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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협 및 한총련**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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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1,087회 작성일 2010-09-19 21:33

본문

 
 
 
 

@제목: 1987년 全國大學生代表者協議會 결성!

 

***** 부제(副題): '求國의 강철대오'   깃발로 출범!

 

 

1.지금부터 23년 전 1987년 8월19일 낮 12시30분

 

2.충남대학교 운동장에서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결성식 열렸다.

 

 

 

3.'求國의 강철대오'를 깃발로 든 전대협의 출발인 것이다.

 

4.당시 대학생들의 위상(位相)은?

 

한국 社會 變革과 時局의 大轉換을 이끈 주체세력

 

가운데  당당한 하나였던 것이다.

 

****************************

@@다음은 필자 견해임-순전히 기억에 의존함!

 

**87년 4월30일 전두환 헌법 護憲발표(대통령 간선제 등등) 이후 전국의 대학생들의 반대 물결이 일어났고 국난 타개책으로 전두환과 아주 막역한 40년 친구사이인 노태우 민정당대표와의 짜고치는-필자주-고스톱으로 추정되는 대통령 직선제를 표방한

 

 소위 노태우 영웅만들기 즉 대통령 만들기의 전두환의 허락이 떨어진 對국민 항복 선언이나 다름없는

 

노태우의 劇的인  소위 6.29선언(대통령 직선제가 핵심이었다고 봅니다-필자주!)

 

 즉,전두환 정권 말기에 적지않은 위기를 전두환은?

 

적지않은 정치 위기 의식을 느끼고 미국측의 제지-필자주-로 친위 쿠데타 모의도 무산된 적이 있을 정도로

위태위태한 전두환 정권이었다고 저는 보고 있으며

 

노태우의 이 선언으로 큰 위기에서 탈출하게 되고

 

노태우는 이 여세를 몰아 약6개월 뒤에 있을 국민 직선에 의한 대통령 선거에서 양김씨의 분열을 여당핵심세력의  도움으로-필자주- 획책한 결과?

 

아주 근소한 차이로 노태우는 劇的으로 대통령에 당선되는 해가 바로 1987년이며 그해 겨울 -12월 중순이 됩니다.

 

**************************************

 

5.이런 수많은 정치 변동이 1987년도에 있게 되는 데

그 한가운데에 전대협이 결성되고 그 출범을 만천하에 고하게 되는 것입니다.

 

** 한마디로 집권 말기에 들자, 전두환의 철권 통치

 

도 소위 절름발이 즉, 레임덕 현상을 보이게 되고

 

전국대학생들의 전두환 호헌 발표 반대 물결에 위기 탈출로 6.29선언이 나오고 약 2달뒤 전대협의 결성된다.

 

6.당시 각 대학의 總學生會長들은?

 

87년 7월5일 이한열-연세대 학생으로 전두환 경찰의 최루탄에 머리를 직접 맞아 사망한 민주화 義死者-의 장례식 절차를 논의하기 위해 연세대학에 모인 자리에서

 

전국적인 대중 조직 결성의 필요성에 합의하였고

 

이후 3번의 사전 모임을 거쳐 8월19일 전대협의 결성이 이루어 지게 됩니다.

 

7.전대협 결성식은?

 

전국 95개 대학에서 약 3,500 여명이 모였고  이들은 다음과 같은 구호를 내걸었고 결의하기에 이른다.

 

ㄱ.진정한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하자!

 

ㄴ.조국의 자주 통일에 기여합시다!

 

ㄷ.민중과 연대합시다!

 

ㄹ.신성한 학원-대학을 일컬음-의 자율,자유 회복하자!

 

 

8.그리하여,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다.

 

"이제 우리가 이루려는 청년 학도의 전국적 대동단결은

 

군부독재정권과 제국주의자를 이 땅에서 완전히 쓸어버

 

릴 엄청난 역사의 급류로 돌변하게 될 것입니다!"

 

 

 

9.즉, 전대협은?

 

ㄱ.학원-대학교를 의미함-민주화

 

ㄴ.사회 민주화에 참여합시다.

 

ㄷ.반독재 투쟁 및 반미 중심의 운동과 평화통일 논의

 

등을 만천하에 천명하게 됩니다.

 

10.이런 전대협 결성 및 노선 천명 과정에서

 

아쉽게 드러난 내부 갈등 무엇이었나?

 

ㄱ.그 당시에나 23년 지난 지금이나 매 한가지라고 필자는 보는 데

 

바로 민족해방계열(세칭 n.l. 계열)과 민중민주계열(세칭 p.d.계열)간의 노선 차이로 인한 갈등였음!

 

ㄴ.나아가 제헌의회를 주장하는 민민투 계열의 학생들은 ?

 

전대협을 '타협에 물든 개량주의자들의

 

 모임'이라고 폄하,비난하였다.

 

 

ㄷ.충남대학교에 모인 학생들중 600여명은?

 

전대협 결성식에서 정치 토론을 요구하며 한때

결성식 진행을 방해하기도 하였다.

 

 

11.친정부 언론세력들은?

 

--'대형 좌경 세력'의 등장을 우려하고 나섰다.

 

12.87년 민주화 운동에 기여하지 않은 언론세력은?

 

ㄱ.이 나라의 민주화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할 것이다.

 

ㄴ.전대협은 좌경 성향을 일시 은폐하고 민주화 투쟁 조직인양 위장해서 연계 투쟁을 벌이고 있다 라고 보도했다

 

 

13.결성식 날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이던 이인영-국회의원 됨-씨가 영예(?)의 초대 의장으로 선출됐다.

 

14.부의장은 누구 누구인가?

ㄱ.연세대 총학생회장--우상호--국회의원 됨

ㄴ.전남대 총학생회장--김승남

ㄷ.충남대 총학생회장--윤재영

ㄹ.부산대 총학생회장--김종삼 등이었다.

 

15.짐작하겠지만, 의장이 전국을 총괄하고 부의장들이

각각의 광역 단위를 책임지고 관리하는 체제였다.

 

16.전대협 의장--이인영은?

바로 그해 11월15일 대구에서 검거돼 구속됐다.

 

17.전대협 부의장-우상호는?

이한열 열사의 49재--8월22일--이 날에 검거됐다.

 

18.이들에게 적용된 혐의는 무엇에 저촉되었을 까?

 

짐작하였겠지만, 국가보안법 위반이었다.

 

19.전대협은 후속 의장인 한양대학의 임종석 등의 수많은 전설적인 일화를 남기면서

 

약 6년 뒤인 1993년 5월 후속 모임 결성에 일임하고는

해체된다.

 

20.전대협 후신인 한총련

 

즉, 한국대학생총학생회연합은?

 

전대협의 발전적 해체를 내세우면서 출범하게 되고

 

2년뒤 국민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게되는 김영삼 정권하

에 벌어지는 소위 한총련 연세대 사태가 벌어지고

 

이에  청와대-검찰-경찰등은 한총련을 국가보안법상 이적 단체로 규정하고 한총련 간부들의 체포에 열을 올리게 되며

 

적지않은 각대학의 단과대학 학생회장 까지도 경찰의 불심검문에 걸려 치도곤을 당하거나 탈퇴 각서--대부분이 위기 모면용으로 썼다고 함-를 쓰고 방면된 대학생들이 부지기수 였으며

 

끝까지 탈퇴를 하지 않고 경찰의 추적을 피하던 한총련 간부들은 적게는 2-3년에서 길게는 8년 이상의 장기 수배 생활을 주로 대학내에서 하게 되는 등

 

수많은 공안 사건을 가져와 정국 경색의 단초가 되기도 하였으나

 

전반적으로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투쟁 노선의 선명성이 퇴색되면서 하향 곡선을 긋게 되고 이제는

 

전국 유명 대학에서도 한총련은 학생들의 무관심과 취업 전선에 대한 공포감 및 격세지감의 무상한 세월과 엄청난 민주화로 이제는 유명무실한 단체로 전락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필자주!

 

나아가, 최근 몇 년간 한총련 활동을 언론에서 보도된 것도 못 보았으며-필자주!-단과대학 학생회장이 한총련 탈퇴를 안해 잡혀갔다는 얘기나 보도도 들은 적이 개인적으로는 없다고 저는 봅니다.

 

지난 23년의 민주화 격동기에 전대협 의장 들과 간부들 그리고 한총련 의장들과 간부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으며 무슨 직업을 갖고 있는 지도 무척 궁금하다.

 

부디,한국 민주화에 대한 功이 적지않으므로 모두 직업전선에서 잘되기 충심으로 바랄 뿐이다.

 

전대협이나 한총련 간부 활동하다 검거되고 군대 끌려가

왕따나 구타등으로 자살한 대학생들이나 그 후유증으로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그 당시의 대학생들에게

 

삼가 위로와 사망자 가족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뒤늦게나마 표함을 용서바랍니다.

 

2010년 추석을 앞두고 9월19일 --전대협 결성 23년 1개월 지난 저녁에 올림을 양지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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