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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전도사-39년-前 헌법재판관-^^김종대-^^이순신 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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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3,674회 작성일 2014-08-12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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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이순신 전도사로 유명한
 
 
김종대님 인터뷰 내용입니다.
 
 
 
****************
 
 
 
 
'이순신 전도사'로 39년…^^
 
 
 
김종대 前 헌재 재판관
 
 
 
“이순신 무한책임 리더십,
 
 
 
사회 바로잡을 보약
 
 
 
영화 ‘명량’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즈음,
불현듯 김종대(66)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떠올랐다.
그는 1975년 봄
책방에서 노산 이은상 선생이 쓴 ‘충무공의 생애와 사상’을 접한 뒤
39년 동안 이순신을 가슴에 품고 살았다.
저서 ‘이순신, 신은 이미 준비를 마치었나이다’를 쓰고
이순신 강연을 다니고 ‘이순신 스쿨’을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사람들은 그를 ‘이순신 전도사’로 불렀다.
영화 ‘명량’의 흥행 돌풍에
그의 입은 귀밑까지 찢어졌으리라.
7일 부산에 살고 있는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배우 최민식이 열연한 ‘명량’의 이순신이
그가 그린 이순신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하면서.
기자의 추측은 틀리지 않았다.


20140808002864_0.jpg 김종대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 제공
―‘명량’을 보면서 영화 속 이순신과 저서 속 이순신이 동일 인물처럼 느껴졌다.

“이순신이 명량해전에서 승리한 원인이 역사적으로 규명이 안 됐다. 일본은 패배한 이유를 모른다. 이순신은 명량해전 전날 저녁에 신인(神人)이 나타나 ‘이렇게 하면 크게 이기고 이렇게 하면 진다’고 가르쳐 줬다고 썼다. 명량해전 승리 후에는 ‘이는 실로 천행이었다(此實天幸)’고만 했다. 나는 그 신인이 무슨 얘기를 했을까, 오래 고민했다. 이순신의 내면 세계를 추측해봤다.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이 있다. 나라를 살리고 백성을 구하려는 이순신의 정성이 지극해서, 하늘을 움직인 것 아닌가. 이순신은 살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명량’을 만든 김한민 감독의 생각이 나와 같았다.”

―‘명량’ 제작 과정에 참여했나.

“헌법재판관 시절인 2년 전쯤 우연찮게 김 감독과 국밥집에서 만났다. 나의 이순신 강연을 들었던 김 감독의 형이 다리를 놨다. 명량해전을 소재로 한 영화 ‘명량, 회오리 바다’를 기획 중이라고 했다. 김 감독은 내 책을 읽고 확신을 가졌다고 했다. 김 감독과 나는 이순신이 명량해전에서 승리한 원인에 공감했다. 김 감독은 내가 지은 시(詩)를 책상 앞에 붙여놓고 ‘명량’을 찍었다고 한다.”

김 전 재판관의 저서 ‘이순신’은 이 시로 끝난다. ‘한산 바다 거북전선/적의 탐욕 응징했고/명량 바다 열두 전선/배달 불꽃 되살렸네/…/영웅으로 태어나서/성웅으로 돌아가니/거룩하다 님의 생애/죽었어도 살았도다!’ 김 감독은 최근 김 전 재판관의 저서를 소개하는 글에서 “12척 대 133척, 이 불가사의한 승리를 영화로 만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왔다. 이 책은 막연했던 영화 ‘명량’에 강한 확신을 주었다”고 썼다.

―‘명량’이 연일 관람객 동원 기록을 경신해가고 있다. 흐뭇하겠다.

“김 감독을 도와서 ‘명량’을 명^품으로 만들어서 10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할 수 있다면 내가 백번, 이백번 강연해서 몇 만 명에게 이순신을 알리는 것보다 더 이순신을 국민에게 가깝게 맺어주는 것 아니겠나. 김 감독이 소중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명량’ 촬영 전에 지내는 고사(告祀)에도 참석했고 촬영 현장도 찾았다. 김 감독을 만난 뒤로는 이순신 강연에서 주로 명량해전을 주제로 삼았다. 강연 말미엔 김 감독 자랑과 영화 ‘명량’ 선전을 잊지 않았다.”

―‘명량’의 흥행 성공 저변엔 영화 외적인 뭔가 깔려 있는 것 같다.

“우리 국민이 이순신 같은 인물을 갈망하기 때문에 더 열광하는 것 같다. 자기의 명예, 심지어는 목숨까지 내놓으면서 백성을 살리고 나라를 지켜내려는 지극한 나라 사랑과 위험하고 어려운 일일수록 솔선수범해 정성을 다하는 지도자 이순신의 무한책임의식이 국민의 마음에 울림을 만들어냈다고 본다. 세월호가 침몰할 때 도망친 선장이나 GOP(일반전초) 총기난사 사건 당시 도망친 군 간부도 앞에 놓을 가치와 뒤에 놓아야 할 가치를 전도시켜 자기만 살고 보자 해서 도망간 게 아닐까. 전도된 가치를 바로잡을 약재로는 이순신 정신이 가장 큰 보약이라 생각된다.”

―영화 ‘명량’이 떴으니 책도 많이 팔릴 것 같다.

출판사에서 신문에 광고를 내기 시작했다.(웃음) 지금까지 3만5000부 정도 팔렸는데 인세는 1원도 받지 않았다. 인세로는 ‘이순신 아카데미’도 운영하고 청소년을 대상으로 이순신 독서감상문 행사도 개최한다.”

그 말을 듣고 책을 확인해보니 ‘수익금 전액은 충무공사상 선양기금으로 사용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부박한 질문을 던진 기자는 민망해졌다.

―‘이순신 아카데미’는 뭔가.

“누구나 이순신을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만든 이순신 강좌다. 원래는 남녀노소 누구나 이순신 정신을 함양할 수 있는 ‘이순신 학교’를 만들 계획이었다. 세월호 참사나 군 총기·폭행 사건도 인성이 바로서야 해결되는 문제다. 교육부가 추진하면 힘을 받을 것 같아서 6년 전쯤 교육부에 문의했다. 서너 달 뒤에 ‘참 훌륭한 생각이다. 그 문제는 두고두고 연구하겠다’는 답신이 왔다. 지금도 연구 중인지 답신은 없다. 그러던 차에 세월호 참사가 터졌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순신은 자조정신을 강조했는데 내가 너무 정부에 의존하려 하지 않았나. 이순신이 저를 나무라는 것 같았다. 그래서 우선 손쉬운 일부터 해보자고 시작한 게 이순신 아카데미다.”

 
 
@+세계일보사측 및 ^^조남규 외교안보부장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
 
 
 
[인터뷰]
 
 
 
'김순신 40년' 김종대 前 헌재 재판관
 
 
 
 
최종수정 2014.08.11 12:47기사입력 2014.08.11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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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 법무장교 시절 책 접하고 매료돼
-퇴임 후 전국 순회하며 리더십 강의

-제자 양성 위해 아카데미도 운영

-마지막 꿈은 '이순신 학교' 세우는 것


[아시아경제 양성희 기자] 대한민국에는 지금 '이순신 열풍'이 불고 있다. 이순신 장군을 향한 전 국민적 '그리움'은 참다운 지도자를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찾고 있는 2014년 여름, 정점을 찍고 있다.

역사학자도, 정치지도자도 아니지만 40년 가까이 이순신 장군만을 연구한 김종대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66)은 이 그리움의 원천을 '리더십의 부재'에서 찾았다. 그는 "우리 사회는 늘 이순신을 그리워했다. 힘들수록, 나라를 구할 '참 지도자'가 없을수록 그리움은 짙어졌다"고 말했다. 따라서 김 전 재판관은 "오늘날에 이순신을 되살리려는 노력을 멈출 수 없다"고 했다.

난세의 영웅을 바라는 집단적 목마름을 '400년 전 이순신'으로나마 해갈해 줄 김 전 재판관에게서 '어제, 오늘, 내일'의 이순신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는 1975년 군 법무장교 시절 우연히 이은상의 책 '충무공의 생애와 사상'을 접한 뒤 이순신에 깊게 매료돼 반평생을 '이순신 전문가'로 살아왔다.

2011042800113147733_1.jpg
김 전 재판관은 법관으로서 어려운 판단의 순간에 직면할 때마다 마음속으로 이순신 장군에게 물었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하고. 그는 그렇게 자신을 내려놓고 이순신 장군에게 구하면 별 어려움이 없었다고 했다. 동료ㆍ후배 법관들에게도 틈나는 대로 이순신 이야기를 전했다. 후배 법관들의 말에 따르면 그는 점점 이순신 장군을 닮아갔다고 한다.

그는 2002년 부산지법 동부지원장으로 재직할 때 '이순신 평전'을 낸 것을 시작으로 2012년 9월 재판관에서 퇴임하고부터는 본격적으로 '이순신 정신'을 알리며 살고 있다. 김 전 재판관은 퇴임 후 '이순신 전도사'로서 인생 2막을 열었다. 퇴임 후 전국 각지를 다니며 이순신 관련 강의를 한 것만 50회 이상이다.

그는 현재 법무법인 국제에서 고문변호사로 일하고 있지만 이순신 정신을 알리는 데 하루의 반 이상을 쓰고 있다. 요즘에도 서울과 부산을 수시로 오가며 '이순신 공부'에 한창이다. 제2, 제3의 이순신 전도사를 양성하기 위해 서울과 부산에 아카데미도 개설했다.

그가 요즘 특별히 강연 타깃으로 삼는 대상은 각급 지도자들이다. 김 전 재판관은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특별한 관심이 있어 이들을 위한 맞춤형 책을 따로 출간하기도 했고 궁극적으로 이들을 이순신 전도사로 키우는 것이 목표지만 난세 중의 난세인 이때에 이순신의 리더십을 이 사회의 리더들에게 알리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각종 전술에 뛰어난 장수가 나라가 어려울 때 거북선으로 적을 이겼다는 것만으로는 이순신을 안다고 할 수 없다"며 '리더로서의 이순신'에 집중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했다.

"이순신 정신은 곧 선공후사(先公後私), 멸사봉공(滅私奉公)의 정신입니다. 공동체의 가치나 이익을 개인의 사사로운 가치나 이익보다 앞에 놓는 것, 조선의 생존을 위해 자신의 가장 소중한 생명을 기꺼이 내던진 그것이 바로 그를 성웅으로 이끈 기본 정신 아닐까요. 세월호 참사도 그렇고 우리 사회 곳곳에서 빚어지는 사건사고와 문제들도 결국은 지도자들이 지켜야 할 가치를 뒤바꿨기 때문입니다. 앞에 둬야 할 가치를 뒤에 두면 세상은 어지러워지죠."

수십년간 이순신 때문에 행복했다는 그는 '이순신 부채의식'에 시달린다고 했다. 그는 "나를 행복하게 해 준 이순신에 대한 부채, 나를 이만큼 키워준 이 사회에 대한 책임감이 나를 움직이게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최종적인 꿈이자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은 '이순신 학교' 설립에 있다고 했다. 이는 오래 전부터 품어 왔던 꿈이다.

김 전 재판관이 이순신학교의 후보지로 생각해 둔 곳은 이순신이 태어난 서울, 성장기를 보낸 충남 아산, 전라좌수사로서 나라를 구했던 전남 여수, 통제사로서 4년간 머문 경남 통영 등이다. 학교 설립을 위한 여러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어 우선 그 기반을 다지는 작업으로 '이순신 전도사 양성'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는 청소년들을 위해 자신의 책 '이순신, 신은 이미 준비를 마치었나이다'를 재밌고 쉽게 만들어 '이순신, 조선의 바다를 지켜라'란 제목으로 출간하기도 했다.

"이순신 리더십의 원천은 사랑과 정성, 그리고 정의와 자력입니다. 이순신은 이 네 가지 가치를 정돈해 100% 발휘함으로써 기적을 만들었죠. 이순신 학교를 세워 이 가치를 후대가 공유하도록 일조하고 싶습니다. 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인성교육에 이순신 정신이 활용되도록 하는 방안을 생각 중입니다."
@+아시아경제측 및
 
 
^^양성희 기자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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