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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후손을 자처하는 선,후배 필독-영웅 ^^근초고왕의 영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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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2,890회 작성일 2013-04-04 0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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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초고왕때 백제 영토는 어디까지였나?
 
 
 
 
 
 
“北으론 대동강 하류, 南으론 전남 해안”
 
 
 
 
 
 
 
■ 한성백제박물관 학술회의
 
 
 
 
▲ 지난 2010년 강원 화천군 하남면 원천리에서 발굴된 3∼4세기 대규모 마을 유적. 한성백제가 이른 시기 북한강 상류지역까지 진출해 직접 지배했음을 보여주는 자료다.문화일보 자료사진
▲ 전남 고흥 안동고분 출토 백제 금동관과 금동신발.
남북으로는 대동강 하류에서 전남 남해안까지, 동으로는 춘천·화천, 서로는 바다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를 확보했다.”

“동으로는 춘천·화천 일대, 남북은 예성강 이남에서 전북 고부와 김제 일대까지만 영유했다.”

백제의 최대 전성기를 이룩한 제13대 임금인
 
 
 
 
근초고왕(재위 346∼375) 때 백제 영토는?
 
 
 
 
과연 어느 정도 범위였을까.
 
 
 
 
 
 
 
지난 3월 30일 서울 송파구 위례성대로 올림픽공원 내 한성백제박물관에서 열린 학술회의에서
종합토론의 좌장을 맡은 이현혜(사학) 한림대 교수는
근초고왕대 영토의 최대 범위와 최소치를 이같이 정리했다.


‘근초고왕 때 백제 영토는 어디까지였나’를
주제로 열린
이날 행사는 한성백제박물관(관장 이인숙)이 매년 봄·가을 두 차례씩 백제사 가운데 쟁점이 되는 주제를 잡아 끝장토론 형식을 가미해 열고 있는 학술회의로, 지난해 하반기에 이어 두 번째로 열렸다.


이날 학술회의는 노중국(사학) 계명대 교수의 주제제안 발표에 이어
 
 
 
 
백제의 동북 및 서남 방면 진출에 대해
 
 
 
 
,
문헌사학자인 임기환 서울교대 교수와
강종원 충남역사
문화연구원 연구위원,
고고학자인 심재연 예맥문화재연구원 조사부장과
서현주(문화유적학) 한국전통문화대 교수가 각각 주제발표를 진행했다.

초기 한성백제(기원전 18∼475년)의 영토와 근초고왕 때
 
 
 
 
북쪽 경계는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 13년조에는
“북으로 패하(浿河·예성강),
남으로는 웅천(熊川·안성),
서로는 대해(大海·서해),
동으로는 주양(走壤·춘천)에 이르는 강장(疆場·영토)을 확정했다”
고 나온다.
그러나 임 교수가 주제발표에서 밝힌 대로,
 
 
 
백제가 기원 전후 시기인 온조왕대에 이 같은 영토를 확보했다고
 
 
 
 
 
믿는 연구자는 없다.
 
 
 
 
후대의 상황이 온조왕대
기록에 편입됐다는 것이 일반적인 이해인데,
노 교수는?
통설인 백제 고대국가의 기틀을 닦은 8대 임금
 
 
 
 
고이왕(재위 234∼286)대의 상황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그는 “3∼4세기 한성백제의 대단위 취락이 발굴된 강원 화천군 원천리 유적의 존재가 고이왕대 백제가 이곳까지 영토를 확장한 것을 보여주는 고고학적 증거”라고 말했다.
노 교수는 근초고왕 때 백제의 영토가 수곡성(황해도 신계)까지
확대됐다고 덧붙였다.

반면, 고조선 시대 이후 패수(패하)의 위치 또는 패수로 불린 강이?
 
 
 
 
 
 
 
압록강에서 대동강, 청천강, 예성강으로
 
 
 
계속 바뀌어 온 사실을 
지적한 임 교수는?
“온조왕 본기의 강역(영토) 확정 기사는
 
 
 
 
패하를 대동강으로 인식한 근초고왕대 백제인의 인식이 투영돼 있다”며
 
 
 
“고이왕대가 아니라, 대동강 이남까지 영역으로 확보했던 근초고왕대의 상황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 동북쪽 경계인 화천군 원천리 유적의 연대는 = 지난 2010년 확인된
 
 
 
화천군 원천리 유적은 한성백제가 춘천 등 강원 영서
 
 
 
 
 
지역을 영유해 내륙교역로를 확보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지만,
 
 
유적의 연대와 관련해선 고고학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엇갈렸다.
유적을 직접 발굴한 심 부장은?
한성백제 중앙양식 토기를 기준으로 3세기 후반부터 5세기 전반 사이를,
종합토론에 참여한 이성주(고고인류학) 경북대 교수는?
마구를 기준으로 4세기 후반부터 5세기 후반을 각각 원천리 마을의 연대로 제시해 100년 정도의 차이가 났다.

 
 
 
 
◆ 남쪽 경계의 쟁점:
 
 
 
영산강 유역과 전남 남해안 일대까지 지배했는가 = 노 교수는 전북 김제
 
 
벽골제가 근초고왕의
 
 
 
아버지인 비류왕 27년(330)에 축조되고
 
 
 
시기가 분명하진 않지만 고사부리성(전북 고부)이 축조됨으로써
근초고왕 이전에 백제의 전북 지역 영역화가 일단락된 것으로 보았다.

이런 바탕 위에 ‘일본서기’ 신공기 49년(249)조에 나오는
백제장군 목라근자(木羅斤資)의 남방 경략이 단행됐다는 것이다.
신라를 물리치고 가야 7국을 평정한 뒤 군사를 서쪽으로 이동해 고해진(古奚津·전남 강진)에 이른 목라근자가 심미다례(沈彌多禮·신미국) 등 영산강 유역 일대 국가들을 도륙(정복)했다는 게 신공기 49년조의 내용이다.
신공기 49년조는 일본사학자들의 수정 연대로 근초고왕 24년(369)에 해당한다.
 
 
 
영산강 유역 공격에는 근초고왕과 태자 근구수도 함께 참전하는데, 노 교수는 한성백제가 4세기 중반쯤 심미다례 세력을 정복해 영산강 유역을 영역으로 편입한 사실을 나타내주는 사료로 이해했다.

이에 대해, 토론자로 나선 백승옥 부산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은
“국내 학계에서는 신공기 49년조 기사의 행위 주체를 백제로 바꿔 이해하지만,
 
 
 
신공기 내용의 상당 부분이 후대에 꾸며진 것이란 최근 일본 학계 연구에 따르면
 
 
 
근초고왕의 영산강 유역 정복 자체가 성립이 안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한성백제의 금동관과 금동신발이 출토된 전남 고흥 안동고분 등 고고학 자료에 대한 해석도 엇갈렸다.
서 교수는 느슨한 형태의 간접지배를 포함할 경우, 백제 근초고왕대 영역에 영산강 유역과 전남 남해안 지역까지 포함된 증거로 이 자료를 활용한 반면,
임영진(인류학) 전남대 교수는 영산강 유역과 전남 남해안 지역의 독자성을 입증하는 사례로 이를 제시했다.
 
 
 
 


최영창 기자 ycchoi@munhwa.com
***************************************************
@@@ 백제의 후손을 자처하는 저 한준구로서는
1350년이 지난 서기 660년의 백제 멸망에 관한 글을 읽으면 지금도 가슴이 저미어 옵니다.
1.백제 성왕이 관산성 전투에서 신라의 기습으로 목숨을 잃은 것이 지금도 가슴이 저미어 옵니다.
 
 
 
 
2.한때 해동증자 라는 이름을 얻을 정도로 현명하였던 백제 마지막 임금 의자왕의 서기 652년 이후의 정세 오판에도 가슴이 저미어 옵니다.
 
 
 
3.수많은 백성들이 중국으로 잡혀가고 낙화암등지에 몸을 던지고 수천척의 나룻배로 일본으로 건너다 다수가 풍랑을 만나 목숨을 잃고 하는 것에 가슴이 저밉니다.
 
 
 
4.백제멸망 후 백제부흥운동의 지도자들이 많은 지역을 수복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도층의 내분--복신 도침 흑치상지 등등--
 
 
과 지도자 시해 등으로 자체 분열하여 백제 부흥운동이 실패로 돌아간 것에 지금도 가슴이 저밉니다.
 
 
 
5.당시 백제와 특수 관계에 있었던 일본에서 서기 663년의 일본의
 
 
 
400여척의 군함과 2만 7천명의 군사들이
 
 
 
백제 부흥을 도우러왔으나 사전 기밀 누설등으로로 백강 전투에서 몰살당한 역
 
 
 
사적 사실에도 가슴이 저미어 옵니다.
 
 
 
6.후백제가 한 때 고려 왕건도 죽일 기회도 놓쳐 끝내는 후삼국 통일의 천재일
 
 
 
우의 기회를 놓치고 끝내는 역시 내분으로 허무하게 멸망한 후백제에 대해서도 과거 史劇을 볼 때 마다 가슴이 저미어 왔으며 지금도 그렇습니다.
*********************
다음은 최근 대하 드라마로 시작된 백제의 근초고왕 편의 방영에 즈음하여 아주 훌륭한 어느 작가가 다음의 작품을 출간하였답니다.
저는 일면식도 없으나 매우 훌륭한 분으로 간주되어 다음과 같이
소개하오니 후학들에게 널리 폄글로 알려 주시길 간청합니다.
 
 
 
 
 
 
덕분에 역사대하소설 [근초고대왕] 전5권
 
 
 
 
 
완간했습니다."
2010년 10월 27일 (수요일) 오후 4:32
보낸 사람:
받는 사람:
"이름없음"
감사의 글을 이렇게 올릴 수 있어 참 기분이 좋
 
 
 
 
 
 
습니다.
 
 
 
 
 
 
 
소설 근초고대왕에 대한 구상은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해 2002월드컵유치엽서 보내기 범국민운동을 기획하여 스위스 취리히 fifa 본부 앞에서 120만 장의 그림엽서 전시와 홍보활동에 참여했었습니다. 그런데 2002 월드컵이 집행위원들의 합의로 한일 공동으로 개최되자 새로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중·일 동아시아공동체 시대가 예감되었습니다.
 
 
 
 
그러한 모델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위대한 문장가들의 삼국지, 초한지, 수호지를 보면서 중국의 영웅들을 동경했습니다. 그러나 중국 각 지에서 정작 고려관과 백제현, 백제성을 보고 들으면서 의문이 생기곤 했습니다. 고조선 유물들과 동이족 얘기를 통해 전혀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왜 지금 근초고대왕 일까요?
 
 
 
 
환율전쟁, 경제전쟁이 세계와 아시아에서 거세게 불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21세기 국가 전략이 군사 강국이나 영토대국은 아닐 것입니다. 동아시아와 세계에서의 균형자적 역할로 볼 때, 과연 그런 문화 강국의 비전을 가지게 하는 우리 민족의 영웅이 있었는가? 이런 질문에도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분명히 있었습니다.
 
 
 
 
 
근초고는 대륙과 한반도, 일본 열도, 나아가 대만과 동아시아 일원을 경략하는 데 성공한 백제의 정복 군주였습니다. 그래서 더욱 역사 속에 생생하게 살아 있는 근초고대왕의 대백제 최대 전성기 이야기를, 새로운 동아시아의 비전을 제시하고 싶었습니다.


근초고는 동아시아 최대 문화강국, 지식대국을 만들었습니다!
백제는 하얀 황금으로 불리는 소금의 주산지입니다. 소서노와 그의 아비인 연타발 때부터 염전원인으로 불리는 소금상인이었습니다. 수준이 매우 높은 수리농업 기술을 가진 백제는 드넓은 곡창지대와 야철터 즉 철기시대 철광생산지를 갖고 있었습니다.
삼(蔘)과, 양잠 밭이 널려 있었으며, 뛰어난 조선술과 육로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빠른 해운기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황해를 내해로 하는 각국의 기술을 가져와 문화의 용광로에서 녹여 새로운 신기술로 만들어낼 줄 알았던 다문화의 열린 국가였습니다. 한국의 고대국가 중 가장 글로벌화에 접근한 것이 바로 백제입니다. 그 백제 최전성기. 고대 한류의 중심은 누가 뭐래도 백제였고 그 중심에 근초고가 있었습니다.


근초고왕이 아니라 大王입니다.
 
 
지방왕과 제후를 거느렸으며, 백성을 넓게 품은 큰 왕이었습니다. 중국 역사책들을 보면 백제 땅에는 중국인, 가야인, 일본인이 섞여 거주한다고 했습니다. 약 1700년 전 이미 백제는 열린 국가로 일본은 물론 동아시아 문명의 꽃을 활짝 피운 대국이었습니다.
 
 
무력의 시대. 문화와 교류의 백제는 이제껏 나약함과 무력함이 아닌 화려한 문화선도국가입니다. 이제 세계 1등 국가, 선진국으로 도약하여 지향해야 할 우리의 비전은 한민족 인류문화 선도국가입니다. 근초고는 1,600년을 훌쩍 넘어서 동아시아 백성을 아우른 왕 중의 왕이었습니다.


앞으로...
 
 
[근초고대왕]은 일본과 중국, 동아시아 일원에서 출판할 계획입니다. 현재 동경 대동문화대학교 명예교수이자 정치학 박사인 나가노 신이치로 교수가 일본어 번역을 하고 있으며, 중국어와 영어로 번역하실 분들을 찾고 있습니다.
 
 
작곡가 유승엽씨 등과 뮤지컬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원소스멀티유즈의 킬러컨텐츠로 확산시켜 근초고 정신을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렇게 훌륭한 영웅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고 싶습니다.
삼국지를 보면서 유비, 제갈량, 관우, 조조 등 그 영웅들 이야기에 가슴 설레며 중화사상에 저절로 빠져들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삼국지에 해전(海戰)이 없습니다. 대륙 동해를 넘나들면서 얼마든지 상륙작전을 펼칠 수 있었던 재사들이 즐비한데도 그러합니다.
겨우 현재 중국의 중심부에서 무력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그건 동이(東夷)가 대륙 동쪽을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적벽대전도 수십만은커녕 수만 척 배도 정박할 수 없는 양자강 중류 지역입니다. 나관중의 상상력에 더해 우리 번역가 평역가들이 조금 과하게 포장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승리자의 역사인 삼국사기의 최치원 열전과 삼국지위지 동이전, 남제서 등등 중국 문헌에 등장하는 위대한 우리 영웅들 이야기를 덮어놓고 있습니다. 그 영웅들을 깨워야 합니다. 그 영웅들의 이야기를 널리 알려야 합니다. 그 일을 할 것입니다. 마치 독립운동 하는 그 심정으로 그리할 것입니다.


근초고대왕은 분명히 다른 역사 소설과 다릅니다.
 
 
분명히 다른 것은 우리 캐릭터를 중심으로 중국이나 일본식이 아닌 우리 식으로 새롭게 썼다는 것입니다. 무력이 중심인 정복전쟁이 아닙니다. 칼과 권력 싸움에 한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경제전쟁과 국가 총력전이 등장합니다. 동아시아를 공동체적 시각에서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전반적인 총력전으로서의 국력 신장과 영웅이야기가 다루어져 있습니다.
 
 
 
 
다소 문학적 소양이 부족하여 문장이 뛰어나지는 않을지도 모릅니다. 원래 10권으로 기획된 것이 5권으로 완간된 것이라 전개가 다소 빠르고 급하며 설명이 부족할지도 모릅니다. 구성, 캐릭터 등에서 그런 모자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읽기가 편하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또 적절한 반복과 정리를 통해 독자들에게 상당한 우리 역사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약간의 신화적 요소, 무협지적인 설정은 재미를 부여하면서 역사영웅소설의 장점을 참작하여 캐릭터와 구성의 맛을 늘린 것입니다.


덕분에 [근초고대왕] 전5권을 완간할 수 있었습니다.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늘 관심 가져 주신 모든 분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지켜봐 주십시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2010. 10. 26

작가 윤영용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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