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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41 진만석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1,028회 작성일 2008-05-17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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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아버지

 나는 할아버지의 얼굴도 보지 못했다. 내 아버지가 열다섯 살 무렵에 돌아가셨다니 당연한 일이다. 내가 할아버지가 되어 손녀가 마냥 귀엽기만 한데, 만약 내 할아버지가 나를 보셨다면 나처럼 내 할아버지께서도 나를 귀여워 해 주셨으리라.

 다음 글은 徐弘圭 동문이 <아름다운 인연> 2008년 5-6월 호에 기고한 글이다. 그 글을 전재한다.


        영원한 스승 나의 할아버지

 밖에서 막 뛰어 놀 나이, 마당에 내 모습이 보이면 할아버지께서 부르시는 소리가 들린다.

 “홍규야, 들어오너라!”

 마지못해 사랑방으로 끌려 들어가면 어김없이 천자문을 펴고 읽히신다. 요즘처럼 색깔 있는 그림책도 아니고 재미있는 이야기책도 아니다. 그저 딱딱하고 단순한데다 4자씩 떼어가며 읽자니 지루하기 짝이 없다.

 처음에는 음과 훈이 무슨 뜻인지는 모르고 읽었을 뿐이었는데 언제부터인지 속도가 빨라지면서 제법 높낮이를 주고 박자를 맞춰가며 몸을 좌우로 흔들면서 읽는 습관이 베어갔다.  

 구름 雲 오를 騰 이를 致 비 雨 할 때는 대기변화의 자연현상을 신비롭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밖에서 뛰노는 동무들의 웃음소리를 멀리하며 글을 읽을 수 있는 고통과 인내력을 기르는 계기가 되었다.

 얼마 후 붓글씨 쓰기 과정이 생겼는데 1)붓 대롱이 깨질 만큼 세게 쥐어라! 2)팔꿈치를 떼어라! 3)덧칠하지 마라! 하시며 호되게 가르치셨다. 아마도 집중력과 치밀성을 길러주기 위한 방법이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삼강오륜에 삼라만상의 음양조화, 윤리와 도덕관, 사람이 갖춰야 할 기본적 가치관 등등............. 들려주시던 金玉의 말씀은 그 내용이 이미 철학개론에 입문해 있었는듯 싶다.

 사랑방에 정좌해 계신 할아버지의 우렁찬 기침소리는 가문의 위엄을 알리는 신호였으며 목적 없이 어울려 북적대는 아낙의 소란에 ‘탁! 탁!’ 장죽담뱃대 두드리는 소리는 주변을 잠재우는 호령으로 통했다.

 손주를 앞에 두고 먹을 갈며 글을 가르치셨을 때가 아마도 할아버지 생애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웠을 시절이었을 것 같다. 좀 더 총명함으로 다가가지 못한 童年의 불충한 아쉬움을 뒤로 초등학교 4학년 말 도시로 떠나 온 후에는 할아버지의 과외공부가 모두 끝나고 말았다.

 그 훌륭하신 가르침은 세상을 살아오는데 온갖 지혜와 도구가 되었으며 인생의 좌표가 되었다.

 할아버지는 나의 최초의 기초과정 과외선생님이셨으며 영원한 스승이시다.

 나보다 꼭 60년을 먼저 사셨던 할아버지는 내 나이 신록으로 접어드는 그 해, 물씬 익어가는 5월의 보리밭 사이를 지나 80년 생애 막을 내리고 하늘나라로 가셨다.

 어버이에 대한 효심을, 스승에 대한 고마움을 새기게 하는 5월이면 밤잠을 뒤척이게 하는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못지않게 혼돈의 상실감으로 허둥대는 세태의 고뇌를 통감하곤 한다.

 이제는 할아버지로 사는 오늘, 옛날 할아버지들이 우리들에게 베풀었던 것을 되갚음으로서 의무를 다해야 하는 번민에서..........

 모두들 분주한 채 아버지도 어머니도 일터로 나가고 어린이는 어린이대로 학교 폭력과 유괴의 위험에 노출된 채 세분화로 다양하게 특화된 전문학원에 겹치기로 몰려다닌다.

 세계의 문은 열려있고, 三代의 합리적 가족모델은 해체되어 핵가족으로 축소된 채 오늘날의 할아버지들은 그들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 살고 있다.

 미래를 지켜갈 새싹들이 어른을 공경하고 서로 사랑하며 정직하고 훈훈한 사회를 가꾸어 갈 수 있는 기본적인 삶의 체험을 통한 인성교육은 누가 어디서 언제 가르친단 말인가?

 모두에게 일찍부터 영어로만 줄 세우기에 앞서 이 시대의 사회교육제도와 현실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이 땅의 할아버지들에게 그 보람찬 역할을 부여할 길은 없는지 다 같이 모색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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