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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T.C.출신 선,후배제위께 묻습니다.(재미없으면 책임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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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1,083회 작성일 2010-08-08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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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女大生 r.o.t.c 제도 도입에 즈음하여!

 

1.걸프戰의 英雄 콜린 파월은?

 

미국 200년 역사에서  흑인 최초의 합동참모본부

 

 의장과 국무장관을 지낸 인물이다.

 

그는, 흑인 최초의 미국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가

 

미처 미국의 전국적인 인물로 등장하기 前에는

 

콜린 파월이 어쩌면 미국 역사에서 최초의 흑인대통령이 될 지도 모른다 라는 말을 돌았을 정도로

 

人品과  판단력과 리더십등이 모두 뛰어난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2.하지만, 만일 미국의 대학에 學軍 士官(r.o.t.c 즉,

reserve officers' training corps)제도가 없었다면?

 

정답은?

 

파월은 잘해야(?)  지리학자나 평범한 월급장이가 되었을 가능성이 컸다.

 

**뉴욕 시립대학에 다니던 콜린 파월 학생은 전공과목인 지리학에 비록 흥미는 느꼈지만, 대학생활은 시들시들했다.

 

3.그러나, 파월은 대학 3학년에 올라 r.o.t.c에 지원하면서 그 상황이 달라졌다고 한다.

 

4.r.o.t.c.가 파월의 생애에서 최초로 자

 

신을 떳떳한 조직의 일원으로 인정해준

 

 것이었다.

 

**파월의 그 상황과는 조금 다르지만

 

버락 오바마 현 대통령의 부인 미셸은?

 

미국 명문중의 명문인 프린스턴 대학 시절 엄청난 자기 정체성 혼란에 큰 열등감과 우울증까지 삼하게 겪어 아는 교수와 상담을 자청할 정도였다니 

 

다른 평범한 흑인대학생들은 그들의 정체성 등등에 얼마나 괴로워했겠는가?

 

**5살때부터 가수생활을 했다는 마이클 잭슨?

 

자기 얼굴피부를 조금이라도 하얗게 하려고 맨얼굴을 시멘트 바닥에 문질러댔다는 데 그 얼마나 괴로웠겠는가?

 

5.콜린 파월은 학생 연대장으로 활동하며 사람과 조직을 다루는 리더십을 쌓는다.

 

6.파월은 r.o.t.c. 장교 임관후 당시 共産主義와의 대결장이던 베트남전에 자원해서 참전하게 된다.

 

**그는 베트남전에서 길이 10센티가 넘는 큰 가시가 전투 수색중의 파월의 군화를 뚫고 솟아나오는 부상을 입어 한동안 적지않은 고생도 했다고 합니다. 물론 중상자나 전사자에 비하면 아무것도 이니지만,

 

전,후방이 분명치 않았던 베트남 밀림속 및 도시등지에서 하여튼 신체 손상없이 살아남았다.

 

** 미국 영화 .'지옥의 묵시록' 초반의  무장헬기를 이용한 전투장면을 상기해 보라!

 

**그리고, 베트남전 영화 디어헌터(로버트 드니로 주

 

) 및   7월4일생(톰 크루즈 주연-그는 이 영화에서 연기력을 검증받았다.),  

 

플레툰(찰리 쉰 주연-미국의 베트남전 패배를 최초로 정식 인정한 영화라고 함)

 

이에 비하면 실베스타 스탈론 주연의 람보 시리즈 영화는 한편, 통쾌하게 베트남 베트콩들을 죽이는 속이 시원한 장면이 많이 나오는등 미국인들의 보상 효과에 의한 카타르시스로서는 괜찮았을 지는 몰라도 다소 엉터리(?) 영화가 아닌가 思料됩니다.-필자주

 

등을 반드시 보길 바랍니다-아직 안 본 영화팬들은!

 

7.한국에서도 그 당시 베트남전에 참전한 r.o.t.c 출신

장교가 적지 않았다. 

 

국민 영화배우 안성기도 그 대열에 거의 끼일 뻔하였다.

 

8.중학 시절에는 나중에 톱가수가 되어 별명이 歌王이 된 조용필과 같은 반 친한 친구사이였고

 

고교 시절에는 베트남에 가려고

 

한국 唯一의 베트남어과가 있던 한국외국어대학에 진학하게 됩니다--당시 한국 외대는 오랜동안 영어과가 입시 최고 수준이었는데 안성기가 고교 3학년 당시 지원할 무렵에는 베트남어과가 영어과를 거의 넘어설 정도로 아주 커트라인이 높았다.

 

9.물론,  안성기가 대학 초년병시절 이미

 

미남가수 남진 베트남에 참전하여 직접 전투도 해보고 목숨을 보전하고 귀국하게 되었지만

 

하여튼, 불행인지 다행인지 안성기가 대학졸업무렵이 되자 베트남에서 미군 및 한국군은 철군(撤軍)하기 시작하게 된다.

 

그리하여,베트남은 1975년4월30일 공산베트남에 완전히 멸망하게 된다.(베트남 전쟁 약 10년동안 미군은 아마도 거대한 군산복합체의 모략(?)으로-필자주!-이 명분이 별로 없던 이 전쟁에서 미군은 무려 5만 7천여명이 전사하였고 한국군은 약 4천여명에서 5천명 안팎으로 추정됨.)

 

10.그리하여, 안성기는 한국 포병장교로 군복무를 한다. 안성기는 소설 '칼의 노래'로 낙양(?)의 紙價를 올린 바 있던 기자출신 작가 김훈이  쓴  소설 '현의 노래'라는

영화에 출연하여 한창 촬영중이라고 한다.

 

안성기는 신라 장수(將帥)이자 울릉도 진출의 그 유명한 장군 '이사부' 役이라고 한다.

 

**국민배우 안성기는?

 

하얀 전쟁이라는 베트남 배경의 의미있는 영화에 출연하여 명연기를 펼친 바도 있었고

 

1,000만 관객이 보았다는 영화 '실미도'에서도 아주 멋진 군인 연기를 보인 바 있는 데, 

 

이번 신라 將帥 연기도 바로 r.o.t.c 장교 정신이 스며들어 실감나는 연기를 하리라 믿는다.

 

11.다시 주제로 돌아와서

 

콜린 파월은 베트남 참전이후 시간이 흘러 별 하나 즉,

준장으로 미국 본토의 어느 지역의 향토사단의 부사단장의 한직으로 소일하고 있었고 그 당시 사단장과 이런저런 일로 뒤틀어져 육군 소장 진급은 언감생심 하면서 군복을 벗을 지도 모를 위기감이 엄습하던 때였다.

 

12.그런데, 어느날 1970년대 말에 주한 유엔군 사령관을 역임하였던 위컴 육군 대장이 육군 참모총장이 되어

 

초도 순시하던중 --1979년  당시 12.12 전두환 신군부 군사쿠데타도 직접 목격하고 이듬해 80년 광주 피비린내 나는 광주 학살을 목격한 바 있었고

 

어느 연설에서 한국의 신군부를 지칭하였겠지만,

 

"한국인들은 알래스카 들쥐(래밍)와 같은 습성을 가졌다." 라고 발언하여 큰 소용돌이를 일으킨 바도 있었다.

 

당시 부사단장으로 한직에서 소일하고 있던 콜린 파월을 보고는

 

"어찌하여 자네같은 유능한 장교가 이런 변방에서

 

근무하는 가?"하였는 데  바로 위컴 대장과의

 

劇的인 조우이후 위컴 대장의 적극 천거에 의해

 

콜린 파월은 예편의 위기를 넘기고

 

그 이후 승승장구하여 육군 대장으로 합참의장 및

명예스런 예편이후 국무장관을 역임하는 官運을 누리게 된다.

 

 

***위의 r.o.t.c. 장교 관련 애피소드는 비록 아니지만

 

ㄱ.박정희가 대통령이 되고 몇년 지난 다음

 

 경기도의 어느 軍부대를 방문하던 중

 

 어느 왕고참 대령을 보고는

 

"자네는 아직도 大領을 달고 있나?"  하였다.

 

이 한마디에 그  왕고참 대령은 그 이후 장군으로 승진하였다고 합니다.

 

ㄴ.김영삼 대통령이 어느날 육군사관학교를 방문하였는 데 육사 교수부에 최고참 대령을 보고는 면전에서 장군 승진을 언급하였고 얼마 안지나 그를 장군으로 승진시키고는 이내 정년이 되어 예편한 경우도 기억납니다.

 

ㄷ.그리고 김영삼 대통령은 서울대학교 동문으로서 후배이며 r.o.t.c. 출신인 서울대 출신 육군 홍아무개 중장을 서울대 출신으로서는 역시 최초로 육군 대장으로 승진시켰던 것도 기억납니다.

 

ㄹ.이와 같이 일반 사회에서는 물론,

 

군인 장교나 장군들도 누구와 어떻게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의 업그레이드가 달라지는 경우는 너무 많다.

 

 

ㅁ.美國의 경우는?

 

 대령 1,000명중에서 약 70여명을 장군으로 승진시키는 데  이중 r.o.t.c 출신이 무려 60%안팎이라고 합니다

 

한국의 경우는?

 

대령 1,000명 중에서 약 240명안팎을 장군으로 승진시키는 데  이것도 참 어려운 관문임에는 틀림없다고 봅니다.

 

ㅂ.그런데, 한국은 육군의 경우를 보면?

 

전두환(육사11기 출신) 대통령 시절에는 육사 출신이 거의 90%를 독차지하다시피 하였는 데

 

노태우 대통령(육사11기 출신)시절에도 약간 완화되었지만 육사출신이 독차지하다시피 하다가

 

김영삼대통령 시절부터는 오랜 기간 軍의 私組職으로

軍의 癌的 존재였던 하나회전격 숙청하면서 인기율 90%에 이른 적이 있었고

 

나아가, r.o.t.c 1기 출신의 박세환장군을 대장으로 승진시키는 등 뭔가 다른 모습을 보여 주는등 육사 독차지하는 것을 많이 완화시켰고

 

김대중대통령 시절에는 陸士에 들어가 초급 장교 시절에는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던 호남 출신 영관급 장교들이 오랜 동안의 장군 진급에서의 심한차별 대우에서 벗어나

거의 동등한 대우를 받는 시절도 있었다.

 

이제는 r.o.t.c 출신들은 3士 출신들과 함께 능력만 있으면 장군으로 진급하는 문호가 다소 넓어지는등 비교적 양호한 분위기는 이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 시절 장군 심사에서 대통령 친위세력등으로 부터 들어오는 다양한 청탁을 거절하다 못해

당시 남재준 육참총장은 예편을 자원한 모양새가 될 정도로

 

장군 진급은 한국에서는 정말 뜨거운 감자를 쥐는 심정과 적지않은 투서가 횡행하는 관행은 아직도 벗어나질 못하는 인상입니다.

 

**미국에서도 대령 진급까지는 본인의 노력에 좌우될 경우가 많다고 보지만, 장군 진급은 하늘이 도와주어야 한다고 말할 정도이니 한국에서도 거의 그런 분위기라고 보면 됩니다.

 

13.r.o.t.c 출신은?

 

우리나라에서는 1980년대 및 90년대에는 좋은 직장에서 평판도 상대적으로 좋아 각 기업에서 우선적으로 인원을 배정하는 등 1순위를 오래 유지한 바도 있다. 한마디로 몸값이 상한가를 친 적이 있다.

 

14.그리하여, r.o.t.c. 출신이 삼성그룹 c.e.o. 중에서 셋중 하나일 정도였고

 

상장회사 임원급에서도 5,000 여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즉, 리더쉽과 책임감, 조직관리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 덕분이었다.

 

15.r.o.t.c.출신에게는?

 

3無 1存--3가지는 없고 한가지는 있다- 이라는 말이 따라다닌다. 학연,지연,혈연에 휩쓸리지 않고(3無)오직 선,후배만이 있다(1存)

 

그런데, 지난 수십년간을 보면 1無가 보태진다. 즉 女性이 없다는 것이다.

 

r.o.t.c.는 1961년 도입한 이후 금녀(禁女)의 영역이었던 것이다.

 

16.이런 금녀의 영역이 드디어 깨질 모양새이다.

 

국방부에서는 2010년 하반기에 시범적으로 60여명의 여대생 r.o.t.c.후보생을 선발하기로 하였다.

 

17.아직 이에 대한 반박이나 反論이 적지않다고 한다.

 

r.o.t.c.후보생들이 4개월간 입소교육을 받는 광주 상무대의 구호는?

 

"나를 따르라!" 인데

 

 여성의 특성상 "이 구호가 가능하겠느냐?"

 가 바로 반론의 핵심 요지다.

 

18.그러나, 여성 최초의 보병연대장을 역임한  10년 前의 엄옥순 대령의 경우를 보면 이건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필자주!

 

19.현대의 전쟁에서 굳이 남자만 고집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한나라당 여성 의원인 김옥이 님이 여대생 500명에게 여론 조사를 해보았더니?

 

여대생  94%기 이 제도에 찬성하고 있고 그 중 36%가 지원하겠다는 의사표시를 했다고 한다

 

20.한국은 10년 前 엄옥순 대령의 장군 진급이 거의

 

 확정적이었으나 --위암 수술을 핑계로 강제에 가까운 예편을 시켜 참 안타까웠는 데-필자주-

 

그리고 피우진 중령이 유방암 수술 이후 건강이 좋아져 근무에 아무런 지장도 주지 않았는 데 강제 예편격으로 이런 저런 규정을 엄옥순 대령 처럼 들어 군복을 벗게 만들었는 데 오랜 법정 소송끝에 중령에 복직은 하였는 데 중령 계급 정년에 걸려 얼마 안있나 그냥 예편한 마음 아픈 경우가 또 있었다.

 

 

양승숙 대령이 여성간호사관학교 교장으로 임명하면서 한국 여성 최초의 장군으로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임명하여 큰 뉴스거리가 되기도 하였으며

 

미국에서는 여성 장군은 물론 중장을 거쳐 세계 최초의 대장을 임명한 것도 기억이 얼핏 납니다.

 

그리하여, 한국에서도 이제는 아마도 28년이나 29년뒤

쯤에는 r.o.t.c. 출신 최초의 여성 장군이 나올 수 있으리라 보며  어쩌면 나아가 한국의 여성 콜린 파월 장군도 나올 수도 있으리라!

 

@@@ 위의 내용의 핵심은 중앙일보 2010년8월4일자

김남중 논설위원의 고정칼럼 '분수대'에 기고한 글이며

 

약 30%안팎의 내용은 옮긴이의 기억에 의존한 첨언임을 참고로 알려드립니다.

 

가능하면 소감이나 견해등의 댓글 요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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