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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41 진만석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1,023회 작성일 2008-01-31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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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避難

 “난리가 났다”

 그날 日曜日, 밖에서 어머니와 이웃 아주머니들이 하는 말이었다. 어른들은 큰일이라며 모두 걱정이 泰山 같은 表情이었다. 나는 ‘亂離가 났다.’ 라는 말의 뜻을 몰랐지만 큰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몸으로 느꼈다.

 初等學校 2學年인 나는 어두침침한 방에서 宿題를 하고 있었다. 집안에 時計가 없었기 때문에 正確히 몇 시쯤이 되었는지는 몰라도 아마 한 10時 頃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하루 이틀이 지나자 아버지와 어머니는 간단한 봇짐을 싸서, 아버지의 外家親戚이 살고 있는 法洞里(現 大德區 法洞)로 우리를 데리고 ‘避難’이라는 것을 갔다. 그런지 며칠 후, 이번에는 房門에 못질을 하고 내 姑母가 살고 있는 ‘시악골’(現 西區 牛鳴洞)로 本格的인 避難을 떠났다.


 佳水院까지는 어떻게 갔는지 記憶에 없으나, 그곳에서부터는 甲川을 거슬러 올라 牛鳴洞까지 갔다.

 7月이라 날씨는 더웠다. 내 同生은 어머니 등에 업혔으나, 나는 걸어야만 했다. 냇둑을 따라 한없이 걸었다. 한참을 걷다 보면 거먹고무신이 미끈거렸다. 그러면 냇물에 들어가 걸었다. 시원해서 좋기는 했으나 돌이끼가 끼어 역시 미끈거리기는 마찬가지였다. 아침 일찍 城南洞 집을 出發해서 한나절을 걸은 후에 姑母님 宅에 倒着했다.


 어른들은 걱정이었겠지만 나는 신이 났다. 그곳에는 이미 結婚한 姑從四寸 兄도 있었지만 내 또래의 魯吉이가 있었다.

 姑母님 宅 집 앞에 있는 논두렁을 신나게 뛰어다녔다. 더구나 내게는 女 兄弟가 없었으나, 시집갈 나이는 안 되었으나 어지간히 큰 姑從四寸 누나도 있었다. 해거름에는 누나와 伐谷에서부터 흐르는 냇가에 가서 다슬기를 잡아 소쿠리에 담았다. 모든 일들이 신나고 즐거웠다. 배가 고프면 사래가 들어 캑캑거리며 보릿가루를 먹었다.


 아버지는 職場일 때문에 大田으로 나가셨다. 밤이면 爆擊으로 불타는 大田 쪽의 火焰이 그곳에서도 보였기 때문에 어머니는 勞心焦思이셨다. 더구나 同生의 食口들을 떠안게 될지도 모르는 狀況에서 그랬었는지, 아니면 親庭 同生이 잘못될까보아 걱정이 되어 그랬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내 姑母는 ‘큰일이네. 大田에서는 사람이 많이 傷했다는데......’ 라며  내 어머니의 속을 긁었단다. 그때 내 同生은 열이 있고 밥을 잘 먹지 않아 쌀밥을 먹였으면 했었단다. 그러나 많은 식구들의 꽁보리밥을 지을 때 우리가 가져간 쌀을 그 위에 얹고 했었는데, 쌀만 골라 푸지 못해 보리가 많이 섞인 밥을 동생이 먹으러하지 않아 마음고생이 많았었단다.


 어머니는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는다.’는 마음으로 大田으로 나가기로 決定했다고 한다. 내 어머니는 길눈이 어두었으나, 어느 날 큰 맘 먹고 ‘시악골’ 을 나섰단다. 나오는 中間에 爆擊을 피해 원두막으로 피했는데, 어느 中年 男子를 만나 事情을 이야기 했더니 자기만 따라오라고 해서 그 사람을 따라 나섰다고 나중에 말했었다. 나는 그 때 다리 밑에 숨어 있던 人民軍들을 처음 보았다.


 그 사람을 따라 가오동 쪽으로 나오게 된 것으로 짐작 된다. 佳水院을 거쳐 西大田 사거리를 지나야 城南洞으로 오는 길이 빨랐을 테지만, 그곳을 피해 黑石洞쯤에서 지금은 南部 循環道路가 지나는 안영동을 거쳐 寶文山 뒤쪽을 지나 가오동으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그 사람은 大洞까지만 같이 왔고, 내를 따라 쭉 내려가면 城南洞에 이른다고 가르쳐 주었다.


 大洞川을 따라 내려오자 城南다리에 다다랐다. 다리 附近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戰爭을 하는 것 같지 않았다. 지게의 바소쿠리에는 참외가 그득히 담겨 있었으며, ‘장씨 네 주막’은 술꾼들로 넘쳐났다. 나는 다리 건너 아버지 職場으로 달려갔다. 한참 만에 보는 아버지가 반가웠다. 참외를 사서 아버지와 같이 집에 到着했다. 그야말로 避難살이에 모처럼 네 가족이 모두 함께 모였다.


 60余 年이 지난 일들이지만,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2008.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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