 동맹은 공동의 위협 대상에 대응하게 돼있어. 역사 어느국면에서나 동맹은 있어. 한미동맹은 냉전의 산물이다. 하지만 세종연구소가 애초에는 전두환이 상왕정치 하려고 만들었던 것처럼 전혀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역사에서 새로운 역할을 하는 경우 생긴다. 이미 동맹은 한미 동맹은 이미 자기 생명이 상실되는 운명 갖고 잇는데 그러나 꼭 그렇게 되는 건 아니죠. 분명한 건 냉전 해체라는 시대적 상황은 동맹이 이완되는(상황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한국이 먹고사는 생존의 출구가 그동안 미국을 통해서 해왔는데, 1990년에 미국에 대해서 전체 수출 30%였지만 2011년 넘는 시점에서 25프로 넘는 수출을 중국에 하고 있다. 생존의 방향 전략 바뀌고 있다. 한미동맹 하나만으로는 아무것도 안된다. 2013년 체제라는 것은 결국 남북관계와 한미관계가 어떻게 조화롭게 균형적으로 끌고갈 것이냐. 이런 측면에서 문제 바라보면서 동맹이 역사적으로 장기적인 역사적 순리에 맡기고 그대신에 새로운 국면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동북아 다자협력 구도 어떻게 만들 것이냐(가 중요하다).

-김 = (일찍 일어서기 전 마지막 발언) (이문제 나오는 것은) 탈냉전이라고 하는 변화된 정세 때문에 그렇다고 본다. 냉전시대에는 남북적대관계가 지배적이었고 북의 남침 호전의욕을 억제하기 위한 필요에 의해서 한미동맹 만들어졌다. 남북사회 적대화 상수로 놓고 억지력으로서의 한미동맹 아무 문제 없었다가 김대중 노무현 정상회담 평양 금강산 가고 돕고 그러니까 남북관계 과거와 다르게 변했다. 거기서 한미동맹은 제갈길 가기 힘들어졌다. 남북관계 변화에 맞춰서 재조정 되고 변화하고 새로운 모색 필요하다. 그런 과정의 진통을 겪고 있으므로 남북관계 개선되면 한미동맹 어긋나고 동맹 올인하면 남북관계 삐그덕거린다. 즉 상호교환관계 트레이드오프 관계 가 되지 않았나. 한미관계를 평화적 차원에서 정립하고 그러면서 남북관계도 역동적으로 해 나가야한다고 본다.

-김창수 = 김정은 체제의 출범 이후에 아직까지 북에서는 한반도 비핵화는 김일성의 유훈이라는 말 안나온다. 김정일 시대엔 비핵화는 김일성의 유훈이다라고 했는데 지금은 그런 말 안나온다. 오히려 핵 보유와 핵 억제력은 김정일의 혁명유산이다 라고 말한다. 비핵화 더 어려워지는 건 아닌지. 해마다 2-3월에 한미 군사훈련 하는데 북이 핵실험 할 가능성 있다는 외신 봤다. 한미 훈련 앞두고 핵실험 하는 걸 에방하기 위해서 6자회담을 실시해야하지 않느냐 이렇게 얘기해. 언제 어떻게 실시하는 게 좋을지.

-이종석/(핵실험을 할지는) 모르죠. 그러나 예년 경우 얘기하자면 예년의 경우 남이 군사훈련한다고 핵실험으로 대응하지는 않는 것 같다. 핵에 대한 대응은 미국의 조치 행동 끌어내기 위해서 하는 거기 대문에 그건 어떻게 될지 잘 몰라. 핵 문제 해결이 굉장히 어려운 건 사실이다. 불편한 진실 하나가 있다. 2008년 5월에 북이 핵실험한 다음에 서방이 북 핵실험에 대한 응징의 조치로서 유엔안보리 1874호 발동.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북중 경제관계 확장되면서 1874호 효력 거의 없다는 건 미국에서 나와. 지난 2년 7개월 동안 6자회담은 재개 안돼. 북이 나오겠다고 했는데도 안되고 있다. 2년 7개월 동안 6자회담 재개됐다면 북한이 함부로 행동 못했을 것. 관리 억제하는 효과 갖고 잇으니까. 그래놓고 우리는 그래요. 북한이 핵보유 국가가 됐다. 우리가 할 일은 하고있는가 질문하고 있어. 핵실험을 한번 더 해가지고 뭘 했나. 하다못해 저처럼 장관 그만둔 사람 있나. 아무것도 한 게 없어. 그리고 영향력도 없으면서 전제조건 걸어. 우리는 끊임없이 북한 큰일났다. 핵 보유 강화시키고 있다고 하는데 그러나 우리의 대응 너무나 미진하고 핵개발 하라고 방임한 거나 마찬가지다 2년 7개월동안 아무 조치 없었다. 북한은 내부 단결 위해서라도 핵보유국이긴 하다 그러나 비핵화 의지 약화됐다고 장담할 수 없어 그러나 김일성 김정일의 유훈으로서 비핵화가 돼있기 때문에. 옛날보다 어렵죠. 계속 아마 이렇게 나갈 거다. 그런데 이렇게 묻고 싶다. 북한 핵 포기 않을 거다. 좋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이제 북한 핵보유 국가다 라고 전제하고 정책을 써야 한다. 핵 포기 않을 거란 전망이 선다면 거기에 맞춰서 정책을 써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한미 어느 누구도 인정하고 싶지 않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이상은 협상 해야하는 거다. 북한 핵 보유 했다고 한다면 그 다음 정책을 써야. 북한이 핵보유 했다는 걸 인정을 못한다 맘속으로는 핵 포기 않을 거라 생각하면서. 어차피 이렇다면 북 핵포기 방법 연구해야한다. 군사제제 안돼. 보수진보 가릴 것 없이 다 반대한다. 경제제재. 이제 중국 동의 안한다. 하나밖에 없어. 북한의 체제 안전 보장하고 경제적 이니셔티브 즉 인센티브를 줘서 경제적 보상 통해서 핵 포기할 수 잇는 여건 만들어가야 한다. 이거 밖에는 다른 길은 없다. 6자회담 재개 문제는 식량을 주고 우라늄 중단하고 합의 안되면 안되는 대로 무조건 재개해야지, 2010년에도 이명박 오바마 조건 없이 복귀해라 해놓고 천안함 나자, 천안함 난 뒤에 핵 문제 달라졌나? 천안함 해결 안되면 6자회담 나올 필요 없다고 했다. 이런 정신분열적 행동 통해서 여기까지 온 거다. 그사이 북한은 얼씨구나 좋다 하고 핵 능력 개발했따. 그래놓고 정부는 나중에 핵 갖고 큰일났다 이런다. 무조건 찍어누를 수 있는 기제를 돌리는 게 중요하다.

-정세현 전 장관 = 조선반도의 비핵화는 김일성의 유훈이라는 말도 북 정치의 기본 출발점이고 핵 보유국의 자존심이란 것도 북한 핵 정책의 출발점이긴 하지만 저는 이건 몸값 높이기 위한 일종의 블러핑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리고 핵 보유국이라고 할 때 핵이 뉴클리어 밤이냐 뉴클리어 디바이스냐 분명치 않다. 뉴클리어 디바이스까지는 인정하고 있지만 밤을 만들었다 하는 거에 대해서는.. 핵 보유국 이러면서 핵 무기 갖고 있는 것처럼 두루뭉실 넘어가는데 정확히 따지면 디바이스 핵 폭파장치까지는 실현했지만 미사일에 탑재할 수준의 밤은 아직 없다. 그렇다면 레이더밤을 피해서 싣고가서 떨어뜨릴 수 있는 폭탄 의미 없다고 볼 때 핵 보유국 인정은 성급한 거 아닌가. 그럼 어떡하자는 거냐. 94년 제네바 체결될 당시에 플루토늄 재처리 능력 만 가지고도 46억불 짜리 경수로를 따낸 사람들이다. 이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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