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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哲學者들-- 카뮈 vs. 사르트르 왜 갈라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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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1,049회 작성일 2012-08-05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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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와 사르트르 왜 갈라섰나

등록 : 2012.08.03 18:52 수정 : 2012.08.03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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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폭력’에 대한 견해차
소련 강제수용소 지상논쟁서
공산주의 두고 맹렬한 사투

폭력에서 전체주의로
에릭 베르네르 지음, 변광배 옮김/그린비·1만9000원

 
 
 
 
실존주의 문학의 거장들이자 서로 돈독한 사이였던 프랑스의 두 지성 알베르 카뮈(1913~1960·왼쪽 사진)와 장폴 사르트르(1905~1980·오른쪽)는 1952년 소련에 강제수용소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지상논쟁을 벌였다.
 
 
카뮈는 당시 공산주의에 기대와 희망을 걸었던 프랑스 지성계의 일반적 흐름과 달리 공산주의를 맹렬하게 비판하는 입장에 섰고, 사르트르는 이에 맞서 반공산주의 자체를 반대하는 주장을 폈다.
 
 

스위스 출신 철학자 에릭 베르네르가 1972년 펴낸 <폭력에서 전체주의로>는 서로 갈라질 수밖에 없었던 두 사람의 철학적 배경을 파헤친 책이다. 지난 20세기 유럽을 관통했던 정치철학적 논쟁의 줄기뿐 아니라, 그동안 문학에 견줘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았던 카뮈와 사르트르의 사상가적인 면모를 드러내 보여준다.
 
 
 

지은이는 두 사람의 서로 다른 생각들을 ‘진보적 폭력’에 대한 입장 차이로 풀어나간다. 같은 시대의 철학자 모리스 메를로퐁티는 <휴머니즘과 공포>란 책에서 ‘진보적 폭력’이라는 개념을 제시해 많은 논쟁을 유발했다. 모든 정치 제도는 폭력에 근거할 수밖에 없는데, 폭력을 제거하기 위한 ‘진보적 폭력’과 폭력을 영구적으로 고착하려는 폭력을 구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여기엔 두 가지 가정이 있다.
 
 
혁명을 통해 역사의 진보가 이뤄질 수 있다고 보는 ‘휴머니즘’과 자연상태 속 인간은 다른 인간을 투쟁의 대상으로 삼는다고 보는 ‘테러주의’다.
 
 
이런 가정들로부터 앞으로 휴머니즘이 이뤄지는 세상을 이루기 위해서는 현재 횡행하는 폭력들을 제거하기 위한 ‘진보적 폭력’이 불가피하다고 보는 주장이 나온 것이다.

 
 
 
 
카뮈는 <반항하는 인간> 등의 저작들을 통해 이 두 가지 가정을 무력화시키려 했다. 그는 인간이 역사에 의해 구원받을 수 있다는 혁명론자들의 생각은 ‘지금-여기’를 아랑곳하지 않는 헛된 시도로서, 우상숭배와 다를 바 없다고 봤다.
 
 
인간의 비참함은 인간에게 주어진 삶의 본질적인 조건이라고 본 ‘부조리론’이 그 뼈대다.
 
 
 

또 자연상태를 긍정한 루소의 전통을 이어,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라고 본 홉스의 생각을 비판했다.
 
 
흔히 마르크스주의는 헤겔의 ‘주인-노예 변증법’으로부터 근거를 끌어와 주인에 대한 노예의 반항(‘죽음의 투쟁’)을 세계를 변화시킬 혁명의 실천이라고 보지만, 카뮈는 반대로 그 속에서 인간의 ‘연대성’과 의사소통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인간은 반항을 통해 ‘나’를 넘어서 타자와 함께 서 있는 공동체로서 ‘우리’를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사르트르는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이기 때문에 ‘나’는 ‘우리’로 자발적으로 옮겨갈 수 없다는 홉스의 생각을 이어받았다. 그런 자연상태가 아닌 ‘사회상태’, 곧 정치적인 삶을 만들려면 ‘우리’를 강제할 수 있는 매개자가 불가피하다고 본 것이다.
 
 
이런 논점 아래 사르트르는 개인이 매개자에게 복종하는 것만이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식의 ‘복종의 계약’ 논리를 끝까지 밀고 나갔고, 이는 전제주의에 대한 긍정으로까지 나아갔다.
 
 
 

무엇보다 사르트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전체성’이었다. 인간이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에 놓인 이상 그 속에 있는 적대감을 제거하려면 그들 사이의 차이를 제거해야 한다. 그러나 절대적 동등이란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전망은 비관적이다. 그래서 사르트르는 프랑스 혁명을 앞두고 바스티유 감옥을 탈취하기 위해 인민들이 하나의 동일체가 됐던 것처럼, 사람들이 자신을 던질 수 있는 전제적 존재와 이를 통한 진보적 폭력의 필요성을 제기한 것이다.
 
 
 

카뮈에 견줘 사르트르는 때로 자신의 논지에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했고, 카뮈의 비판에 걸맞게 현실 공산주의는 그 전체주의적 속성 때문에 몰락했다. 그렇다고 사르트르의 주장이 아예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결론 부분에서 지은이는 카뮈의 작품 <전락>을 소개하며 이렇게 풀이한다.
 
 
“사르트르와 카뮈, <전락>의 주인공 클레망스는 적어도 다음과 같은 점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자연상태이든 역사의 산물이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의 시대’라는 점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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