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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사 체험]-[웰 다잉]-및 [티벳 臨死 체험]-70세 이상 필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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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2,817회 작성일 2015-01-23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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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영혼의
 
 
[세계는 지금]
 
영혼의 증거 vs 뇌의 오작동
 
 
臨死體驗, 과학으로 파헤치다
 
한국일보 15면 TOP 2015.04.02 네이버뉴스
활동량… " 오작동이 만든 이례적 현상" 분석 병원 수술실에서 한... 미 의학계 유체이탈 관련 증거 수집 중 미 뉴욕 주립대 정신의학자인 샘... 특히 그는 의식이 육체에서 분리되는 유체이탈이 가능하다면 영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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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b>호스피스가</b> <b>죽으러</b> 가는 곳인가  [시론] 호스피스 죽으러 가는 곳인가 중앙일보(조판) 2015년04월03일(금) 오전 12:05 호스피스가 가장 절실히 요구되는 시기는 암 말기 진단의 초기다. 그러나 그 적절한 시기에는 이용하지 못하고 죽음이 임박한 상태에서나 겨우 의뢰되어 ‘죽으러 가는 곳’으로 인식되고 있다. 의뢰된 환자의 3분... 중앙일보(조판)만 검색 관련기사보기
마지막 길, 가족과 집에서 지내다 떠나고 싶은데…
 
마지막 길, 가족과 집에서 지내다 떠나고 싶은데… 중앙일보(조판) 2013년05월16일(목) 오전 12:52
호스피스와 의사의 왕진 등이 활성화되면 가정 임종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55곳(881병상)의 호스피스가 있지만 제대로 된 데는 많지 않다. 말기환자 중 호스피스 서비스를 받은 사람은 11.9%(2011년)에...
중앙일보(조판)만 검색 관련기사보기
말기환자호스피스간호 필요 중앙일보(조판) 1994년08월14일(일) 오전 12:00 호스피스병동은 죽으러 가는 곳이라고 누구나 꺼려합니다.그러나 고통속에서도 미소를 머금고 편안히 눈을 감는 모습에서 이곳을 다시 찾는 보호자들도 매우 많습니다.』말기환자들의 호스피스간호가 적극 필요하다... 중앙일보(조판)만 검색 관련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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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2015.03.27 19:09
) ▶ 이진순 언론학 박사. 전직 교수. 살림하고 애 키우는 오십대 아줌마이자 공부하고 글 쓰는 열혈시민이다. 서울대 사회학과와 럿거스대 커뮤니케이션스쿨을 졸업했다. 미국 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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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끝이 아니다. 새로운 시작이다”
종교
2015.03.03 19:50
. 그래서 사랑과 자비의 마음을 끝까지 잊지 마라. 이는 건강한 때도 중요하다. 임종자를 위해 자비의 마음으로 봉사하는 것은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글·사진 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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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연석 경기대 교수·죽음학교 교장
오연석 경기대 교수·죽음학교 교장
2004년부터 일 년에 몇 달씩 캐나다 프린스 에드워드에서 생활하고 있다. 바로 옆집에 터너 오르빌씨가 살았다. 2년 전 8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정원을 잘 가꾸는 오르빌씨에게 한 수 배울 겸 해서 이웃사촌처럼 친하게 지냈다. 부인은 우리가 정착하기 3년 전에 돌아가셨다.

그 집 정원에는 아름다운 나무와 꽃이 유난히 많았고 언제나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가끔 꽃 이름을 물어보면 오르빌씨는 뒤통수를 긁으며 "하, 마누라가 이 꽃 이름을 일러주었는데" 하면서 부인을 떠올리는 듯한 모습에 민망해진 나는 그 뒤론 어려운 꽃 이름에 대한 질문은 피했다. 때가 되면 정원 한편에 심어 둔 야채며 고추·가지·양파 등을 뽑아 우리 집 뒷문 앞에 가져다주는 따뜻한 분이셨다. 우연히 알게 된 오르빌씨의 생일날에 케이크와 카드를 준비해서 찾아가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 드리며 둘러앉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린아이처럼 매우 좋아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어느 날부턴가 하나뿐인 오르빌씨의 딸이 캘거리에서 빈번하게 방문하고 손자 손녀들의 발걸음도 잦아졌다. 그는 자주 병원을 오가더니 결국 집에서 멀지 않은 호스피스병원으로 거처를 옮겼다. 우리는 평소 그가 좋아하던 음식을 준비해 병원을 찾았다. 으레 우리가 그러듯 잘 이겨내실 수 있을 거라고 희망을 담아 인사말을 전하자 오르빌씨는 미소를 지으며 자기는 오래 살지 못한다고 말했다. 또 우리와 이웃으로 함께한 기간이 행복했고 소중했다며 감사를 전했다. 그리고 자신의 장례식에 우리를 가족석에 초청하고 싶다고 말했다. 예상치 못한 말에 약간 당황했지만 우리를 생각하는 마음에 감동하여 기꺼이 그러겠다고 말씀드리고 병원을 나왔다.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오르빌씨와 이웃으로 산 10년을 반추해 보았다.

그리고 스스로 반문했다. 과연 우리나라에 오르빌씨처럼 충분히 죽음을 준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고맙다. 행복했다. 너와 함께한 시간이 소중했다"라고 이야기하며 떠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10년 만난 이웃에게도 그렇게 따뜻하게 이야기를 나누는데 하물며 가족과는 얼마나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눴을까?

재작년에 큰형님께서 돌아가셨다. 시골에서 서울로 옮겨 종합병원에서 검사와 수술, 중환자실을 반복하더니만 몇 주 만에 돌아가셨다. 병실을 찾을 때마다 코와 입에는 호스를, 손목에는 여러 개의 주삿바늘을 꽂고 계셨다. 돌아가시기 이틀 전 중환자실에서 만난 형님께선 먹을 것을 달라고 간청하셨다. 간호사에게 요청했지만 기도가 막히면 손 쓸 방법이 없다고 해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다다음날 연락을 받고 달려갔지만 의식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코와 입에 호스가 끼워져 있어 어떤 대화도 불가능했다. 그렇게 형님은 세상을 떠나셨다. 의사의 사망진단이 떨어지고 한 시간 정도의 절차를 마친 후 형님은 병원 지하실에 있는 냉동 시신(屍身) 안치실로 보내졌다. 그리고 영안실 옆 장례식장에서 정해진 절차대로 2박 3일을 보낸 후 장지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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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人間다운 죽음을 맞는 첫걸음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나도 그렇게 죽어가야만 할까? 오르빌씨의 죽음이 떠오른다. 삶을 마무리하는 시간에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먹어야 한다. 죽음을 기다리는 순간에도 음악이 흐르는 공간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고 싶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낯선 사람들로 둘러싸인 생소한 중환자실이 아니라 내게 익숙한 공간에서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 친구들에게 "너희와 함께 한 세상이 참 행복했다"고 이야기하며 떠날 수 있어야 한다.

현재와 같은 죽음의 절차가 유지된다면 나의 죽음도 형님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선 말기암(癌)으로 판정받은 사람의 97%가 항암치료를 받고, 호스피스 치료보다 5배 많은 비용을 치르면서도 병상에서 항암제 투여와 주삿바늘로 극심한 고통 속에 몸부림치며 생을 마감한다고 한다.

제갈공명은 다섯 번째 북벌(北伐)을 떠나면서 자신의 죽음을 예지했다. 유명(幽明)을 달리한 유비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는 북두(北斗)에게 기도를 올렸다. 조금만 더 자신의 수명을 연장해 달라고, 간절하게. 그는 7일간 자신의 생명을 상징하는 등불을 지키려 했다. 마치 중환자실의 생명 연장 장치처럼. 그러나 사마의의 공격을 알리려고 달려오던 장군 위연이 등불을 밟는 바람에 그의 간절한 소망은 물거품이 되었다. 소설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이야기다. 누구인들 주어진 명(命)을 어찌할 수 있으랴!

웰빙도 중요하지만 웰다잉도 중요한 일임을 깨닫는다. 우리 사회가 도시화로 핵가족화된 지는 이미 수십 년이고, 이젠 빠르게 고령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과거 시골의 대가족 사회처럼 장례가 축제처럼 치러졌던 시대와는 확연히 다르고 그렇게 되돌아갈 수도 없다. 어떻게 사는 것이 훌륭한 것인지를 고민하던 시대에서 벗어나 이제 어떻게 사람다운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가라는 질문도 진지하고 엄숙하게 요구된다. 여전히 우리 정서로는 자신이 원하더라도, 사실상 죽음의 판정을 받았다 하더라도 그 죽음을 인정하는 일이 쉽지 않다. 하지만 좀 더 건강할 때 죽음을 준비하고 가족과 소통할 수 있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런 평소의 노력이 인간다운 죽음을 맞는 첫걸음이 되지 않을까?


오연석 경기대 교수·죽음학교 교장 |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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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만史설문] 고인돌은 인류가 죽음을 느끼고 기억하기 시작한 흔적

죽음의 낯선 이름들 (中)

고인돌은 청동기시대의 무덤이다. 지석묘다. 돌[석(石)]을 고여[지탱할 지(支)] 만든 무덤[묘(墓)]이다. 영어로 돌멘(dolmen)이다.

지구촌 고인돌의 상당수가 한반도에 있다. 고인돌 포함 거석(巨石)유물은 전 세계에 5만5000개가량, 이 중 우리나라에만 고인돌 형태로 4만개(북한 지역 1만5000개 포함)가량이 있다. 한반도 다음으로 고인돌이 많은 곳은 아일랜드인데 1500개가량이다.

생명의 완전한 첫 인식은 죽음의 뜻을 새삼스럽게 실감한 것이겠다. 삶과 함께 죽음 있어 비로소 생명이라는 명상, 생명의 외경(畏敬)이 문명의 첫 기념비 고인돌을 빚지 않았을까? 전남 화순군 도곡면 고인돌공원의 1300여개 고인돌 중의 하나.
무덤이면서 제사를 지내는 제단(祭壇)이었을 것으로 고고학은 추측한다. 그중 거대한 것은 무리의 우두머리의 것이었을 터. 2000년 유네스코는 화순(전남), 고창(전북), 강화(인천) 지역의 고인돌 군(群)을 세계문화유산 997호로 등록했다.

태고(太古)의 역사 두껍게 더께 앉은 아름다운 고인돌은 1970년대 박수동의 섹시한 코믹터치 만화 이미지로 몸을 바꿔 중년들에게까지 인기가 높았다. 우리와 고인돌의 만만치 않은 인연의 또 하나다.

고인돌은 인류가 ‘죽음’을 새삼스럽게 느끼고 그 뜻을 기억하기 시작한 흔적이기도 할 것이다. 태어나고 죽는 것, 그 아득한 것 같은 생(生)과 사(死)가 동전의 앞뒤처럼 엮여야 비로소 완성되는 생명 현상을 터득한 것이 고인돌을 세우게 된 의지였을 터.

거대한 그 돌무더기는 첫 사람들이 ‘살아 있는 것’들의 삶과 죽음을 은은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된 결과물이 아닐까? ‘생명 현상’을 관조(觀照)할 수 있게 된 증거가 아니겠느냐 하는 생각이다. 죽음 없는 삶은 없다. 죽음(의 상징)으로 생명의 본디를 가리키는 큰 지혜를 사람들이 ‘발명’한 것이다. ‘문자의 발명’과도 무관치 않을, 첫 문명이다.

가수 신해철, 그의 돌연한 죽음은 우리에게 무슨 뜻일까? 죽음의 여러 이름들처럼 죽음에 대한 우리의 생각도 다양하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죽음은, 죽는 것이다. 생명이 없어지는 현상이다. ‘생의 종말’로 심장 고동(鼓動)과 호흡 운동의 정지다. 뜻은 분명하나 죽음에 대한 사람들의 정념(情念)은 복잡하다. 자연 현상의 하나로 밋밋하게 그저 바라볼 수만은 없었던 것이다. 죽음을 기념하는 구조물이나 껴묻거리(부장품) 등 죽음의 표현에서도 드러난다. 언어는 물론이다.

죽다, 숨지다, 돌아가(시)다, 졸(卒)하다 등의 말이 있고, 세상을 뜨거나 버린다는 말도 있다. 숨을 거둔다는 말도 사용 빈도가 꽤 높다.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묘사보다는 은근하고 암시적인 표현이 필요했었음인지 ‘죽음’의 한자(어) 표현은 더 다양하다. 그중에는 글자의 뜻만 새기면 바로 알 수 있는 말이 있는 반면, 시(詩)를 읽거나 암호를 해독(解讀)하는 것과 같은 센스와 노력이 필요한 것들도 있다. 특히 역사나 전통문화를 서술한 문장에서 이런 생소한 말들과 자주 만난다.

사망(死亡), 사거(死去), 사멸(死滅) 등 죽을 死 자가 들어간 글자들은 쉽다. 절명(絶命), 운명(殞命)처럼 목숨 命 자가 들어간 글자도 있다. 세상과 이별 별세(別世), 인간계 아닌 다른 세계로 타계(他界), 죽은 이가 되다 작고(作故) 등도 비교적 직설적이다. ‘운명처럼 널 사랑해’의 운명(運命)과 죽을 殞 자 운명(殞命)을 혼동하지 말 것.

영면(永眠)은 영원(永遠)히 또는 오래 잔다는 뜻으로 ‘죽음’의 이미지다. 지하(세계)에 숨어 자다는 뜻으로 죽음을 나타낸 잠매(潛寐)도 흡사하다.

높은 신분 사람의 죽음을 서거(逝去)라고 한다. 글자 뜻은 ‘죽어서 가다’로 따로 존대의 의미는 없지만, 관례적으로 쓰는 말이다. 사진은 2009년 5월 서거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 모습이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서거(逝去)는 흔히 ‘사망 또는 사거의 높임말’이라고 풀이하나 逝 자 자체에는 그런 (높임의) 뜻이 없다. 다만 일반적으로 자주 쓰는 말을 피하여 지체가 높은 인물의 죽음을 표현하는 특별한 말로 쓰던 관습(慣習), 즉 버릇이 그런 이미지를 만들어 낸 것으로 본다. ‘대통령 서거’와 같은 쓰임새를 말한다.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간다는 불귀(不歸)나 아래 저세상으로 간다는 하직(下直)은 ‘죽음’의 시적 변용(變容) 또는 변주(變奏·variation)다. 물에 빠졌다[몰(沒)]는 뜻으로 죽음을 표현한 입몰(入沒)도 비슷한 쓰임새.

마지막 종(終) 들어간 종신(終身), 임종(臨終)도 있다. 무엇을 지켜 본다는 臨 자 들어간 임종은 ‘죽음을 맞는 상황’과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자리를 지킴’이라는 두 가지 뜻으로 쓴다.

명부(冥府), 유명(幽冥), 유계(幽界) 등은 불교와 민간신앙의 결합으로 생겨난 우리의 전통적인 ‘저세상’ 개념의 표출이다. 저승길에 드는 것이다. 명(冥) 자의 ‘어둡다’라는 뜻이 확대되어 저승의 뜻이 됐다. ‘유명’은 幽冥과 幽明을 구분해야 한다.

요즘 한자(어)에 익숙하지 못한 까닭에 많은 사람들이 헷갈려하는 표현이 ‘유명(幽明)을 달리하다’라는 말이다. 幽明은 그윽한[幽] 세상, 즉 저승과 밝은[明] 세상, 즉 이승을 대비한 단어다. ‘죽었다’는 말이다. 이를 ‘운명을 달리하다’라고 써서 실소를 부르는 이들이 적지 않다. 베토벤 ‘운명 교향곡’의 운명(運命)과 죽을 殞 자 운명(殞命) 등의 뜻과 혼동하는 듯하다.

어떤 말은 그 안에 속뜻을 담고 있다. 속뜻을 알면 말을 쓸 수 있다. 사람도 외모와 함께 그의 마음의 모양을 알아야 친구가 될 수 있지 않는가.

강상헌 평론가·우리글진흥원장 kangshbada@naver.com

■ 사족(蛇足)

그윽할 유(幽) 자의 갑골문. 이락의 저서 ‘한자정해’에서 인용했다.
저승과 이승 유명(幽冥), 저승의 뜻 유명(幽冥)이나 유계(幽界), 도깨비 유령(幽靈), 무덤 유택(幽宅) 등 죽음 이미지의 이 글자 유(幽). 그윽하다, 아득하다, 깊다 등의 뜻이다. 갑골문의 시대로 올라가 그 어원(語源)을 살펴보자. 실타래 두 개와 그 아래 불[화(火)]의 그림이 합체된 것이 갑골문의 幽 자다.

그 후 불 모양이 뫼 산(山) 자 그림으로 디자인이 바뀐다. 실타래[사(絲)]와 山의 합체, 3500여년 전의 (그림)글자가 오늘도 이렇게 쓰인다.

어둠 속에서 가늘디가는 한 가닥 명주실에 희미한 불꽃 피어오르는 모습을 상상해 보자. 칠흑(漆黑) 어둠이 아닌, 새벽의 여명(黎明) 같은 아득한 어둠이다. 여린 불꽃으로 그려낸 그윽한 어둠, 모순(矛盾) 같지만 되레 분명하다. 또, 아름답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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