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과 분단 70주년이 되는 2015년을 맞아 박근혜정부는 통일 구상을 담은 ‘통일 헌장’ 발표를 준비하고 있다.
“본격적인 통일준비의 이정표가 되는 해로 삼고 행동으로 옮기는 해로 만들겠다”(류길재 통일부 장관)는 포부도 내놓고 있다. 하지만 발등에 떨어진 현실은 그다지 녹록지 않다.
박 대통령이 지난해 8·15 경축사에서“핵을 머리에 이고 살아가는 대한민국은 너무나 위험하고 비정상적”이라고 밝히는 등 북핵의 위험성과 정부의 단호한 대응 기조를 강조해 오고 있지만 북핵은 해를 거듭할수록 고도화하면서 해결 불가능해 보이는 최대 난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업그레이드된 포괄 접근 시도”
“행동 대 행동 단계접근이 옳아”
“레짐 체인지 外 답 없다” 분분
정부, 北에 당국간 회담 제안속
전문가 “성과 조바심내선 안돼”자칫 최악의 남북관계가 될 수 있는 2015년이지만, 북핵 능력의 고도화가 분단 고착화를 가중시키는 상황에서 새로운 통일 이정표를 세워야 하는 정부의
고민은 더욱 깊어지는 양상이다. 통일로 가는 길목에서 최대 걸림돌인 북핵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시점에 그 어느 때보다 ‘북핵 피로’ 현상이 극에 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핵 문제의 경직성을 탈피해보려는 창의적인 시도들은 번번이 북한 변수에 막히고 있다.
류 장관이 지난 29일 전격적인 대북 제안을 통해 권력핵심 간의 남북당국자
대화채널을 새로 만들거나 기존 장관급회담 부활을 위해 애쓰고 있으나 이 역시 정부의 희망대로 굴러갈지는 불투명하다. 북핵 해결을 위한 6자회담도 2008년 12월을 끝으로 현재까지 재개는 기대난망이다. 그 사이 북핵의 ‘덩치’는 계속 커지고 있다. 북한은 이미 2012년 개정 헌법 서문에 ‘핵보유국’임을 명시했고, 2013년에는 ‘경제
건설과 핵무력 건설 병진 노선’을 채택한 뒤 관련 법까지 만들었다.
외교안보 전문가와 원로들은 올해가 특별한 해인 만큼 ‘2015년식 포괄적 북핵 접근법’이 다시 시도될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현 단계에서 북한 핵능력의 증대를 막는 선에서 과거 추진됐던 ‘행동 대 행동 방식의 단계적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펴고 있다. 북한이 이미 핵무기를 체제수호 무기로 선언한 만큼 김정은 체제의 지도부를 교체하는 ‘레짐 체인지’ 밖에 답이 없다는 비관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강인덕 전 통일부 장관은 최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미국과
중국이 새해 북한과 구체적인 바게닝(협상)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북핵 포기의 대가와 북한의 체제보장 문제 등에 대해 이전과는 다른 구체적이고 노골적인 대화가 오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 전 장관은 그 근거로 “미국의 잇따른 외교적 실패 이후 북핵 문제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마지막 남은 해결 사안으로 이전의 대북정책과는 달라질 것”이라는 점을 들었다.
반면, 미국과 중국이 중심이 된 포괄적 해법 시도가 이미 북한이 핵보유국임을 주장하는 현 단계에서는 적절하지 않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연수 국방대 안보대학원 교수는 “북한의 핵 능력을 현재의 수준으로 묶는 동시에 추가 핵실험을 막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사찰을 받게 하는 등 단계적 접근법을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맥락에서 일부 국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미국 핵 전문가인 지그프리드 해커 박사가 제안한 ‘중지 및 원상복귀(halt and roll back)’라는 3단계 접근법에 주목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1단계로 6자회담 공식 재개 이전에 비공식 회담을 열어 북한 영변 원자로 가동 중단 등
사전 조치 등을 취하고, 2단계 본회담에서 6개월 이내에 핵연료 재처리 중단과 안전조치 준수 등을 합의한 뒤 마지막 3단계에서 1년 6개월 일정으로 모든 플루토늄 시설 폐기, 은닉 농축 우라늄 시설 폐쇄, 핵실험 및 장거리 미사일 실험 영구 중단 등으로 발전시키자는 주장이다.
북핵의 외교적 해법이 20년 공전을 거듭한 상황에서 출발점을 달리해야 한다는 근본주의 견해도 있다. 김영수(정치외교학) 서강대 교수는 “그동안 우리가 가졌던 북핵 방정식을 버리고 다른 방정식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북한 체제가 전환되는 것 외에는 해법이 없다”면서 “핵을 쥐고 있는 지도자를 주민이 교체해서 해결하는 방법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반대로 일각에서는 남북관계에서 이른바 ‘북핵결정론’을 경계하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대북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북한의 핵 폐기가 전제돼야 한다는 입장에서 벗어나 유연하게 대처하자는 논리다. 북핵 폐기는 후순위로 밀어놓고 5·24 조치의 해제 등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실마리를 찾자는 유화론이다.
그러나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이럴 때일수록 북한을 오판하게 하는 성급한 정책 변화보다 대북억지력을 계속 높여나가면서 내실 있는 통일준비를 하는 한 해가 되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
수석은 “통일을 위해서는 가장 큰 장애물인 북핵이 제거돼야 한다”면서도 “현 단계에서 5·24 조치를 해제하는 것은 북한의 평화파괴 능력과 비핵화 압력을 버틸
체력을 키우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희상 한국안보문제연구소 이사장은 “분단 70주년이 되는 해라고 해서 정부가 성과를 위해 조바심을 내서는 안된다”면서 “경쟁하고 적대하는 상대방이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에서 그들에게 주도권을 내줘서는 자유통일이라는 우리의 전략을 달성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방승배·정철순
기자에게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