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박준기(가명)씨는 “아내가 신고 포상금을 목적으로 유우성이 간첩이라고 허위 자백했다”고
주장했다. 5일 <한겨레> 인터뷰 도중 착잡한 표정으로 담배를 피우고 있는 박씨의 모습. 그의 요청으로 얼굴은
모자이크처리했다. |
[토요판] 뉴스분석, 왜?
어느 탈북자의 양심선언
▶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 조작 사건의 피의자 유우성씨는 현재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검찰은 ‘출입경 기록은 조작됐지만 유씨가 북한을 오갔다는 다른
증거가 많다’며 공소를 철회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검찰 쪽 증인으로 나선 적 있는 탈북자가 포상금을 목적으로 거짓 증언을 했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국정원은 이 탈북자에게 증인 출석 대가로 돈도 건넸다는 주장입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제보자를 만나봤습니다.
“유우성씨가 보위부 남파 간첩이라고 허위진술한 겁니다. 유우성씨 집안에 대한 증오심과 간첩 신고 포상금 등
때문이었습니다. (유우성이 간첩이 맞다고 증언하러) 재판정에 출석한 대가로 국정원에서 돈도 받았습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조작 사건에서 검찰 쪽 증인으로 재판정에 출석한 탈북자 참고인이 포상금을 목적으로
유우성씨가 간첩이라고 허위진술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이 증언은 참고인 김순자(가명·40)씨를 오랫동안 지켜봐온 남편의 주장이다.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번 사건에서 김순자씨가 한 역할을 먼저 알아볼 필요가 있다. 김씨는 2011년
2월 남한으로 온 탈북여성이다. 김씨는 함경북도 회령시에서 유씨 아버지 유진룡(58), 유씨 동생 유가려(26)와 함께 2010년 2월부터
4개월가량 가족처럼 살았다. 그러나 김씨는 유씨 가족과 잘 어울리지 못해 쫓겨나듯 집을 떠났고 이후 탈북했다는 게 유씨 쪽의 설명이다.
김씨는 유씨 사건 검찰 수사팀에도 출석해 ‘유우성은 보위부가 보낸 남파 간첩이다. 유진룡씨에게 들었다’고
주장했고 지난 6월21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유우성 사건 1심 재판에도 출석해 같은 주장을 이어갔다. 김씨는 검찰 쪽의 공소 유지를 위한
핵심 증언자인 셈이다. 반면, 유씨 쪽은 ‘김순자씨가 앙심을 품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반박해왔다.(<한겨레> 3월1일치 3·4면)
만약 김씨의 증언이 허위라는 사실을 알고서도 국정원이 수사를 강행했다면,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은
증거조작 논란을 넘어서서 수사 초기 단계부터 허위 증언에 기초해서 진행했다고 볼 수 있다. 검찰은 비록 국정원이 조작한 증거(출입경기록 등)를
제출했더라도 유우성이 간첩임을 입증하는 다른 증거가 많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김순자씨와 같은 탈북자들이 회령시에서 유우성을 봤다는 증언이
있다는 논거다. 유씨 사건은 검찰의 상고로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김순자씨는 남한에 와서 박준기(가명·43)씨와 혼인신고를 했고 2012년 9월 박씨와의 사이에 아들을 하나
낳았다. 박씨의 말에 따르면, 2012년 1월 기초생활수급비를 받기 위해 위장이혼하긴 했으나 사실혼 관계를 유지해왔다고 한다. 그러나 김씨는
지난달 박씨와 성격 차이로 헤어졌다. 박씨는 오랫동안 부인 김순자씨가 검찰 등에서 거짓 증언을 하는 것을 지켜보며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고
설명하며 부인과 헤어진 직후인 11월 초 유우성씨에게 연락해 그간 있었던 일을 밝혔다.
<한겨레>는 지난 12일 모처에서 박씨를 만났다. 박씨는 김순자씨와 2011년 7월께부터
최근까지 동거해왔기에 김씨에 대해 잘 알 만한 위치에 있다. <한겨레>는 김순자씨 관련 통화 녹취록과 여러 정황증거를 확인해 박씨
주장을 검증하는 과정을 거쳤다. 박씨와의 인터뷰 내용을 정리해 다음과 같이 공개한다.
‘유우성은 남파간첩’이라고 증언한 탈북여성의 남편 박씨가 양심선언
“아내가 복수심과 신고 포상금 탓에
유우성 집안에 대한 험담 하다가
내가 아이디어 내고 재판정서 진술”
“국정원은 재판 출석 대가 등으로
2천만원을 아내에게 주었다.
유가려 우는 모습에 마음 아팠다”
고민 끝에 진실 밝힌다는 박씨
국정원은 “간첩신고 포상금” 보위부와 친하다고 다 간첩은 아냐 -김순자씨가 국정원과 검찰 등에서 거짓 진술을 하게 된 과정을 자세히 설명해달라. “김순자가 나랑 같이 살 때 서너차례 정도 남한에 복수할 사람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게 누구인지도 모르기에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유우성 동생인 유가려가 남한에 들어온 2012년 10월 이후) 국정원 직원들이 김순자를 찾아와서 뭔가 설명을 하고 돌아갔다. 김순자가 합동신문센터에서 조사받을 때(2011년 2월) 유가려가 남한으로 곧 오게 될 것이라고 국정원 조사관에게 말했는데 유가려가 실제 들어왔다는 것이다. 알고 봤더니 김순자가 복수하려는 대상은 유우성의 집안이었다. 그 집안과 안 좋게 헤어졌는지 김순자가 ‘이 새끼(유우성) 잡아 죽여야겠다. 나한테 해를 끼쳤으면 벌을 줘야 한다’며 내게 (복수할) 좋은 방법이 없겠느냐’고 물었다.” 김순자씨가 처음부터 ‘유우성은 보위부가 보낸 간첩’이라고 진술한 건 아니다. 김순자씨는 2011년 2월 국정원 합동신문센터에서 조사를 받았고 2013년 1월10일 국정원 직원을 만나 자필 진술서를 썼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김씨는 ‘유우성은 위장 탈북자(화교)이고 유우성 집안이 보위부와 친하다’는 정도의 주장만 했다. 2013년 3월14일 김씨는 검찰에 출석해 다시 진술조서를 썼다. 이때 김씨는 ‘유우성이 남한에서 보위부 일을 하고 있다’며 진술을 좀더 구체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유씨의 간첩 혐의가 더해지도록 진술에 살이 붙기까지 김씨 남편의 조언이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2013년 1월 <동아일보>에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이 크게 보도되자 김순자는 기뻐서 신문을 오려서 보관했다. 유우성이 간첩으로 처벌받게 되면 자신의 신고가 큰 기여를 하게 되는 것이므로 김순자는 포상금을 기대했다. 하지만 김순자는 국정원에 유우성 집안이 보위부와 친하게 지낸다는 것을 알린 건 맞지만 유우성을 간첩이라고 신고한 건 아니었다. 유우성이 간첩 일을 한다는 건 김순자가 알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순자가 내게 ‘(유우성을 모함할) 방법이 없는지’ 물었다.” 박씨 역시 탈북자다. 북에 있을 때 수년간 보위부 지도원으로 일했다. 김순자씨는 보위부 사정을 잘 알고 있는 박씨에게서 아이디어를 얻으려 했다는 게 박씨의 설명이다. -논의 과정을 최대한 자세히 설명해달라. “(2013년 초) 아파트 베란다에서 함께 담배를 피우며 내가 김순자에게 유우성 가족에 대해 아는 것을 자세히 말해보라고 했다. 김순자는 ‘유진룡이 보위부랑 친하게 지내면서 송금 브로커 사업을 했다’고 말했다. 나는 이런 것만으로는 유우성을 간첩으로 볼 수 없다고 말했다. 화교들은 북에서 사업 편의상 보위부 요원들과 알고 지내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김순자에게 ‘유진룡이 술을 먹냐’고 물었다. 술을 조금 먹고 말수가 좀 없다고 하더라. 그래서 내가 ‘유진룡이 어느 날 술을 먹고 아들(유우성)이 북에서 보위부 일 한다고 말했다는 식으로 하면 어떠냐’고 아이디어를 냈다. 그러자 김순자가 ‘아, 맞다’라고 말했다.” -국정원과 김순자씨는 어떤 모의를 하였나? “‘유우성이 남한에서 보위부 일을 하고 있다’는 식으로 국정원과 입을 맞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유가려가 한국에 온 직후부터 국정원 직원들이 김순자를 자주 찾아왔다. 집으로는 두번 찾아왔는데 폐회로텔레비전에 찍힐 수 있어서 집(인천)에서 300m 정도 떨어진 커피숍에서 주로 만나고 돌아갔다. 김순자는 국정원 직원들을 만나 자신이 최초 제보자임을 확인받으려고 무던히 노력했다. 간첩 포상금 액수가 수억원이 될 수 있으니 기대가 컸다.” -김순자씨는 재판정에 스스로 출석한 것인가? “처음에는 김순자가 안 나가려 했는데 국정원이 끈질기게 부탁했다. 김순자는 재판정에 나가면 위증을 해야 하기에 무서워했다. 재판 출석 예정일을 며칠 앞두고 국정원에서 아내 통장으로 800만원을 입금했다. 아내도 예상하지 못한 돈이었다. (이때 박씨는 김씨의 통장 번호를 기자에게 알려주었다. 다만, 입금 내역이 적힌 통장은 박씨가 갖고 있지 않은 상태였다.) 그 뒤 국정원이 전화를 걸어왔다. 국정원은 ‘당신(김순자)에게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고 말했다. 김순자는 재판정에 나가면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국정원은 김순자가 재판정에 나가면 탈북자 강연 사업에도 참여하여 돈벌이를 시켜주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재판정에 가는 날(2013년 6월21일) 에스엠(SM)5 검은색 차량이 집 앞으로 와서 아내를 데리고 갔다. 김순자는 ‘원수에게 복수하고 돈도 벌고 훈장도 받게 됐다. 이래저래 잘됐다’며 좋아했다.” <한겨레>는 김순자씨가 국정원 직원으로 추정되는 남성과 나눈 대화 녹취록을 입수해 살폈다. 이 남성은 김씨를 찾아와 “보상 문제 얘기 들으셨죠? 나중에 보상금 이런 거도 재고가 될 수 있는 부분도 있지 않나 해서. 그런 부분들 좀 알고 계셨으면 (중략) 재판 임박해서 겸사겸사 뵈려고 했다. (재판 때) 있는 사실을 그대로 솔직하게 말해주시면 되지 않을까 해서 그런 마음에 (당신을 보러 왔다). 법원에 가셔도 되고, 안 가셔도 되고. 근데 저희는 진실되게 얘기 좀 해줬으면 해요”라고 말했다. 김씨는 재판정에 증인으로 출석한 뒤 국정원으로부터 1000만원을 더 받았다고 박씨는 주장했다. “(2013년 7월 초에) 김순자가 A4 용지만한 하얀 봉투에 5만원권 다발 두 묶음을 받아 왔어요. 한 묶음에 500만원이었어요. 국정원이 남편인 저에게도 말하지 말라면서 돈을 줬다고 하더군요.”
박씨는 아내 김순자(가명)씨가 국가정보원에서 받은 돈을 자신의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었다며 사진을
공개했다. 국정원이 준 돈 일부를 달러로 교환했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