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1월11일 a.m11-U.N.기념 공원을 向하자!-캐나다^ 6.25참전용사!
페이지 정보
작성자 : 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3,880회 작성일 2014-11-13 20:04본문
[사설] 11월 11일 오전 11시
6·25 희생 유엔군 추모 묵념을
[중앙일보]입력 2014.11.11 00:05
2007년 캐나다인 6·25전쟁 참전용사인 반스 커트니는 참전 21개국(전투병 파병 16개국, 의료 지원 5개국)에 의미심장한 제안을 했다. 매년 11월 11일 오전 11시에 세계 유일의 유엔군 묘역이 있는 부산유엔기념공원(옛 유엔묘지)을 향해 1분간 묵념하자는 내용이었다. 4만896명에 이르는 유엔군 전사자의 넋을 위로하고 연인원 175만4000명에 달하는 참전용사의 노고를 기억하자는 취지였다. 전사자가 최고 1만1000명이 묻혀 있었고 지금도 2300명이 영면 중인 이곳은 유엔군 희생의 상징으로 손색이 없다.
사실 11월 11일 오전 11시는 딱 100년 전에 터졌던 제1차 세계대전이 종전된 시점이다. 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 등 영연방 국가는 매년 이때 현충일 행사를 연다. 5월 마지막 월요일을 현충일(메모리얼데이)로 삼고 있는 미국은 이날을 재향군인의 날(Veterans Day)로 정해 전쟁에 참전했거나 군 복무를 했던 모든 사람을 기린다.
커트니의 제안은 받아들여져 2007년 ‘턴 투워드 부산(Turn Toward Busan)’이라는 이름으로 영연방 4개국을 중심으로 처음 열렸다. 이듬해 보훈처가 정부 행사로 격상했다. 특히 올해는 부산유엔평화기념관 개관을 맞아 참전 21개국의 참전협회 회원을 초청한다. 이 뜻깊은 행사를 맞아 올해는 보다 많은 한국인이 묵념에 동참해 유엔군의 희생과 노고를 기려야겠다. 역사의 교훈을 되살리고 우리를 도왔던 사람을 잊지 않는 것은 한국이 더욱 명예로운 나라가 되는 길이기도 하다.
아쉬운 일은 이 행사가 아직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날은 젊은이들 사이에선 1자 모양의 과자를 주고받는 날로 더 유명하다. 보훈처는 자라나는 세대를 포함해 더욱 많은 사람이 행사의 존재와 의미를 알고 묵념에 동참할 수 있도록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앞으로 이 행사를 평화의 의미를 되새기고 유엔 평화유지활동을 격려하는 국제적인 행사로 한 단계 격상하는 노력도 정부 차원에서 할 필요가 있다.
사실 11월 11일 오전 11시는 딱 100년 전에 터졌던 제1차 세계대전이 종전된 시점이다. 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 등 영연방 국가는 매년 이때 현충일 행사를 연다. 5월 마지막 월요일을 현충일(메모리얼데이)로 삼고 있는 미국은 이날을 재향군인의 날(Veterans Day)로 정해 전쟁에 참전했거나 군 복무를 했던 모든 사람을 기린다.
커트니의 제안은 받아들여져 2007년 ‘턴 투워드 부산(Turn Toward Busan)’이라는 이름으로 영연방 4개국을 중심으로 처음 열렸다. 이듬해 보훈처가 정부 행사로 격상했다. 특히 올해는 부산유엔평화기념관 개관을 맞아 참전 21개국의 참전협회 회원을 초청한다. 이 뜻깊은 행사를 맞아 올해는 보다 많은 한국인이 묵념에 동참해 유엔군의 희생과 노고를 기려야겠다. 역사의 교훈을 되살리고 우리를 도왔던 사람을 잊지 않는 것은 한국이 더욱 명예로운 나라가 되는 길이기도 하다.
아쉬운 일은 이 행사가 아직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날은 젊은이들 사이에선 1자 모양의 과자를 주고받는 날로 더 유명하다. 보훈처는 자라나는 세대를 포함해 더욱 많은 사람이 행사의 존재와 의미를 알고 묵념에 동참할 수 있도록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앞으로 이 행사를 평화의 의미를 되새기고 유엔 평화유지활동을 격려하는 국제적인 행사로 한 단계 격상하는 노력도 정부 차원에서 할 필요가 있다.
***********************************************************
[오피니언]기고 | 게재 일자 : 2014년 11월 07일(金) |
11월 11일 11시 ‘턴 투워드 부산(Turn Toward Busan)’
|
*******************************
캐나다인들이 한국에 오면 시간이 허락하는 한
유엔 참전 용사 묘지인 유엔 기념 공원에 반드시 방문한다고 합니다.
이역만리에서 자유 수호를 위해 목숨을 기꺼이 헌납한
캐나다 6.25참전 군인중 戰死한 ^^571용사에 대한
명복을 빌기 위해 방문한다고 합니다.
제가 부산에 과거에
호텔을 머물다
안내 직원들에게
부산 명소 3군데만 추천하라고 하면?
그들로 부터
태종대-
용두산 공원 그리고
범어사를
추천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한 참 지나
캐나다에 가서 캐나다人들을 만났을 때
"그대 한준구는
부산에 가본 적이 있었을 터인 데
부산유엔기념공원에는 가본 적은 있습니까?" 라고
나에게 물었을 때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 적이 있었습니다.
다음 기회에 부산에 가면
필히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가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캐나다 참전 군인 영령 앞에 고개숙이고
그들의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목숨바치신 것에 대해
깊이 감사를 드릴 것입니다.
부산 및 부신 인근 지역 분들은 11월11일 캐나다 현충일을 맞이하여
가능하면
가족,친지 또는 선,후배등과 함게
가보시길 권유해 봅니다.
***************************
저 한준구가 캐나다에 대한 인터넷 검색 없이
평소의 지식으로 잠시 언급해 본다면?
6.25전쟁 당시 미국-영국-그리고
우리의 혈맹인 터키의 한국에의 파병에 이어
캐나다는 아마도 4번째로 많은 3년간 2만 5천명 안팎의 참전군인 및
軍 의료 등의 지원을 해 준 것으로 기억됩니다.
기실 캐나다도 ^터키에 버금가는 ^^血盟임을
우리는 거의다 잊고 있는 듯 합니다.
우리는 다시 캐나다 군인들과의 혈맹에 준하는 유대 관계를 다시 정립해야 합니다.
그들 2만 여명중 생존해 계신 분은
수천명에 지나지 않으리라(아마도 2천여명) 사료됩니다.
그들 캐나다 참전 군인들은
자유 수호를 위한 6.25 전쟁 참전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며
매년 퍼레이드를 비롯한 연례 행사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도 그들과의 유대 관계는 물론,
캐나다가 워낙 은퇴한 분들에 대한 사회 복지가 잘되어 걱정은 덜 되지만
생존 참전 군인들이 생전에 한,두번은
희망자 및 거동 불편 하지 않은 분들에게는
우리가 방한 기회를 드리는 것이
기본 도리라고 저는 봅니다.
*************************
입력 : 2014.11.07 04:33
"우린 한국의 자유를 지켜야 했다"
1951년 12월 임진각 인근 서부 전선.
캐나다 왕립22연대와
중공군의 치열한 고지전이 펼쳐졌다.
레이몽 로티·아르티에 로티(82) 형제는
중공군 진지를 공격하라는
소대장 명령을 받았다.
로티 형제와 별동대 10여명이
야밤에 경기관총을 머리에 인 채
가슴팍까지 차오른 찬 강물을 헤쳐
중공군 진지로 다가갔다.
사격과 포격으로 중공군을 기습했고,
혼란한 틈을 타 다시 강을 건너 귀환했다.
아르티에씨는
"귀환한 대원들에게 소대장이 따뜻한 커피와 럼주를 주며 한 이야기를 잊을 수 없었다"고 했다.
"살아 돌아오다니…. 살아 돌아와 줘 정말 고맙다, 제군들."
-
- 6·25에 참전했던 로티가(家) 네 형제 중 세 명이
- 1952년 12월 캐나다로 돌아와 찍은 사진.
- 왼쪽부터 모리스, 아르티에, 레이몽 형제와
- 캐나다 왕립22연대 소속 전우들이다. /보훈처 제공
캐나다 왕립22연대 소속 로티 형제는
6형제 가운데 4명이 6·25에 참전했다.
형제는 참전 기간
많은 전우가 산화하는 것을 봐왔다고 했다.
부대 전술본부에 근무하던 넷째 모리스는
잠시 휴식하러 나간 사이
본부에 떨어진 포탄에
캐나다·한국군 전우들을 잃었다.
참호를 구축하던 셋째 아르티에는
땅에서 나오는 수많은 시신을 봤다고 했다.
그는 "정말 참혹한 광경이었다"고 했다.
첫째 레이몽은
포탄 파편을 맞아 두 번 부상했다.
적군과 1㎞도 떨어지지 않은 진지 속에서 지냈고,
식량을 구하기 위해 고지 아래로 위험한 순찰을
거의 매일 나갔다.
"1952년 10월, 중공군의 대대적 습격에 많은 전우를 잃었죠.
하지만 결국 적군은 떠났습니다.
그들이 전선을 뚫고 나가지 못하게 막은 겁니다.
전우는 떠났지만, 모든 것은 다시 제자리에 있습니다."
이들에게 6·25는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한 전쟁"이었다.
1952년 4월,
잠시 후방기지에서 휴식하던 로티 형제는
막사에서 집 없는 아이들 4~5명과 함께 살았다.
아르티에는 "아이들이 우리 군화를 닦아주었고, 우리는 매일 아침 아이들을 위해 주방에서 음식을 몰래 가져오곤 했다"며
"그런데 아이들은 어디서 가져왔는지
우리에게 낡은 옷과 담요를 구해다 줬다"고 했다.
로티 형제는
"한국의 자유를 지키지 못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오는 9일 6·25에 참전한
로티 4형제 중
아르티에씨가 62년 만에 한국을 찾는다.
11일 유엔군 묘지를 찾아 참전 용사들을 위한
추모 묵념 행사인
'턴 투워드 부산'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나머지 세 형제 중 둘은 세상을 떠났고,
프레드리는 와병 중이다.
아르티에는
"세상을 등지기 전,
형제들을 대표해
전우들을 찾게 돼 영광"이라고 했다.
☞턴 투워드 부산(Turn Toward Busan)
‘부산을 향하여’라는 명칭의 6·25 참전 용사 추모 행사.
2007년부터 매년 11월 11일 오전 11시(한국 시각),
6·25 참전 용사들이
세계 유일의 유엔군 묘지인 부산 유엔기념공원을 향해
일제히 1분간 묵념해온 것에서 비롯됐다.
올해는 처음으로
우리나라와 미국·캐나다·터키 등
의료인력 지원국을 포함한
총 21개 참전국 전체에서
부산 유엔군 묘지를 향한 추
모 묵념 행사를 연다.
*************
@++조선일보사측 및 ^^양승식 기자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