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읽는 백범일지’와 ‘백범일지(이상 돌베개)’ 주해본의 저자 도진순 창원대 교수는 ‘김구 청문회’의 내용과 관련 “1∼2개 사례로 침소봉대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도 교수는 국내 백범 연구 권위자로 백범학술원 연구위원이기도 하다. 그는 “백범이 해방정국을 제대로 읽지 못해 정치적으로 밀렸던 한계는 분명히 존재한다”면서도 ‘친일파가 만든 독립영웅’이라는 ‘김구 청문회’의 주장에 대해 “작위적이고 난폭한 해석”이라고 비판했다.
도 교수에 따르면 춘원 이광수가 ‘백범일지’를 윤문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여기에는 윤문을 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도 존재한다.
그는 “백범은 소위 ‘배운 사람’은 아니었다. 초고에서 자식들의 나이나
결혼 연도 등이 계속 다르게 기록되어 있고 문장도 틀린 게 많다”며 “그대로 출간되면 백범에게 모욕이 될 수 밖에 없어서 이광수가 손을 본 것이지, 다른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그는 “다만, 근대
교육을 받아 정통 한학에 밝지 않았던 이광수가 윤문 과정에서 어느 정도 오류를 범한 것은 사실이다”고 덧붙였다.
도 교수는 ‘일지(逸志)’라는 제목에 대해서는 “삼국지(三國志)와 마찬가지로 ‘뜻 지(志)’자를 썼는데, 이는
중국에서 ‘히스토리(history·역사, 이야기)’라는 뜻으로 쓰인다. 스스로 추켜세웠다는 것은 억지 풀이”라고 말했다.
‘쓰치다 사건’에 대해서는 도 교수가 이미 1997년 ‘백범일지’ 역주본을 낼 때 밝혔던 것임을 강조했다. 그는 이 책 98쪽에서 ‘1895∼96 김구의 연중 의병 활동과 치하포 사건(1997)’이라는 논문을 인용해 “일본 외무성 자료에 의하면 쓰치다(土田)는 나가사키(長崎)현 대마도 이즈하라(嚴原)항 상인으로, 1895년 10월 진남포에 도착한 후 11월 4일 황해도 황주로 가서 활동하였고, 1896년 3월 7일 진남포로 귀환하던 길이었다”는 각주를 달았다.
도 교수는 ‘김구 신화’를 깨트리려는 책의 취지에 대해서는
공감했다. 그는 “공을 앞세워 모든 걸 눈 감아주는 한국 사회 우상만들기는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한다. 백범뿐 아니라 안중근 등 인물 평전을 보면 너무 추앙만 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김신이 5·16쿠데타에 일조해 백범이 영웅이 되었다는 것은 부정했다.
도 교수는 “이승만 정권이 무너지고 눌려있던 백범에 대한 기억이 부활했다. 암살로 비극적 삶을 마쳤고, 이승만과 대조적인 면이 부각됐다. 자연스럽게 영웅시하는 분위기가 생겼다”고 설명했다. 그는 “박정희 정권에서 이 흐름을 받아들였던 것뿐이다”고 말했다.
박동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