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옥현/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前 국정원 제1차장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인
이병기 전 주일대사가 15일 국가
정보원장으로 임명됐다. 지금 국정원은 1961년 창설 이래 최악의 위기 국면에 처해 있다. 국민의 신뢰는 땅에
떨어졌고, 무능력의 수준은 바닥이라는 인상이다. 새 원장 앞에 놓인 과제는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 원장이 청문회에서 “늘 사표를 써
가지고 다니겠다”고 밝힌 것은 국정원의 고질적 정치개입 의혹의 고리를 끊겠다는 비장한 각오다. 아직도 청문회 석상에서 야당 원대대표의 질의자료를
촬영하는 ‘관심 정보관’이 있는 어설픈 현실 아닌가. 신임 원장은 과거 국정원의 굴욕사에 마침표를 날리는 데
사력을 다해야 한다. 돌이켜보면, 김영삼정부 북풍사건, 김대중정부 불법 도청사건, 노무현정부 선글라스 사건, 이명박정부 댓글 사건 등 정권마다
반복된 치욕적인 사건들이 있었다. 이런 악성 정치 바이러스의 독버섯을 뿌리부터 제거해야 한다. 2년 후에는 총선, 3년 후에는 대선이다. 정치
유혹의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계절일지도 모른다. 이번에 실패하면 국정원 해체 쓰나미를 막을 방도가 없다. 이제 국정원은 세계 15위권이라는 국가
위상에 걸맞은 ‘진성 중견정보기관’이 될 징검다리 하나는 반드시 건너야 한다.
신임 원장은 최소 박근혜정부 임기와 함께, 최대
2018년 2월 새 정부 수립 이후까지도 연임할 ‘헌신적 각오’를 다져야 한다. 지금까지 국정원장의 평균 재임기간은 1년반에 불과했다. 이스라엘
‘모사드’의 부장은 보통 7년이고,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정부 교체와 무관하게 연임되기도 한다. 지금 국가혁신이라는 시대적 대과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국가의 안전과 안보가 언제 뿌리째 뽑힐지 모르는 벼랑끝 가까이에 내몰려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우리는 지금 사실상 핵으로
무장한 김정은 정권, 첨단 군사
기술과 집단적 자위권을 무기로
브레이크 없는 군국주의 페달을 밟고 있는 아베 정권, 신형 대국주의 기치 아래 맘대로 우리를 끌어안을 듯한
시진핑 정권과의 정보전쟁에서 승리해야 한다. 지금 당장 통일 비전에 맞는 중장기 국가안보 전략의 대장전을 만들어 놓지 않고는 선진 강국으로의
비상은커녕 주변 4강의 소용돌이에 함몰될 위기에 빠질 수도 있다. 외교안보 레임덕 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러한 안보 위기에서는
프로다운 도전 근성과 탁월한 정보 자산으로 무장한 국정원장의 ‘지속적인 지휘능력(sustainable leadership)’이
긴요하다.
특히 야당 측이 대통령에게 직접 요청한 국정원 개혁이라는 ‘뜨거운 감자’를 다루기도 만만찮은 정치 환경이다. 이미
청문회를 통해서도 대공 수사권, 통비법 개정 문제 및 정보위 상설화 문제 등 개혁을 둘러싼 험난한 전선이 예고됐다. 혁신적 사고의 유연성과
창조적 발상 전환이 필요하다. 이제 감사원장 4년 임기제를 국정원장에게도 준용하는 문제를 검토하는 것은 시기상조일까.
국정원 개혁의
큰그림은 당리당략이 아닌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라는 헌법적 가치 구현과 ‘통일 대박’이라는 장기적 국가목표 실현에 있다. 또한 국정원 개혁의
핵심
요소는 국정원 직원들의 정보 감각과 마인드를 시대 상황에 맞게 탄력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개발에
있다. 특히 근엄한 계급 중심의 조직 문화 개선과 대대적인 의식 전환
교육이 요구된다. 이를 위한 선결 과제는 직원들이 열정을 다 바쳐 일할 수 있는 정치 중립적인 인사 제도의
합리적 운영에 있다. 이 원장은 ‘안 되는 것은 안 된다’고 고언한 것이
성공 스토리의 비결이라고 했다. 이 원장의 ‘고언’이 한반도 평화와 안정 그리고 우리의
행복한 미래를 열어가는 통일 역정의 서막이 되길 바란다. 대통령보다 국민을 무서워하는 국정원이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