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관세화 이외의 다른 방법은필리핀처럼 웨이버(일시적 의무면제)를 신청하는 방안이 있지만 협상과정에서 상대국으로부터 MMA 증량이나 추가적인 농축산물 시장개방을 요구받게 된다. 필리핀은 5년간 한시적으로 추가 유예에
성공했지만 의무수입물량을 2.3배 늘리고, 다른 농산물에 대해서도 대폭 수입개방을 약속하는 등 상당한 출혈을 감수해야 할 처지다. 웨이버는 예외적 상황하에서 일정기간 동안 WTO 협정상 의무를 면제받는 것을 말한다. 웨이버는 협상을 통해 WTO 회원국의 동의를 얻어야 하며, 한 나라라도 반대하면 사실상 통과가 어렵다.
추가적인 조치 없이 현상을
유지하는 방안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견해다.
2004년 쌀협상 당시 협정문에 2015년부터 어떻게 할 것인지 명시적으로 규정돼 있지 않다는 점, DDA 협상이 장기 표류하면서 WTO 회원국들이 선진국과 개도국 지위에 따라 각각 2000년과 2004년 이후에는 추가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현상유지의 근거가 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로선 법률적이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4. 日·대만 왜 관세화로 전환했나일본은 UR협상 당시 선진국 특별대우를 인정받아 1995년부터 2000년까지 6년간 쌀 관세화를 미뤘지만 유예기간이 종료되기 전인 1999년에 관세화로 전환했다. 일본이 조기 관세화로 전환한 이유는 불어나는 MMA와 풍작으로 쌀 재고처리가 한계에 달했기 때문이다.
대만은 2002년 WTO에 가입하면서 쌀에 한해 1년간 관세화를 미뤘다가 2003년 곧바로 관세화로 전환했다. 관세화 유예를 추가로 하지 않은 것은 쌀수출국들이 요구하는 추가 유예의 대가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당시 쌀수출국들은 추가 유예 시 매년 2%씩 소비량의 16%까지 MMA를 증량하라고 요구했다.
5. 언제까지 WTO에 통보해야 하나쌀 관세화 유예가 올 연말로 종료됨에 따라 9월 말까지는 우리나라의 입장을 WTO에 통보해야 한다. 일본, 대만도 관세화 시행 약 3개월 전에 WTO에 통보한 바 있다. 올해 9월 말까지 통보하는 것은 2015년 1월 1일부터 관세화 의무가 발생하므로, 관세화를 이행하기 이전에 WTO 회원국들이 우리나라가 설정한 관세율 등에 대해 3개월 동안의 이의제기 기간을 부여하기 위한 것이다. 정부는 그동안 토론회와 간담회, 공청회 등을 통해 각계의 의견을 수렴해왔다. 정부는 국회보고를 거쳐 9월 말까지 정부의 공식입장을 WTO에 통보할 계획이다.
6. WTO에 무엇을 통보해야 하나국별이행계획서다. 이는 각국의 WTO 의무이행계획으로 상품 및
서비스 양허표를 포함하고 있다. WTO 모든 회원국들은 1994년 UR 협상이 타결되면서 품목별로 관세를 정해 이 관세가 6년(선진국) 또는 10년(개도국) 후에 얼마로 줄어드는지, 특별긴급수입제한조치(SSG)를 실행할 것인지 등을 담은 국별이행계획서를 WTO에 제출했다. 우리의 국별이행계획서를 보면 쌀의 경우 관세에 대한 언급은 없고, MMA 물량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만 명시돼 있다. 쌀은 UR 협상에서 특별대우 품목으로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관세화로 방침을 정하면 이 국별이행계획서에 쌀의 관세율을 명시하고, SSG를 도입할 것인지를 정해 WTO에 제출하는 것이다.
7. 국회 비준동의 필요하나쌀 관세화 시 국회 비준(조약을 최종적으로 확인하고 동의하는 절차)이 필요한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존재한다. 헌법 제60조 제1항을 보면 국회는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 또는 입법사항에 관한 조약의 체결·비준에 대한 동의권을 갖고 있다. 관세화가 이 범주에 속하느냐를 놓고서는 2004년 쌀협상 때부터 의견이 분분하다. 관세화는 새로운 조약이 아니므로 국회 비준동의가 필요 없다는 주장과 쌀처럼 국민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품목은 어떻게든 비준 절차를 거치는 게 좋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정부는 신중한 입장이다. 다만 비준의 시점에 대해서는 태도를 명확히 했다. 쌀 관세화가 국회 비준동의 대상인지는 WTO 절차 종료 후 확정된 내용을 토대로 판단할 문제라는 것이다.
WTO에 제출하는 양허표는 우리나라의 ‘제안’에 해당하기 때문에 국회 비준동의 대상이 아니며, WTO 차원의 검증절차가 마무리된 후 확정된 수정양허표가 비준동의 대상인 ‘국제조약’에 해당한다는 설명이다. 2004년 쌀 관세화 유예 재연장 당시에도 비준동의는 우리 양허표에 대한 WTO 회원국들의 검증이 끝난 후인 2005년 11월에 이뤄졌다.
8. 관세상당치란 무엇인가관세상당치는 기준연도 국내외 가격 차이를 말한다. 예컨대 국내산 쌀값이 1㎏에 1000원이고 외국쌀이 200원이면 그 차액인 800원, 다시 말해 400%(800원÷200원×100%)가 관세상당치다. 200원짜리 외국쌀이 관세 400%(800원)를 물고 한국땅을 밟으면 국내산과 같은 1000원이 되는 원리다. 이때 국내가격은 기준연도(1986∼1988년) 당시 국내시장에서 지배적인 대표도매가격을, 국제가격은 실제 수입가격을 사용해야 한다. 만약 그 당시 수입실적이 없을 때에는 인접국의 수입가격을 사용하거나 주요 수출국의 수출가격에 보험·운송료 등의 비용을 더한 값을 써야 한다. 우리나라는 기준연도의 상업용 쌀 수입실적이 없어 어떤 가격을 국제가격으로 활용하느냐에 따라 산출되는 관세상당치가 천차만별이다. 당시 국내의 공식적인 도매가격이라 할 만한 자료도 없어 학계에서 예측하는 우리 쌀 관세상당치는 최소 300%에서 최고 700%로 편차가 매우 큰 편이다. 다만 협정문이 요구하는 사항에 가장 근접하다는 평을 받는 당시 농수산물유통
공사(현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소비자 도매가격(973원)과 우리에 앞서 관세화로 전환한 일본이 사용했던 태국의 국제시세(180원)를 각각 국내가격, 국제가격으로 활용해 관세상당치를 계산해 보면 440%로 나온다. 여기에 UR 협정문에 명시된 개도국 농산물 관세 감축률(10%)을 적용하면 관세는 396%(440%×0.9) 수준이 된다.
9. 관세율에 대한 정부 입장은정부는 아직까지 관세율이 어느 정도 수준이 될 것인지에 대해 공식적으로 밝힌 적이 없지만 쌀 산업 보호를 위해 가능한 최대치를 확보할 계획이다. 우리가 정한 관세율에 대해선 상대국의 검증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이를 미리 노출해봐야 우리에게 이로울 것이 없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이미 체결됐거나 추진 중인 자유무역협정(FTA)을 비롯해 DDA 협정이 타결되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참여하게 되면 쌀의 관세가 갈수록 낮아질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현재 1986∼1988년 당시의 주변국 쌀 가격을 토대로 다양한 관세율을 산정하고 있으며, 이 중 우리에게 가장
유리한 것을 선택한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그동안 모든 FTA에서 쌀은 양허 대상에서 제외됐으며 현재 추진 중이거나 추진 예정인 모든 FTA(TPP 포함)에서 쌀은 관세 철폐 또는 감축대상에서 제외해 지속적으로 보호한다는 방침이다.
10. 관세화 땐 기존 의무수입량 없어지나의무수입쌀은 관세화로 전환되더라도 없어지지 않는다. ‘UR 농업협정문 부속서 5의2항’을 보면 ‘특별대우가 중단되면 그 시점에서 유효한 최소시장접근 기회를 유지한다’고 규정돼 있다. 따라서 우리가 2015년부터 쌀시장을 전면 개방하면 의무수입량은 직전 연도인 2014년의 40만8700t으로 고정된다. 2004년 우리나라가 쌀시장 개방을 10년 더 미룰 때 그해 전체 의무수입량 20만5228t을 과거(2001∼2003년) 수입실적에 따라
미국(5만76t),
중국(11만6159t), 태국(2만9963t), 호주(9030t)에 배분(국별쿼터)하고, 이후에 늘어나는 물량은 국별 제한을 두지 않는 총량쿼터로 설정했다. 우리나라가 쌀 관세화를 단행하면 4개국에 배분된 국별쿼터가 사라지고 의무수입량 전체가 총량쿼터가 된다.
박양수 기자