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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문화가족과 함께하는 역사체험 참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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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41 진만석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1,083회 작성일 2008-06-06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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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大德文化家族과 함께하는 歷史體驗 參與記

   <백제문화의 절정 ‘부여’를 만나다>

 5月의 野外는 온통 草綠의 물결이었다. 곳곳의 논에서는 모내기가 한창이었고, 이미 모를 낸 논에서는 벌써 모들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지난 5月 29日 大德 文化院(院長 宋成憲)에서 主催하는 歷史文化體驗 行事에 參與하면서 都心을 벗어난 버스 窓밖을 통해서 본 風景들이다.

 그 行事에 우리들(邕大源과 그의 內子, 任在純, 申동기, 李峯來, 申學鉉, 宋翼淳, 李鳳鐘)외에 80여명의 會員들이 함께했다.

 大德文化院을 떠난 버스는 儒城을 지나 ‘삽재’에서 鷄龍市 쪽으로 새로 뚫린 터널을 통해 連山을 거쳐 夫餘로 향했다.

 夫餘 出身이면서 某 大學 敎授인 會員의 文化解說을 들었다. 三國 중 百濟의 遺蹟 遺物이 新羅의 慶州보다 貧弱하게 된 것을 안타깝게 여기는 그는 三國 統一 過程에서 新羅의 抹殺로 그리 되었음을 새삼스럽게 밝혔다.

 그는 新羅가 ‘新羅’라는 國號를 쓰게 된 것은 지증왕 때부터였지만, 百濟는 夫餘族의 王族인 溫祚, 沸流 등이 南下하며 定着한 時期부터 이미 十濟, 伯濟 등을 거쳐 ‘百濟’라는 國號를 使用했으며, 그것은 일찍이 中國과 疏通하는 등 當時 東亞圈의 勢力에 堂堂하게 編入되었음을 알 수 있다고 强調하였다. 또 아직기가 日本에 儒學과 佛敎 傳受함으로서 日本의 飛鳥(아쓰까)文化가 胎動하였으며, 당시 漢江流域과 남양만 일대를 掌握한 百濟가 唐나라로 통하는 有利한 入場이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우리가 陵山里 古墳에 到着하여 百濟 最後의 義慈王과 그 아들 夫餘 隆을 모신 ‘壇’을 보았을 때는, 唐나라로 끌려가 무릎 꿇고 빌어 목숨을 扶持했음을 想起하며 안타깝기 그지없었고 虛無하기까지 하였다.

 우리는 ‘宮南池’에 도착했다. 아직 연꽃이 피지 않아 조금은 索漠하였다. 하지만 ‘서동요’로 新羅의 선화공주를 아내로 맞은 武王 때, 우리나라 最初의 人工 연못으로 造成되었다는 <三國史記>記錄만으로도 그 價値가 充分하였다.

 점심을 먹은 후에는 外山面에 있는 無量寺로 갔다. 그 곳에는 生六臣 중의 한 명이며, 朝鮮時代 天才로 불렸던 金時習의 부도와 肖像畵가 있었다. 이미 5세 때 시를 지을 정도로 天才性이 있어 ‘金五歲’라는 이름으로 불렸다는 것과 그가 現實政治를 멀리하고 佛敎에 歸依하여 이곳에서 入寂하였다는 것과 對比되어 閑寂한 이곳 절의 모습이 悽然하기만 하였다. 無量寺에는 釋迦如來를 모신 대웅전이 없고, 비로자나불을 모신 극락전이 있어 特異했다.

 보령 댐을 一瞥하고, 마지막으로 ‘石炭 博物館’을 찾았다. 멀리 서울 마포구의 연미초등학교 학생들도 그곳을 찾고 있었다. 一行들은 모두 觀覽을 하기 위해 들어갔지만, 炭鑛이라면 넌덜머리가 난다는 邕大源과 나, 그리고 李峯來는 밖에서 하릴없는 잡담을 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갔던 길을 되잡아 돌아오는 길은 조금 지루하였다. 會員들 중 일부 신명이 난 사람들은 ‘묻지 마 관광’성 놀이로 신이 났다.

 저녁까지도 준비되었다. 마지막 끝날 무렵, 大德區廳長 정용기가 아침 出發할 때는 피치 못할 事情이 있어 나오지 못했다며 人事 次 食事場所에 왔다. 그는 60回로 말을 조리 있게 아주 잘한다.

 아무튼 나 같은 白手에게 구경시켜주지, 밥까지 주는 이런 行事는 多多益善이다.

                               2008.    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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