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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島^참사랑-천리안-독도사랑동호회 지금은 현지-울릉도,독도 연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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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1,119회 작성일 2014-05-20 0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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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내가 알던 건 '독도는 우리 땅' 노래뿐
日 망언 때도 그저 시위만"
최보식
편집국
E-mail : congchi@chosun.com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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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조지워싱턴대 객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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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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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통신 천리안 '독도사랑동호회' 만들었던…

김윤배 '울릉도 독도 해양 연구기지' 연구팀장]



"1900년대 초엔 강치가 독도에 수만 마리나 서식했죠


수온 상승 인한 먹이 감소 탓인지

日 남획 탓인지 지금은 멸종"

"독도에 세울 '무인 해양 관측탑'

다 만들었으니 옮기면 되죠


하지만 외교부가 난색, 문화재청도 나서서 반대해"

"세월호참사로 여객선 이용이 줄었다지요. 육지 사람들에게 배는 선택이지만 울릉도 주민들에게는 필수입니다. 다른 교통수단이 없으니까요. 풍랑이 잔잔해 배가 뜨는 것만 해도 고맙지요. 그래서 '하늘이 점지한 날에 배 표(票)가 있어야 3시간여 만에 도착할 수 있는 곳이 울릉도'라고 해요."

김윤배(44) 박사는
'울릉도 독도 해양 연구기지' 연구팀장이다.
올 초 연구기지 개설과 함께
그는 부인과 세 자녀를 이끌고 울릉도로 들어왔다.

"연구기지 기숙사에서 대원 9명과 가족이 함께 지냅니다. 아이들은 정원 12명인 분교(分校)에 다녀요. 기지가 섬 일주도로의 끝에 있어요. 아직 완전히 관통이 안 돼 읍내까지는 왔던 길을 50분쯤 되돌아나가야 해요."

2005년 일본 시마네현(縣) 의회의 '다케시마의 날' 조례를 제정했을 때 이에 경상북도가 '울릉도 독도 해양 연구기지' 건립 계획을 내놓은 것이다.

김윤배 박사는“옛날 울릉도에는 멀리 떨어진 전라도 사람들이 많이 와서 살았다”고 말했다.
김윤배 박사는“옛날 울릉도에는 멀리 떨어진 전라도 사람들이 많이 와서 살았다”고 말했다. /울릉도=최보식 기자
"들끓는 여론으로 처음에는 각광을 받았지요.
하지만 다 그렇듯이 세월이 지나면 흐지부지해집니다.
예산 문제로 좌초 위기까지 갔어요.
공사업체는 부도가 났고…."


2년 전에도 낡은 구두에 점퍼 차림인 그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울릉도 도동읍의 여관에서 혼자 숙식하며 고투하고 있었다.
당시 그는 짓다가 멈춰버린 연구기지 현장을 내게 안내했다. 세상 사람들이 더 이상 연구기지의 존재를 기억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건축 현장 용어로 '타절준공'이라는데 미완성 상태에서 공사를 마쳤어요. 그 뒤에도 운영비를 어디서 대느냐로 진통을 겪다가 지난 3월 29일 현판식을 했어요. 해양 연구기지이지만 아직 연구선(船)도 없어요."

―김 박사가 기지대장을 맡을 줄 알았는데.


"해양과학기술원 안에서는 제게 기지대장을 맡으라는 말도 나왔어요. 하지만 제가 양보하면 그만큼 좋은 분을 모셔올 수가 있어요. 자녀 교육이나 의료 문제 때문에 울릉도에 안 들어오려고 하거든요. 울릉도 전체에 박사(博士)가 딱 3명 있어요. 모두 우리 연구기지에 있어요."

그는 소위 '운동권' 연구원이다.
대학원 시절 PC통신 천리안에 '독도사랑동호회'를 만들고
초대회장을 맡은 게 그였다.


"1997년 지리산 종주를 하던 중
장터목 산장에서 일본 대학생을 만났어요. 한국말을 제법 했어요. 경기도 광주에 있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사는 '나눔의 집'에 가봤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내가 일본인을 대표하지 않지만 정말 사죄하고 싶다'고 했어요. 그런 그가 독도 문제가 나오자 전혀 달랐어요. 독도가 왜 일본 영토인지를 설명하는 겁니다. 저는 반박 논리가 없었어요."


그는 장터목 산장에서의 일화를 PC통신 천리안에 올렸다. 처음 다섯 명이 댓글을 달고 '독도 공부 모임을 만들자'며 의기투합했다. 그 일본인 학생이 가봤다는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에서 1998년 1월 창립 모임을 했다. 여기서 만난 여성 회원이 지금 그의 부인이 됐다.


김윤배 박사(오른쪽).
"동호회를 만들고 일년 뒤 '신(新) 한일어업협정'이 체결됐어요. '독도를 팔아먹었다'며 말들이 많았지요. 그런 분위기에 의해 회원 수가 1000여명까지 늘어났어요."

한일어업협정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65년 체결됐다.
연안 12해리(1해리는 1.852㎞)를 '배타적 경제수역(EEZ)'으로 정했다.
하지만 1994년 유엔 해양법 협약에 따라
배타적 경제수역을 영해 기점 12~200해리로 지정할 수 있게 됐다.

"한·일 양국이 마주 보는 동해와 남해의 폭은 모두 400해리 미만입니다.
어느 나라도 일방적으로 200해리 관할권을 주장할 수 없었지요. 그래서 협상이 진행된 겁니다. 쟁점은 우리의 영해 기점(起點)을 어디로 하느냐였어요."

결국 우리의 기점은 울릉도가 됐다. 독도 인근 해상은 '중간수역(공동관리수역)'으로 정하고, 이 수역 안에서는 한·일간 협의에 의해 어업 쿼터를 나누기로 한 것이다.

"당시 '이는 명백하게 독도의 배타적 주권을 훼손했다'는 쪽과 '중간수역은 배타적 경제수역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독도와 12해리 영해(領海)는 배타적 경제수역이 아니다. 따라서 독도 주권을 훼손한 게 아니다'는 쪽으로 갈렸어요."

―협상 대표들이 '독도를 팔아먹겠다'는 마음을 가졌을 리는 만무하고.

"IMF가 터지고 난 직후에 협정이 체결됐어요. 일본에 경제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협상 준비 과정이 너무 아쉬웠어요. 테이블에 앉았던 우리 협상 대표들은 그쪽 수역에서 우리 어선들이 얼마나 조업하는지 몰랐고, 해도(海圖)도 제대로 이해 못 했다는 말이 나왔으니까요."

―'중간수역' 개념을 도입하지 않고 양국 간에 타결이 가능했을까요?

"글쎄요. 당시 김대중 정부를 옹호한 한 특정 신문은 '더 이상 협정을 미루면 양국 어업 질서에 혼란이 온다. 조속히 체결해야 한다'고 했어요.
정권이 바뀌니까 그 신문은 '협정을 파기해야 한다'고 썼어요.
언론들이 사안을 냉정하게 따지는 게 아니라 여론몰이식으로 했어요."

―그 협정으로 독도 영유권에 훼손된 부분이 생겼나요?

"협정에는 '이 수역에 대한 쌍방의 기존 입장을 훼손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들어 있어요. 우리는 '독도가 우리 땅'으로, 일본은 '독도는 다케시마'로 인정받았다고 나름대로 해석할 수도 있지요. 독도 영유권에 대한 결정적 훼손은 아니어도 일본에 빌미를 준 것은 틀림없어요."

그는 동호회 회원들과 함께
ㄱ.신(新) 한일협정 개정 서명운동,
ㄴ.독도박물관에 대한 지원 촉구,
ㄷ.독도 사진전시회 등을 벌였다.
그런 그에게 이듬해인 2000년 1월 1일 정부가 '새 천년 해맞이 행사 장소'에서 독도를 뺀 것은 참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전국 대학생들의 독도 탐사를 진행했어요, 당시 울릉도~독도를 운항하는 정기 여객선이 없었어요. 울릉도에서 대학생 4명과 사회단체 회원들이 어선을 타고 들어갔어요. 하지만 입도(入島) 승인을 사전에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독도경비대에 의해 쫓겨났어요."


신 한일어업협정 뒤 수역도.
신 한일어업협정 뒤 수역도.
그 사건이 있은 뒤 그는 '독도수호대'를 만들었다. 단순 동호회 활동이 아닌 사무실을 갖춘 민간단체였다.

"우리가 독도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독도는 우리 땅' 노래밖에 없었으니까요. 일본의 극우 정치인들의 망언이 나오면 혈서 쓰고 규탄 시위만 해왔으니까요. 독도에 대한 현장 조사와 연구로 일본의 논리에 맞설 대안을 만들어보고 싶었지요."

―일본과의 마찰은 없었나요?

"2010년 11월쯤 독도 주변 해역의 생태계 조사를 마치고 귀환할 때였습니다.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이 연구선의 진로를 막았어요,
그러자 인근 해상에 있던 우리 해경 5000t급 경비함도 달려왔어요. 덩치가 큰 경비함은 일본 순시선의 기동(機動)을 못 쫓아갔어요.
청와대 상황실로 '해경 경비함을 더 지원해달라'고 긴급 연락을 하고 한 시간가량 소동이 있은 뒤에야 순시선이 물러났어요."

―독도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이 과연 있을까요?

"물리적 충돌 상황으로 가지 않으려면 국제사회에서 우리 입장을 지지하는 세력을 더 많이 구축하는 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울릉도에 있는 '독도박물관'에 전시된 것은
모두 서지학자인 이종학 선생(2002년 별세)이 제공한 것입니다.
이분은 평생 '고요한 역사 전쟁'을 하셨지요."

―'고요한 역사 전쟁'이라면?

"이분은 '내가 이렇게 동해 명칭 관련 자료와 독도 지도를 모으는 것은 일본과 물리적 전쟁을 막고 세계만방에 우리 입장을 지지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해양 연구기지를 설치하고 독도 인근 수역에 대한 과학적 조사를 하고 좋은 논문을 쓰는 것도 그런 활동이지요."

―과거 독도에는 강치(바다사자)가 서식했다지요?

"1900년대 초에는 수만 마리의 독도 강치가 서식했던 걸로 봅니다. 일본의 한 수산 회사가 1904년부터 8년 동안 약 1만4000마리의 강치를 잡았다는 기록이 있으니까요. 그런 남획 때문인지, 수온 상승 등에 따른 먹이의 감소 때문인지 지금은 사실상 멸종 상태입니다. 간헐적으로 물개·물범 등은 관측되기는 합니다. "

―'강치 복원 프로젝트'를 하는 걸로 들었는데.

"해양수산부에서 올해 대통령 업무 보고에서 '독도 물개 복원사업'을 추진하겠다고 했지요. 국내 동물원에서 있는 캘리포니아 바다사자를 이곳으로 옮겨오거나 유사 해양동물들에게 먹이를 제공하는 소규모 바다 목장을 조성하는 계획이 포함돼 있지요."

조선일보 1963년 8월 11일자.
조선일보 1963년 8월 11일자.
―한때 말이 나왔던 '독도 무인 해양 관측탑'은 어떻게 됐나요?

"독도 인근의 해양·기상·환경·지진해일 정보를 수집할 목적으로 지난 2009년부터 추진됐지요. 이미 다 만들어놓았고 옮기면 됐습니다.
하지만 외교부가 난색을 표시했고, 문화재청도 나서서 '천연보호구역인 독도에 구조물을 세울 수 없다. 그렇게 하려면 독도에서 1㎞ 바깥 해상에 지어야 한다'고 했어요."

그는 전남 강진군 출생이다. 울릉도와 독도는 행정구역상 경상북도에 속해 있다.

"강진에 유배온 다산 정약용의 '탐진어가'에도
'돛을 달고 동쪽 울릉도로 가네'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옛날 울릉도에는 전라도 사람들이 많이 와서 살았습니다."

―지리적으로 많이 떨어져 있는데.

"1882년 이규원 감찰사 일행이 울릉도에서 조선인들과 일본인들 간에 마찰이 있다는 보고가 올라와 고종의 명을 받고 감찰하러 온 적이 있었지요.
그가 남긴 '검찰일기'를 보면
140명의 조선인을 만났고 이 중 115명이 전라도 출신이었습니다.
이들은 울릉도에서 배를 건조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조선일보 1963년 8월 11일자에도 울릉도에서 전라도 사람들을 직접 취재한 기사가 나옵니다."

세월호 참사로 미뤄뒀다가 영토 분쟁을 촉발해온 아베 총리의 '집단 자위권' 선언을 보고 이 글을 정리했다.
이제 우리 주위를 돌아볼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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